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화제는 내가 05년도에 경제생활잡지사에 선보여 입사하고 두달넘어 취재하여 계열문으로 잡지에 나가서 북경조선족사회와 한국인 사회에 작으마한 파문을 일으켰다.
잡지에 글이 나간후 북경에서 한국인집에 가정부로 일하는 조선족여성들(혹은 한족여성들)로부터 이따금 전화도 오고, 거리에서 만나면 붙잡고 자기네가 당한 불공편에 대하여 토로하여 건네 오는데 오늘도 한국인집들과 조선족가정부들 사이에 계속 마찰, 대돌이 있어 다시 화제로 끌어 올려 본다. .
당시까지 중국에 들어온 한국인들은 대부분 정부, 단체, 대기업주재인으로, 혹은 중,소기업자들이 였고, 유학생이였다. (당시, 재북경한국인 10여만명, 불완전추산)
그런데 현재는 가지가색,여러부류의 한국인들이 입경하여 재북경 한국인수가 15만명(불완전한 추산;북경한인회에 등록된수 8만여명)좌우가 된다고 한다. 이들속에는 고급교육을 받고 상층환경에서 생활해온 사람에 초등교육에 저하층에서 살아온 사람도 많다.
현재,재북경한국인호수는 약 5천여호(단솔인, 유학생등)이고, 한국집들에 다니는 가정가정부 4천여명 된다.
한국인집과 중국조선족아주머니들은 같지 않은 사회제도, 환경에서 태여나 생활했고 받은 교육 또한 차이점이 많아 접촉상에서 많히 부딕치고 실갱일 하며 해를 지우고 있다.
북경 왕징의 상징으로 되여있는 왕징체육광장
09년 정월보름이지나 조양구大望京땅집에 거주하는 길림성통화에서 온 ㅊ씨아주머니(40 여세)가 하루저녁 우리집에 찾아 와 이런 하소연하며 신문에 내여 사회상으로 평정해달라며 얘기해 왔다.
그가 望京国风北京106호아파트 을단원6층에 집 잡은 모한국기업에 다니는50세 데는 한국인 ㅇ씨 아저씨집에 근 2년 근무하였는데 아저씨가 어찌 나 까다롭고, 좀채긴지 힡들게 일하였다 한다. 평일도 그렇고, 일요일은 휴식일인데 도 이따금 전화와서, 이튼날에 출장가니 옷 씻어 달라, 넷타이 다리미질 해 달라, 친구들이 오니 반찬해 달라며 낮이든, 밤이던 시도 때도 없이 부른다, 아이둘이 학교다니는 형편에 돈이 많이 수요됨으로 참고 그렀저럭 견디며 일해 왔다,
그런데 올 음력설에 한국에 들어갔다. 정월 17일, 21일만에 온다 하여 ㅊ씨아주머니가 17일(음력)낮에 집안청소하고 채소를 장만해놓고 왔는데 저녁5시 넘어 ㅇ씨아저씨가 아니꼬운 목소리로 아주머니에게 랭장고(先生말대로 그간 집안전원 전부 꺼버렸음)에 넣어 두었던 송편과김치를 어찌하여는가 며 전화왔다. 아주머니가 오늘 청소하며 보니 떡과김치에 콤팽이 껴 버렸다 하니 먹을수 있는것을 버렸다며 좋지않게 전화를 끊더 란다. 그런데 6시넘어 또 전화와 물어 아주머니기 딱딱하게 사실을 말했는데 8시에 또 전화오며 이렇쿵 저러쿵 하며 트집을 걸어, 결이 날때로 난 아주머니가 전화를 끊어 버리고 그 길로 자전거 타고 밤길을 달려 그 집으로 찾아가 집문앞 복도쓰레기칸 쓰레기통에 버린 곰팽이낀 떡과김치를 찾아 들고 들어가 ㅇ씨에게 보이며; 여기 있다. 먹겠으면 먹으라. 인제 진절머리나 이 집일 안 하겠으니 결산해 달라며 결나 목소리 높여 말했다. 그때야 자기가 사실 모르고 잘 못했으니 계속 일해 달라, 급여 올려 줄 테니; 하느걸 뿌리치고 나왔다고 한다.
결산 할 때 도 이전에 부주의로 와이샤쯔를 다림이질하다 슬쩍 다려 놓은 걸 트집잡아 그돈 떼더 란 것이다.
박씨,48세,길림성 三源浦사람, 북경조양구草场地땅집에 거주, 대서양신청근무.
