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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수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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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석만필] NO 장유유서
2006년 04월 10일 00시 00분  조회:4223  추천:130  작성자: 두만강수석회
[탐석만필]
NO 장유유서

신철호

장유유서는 오륜의 하나로서 어른과 어린이사이에는 차례가 있다는 뜻이다. 지금에는 선배니 후배니 하면서 장유유서로 질서유지, 관계유지를 하고있다.

비록 합법적인 허가는 받지 않았지만 우리끼리 모여 멋스럽게 두만강수석회라고 이름을 단 수석동호인모임에는 김대현, 김학송, 리흥국, 김봉세, 리광인 등 수석수집의 력사가 10년쯤인 선배들이 있거니와 나나 한태익선생같이 석령(石齡), 즉 수석수립년한이 고작 3년뿐인 신참들도 있다.

선배님들의 집집을 줄줄이 돌면서 서재에 진렬한 수석들을 구경할 때의 그 황홀경이야말로 이루 형용할수 없어 나같은 신참은 두말할것도 없이 선배님, 스승님을 괴여올리면서 열심히 배우고 장유유서를 드팀없이 지키는것만이 유일한 출로일수밖에 없다.

그런데 딱 두분사이에만 이 장유유서가 탐석갈적마다 산산히 박살이 나서 우리에게 웃음보따리가 잘 차려진다.

《어이, 후배는 후배답게 선배님들의 돌배낭을 한 삼년 메여주면서 따라다녀야 하는데.》하고 롱을 거는 이는 김학송시인이요,
《옛, 알겠습니다. 젠장 쌍놈같으니라구.》하고 말대꾸를 잘하는 이는 김철학시인인데 김학송시인은 오십고개에 오른지 불과 몇년, 김철학시인은 김학송시인보다 십년넘어 년장이다.

김철학시인은 나와 같은 신참인데 우리와도 동이 뜨게 수석문외한이라 수석의 질, 색, 선, 자연미, 고태미 등 가장 기본적인 개념조차도 모르는 어른이지만도 열정만은 드높디드높아 큰일이 없으면 탐석에 어김없이 참가하고 참가해서는 또 김학송시인의《짓궂은》《괄시》를 감내하군 하였다.

두 시인은 실상 연변가무단 창작실에서 수십년을 코맞대고 일해온 줄기찬 경력이 있는지라 그 무람없는 관계가 자연스러울수밖에 없다. 똑마치《림꺽정》에서 스물을 갓 넘은 곽오주가 장가들고 상투얹었다고 감히 어른을 앞세우면서 자기보다 퍽 년상인 로총각 황천왕동이와 너나들이를 하는것처럼.
딱 탐석때만은 진짜 NO 장유유서이다.

지난해 8월 여름의 어느날 저녁에 김학송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별 할일이 없으면 탐석가지. 로투구우에 보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꽤 괜찮은 돌밭이 있어.》
《누구랑 같이 갑니까?》
《후배 김철학선생과 같이 가보지.》

내 머리속에서는 둘사이의 재미있는 대화가 아주 상상의 나래를 쫙 펴고 장밤 드라마를 엮어갔다.

보원에는 작은 수력발전소가 있는데 부르하통하를 한구간 빼돌려 세운것이라 그 물이 마른 구간에는 다른 구간에 있을수 없는 정원석위주의 돌밭이 쭉 뻗어있었다.

단 셋뿐의 탐석이고 구애받을 일도 없는터라 돌밭어구부터 김학송시인에게는 장유유서가 헌신짝이 돼버렸다.

《장난꾸러기》 김학송선배

벼슬이나 명예같은것이 김학송시인에게는 죄다 헌신짝, 아예 념두에 아니둔지가 까마아득할듯. 다만 시쓰기나 수석수집이 생명의 거의 전부가 되였다.

별명이《장난꾸러기》인 김학송시인은 등산할 때 보면 육담에는 언제나 장원이요 겨울에 눈덮힌 산에 오르면 아예 사지를 쫙 벌리고 반듯이 눈우에 누워 된불맞은 곰의 고함소리같은 소리를 오장이 싹 빠지게 웨치기도 하고 산비탈을 내려올 때면 아예 앉아서 엉덩이썰매를 타기도 하는데 메고다니는 배낭은 하냥 쪼르로기가 제대로 채워져있지 않아 입을 잔뜩 벌리고 허공을 쳐다보는 처지이다. 그러니 산기슭에 내려와 보면 그의 배낭속에는 눈덩이나 가랑잎같은 불청객들이 곧잘 모셔져있다.

시를 쓰는 분이라 우리의 눈에 그닥잖아보이는 돌도 일단 손에 쥐기만 하면《이봐, 골짜기 있지? 물이 흐르지? 진달래도 피여있지?》하고 잔뜩 상상해서 장황한 설명을 하는데 언제나 꿈보다 해몽이 좋아서 년상의 후배인 김철학시인은《좋다, 좋아! 나를 다구.》하며 욕심을 부리는데《개암을 쓴다》는 면이 오히려 더욱 절절한듯.

