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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바퀴벌레, 그리고 백개미(우상렬103)
2007년 10월 26일 15시 44분  조회:5109  추천:64  작성자: 우상렬

나와 바퀴벌레, 그리고 백개미


우상렬


나는 동물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곤충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애완동물이요, 뭐요 하는 것을 볼 때는 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삐죽거린다.

나는 생기기는 우악지게 생겼어도 여간한 동물이나 곤충을 보고는 일단 겁부터 먹는다.

나는 한국 유학생활에 그만 바퀴벌레와 백개미에 너덜머리가 났다. 나는 한국에 유학가기 전에 중국에서 蟑螂药하는 소리는 들었어도 바퀴벌레는 보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에 유학 가 셋방살이를 하면서 이 蟑螂---바퀴벌레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돈이 좀 딸려 어느 반지하에 둬 평 남짓한 집에 세 들었다. 바로 이 반지하집에서 바퀴벌레와 조우했다. 몇날며칠 몇시인지까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여하튼 이 첫 조우는 바퀴벌레라는 놈을 나한테 아주 징그러운 놈으로 각인시켜 놓았다. 그때 바퀴벌레를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기겁을 하여 머리칼이 쭛빗 설 정도였다. 그래서 곧 바로 슈퍼로 달려가 눈을 찔 감고 제일 비싼 바퀴벌레약을 사왔다. 그리고는 집으로 들어서는 길로 냈다 뿌렸다. 바퀴벌레들이 싹 죽는 듯 했다. 한 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튼날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들어서 보니 무슨, 바퀴벌레들이 주방이며 방이며를 들락날락하며 대잔치를 벌리다가 불청객이 들어서니 기분 나쁘게 이리저리 재빨리 피해들 갔다. 나를 왕따 시키는 건가, 여하튼 기분은 제로다. 그래서 바퀴약 스페레이를 드는 즉시 돌격총 갈겨듯이 쏴쏴--- 사방으로 뿌려댔다. 바퀴벌레들이 가뭇없이 사라진다. 그런데 이튼날 또 그 모양 그 꼴… 그래서 바퀴벌레약통을 들고 슈퍼에 찾아가 공소하기. 아저씨, 이 약 전혀 말 듣지 않네요. 왜 가짜 약을 팔아요라고 들이대니 한다는 소리가 우리 한국의 바퀴벌레는 면역이 되나서 참, 어쩌지 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별수 없지. 악에 바친 나는 바퀴벌레를 보는 족족 때려잡기로 했다. 이때쯤 되니깐 바퀴벌레가 무섭고 무어고 없다. 그래서 나는 파리채를 사 들고 왔다. 탁 쳐서 배가 톡 터지며 죽는 바퀴벌레를 보는 순간 더럽고 무엇이고를 떠나 정말 깨고소해 났다. 고 톡 터지는 소리는 마치 음악소리처럼 들려왔다. 그래서 공부하기 싫은 날에는 파리채 들고 바퀴벌레 때려잡기 놀이를 했다. 나한테 있어서 바퀴벌레 때려잡기는 어느새 놀이로 승화되었다. 내 스스로가 너무 재미있어 보였다. 그런데 그 놀이가 잘 되어지지 않았다. 바퀴벌레들이 잘 놀아주지를 않았다. 고놈들은 나만 보면 어디에 숨어버렸는지 나와 주지를 않는다. 일단 나하고 숨바꼭질을 노는 거다. 그래서 내가 장판가장 자리를 뒤지면 네댓 놈, 식장을 열면 또 네댓 놈, 주방의 행주를 뒤지면 적어도 한 놈쯤은 눈에 띈다. 그리고 이놈들은 얼마나 빨리 닫는지 눈에 띄게 바쁘게 내뺀다. 이놈들 몸에는 퇴화된 날개 같은 것이 있는 듯도 했다. 굼뜬 내가 어물어물하다 보면 다 놓치고 만다. 그래도 공부하기보다 열심히 뒤지고 때려잡고 하니 내 눈치 하나 빨라졌고 동작 하나 빨라졌다. 물론 바퀴벌레 때려잡는다고 시렁에 그릇을 네댓 개 깨어먹기도 했지만.

그리고 바퀴벌레라는 놈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이놈들은 햇빛을 싫어하고 꼭 음침한 곳을 좋아한단다. 그래서 해양성기후에 습기가 비교적 많은 한국기후에 바퀴벌레가 살기에는 제격이란다. 그러니 한국의 바퀴벌레약 광고도 많지. 반지하 같은 습한 곳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이 짜식들은 사람냄새를 희한하게 아는 것 같다. 집에 사람이 들어서면 숨기에 바쁘고 집에 사람이 있으면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짜식들은 낮에도 나와 다니지만 사람들이 자는 밤에는 더 극성스럽게 싸 다닌다. 자다가 일어나 전등불을 켜보면 온통 짜식들 세상이다. 잠은 안 자는지. 그리고 이 짜식들, 가만, 나는 바로 이제 말할 이 짜식들 특성 때문에 그만 기가 질리고 손 들고 말았네. 이 짜식들 생명력 얼마나 강한지 우리 인간들 이 지구에 오기 전부터 있어 왔단다. 우리 인간의 연륜이 몇 백만 년을 헤아린다면 이 짜식들은 적어도 억년은 된단다. 사실 이 자식들은 여느 곳에서나 살 수 있는 그런 적응력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짜식들은 하루 저녁에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들자식보고 더 나아가 손자손녀까지 보며 기하급수적인 번식률을 보인단다. 그러니 아무리 인간이 많다고 인해전술을 쓰며 박멸해도 그것은 不知量力의 웃기는 노릇이네. 그래서 나는 그만 그 반지하 셋집에서 도망치다시피 이사를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바퀴벌레에 대한 증오로 이가 갈렸다. 짜식들,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래 저것들, 어떻게 콱 잡아 치울 수는 없나? 과학의 번영창성을 노래하는 인간들이라는 것이 참. 다음 순간 나의 뇌리에는 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별 방법이 없어. 잡아 먹기다. 바퀴벌레를! 옳지.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러면 그렇겠지! 뭐, 징그럽답고. 천만에 말씀, 사람들은 번데기도 잘 먹지 않냐? 그리고 저기 저 남방 어떤 곳의 사람들은 구데기를 번식시켜 식용하지 않는다던가? 문제는 可食性, 즉 먹을 수 있나가 하는 것이야. 이제 바퀴벌레가 어떻게 어떻게 영양가가 높고 어떻게 어떻게 먹으면 맛 있다는 영양학과 요리학적인 검증만 되면 일품 요리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바퀴벌레는 반가운 손님이 아니겠는가? 같은 선상에서 우리 인간에게 백해무익하다는 모기나 파리도 이렇게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잡아먹는 황홀한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은 물러나도록 했다. 주먹을 가다듬고 끌어들이는 것은 더 힘 있게 멀리 치기 위해서다.