땡볕에 주인집과 둘이 같이 시장 같다 물건 잔뜩 사들고 왔어 다 덥지유, 그런데 집에 들어와 냉장고에서 수박꺼내 까서 혼자 앉아 첩첩 다 먹어유, “아줌마, 수박먹어요.” 뭐, 말 한마디 한다구요? 뭐, 먹지 못해 그러는 게 아니구유, 그런건 우리두 사먹을 정도야 되지유, 그런데 말 한마디 없이 저 혼자 첩첩 다 먹을 때는 기분이 상해요, 찰떡같은 것두 이렇게 전화하면 한 상자씩 배달해오지 않아유? 그것도 혼자 앉아 첩첩 먹고는 “아줌마,이거 남은거 냉장고에 얹어 놓아요”한대유. 그거 하나 먹어 보라는 소리 한다구유? 먹지 못해 그러는게 아니라 구유. 그래 일손이 잘돼 얼마나 잘데 겠유?
많은 보모들이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조양구남호중원지하에 거주하는 신분을 밝혀려 하지 않은 박씨 가정부
내가 먼저번에 하다 너무 하인 취급했어 뛰쳐 나온 집이요, 어찌나 하인 취급해서 안 하고 짐 꾸려가지고 나오는데 아이 핸드폰이 없다며 난리 예요, 나를 못 나가게 막으면서 내 가방을 뒤지려는거요. 한심해서, 그래서 나도 화가 나서 가방을 쏟아 보였어요. 그리고 태태를 끌고 온데 찾았어요. 홀시 머리속에 전날 저녁 아이가 쏘파에 누워 텔레비를 보던 생각이 나 쏘파등받이를 들어보니 그짬에 있는 거예요, 그걸 아이보는 앞에서 태태눈앞에 바짝 들이대 보이며 “사람을 어떻게 보고 하는 짓이요. 아무 턱 없이 사람을 무함해도 되는가요? 한국에서 고급교육 이렇게 받았어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하느님이 이렇게 하라 가르치던가요. 이제 만나면 침도 안받는다”며 그걸 쏘파에 뿌려 던지고 나왔어요,
김씨,42세 흑룡강성목단강시, 왕징신청4구 413동지하거주,
내가 신청4구 415동15층 3호에 다닐때 일이예요. 40밑에 이른 부부간에 남자, 여자아이 하나씩인 집이였는데요, 집을 됭 되게 안 걷웠어요. 월요일 아침에 그 집에 들어가면 객실부터 가관이예요, 아이놀음감에 옷, 책장들이 쫙 널려 있고 주방에 들어 가면 싱크대에 그릇들이 무더기로 싸여 있고 그아래 바닥까지 쟁기들이 무져 있어유. 이틀동안 놀고, 먹은걸 그대로 처박아 놓고 내와 걷우기를 기달리는 거예요. 머리카락이 곤두서게 밸 나지요. 아무리 보모를 둔 집이라고, 우리같으면 보기 싫어서도 겉웠을 거예요, (대면 해준 많은 아주머니들이 많은 한국집에서 보통이런다고 한다. 특히 한족보모들이 다니는 집)
그래도 우리 직업이 이것인데 참고 그냥 하지요. 더, 말 못할거는 태태가 월경이 올 때마다 뻘겋게 피가 묻은 그걸(팬티) 옷을 까득 여놓은 세탁기에 집어 넣는 거예요. 당장 화가 곤두라서지요. 그러면 어떻게 되게 서요. 다른 옷 들까지 물 들지요. 그러면 그걸 씻는라고 시간잡고, 신경나서 죽을 지경이 지요.
하루는 아침에 출근하여 세탁하려고 보니 또 그 뻘건 걸 안에다 던져 넣은 거예요, 그전에 이러지 말고 싸서 한쪽에 놓으면 내가 단독으로 씻는다고 서너번 말해는데 계속 그러는 거예요. 당장. 밸이 곤두라서 자고 있는 거실문을 뚜드려 안 하겠으니 결산 해 달라고 소리쳤어요. 그러니 부처간이 잠옷 바람에 나와서; 말도 없이 그만두니 돈 못 주겠다는 거요. 화가 날때로 나 그걸 비자루자루에 뀌여 들고 창문을 열어 져껴 놓고 소리쳤어요. 당장 결산 해 안주면 이집에서 이렇게 논다고 아래에 대고 공포한다.(415동 아래에 한국인들이 제일 많히 드나드는 평가시장이 있다.) 그러니깐 빤즈만 입은 先生이 입 딱벌리고 있는 태태를 보며 빨리 돈 주라고 하는 거예요.
