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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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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랄곳 없는 외지인
2016년 11월 07일 11시 37분  조회:1067  추천:19  작성자: 소옹

        바랄곳 없는 외지인  
         ㅡ 한 영웅의 수난사
 
2016년 8월24일, 15년년말부터 일 없어 속타던 김만진은 밤중에 친구를 불러 북경조양구왕징남호중원 <아바이국밥집>에 가서 술마이며 마음속고통을 털어 놓았다.
1995년설밑에 만진이가5살나던해, 아바지가 고향서 산에가 땔나무를 하다 목뼈등서너곳을 몹시 다쳐 186일간 목아래는 손가락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다. 강익한성격의 아버지는 모진공통을 이기고 악전분투하여 근1년만에 겨우일어나 걸어 다닐수 있게 되였다. 그러나 그후유증으로 근육위축이생겼고  체력로동을 못하게 되였을뿐만아니라 앉아서도 7,8분 목을 돌리지 않고 있으면 쓰러지려 한다. 장춘길림성제1인민병원에 가 검진결과 3,4년후는 전신근육수축으로 들어누우며 실명이 될거라 하고 남경의유명한 골과병원의 전문의는 검사를 마치고는 치료도 거절하며 집에 돌아가 잘먹고 살아가라 한다. 아버지병치료로 그들은 살던 작은 벽돌집도 팔았다.
그들은 할수없이 할아버지집에 얺혀 살게 되였고 어머니가 도시에 들어가 남의집의가정부로 일하며 근근히 생활을 유지하여 갔다.
그렇게 곤난하게 살며 초중에 진학한 만진이는 항상 어떻게하면 가정생활에 도움이 될가 고민하였고 그로 공부는 뒤전에 두었다. 항상 몸도 좋지않은 어머니가 혼자 힘겹게 일하며 돈버는게 불쌍하고 안쓰럽게 마음에 걸려 던 김만진이는 15살나던 2005년늦은 여름에 학교를 그만두고 어린나이에 짐 싸들고 돈벌어 가정에 보탬하려고 북경으로 떠났다.
친척의 알선으로 2튼날부터 해정구 5도구에서 한국인이 꾸리는 작은 실내골프장에서 복무원으로 일하게 되였다.
천성이 활발하고 씨원씨원하며 거기에 엉치까지가벼워 열심히 뛰여다녀 사장님과 골프치러 오는 손님들로부터 아낌없는 호평과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북경들어와 짐풀어 여때까지 열심히 일하며 살아오던 그에게 근년의 전사회적경제난으로 많은 골프장들도 문닫게 되였고 그가 몸담아 일하던 련습장도 손님하객으로 페하게 되여 김만진도 실업하게 되였다.
근일년간 직업소개소, 취업전다지, 사이트등에 다니고 이력서도 보냈지만 학력없고 기술재간도 없는 그에게는 일자리는 생기지 않았다.
300여일의 뛰여다닌과 기달림은 혈기왕성한 젊음나이의 김만진에게는 큰 시달림이였고 아주 견디기 힘든 나날이였다.
와중에 사고로 근육위축으로 고통받으며 고생하는 아버지는 원체 137근되던체중이 이젠 96근이 되게 수축하여 뼈만 앙상하게 되였고 병증으로 조금만 걸어다녀도 무릅,다리특히골반과목이 불이 날듯 아파 힘겨워한다. 거기에 목부위의 근육위축으로 시신경이 압박받아 백내장,특히는 록내장이 심히 발병하여 실명할가는성이 높아 수술하라는 병원의사님의 진단에도 돈없어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얘기나누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진 만진이는 이튼날, 25일 새벽 1시반경에 식사마치고 친구와같이 식당을 나왔다.