《날강도》 김철학시인

현재 연변시조시사 사장을 맡고있는 김철학시인에게 격에 맞지 않게 달린 별명은《날강도》이다. 덜렁 열정 하나에 든든한 신체를 믿고 두만강수석회에 참가한 김철학시인은 일단 수석밭에 이르면 갑마를 탄 신행태보 대종이 된다. 보원에서도 마찬가지.

《어이, 후배, 걷는것부터 배우시죠.》하고 김학송시인이《핀잔》을 주면,
《알겠습니다, 선배님》 대답은 잘하지만 그상이 장상이였다.
그러니 원체 수석에 관한 기초지식조차 제로인 이 어른이 온 하루 돌밭을 돌아보았댔자 얻어온 돌은 모두 몸돌이 아니면 막돌이였다.

《미친개 풋나물 캤구만.》하고 김학송시인이 또《핀잔》을 주면 결국 마지막 드잡이가 나온다. 그때면 선후배관게는 싹 달아나고《무서운》《날강도》 의《본색》이 나오는데,
《임마, 오늘 네것을 싹 빼앗아갈터이다.》하고 김철학시인의 입에서 고음나팔소리가 터져나온다.
그《빼앗기》가 또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여서 되다시 장유유서를 들고 나와야 했다.

탐석하러 갈 때에는 누구나의 배낭에 부인들이 열심히 장많준 점심밥이 들어있고 또 한두사람은 자청해서 집에 있는 괜찮은 술도 넣어가지고오는데 그 짓궂은 장난이 점심식사때에 새로운 고조를 일으킨다.

《후배, 선배들께 한잔씩 부어올리지.》
《그렇구말구, 한잔 받으시오.》

나도 그 덕에 두번째로 잔을 받아보는데
《젊은 놈이 먼저 받는 법이 어데 있습니까? 선생님께서 받으십시오.》하고 사양을 하면 김학송시인이
《먼저 받으라니깐, 선배노릇 잘 해야 후배가 똑똑해지오.》하고 나이가 아주 동이 뜨게 어린 나를 먼저 마시게 한다.

한순배 돈후에는 질서가 잡혀서 좌상인 김철학시인에게 그냥 잔이 올라가는데 그러다가도
《이보세요, 후배. 받아마시지만 말고 되권하시오. 맞갖잖으면 아니 데려온다니깐요.》하고 김학송시인이 가담가담《선배틀》을 내여 한근술이 즐거운 기운속에서 제꺽 굽이 나고 점심식사도 끝난다.

이러구나서 또 온 오후 탐석을 하고 귀로에 오르는데 떼놓은 당상으로 당연 김학송시인의 수확이 큰 반면에 김철학시인은 헛탕이였다.

기껏 땀을 흘리고 빈손에 돌아서야 하는 마음이 오죽하랴.
《선배님, 거 폭 패인 돌을 주시오.》
《안돼. 개념도 모르면서 좋은것은 그래도 아네. 이것은 호수석인데 래일까지 5천원만 갖고오면 손해본셈 치고 주리다.》
《후배를 어여삐 여거 선사하십시오.》
《배낭이나 좀 메여주었더면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공찾이는 원칙상 불허!》

이런 롱지거리로 뻐스정류소까지 이르는데 발차시간이 거의 됨직하면
《하도 손에 발까지 싹싹 비니 불쌍해서 선사하는데 매일 목욕재계하고 성심껏 모셔야 합니다.》하고 김학송시인은 장원석인 호수석을 선뜻 건내여주는데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품을 내리는것 같이 말투가 심히 정중하였다.

《쌍놈새끼, 아무튼 내건데 일찍 줬더면 메고오는 고생은 줄이지. 둔한 곰같으니라구.》
김철학시인은 《은혜》를 싹 망각하고 《날강도》의 《본성》을 내세우면서 《욕질》로 《성공》의 《희열》을 만끽한다.

일년에도 수차례 조직되는 합동탐석에서 두 시인은 그상이 장상으로 그날 장유유서를 자주 헝클어놓는데 결과는 그냥 이렇게 김철학시인의《승리》로 끝난다. 그리고 김학송시인은 그《압박》과《착취》에 시달려 가끔은 도로무공으로 귀가한다.

수천만년의 무심한 세월속에서 기이한 변화를 거듭하면서 조화의 오묘함을 갖춘 수석을 찾아 연변의 강들을 주름잡는 두만강수석회의 맴버들.

자연과 한몸이 되여 생의 즐거움을 창조하고 만끽할줄 아는 사람들.
인정이 있고 유머가 있고 예술이 있는 사람들.

이런속에 끼여 함께 다니는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랴.
그래서 자나깨나 기다려지기만 하는것이 탐석이요, 주어온 수석을 신주모시듯 벌려놓고 밤새워 감상하면서 더 훌륭한 수석을 꿈꿔보는것이 나의 인생의 락으로 되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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