문씨, 51세 길림성 집안현 사람, 왕징신청 423동지하거주, 夏都盈座근무
나 전에 대서양 신청210동에 자면서 일 할때 집인데, 왕징신청 4구 419동에서 괜찬은 음식점(ㅅㄷㄷ)을 꾸렸지요.
사는 집은 3칸짜리 큰 집인데 그 집에 있을 때 지옥이 였어요. 지금 생각만해도 으쓱해요. 량반이 괜찬은 식당꾸린다니 사람들도 괜찬겠다 여겼는데 말이여,
아침 5섯시면 일어나 학교에 가는 아이들 밥해 먹이고 도시락싸서 셔틀뻐스까지 바래다 주고는 와서 곧방 어른들 반찬 하고 그렇게 시작하면 3칸짜리 큰집이라 밤 10시넘어까지 쉬지 못하고 돌아 쳐야 해요. 낮에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밤이면 더욱 힘들어요, 내가 잠 자는 칸은 언덕짝만한 칸인데 한사람짜리 침대를 놓으니 엉치를 돌구기도 힘들죠, 그기에 침대밑에 물건을 까득 쓸어 넣었지, 벽구석에 청소기등 물건들을 무져 놓았지. 숨도 나지않게 캅캅해요, 거기에 창문하나 없는 창고로 쓰는 방이 였어 숨 쉬기도 힘들어요, 낮에 힘겹게 일하고 밤에는 푹 잠자려 해도 못 자고 되척겨야 해요, 그더운 여름이면 어느때까지 못자지요. 그때 참말 고생했지 ……
그건 그렇고, 근본 자유란게 없어요. 들어 올때 금방 신분증을 압수하고 밖에 음식감이나, 물건사러 나가도 태태가 따라 나갔다 끌고 들어 왔어요.
한번은 고향에서 조카애가 북경으로 일자리를 찾아와 신청4구 423동반지하에 집 잡아는데 깔개가 없다하여 내게 있는걸 갔다 주려니깐 태태가 따라 나와요. 깔개를 주고 오랜만에 만난 조카하고 고향사정이랑 얘기 하는데 태태가 시간이 없다며 가자고 재촉하는 거예요. 참, 기막혀서,
이 얘길 누구하고 도 꺼내지 않았어요. 오늘 선생보고 하는 것은 혹 한국사람들 이글 보고 우리조선족을 이렇게 대하지 말아 달라는 데서 하는 애기예요. 하두 우리가 돈이 딸려 이런 고생, 천대 받으면서 일하지.
보모들이 거주하는 좁은 공간 지하방집
김씨,49세, 길림성통화사람, 왕징서원 3구 329동지하 거주, 화정세가 근무
전에 대서양야터란다에 다닐때 집이요, 세살짜리애하고,금방 난애가 있어 나는 전문애들만 보고 四川에서 온 젊은 한족여자두고 청소하고 옷씻게 하였요. 태태가 되게 한족애를 천대했어요. 옆에 사람도 무안하게 하였죠,
하루는 그애가 한쪽으로 옷씻느라 쏘파밑을 미처 안 닦아서요, 그러니 태태가 아기 옷도 손빨래 안하고, 쏘파밑도 닥지 않아다며 아이를 후딱손 쇠우며 마구 욕하는 거예요. 그러니 애가 너무 섧어서 눈물흘리며, 돌아서 우는거예요. 그래 곁에서 젖먹이를 안고 보고 있다 너무 하여 말했지요, 그러지 말라고, 오늘 하도 바쁘니까 안닦아 지 안나, 아기옷도 더운물에 헹구어 세탁기에 넣어고, 쏘파밑은 어제 한번 닦아지 않나, 무슨 큰일이라도 저질러 그리 고우는가, 그애도 하도 나처럼 집이 곤난하니깐 이렇게 물시 당하면서 일하지 ,사람이란 어느때 어찌될지 모른다, 우리말에 한번 올리막이 있으면 한번 내리막이 있다지 않는가. 저여자 아이가 이담에 크서 큰 사람되여 잘 살면 저여자는 오늘에 얘기를 할것이다. 그러니 사람이란 항상 좋은 마음갖고 사는 것이 좋으니라ㅡ그날에 나도 모르게 말이 술술 잘나갔어요. 마지막에 태태가 눈물까지 흘리며 우리들 손잡아 주었요. 정말이예요.
장씨,47세, 길림성안도현사람.利择西园지하에 거주, 화정세가,보성원에 근무.