김만진이가 문곁에 세워두었던 전동모터를 돌리는데 문곁에서 술마이던 20대한족젊은애들이 만진을 보면서: 现在骑电动车地 都是些穷鬼。란 비꼬는 소리를 내뱉는다 만진이 가 움직임을 멈추고 찔러보자 3애들은 눈길을 돌렸다. 둬발작 걸은 만진이는 생각해도 속이내려안가 친구보고 저애들이 나를 욕한다 며 돌아섰다  바로 그때 3애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김만진은 다가 온 그들을 보고 문책했고 쌍방이 오가는 말이 곱지않아 몇마디 안가 서로 맞붙어 싸움이 벌어졌다. 혼자서 3사람을 대하느라  힘이 부친 김만진은 전동차의 座垫을 뽑아들고 달려드는 张昊를 쳤고 그애들은 달려들어 만진의 손에서 座垫을 빼앗아 만진이를 내려쳐 김만지도  쓰러졌다. 그렇게 싸움은 1분도 채 안걸려 끝났다. 만진친구는 말리는것처럼 하면서 拉偏战을 조금씩하였다.
싸움소리에 달려나와 현장을 목격한 식당의2한족복무원애들도 싸움은 크지 않았고 1분도 못 되여 끝났다 한다.
한족애들이 报警하고 맞은 张昊는 자기아버지까지 불러왔다.
보니 3애는 당지 南湖中园에 사는 <北京人>이였다.
현장에서 직선으로 300메터안되고 돌아 온돼도 500메터도 안되는 거리를 경찰들은 25분이 넘도록 안 나타났다.
중에 친구가 몇번이고 만진이를 끌고 달아나려고 해도 만진이는; 나는 잘 못이 없는데 왜 달아나겠느냐? 경찰이 오면 리론해 볼것이다며 눌러 있었다.
报警하여 근 30분만에 현장에 도착한 경찰들은 대강 상황을 차문하고 그들(张昊父까지)을 구급차로 跨区海淀区清河999救护中心으로 실고가 진단검사하였다. 검사결과 张昊가 코왼쪽싹뼈가 손상이 가고 오른쪽손 엄지3번째뼈가 금이 갖다.
검사후 담당의사는; 没什么大碍。不用住院  不用吃药 回家养几天就好的. 라고 얘기했다.
김만진이는 검진하지 않았다.
소식접하고 김만진의 여자친구는 먼곳을 택시타고 달려왔다.
오전10반경 경찰들은 만진친구와짱호,짱호아버지를 경찰차로 남호파출소로 실어갔고(여기에 의혹 ㅡ왜 지정자인김만진이를 데려 안가고 간접인인 그친구인가?!)오후 2시경 2경찰은 짱호를 데리고 구급센터에 돌아와 김만진과 여자친구를 파출소로 실어갔다. 3시넘어 경찰들은 다시 짱호와김만진이를 안으로 录口供하러 들어갔다. 그후로는 만진이는 못 나왔다.
파출소에서 짱호는 만진친구를 보고 자기삼촌이 경찰이라 한다.
오후 5시에 짱호의 法医鉴定书가 나왔다.  6시경에 경찰들은 구급쎈터로가 나머지 두애를 실어와 8시에 录口供하고 9시넘어 나왔다.
밤 10시에 한경찰이 나와 여때 자리에 앉아있는 김만진의 여자친구를 보고 만진이는 잡혀 갔다. 집에 돌아가 돈 준비하란 말 두고는 안으로 들어 갔다.
후 张昊는 김만진여자친구보고 치료비,배상비를 달라하여 2천원 받아갔다.
27일 소식을 접한 김만진아버지는 급히 북경으로 달려왔다. 차에서 내려 만진의여자친구와싸움에 참여했던 만진친구를 만나 사건의 시말을 알아보고 만진여자친구와같이 사건접수남호파출소로 찾아가 당당경찰을 찾아 사건상황을 문의하려 했다. 그런데 경찰이 아주 언짢게 눈을 흘기며; 네아들이 법을 어겨 잡아 看守所넣었다고 말하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자식의 신심이 념려된 김만진아버지는 그길로 택시를 잡아타고 아들여자친구와같이 看守所로 달려 갔다. 도중에 전화로 아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看押期间는 누구도 면접볼수 없다하여 돌아섰다.
