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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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퍼를 채워주세용! (우상렬94)
2007년 10월 20일 08시 36분  조회:4561  추천:50  작성자: 우상렬

지퍼를 채워주세용!

우상렬


나는 싸움 한번 하지 않고 잘 산다는 잉꼬부부들 부럽다. 그런데 부부 간 싸움 한번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에 나는 참 기적처럼 생각키운다. 우리 부부는 종종 싸우니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도 잘 붙어산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 나한테 사랑의 비결 물어오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한 마디 한다는 소리가 지퍼를 채워주세용!이다.

우리 집 사람은 좀 보수적인 편이다. 원피스 하나만 놓고 보아도 알만 하다. 앞이나 옆으로는 빈틈 하나 주지 않고 꽉 막히고 뒤로 지퍼를 채워는 그런 옷들이다. 결혼 20년 육박에 결혼기강이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진 나로서는 아내가 무슨 옷을 입든 별로 신경이 안 쓰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원피스들 때문에 불똥이 나에게로 튀니 말이다. 워낙 그런 원피스는 혼자 입기에는 불편한 옷이다. 혼자 지퍼를 기껏 채워보았자 중간 등허리 부분까지가 최고 상한선일 뿐 그 이상 최고 상한선인 목덜미 부분까지는 안 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한다. 아내는 꼭 내 손을 빌린다. 자기야, 하며 무조건 등을 들이밀 때 나는 입으로 시끄럽게 굴기는 … 하면서 어쩐지 싫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스르륵 목덜미까지 지퍼를 잘도 채워준다. 은근히 너는 내 여자야! 어떤 놈이든지 다치기만 해보라, 그저 없다하면서.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한 바탕 싸우고 난 후다. 우리 집 사람은 낯이 좀 두꺼운 편이다. 내가 뿌루퉁해서 누워있는데도 자기야, 이 원피스 … 지퍼, 코맹맹이 볼멘소리로 들이댄다. 조금은 무엇해 하는 듯하면서. 나는 누구하고 한번 싸우고 나면, 가볍게 말다툼 했을 경우에도 몇날 며칠을 앵돌아져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옹졸하다. 그런데 나는 아내의 자기야, 이 원피스 … 지퍼, 이 코맹맹이 소리만 들으면 그만 신들린 사람처럼 온 몸이 나른해지면서 돌아누웠던 몸이 절로 다시 돌아눕게 되며 언제 싸웠는가싶게 그 모양 그 본새로 지퍼를 채워주고 만다. 그러면서 또 한번 심심히 느끼는 것은 부부간 싸움 칼로 물베기. 우리 집 사람은 여기에 재미를 붙였는지 나하고 싸우고 나기만 하면 원피스 지퍼를 나한테 들이민다. 추운 겨울 원피스 입는 계절도 아니건만.

요새 아내는 한 술 더 뜬다. 뒤로 지퍼를 채우도록 된 치마를 입을 때도 좀 뾰루퉁한 표정으로 자기야, 하며 그 큰 엉덩이를 나한테 들이민다. 분명히 자기 절로 채울 수 있는 지퍼건만. 나는 거저 못 이기는 척하고 그때그때 대충 채워준다. 그러면 아내의 얼굴은 삽시에 환한 밝은 표정을 짓는다. 그때마다 나는 한다는 얘기가 어떤 놈이 그런 비루먹을 옷을 만든 거야, 하고 조금은 툴툴 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지퍼를 채워주세용! 옷을 만든 ‘놈’을 참 대단하게 생각했다.

사랑의 옷, 사랑의 베트랑… 쯔쯔! 귀여운 놈. 사랑의 노벨상 탈 놈!

2007.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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