08년도 대서양다닐때 집인데, 34살 사모님인데 처음에는 나를 잘 안대하여 줬어요, 올림픽끝나고 친정어머니가 놀러 왔어요, 하루는 아침 밥상치우다 부주의로 접시 하나를 깨였어요. 그러니 사모님이 또 그러는 거예요. 한참, 곁에서 보고 있던 친정어머니가 사모님을 불러 거실로 들어 갔어요. 조금후 내가 바닥을 닦는데 삐족이 열린 거실문으로 친정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려요; 너네가 어렸을적에 우리도 얼마나 힘겹게 살아니. 그때 나도 저렇게 남에 집에 가정부로 다니며 갖은 천대 다 받았다. 그때 속으로 참 좋지 않더라, 개구리가 올챙이를 업수이 여긴다고, 그런면 사람이 못쓰니라, 저사람이 접시를 깬것도 고의적으로 그런것이 아니지 않니,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아줌마는 속으로 더욱 미안해 할거고, 속으로 죄스러워 할것다,
그 소리 들으면서 눈물나게 속이 짜르르 했어요.
얘기해준 95%이상의 아주머니들이 한국인집에서 가정부를 일만하는 도구로 만 생각말고 사람 취급하여 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서로 엎음갚음이라 주인집에서 아주머니들을 잘 대해 주면, 사람이란 감정적 동물이라 아주머니들도 량심적으로 일 잘 해 준다고 한다.
한씨,47세,길림성 연길사람,왕징신청거주.대서양신청 근무
그럼, 그사람들두 우리를 부려만 먹지 말구, 한 민족으로, 생각해 보았다유. 한계레로 말이유? 처음 그 사람들이 낯설고 땅섫고 말도 안 통하는 중국땅에 와서 寸步难行인데 같은 민족에 같은 습성이고 또 더욱히는 중국어까지 아는 우리들이 없었으면 어떻게 생활해 나가는가 말이유? 우리도 여인으로 가정이 있구, 집에 우리를 아끼는 나그네들두 있는데 그 사람들이 그걸 생각해 봤대유. 그걸 생각해서 우리는 출근하면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유, 같은 여인으로 저네들이 다른 여인의 벌겋게 생리묻은 팬티랑 씻어 보래유?! 씻을수 있나?
김씨,45세 길림성백산시2도강구사람, 조양구大山子거주
우리도 알아요,그러니깐 남의 자식도 제 새끼처럼 봐주고 모든걸 아끼고 음식감도 낭비없이 하지요, 돈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사모님이 밖에 나가면서 더우면 에이콘을 켜구 있으래도 정 덥기전에는 안 켜지요. 그렇게 돈 마구 쓰면 나에게 좋은 점이 있어요. 일전이래두 주인집에 아껴주면 나쁜점은 없지요.
보모들의 로무시장으로 되여있는 왕징신청 4구 광장쉼터
리씨(40여세)흑룡강성 해림사람. 현재 顺义에서 식당경영
내가 왕징신청3구 부부가 모두 한국학교에서 선생하고 있는 집에 보모로 갔는데 다른 집들에선 보모를 어른이나 아이들나 모두 “아줌마”라 부르는데 선생님집에서는 달라요, 나를 자기네 부모님들과 같은 연세라며 “이모”라 불러요, 처음 그소리를 듣고 눈물날번 했어요, 다른 집들에서는 어른,아이 할것없이 “아줌마”,”아줌마”하는데.ㅡ말 한마다디에 천금왔다간다 고 그렇게 호칭하니깐, 마음 안 뜨거울수 있나요? 그러니깐 고마움과 함께 잘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앞서요.
선생님은 내가 밖에 나가거나 들어 올 때는 꼭 문밖까지 바래주고, 맞아 주며 깍듯이 인사해요. 참, 잘 대해줬어요.
취재걸음에 왕징신청 4구에서 소개소를 꾸리는 50대 되는 조선족아주머니를 만나 보았다.
아주머니 말이 한국주부들 대부분 까다롭고, 그기에 회사에서 청소부나, 때거리 보모를 찾는 사장들과 단손으로 사는 아저씨들도 伺候하기 힘들다고 한다.
일을 제대로 못하오, 밥도 맛있게 못하오 ,음식이 짜오, 싱겁소, 나이많소, 별라별 잔소리 다하여 여러사람 봐꿔 보내도 안되여 마지막엔 한족을 보냈더니 소개소에 사람이 없나하여 인젠 전화와도 대응하지 않는다며 이런 사람들은 한국에서 못 살다 어쩌다 중국에 와서 좋은 집에 들고 보모도 두고하니 택을 짠뜩 높이 걸고 다니며 하늘에 라도 바라 오른듯 그 행새를 부려 보느라고 그런다 며 지금은 많은 한국집에서는 조선족보다 급여를 낮게 주는 한족여성들을 쓰고 있는데 가서 얼마씩 하다가는 대부분 나온다 한다. 어찌나 사람을 천대하고 이래라 저래라 쓸개 끼게 잔소리 하고 밥싸들고 오래서는 상에서 도 못먹게 한다며 머리를 흔든다.