3흘후 김만진아버지는 다시 파출소로 찾아가 소장을 만나려 하니 만날수 없다하여 사건담당경찰을 찾아; 아이는 무슨죄명으로 잡아나? 왜서 그렇게 빨리 상해검진서가 나오고? 왜서 아이를 파출소로 데려와 문찰한다고는 그렇게 빨리 7시간도 못되여 잡아갔느냐? 왜서 아이를 잡아갈때 가속에도 알리지 않고 가속의 련락주소와전화도 남기지 않았느냐? 물으니 경찰은 제대로 답하지도 않고 瞪着眼睛蛮横的说;不负就上告吧。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후 김만진아버지는 법률를 아는 친구를 찾아 알아보고 전문형사안건을 접수하는 변호사를 만나 문의하니; 큰 일은 아니다. 고작 아이들의 싸움이 아니냐. 크게 다치거나 터진것도 아닌데. 며칠지나 나올것이다. 그런데 반날도 못걸려 상해검진서가 나오고 (정상적으로 5~7간) 7시간도 안돼 사람을 잡아 갔는가?! 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대방이 검찰원을 대신하여 래일 조양구검찰원에 가 협상하라더라는 소리에 놀라며; 아닌데, 지금은 아직 협상기간이 아니고 예심계단인데. 하면서 검찰원에서 통지한건가고 반문한다. 그렇다는 답복에 그는 아주 의아해 한다.
기간 대방애들은 연방 김만진여자친구를 찾아 돈달라, 협상하자며 말을 걸어 7천원어치를 받아갔다.
9월6일오후 1시반 김만진아버지와그여자친구가 조양구간수소로가 만진에게 옷과돈을 넣어준후 예심경찰에게; 만진이는 무슨죄로 구류됬는가? 물으니 그는 컴퓨터로 검색하더니寻衅滋事로 구류돼다. 사건이 중한가는 물음에; 엄중하지 않을거다. 중상안도 아닌데 혹 예심이 끝나면 나올수 있을거다 한다. 곧 검찰원으로 협상하러 간다는 소리에 경찰은 의아해하며; 모를일이다. 蹊跷,지금은 응당 예심계단이여서 안되는데. 안건은 먼저 정찰,다음 예심, 3계단이 판결인데 판결기간에만 협상할수있다. 그러면서 다시한번 蹊跷중얼거린다.
그들이 검찰원에 도착하여 调解室에 들어가니 앞에는 검찰복을 입은 검찰원이 서있고 좌측에는 20대젊은이 2사람과40대 여성이 앉아 있었다.
검찰원은 그들에게 대방을 소개한후 김만진아버지를 바라보며; 오늘은 협상의 마지막날이다. 오늘 협상서를 체결 못하면 5시에 나는 서류를 원장님께올려야 한다. 그러면 안건이 가중해지고 배상금이 높아가 너네에게 불리하다 액세스를 박아 말한다
만진아버지는 그소리를 응하지 않고; 당신이 오늘협상을 주최하는가 물으니 그는 옳다한다. 그럼 당신이 검찰원을 대표하여 이번협상을 주최하는가 바투들이대니 그는 멈칙하더니 얼굴이 벌개지며 조금있다. <나는 급한 서류를 처리해야 하니 이제부터는 당신네끼리 얘기하라>며 급히 서기원을 데리고 나갔다.
검찰원이 나간후 얘기를 시작하는데 코뼈가상한张昊가 자기는 코가심해상해20만원을 요구하려했는데 들을라니 당신네가정이 곤난하여 현재8만원을 받겠다. 두번째애는자기도 몇곳근육이 상해7만원요구한다. 그러면서 제3자를 대시하여 말한다며 제3자도 여러곳상하여 치료비 1만원에 정신손상비 해당수를 요구한단다.
코웃음이 났다.