지금은 대부분 시간당으로 일 하는데 보모들은 모두 제시간에 도착하여 일 시작하고 항상 지정 시간지나(혹 한시간내지,시간반이나,두시간넘어 나온다.) 나오는 때가 많은데 어쩌다 시간전에 일 끝나면 태태들이 지키고 앉았다. 요것해라, 조것해라며 일 찾아 시킨다, 정 할일이 없으면 신발 밭치개 아니면 금방 모욕시킨 강아지 모욕시켜라, 심지어 청소기까지 씻어 닦으라 한다며 한국인들의 쓸개짐에 혀를 찬다.
02년도에 중국에 들어왔어 북경조양구 左家庄国际友谊花园에 집 잡은 삼성전자주재원으로 근무하던 나하고 가깝게 지내는 ㅎ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현재 중국에 들어온 많은 한국사람들은 한국에서는 보통 집도 없이 근근히 살아가던 족들이 였는데 일쪽 중국에 들어오니 물가가 엉청낮고 눈이 모자라게 풍부하여 집도 크고 좋은 걸로 찾아들고 한국에서 꿈도 못 꾸던 가정부도 두고 호강부리니깐 택수가 높아져 귀족행세 부리며 가정부들을 박대하고 있다며 해리밝은 말 하여 주었다.
조선족주인집과 한국인집을 어느쪽 선호하는 가의 물음에 98%의 아주머니들은 조선족주인집을 꼽았다.
여기에 길림성장백조선족자치현에서 온 림씨(49세,보모일 10년, 현재 시간당으로 6집 다님, 매주 하루건너 3집씩), 왕징서원3구 309동 지하에 거주.
당연, 조선족주인집은 아주 좋와요. 정말이래요. 다른 아줌마들하고 물어 보세요. 정말 이지요. 밥도 한상에서 먹지, 일이 바쁠때는 태태들도 한손 도와 해 주지요. 다른건 제쳐놓고 사람부르는 것부터 값쳐서 안 부르지요 조선족집들에서는 자기와 나이 비슷하면 언니, 동생하고, 자기엄마벌 나이면 이모라 부르지요. 한국집에서는 어른, 아이 할것없이 다 아줌마라 불러요, 발자욱 금방 떼는 애들까지도 아줌마 이래라, 저래라 하지요, 아침에 들어가나, 일 맞치고 나오나 택 높아 본둥,만둥하지요. 일이 바빠 미쳐 돌아 못치면 성내고 입센 소리까지 나와요. 길림성 류하현전성에서 온 나 친구는 아이들한테 맞기 까지해요, 어떤’ 땐 태태가 곁에서 보고도 가만 두어요.
보모들이 다니는 한국인집 싱크대에 가득쌓인 그릇들
길림성반석현에서 온 류씨(47세, 보모일 9년)북경조양구 왕징 남호동원 219동 지하에 거주, 华鼎과宝星园에 근무,
다른건 몰라도 마음편해 좋지요. 어디메 한국집처럼 늘쌍 마음 조마조마 하겠어요. 또 한가지는 어른들의 사리마다(팬티)안씻는게 좋지요, 한국집들에서는 태태(주부)들이 경도(월경)가 왔어 벌겋게 묻은 그걸 씻을 때 많치 스른것(싫은 것)이 없어요.
양쪽을 다 겸험해본 아주머니들은 모두 조선족주인집을 선호하고 있다. 조선족주인집에 가면 사람대접을 해주고 마음편해 일해도 힘겨운 줄 모른다고 한다. 전에는 급여가 낮아는데, 지금은 조선족들집에서도 급여를 높게 주고 있다고 한다.
사회적 풍기, 문화적차이를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인들은 서양(특히는 미국)개방문화와 본위주의 생활개념으로 생활을 꾸미여 조선족아주머니들 대하고, 조선족아주머니들은 중국사회주의 제도의 和谐리념으로 한국주부들과 접근하다나니 서로 쟁의가 생기고 의가 맞지 않아 대돌이 생긴다.
언제면, 한국인들과조선족가정부들간에 원활한 공감대가 이루어 지곘는지?
2011년 9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