만진아버지가; <그럼, 먼저 너들의 상해검정서를 보자>니 짱호가 그건 비밀이여서 안된다 한다.
<우리는 그걸 볼 권리가 있다. 오늘 상해검정서를 보지 못하면 이번협상에 나는 참여 안 겠다.>고 만진아버지가 결연히 말하자 짱호는 엄마와 눈길을 마주치더니 3사람이 모두 핸드폰을 꺼내들며; 여기에 사진이 있다. 며 핸드폰을 내민다. 만진아버지가; 사진을 보지않겠다. 원본을 보겠다 하니 짱호가 집에 있는데 친구보고 얼른차로 갖다 달라하겠다며 일어나 전화치려 한다.
<그건 안된다. 왕징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1시간넘어 걸리는데 못기달린다.>하니 짱호가 아까 있던 검찰원에게 전화걸어 몇마디 하고는 만진아버지에게 건네주며 전화를 받아보라 한다.
전화를 받으니 검찰원이 상해검진서는 비밀에 속해서 볼수없다 해; 내가 볼수있는 권한이 있는거 아니야?! 큰소리로 물으니 검찰원은 낮은소리로 할수없이; 검진서는 많은 서류봉투속에 묻혀있어 찾기 힘들다. 하여 <나는 반드시 봐야겠다. 보지 못하면 협상하지 않겠다. 검진서를 보지 못하고 어떻게 定性定价하겠는가? 》고 만진아버지가 박아 말하자 검찰원은 조금멈췄다. <그럼 내가 구두상으로 말하게>하면서 짱호는 코한쪽뼈 상해가 있고, 그소리에 만진아버지가 금방; 좌측맞지?하니 그는 말꼬를 고쳐 아니 량쪽이라 한다. 네가 금방 한쪽이라 했지 않냐. 하니 .아니, 량쪽. 그리고 두번째 짱쇼는 뒤골에 상처가 있고 쑈꼬는 근육이 몇군데 상처가 있다.
그소리를 들은후 오늘협상에 문제가 있어 김만진아버지는 만진여자친구를 데리고 협상하지 않고 검찰원을 빠져나왔다.
9월6일에 김만진아버지와그여자친구는 看守所에가 만진에게 돈넣어주고 옷보낸후 예심경찰관에게; 만진이 체포되였는가 물으니, 안됬다고 한다.
그후로 김만진아버지는; 왜 대방이 먼저 사람을 모욕하고 쌍방이 맞붙어 같이 싸웠고 만진이도 많히 맞았다.(대방은 3대1이고 김만진이는 1대3으로 많이도 맞았다. ㅡ대방이 휘두르는 전동차座垫에 맞아 쓰러졌다. 그로써 싸움은 끝났다.ㅡ ) 그런데 왜 만진이만 잡고 처벌하느데 대해 리해안되고 원 했다.
하루빨리 아이를 내오려고 김만진아버지는 사람도 부탁하고 아는 사람도 찾아 얘기하였지만 별다른 수는 없었다.
너무 안타는까와 9월14일오전에 김만진아버진는 사이트에서 검색한 천안문동쪽부근 공안부울안에 있는 中华见义勇为基金会찾아갔다.
그것은 여때 들어내지 않은 일로서 언제까지 말내지 않으려다 하도 바랄데 없어 이일로 도움을 청할가였었다. 그것은 ㅡ
2005년 가을도 막가는 어느날꼭두새벽 만지이가 퇴근하여 숙소로 돌아오는데 뒤에서 한남자가 뛰여지나가고 뒤쪽에서 <도적잡아라!>는 한여성의 다급한 숨찬소리가 귀전에 들려 왔다. 훔칫놀라 서있는데 또 한번여자의 <도적잡아요!>하는소리에 정신돌아선 김만진이는 벌써 저앞까지 달려간 남자를 향해 손틀어쥐고 뛰여 따라 시작했다. 얼마안되여 도적을 따라잡은 만진이는 몇번싱갱이질박투끝에 도적을잡아엎고 여성이 신고한경찰이 오자 도적을 경찰에 넘겼다.(이사건은 북경시해정구万花路派出所에 기록이 있다.
2008년정월초하루새벽2시경 김만진네가 북경시조양구京顺路大望京村에 방잡고 있을때다. 40来户大排房의 큰울안은 설이라 외지에서 온租户들은 모두 설쇠러 고향으로 가고 만진이와부모님, 안휘에서 온 50대의여성한분 에 앞쪽에서 사는 60,78세 되는 집주인부부 6사람밖에 없는 큰울안에 불이났다. 먼저 불을 발견한 만진어머니가 잠들어있는 집주인을 불러왔지만 허둥지둥할뿐 방문열쇠도 찾지 못했다. 그때불은 이미창문,밖아문을 뚷고 나왔고 집안에선 천정이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났다. 그때 김만진이가 아버지가 차 열지 못하는 문을 대범하게 힘껏 한발로 차 열어젖혔다. 그러자 세찬불길이 확하고 만진이를 덮칠번 하였다. 그렇게 만진네 3식구와 안휘여성 집주인네 부부6섯이서 힘껏뛰여 불을 껏다. 불끈후에 도착한 소방대는 불은 租户가 고향에 가면서 전기담요 뽑지않아 일어났고 만약에 제때에 발견못하고 끄지 못했으면 바람에 排房이 모두 탈번 했다 한다. 집주인은 만진과그부모님들의 손을 꼭 잡고 허리굽혀 인사하였다.
见义勇为基金会의 사무실에 전화하여 贾春旺회장님을 만나려한다 하니 젊은남성이 회장님은 외출하여 만날수 없다 한다. 그래 우리아이가 어찌하여 有难이 생겨는데 개가전에 xx xx이런 좋은 일 했는데 협회에서 어찌도울수있나 하여 찾아왔다 하니 공작원은 2004년전에 한见义勇为는 인정하지 않는다 한다. 그래 만진아버지는 개가 도적잡은일은 05년도고 불끈일은 08년도다. 하니 그공작원이 那是见义勇为吗?한다. 뜻빡의말에 골수를 얻어맞은듯 멍청했던 만진아버지가;那不是见义勇为吗?!반문하니 그가 다시; 那是见义勇为吗?되물어온다. 결이 날때로 난 만진아버지는; 哪,什么样的是见义勇为?! 这是录音通话(북경에 와서 일반적으로 중요한 대화는 록음하는 습성이 생겼다.)그렇게 웨쳐놓고는 숙소로 돌아섰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웨치고 또 웨쳤다; 中国这么了?! 中国人这么了?!  不是改进了吗?这是改进地吗?!
할수없이 김만진아버지는 사실을 중앙령도,북경시정부,북경시공안국,조양구검찰원에 서신을 띄워지만 국가접수처에서 당지해당부문에 반영하라는 메시지가 올뿐아무런 소식도 없다.
9월14일 아이를 빨리 뽑아내오기 위해 김만진아버지는 친척들에게서 돈 꾸어 4만5천원배상금을 내고 대방과협상하고 대방에서 行事谅解书를 체결하여 2튼날 곧바로 谅解书를 看守所预审大队갇다 바쳤다.
9월16일김만진아버지는 다시한번 간수소예심대대에 가 아들의 체포상화을 문의하였다. 담당경찰은 언짢게; 체포했다 한다. 솟는 화를 참으며 언제체포령을 내렸는가? 물으니 계속 그태도로; 9월7일체포됐다 한다. 그런데 왜, 우리가속은 아무런소식과통지서도 받지 못했나. 좋지 않게 물으니, 호적소속지로 보냈다한다. 결난 만진아버지가; 왜 사건3날부터 내가 여기에 와있고 나의 거주지와 련계전화를 너네에게 남겼지 않나, 그런데 구지 고향으로 보내는건 무엇때문인가 이일은 82세고령의 아이할아버지께 알리지 않고 있는데 일단 로인이 알고 앓아누우면 너네가 책임지게 는가? 성나 웨치니 경찰은 고개를 돌리며 이것은 규칙이다. 며 소리죽여 대꾸한다. 만진아버지의 웨침에 대청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쪽을 바라본다.
그후 여러곳찾아 신소하여도 소용없자9월22일김만진아버지는 북경시인민정부접수처로 찾아가 말해도 소용없자 국가민족사무위원회접수처로 찾아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50대의 공작원은 자리를 권하고 따뜻한 물부터 따라주며 삭삭하게 대하였다.
근1달간 곳곳에서 冷漠、蛮横、霸道地얼굴을 대면하고 접대받았던 얼었던 그의 마음 서서히 촉촉해졌다.
공작원은 그들의 불행에 동정을 표하고 정부부문의 랭대와 집법부문의蛮横에 유감을 표하면서 그들이 받은 불공평에 대하여 表示无奈、无助 示歉意표하였다.
9월23일 김만진아버지는 대방께 申请撤诉书를 씌워 다음날 만진여자친구와 같이 간수소예심원에 받쳤다.
그런데 후에 검찰원에 알아보니 预审大队和检察院서는 아직 두서류를 보지 도 못했다고 한다.
김만진네 부모님은 1999년도에 북경와서 일하면서 핸드폰을 3개 도적맞히고 2008년도에는 근3~4만원가치의 귀중물품을 도적맞혔으며(당장에서 의심되는 도적과목격자를잡았다)경찰은 두사람을 파출소로 데려가 기록하고는 다시 소식없었다. 택시차에 치여 못시 상해도 뺑소니 친 기사를 찾지않고 무고히 한족애들칼에 3곳찔려 병원에서 1주일넘게 입원치료로 2만여원치료비를 써도 경찰은 와서 기록만해가고는 소식없었다. 가까운근처에 2개감시카메라가 있는데도 보지 않는다.
이는 이들만의 조우가 아니다. 무릇 북경에 와돈벌이하는 외지인들이 모두 겪은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외지인이기 때문, 그것도 산골에서 온사람, 특별히 우리는 소수민족이기 때문이다. 불쌍한외지인, 업수받는 산골사람, 바랄곳없는 소수민족
만약시 김만진일도 북경인이 외지인을 때려 상처입혀다면, 경찰은 어떻게 처리하고 결과는 어떻겠는가?!
만약 이번일이 북경인대북경인의 사건이라면 정,법부문의 태도와결과는 또 어떻게는가?!
북경인이 낡은자전거를 잃어버려 신고하면 경찰들은 즉시 달려와차문,기록하고 목격자를 찾는다, 감시카메라를 뒤져본다며 바삐돌아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북경인이기 때문;
이것은; 인종차별,종조멸시아닌가?!
그들의 이런행법은 모순을 해결 안 할뿐만아니가 오히려 모순을 격화하고 더 큰충돌을 유발하며 화애로운 사회건설에 불리하다.
지금북경시조양구왕징남호파출소의 사건처리와 조양구검찰원의행법, 북경시정부접수처,中华见义勇为基金会의 행법은 중앙에서 제창한 和谐사회건설정책에 위반되며 中国梦실현과도背道而驰地되는일이라 본다。
오늘(11월7일)까지 북경정,법유관부문은 김민진아버지에게 아무런 서류와통지서를 보내주지 않고 있으며,김만진이를 잡아서(2016년8월25일)오늘까지 2개월14일,체포(2016년9월7일) 2두달 2틀되도록 판결도 않고 사람도 석방하지 않고 있다.
오늘 이지면을 통해 동포사회의 많은 관심을 부탁하며 그로써 앞으로 우리동포들이 이런차별과기시를 받지않기를 기원하며 김만진의 빠른해탈과가엽는 그부모님들의 근심을 덜수있기를 바란다.
 

2016, 11, 7
북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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