나는 이번에는 돈을 있는 대로 다 긁어모아 햇빛이 찬란히 드는 금방 지었다는 옥상 셋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조선의 맛을 톡톡히 보는 것 같았다. 희한하게도 내가 든 옥상에는 바퀴벌레가 없었다. 살 것 같았다. 바퀴벌레와 나의 인연은 이로써 끝난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백개미라는 놈이 나를 또 꼴린다. 옥상셋집에는 어느새 백개미들이 바글바글 끓었다. 아무래도 하느님이 나보고 문학박사고 뭐고 다 때리 치우고 생물학자가 되라는 모양이지. 아닌게 아니라 나는 또 백개미의 전문가가 되었다. 백개미는 말 그대로 흰 색이고 쌀의 뉘처럼 작아 상대적으로 크고 검은 색이 나는 바퀴벌레보다는 징그럽지 않다. 그런데 고 조고만한 것이 사람을 물 때면 때끔때끔 해난다. 덩치 큰 바퀴벌레는 물지는 않턴데 말이다. 역시 작은 고추가 매운 법이야. 이 백개미도 번식력은 대단하다. 바퀴벌레에는 못 미쳐도 하루 저녁에 새끼에 새끼를 친다. 이 자식들은 바퀴벌레와는 달리 찬란한 햇빛을 좋아한다. 그래서 햇빛이 쫙 비치는 쪽으로 모여든다. 바글바글, 그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 자식들은 그만큼 집단적인 생활이 강하다. 곤충들 가운데 사회성이 가장 강한 종류의 하나라고 한다. 분공이 분명하다. 코치가 있고 따라주는 놈이 있고… 그런데 이 자식들은 남을 그리 의식하지 않는다. 눈치코치 면에서는 바퀴벌레하고 게임도 안 된다는 말이 되겠다. 지네끼리 바글바글 모여 노는데 존귀한 이 집 주인인 사람이 들어와도 꿈만하다.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자기 할 노릇을 다 한다. 마치 내 집에 내가 있는데 니가 왜 들어왔뇨 하듯이. 또는 자기 힘을 턱 대고 한번 붙어볼라면 붙어보자는 식인지.
그럴만도 했다.  이 세상에 힘 제일 센게 무엇이지 아냐? 영락없이 개미란다. 개미는 자기 체중의 몇 백배의 무게를 감당한단다. 그러나 구경은 蚍蜉撼树谈何容易. 그러니 不知量力를 알아야 한다. 개미의 치명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주제를 모른다. 개미란 놈은 단 것을 만나면 제 정신이 아니다. 정말 사탕폭탄에 잘 넘어간다. 당뇨병이 있는가 없는가를 검사하는 데는 병원에 갈 필요 없다. 아무데나 오줌을 찔 싸놓고 개미들이 모여드나 안 드나를 보면 된단다. 짜식들은 사람이 밥 먹고 난 자리나 음식물을 떨군 자리를 희한하게 알고 바글바글 모여든다. 그래서 나는 백개미에 대해 그리 신경을 안 썼다. 바글바글 모여들었을 때 내가 제일 많이 취하는 방법은 불을 확 놓는 것이다.

그러면 개미들은 오그라들면서 형체도 없이 진다. 그러다가 장판을 몇 번 태우기도 했지만 기분 나쁠 때는 스트레스도 풀고 일거양득이다. 그리고 별 볼일 없는 것에 다닥다닥 붙었을 때는 아예 그대로 밖에다 확 버리고 만다. 여하튼 말 그대로 일망타진하는 방법으로 제거했다. 개미는 티눈보다 더 작은 정말 별 볼일 없는 미물이다. 그런데도 짜식에게도 희로애락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그렇게도 많단다. 원숭이랑 곰이랑 개미를 제일 좋은 먹을 거리로 친단다. 그 덩치 큰 것들이 꽤나 야삭하게 놀쟈? 그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것들을 얼마나 주어먹어야 되노? 워낙 개미가 맛 있다는 논리로밖에 풀이할 수 없다. 그런데 이들이 개미를 잡는 방법이 참 묘하다. 일단 개미둥지를 발견하면 풀대 같은 것을 꺾어 개미구멍으로 들이민단다. 그러면 안에 있는 개미들이 이 뭐고, 천당 가는 로케트우주비행선이야 하며 너도나도 매달리기에 바쁘단다. 그래 한참 있다가 그 풀대를 죽 잡아당겨서는 다닥다닥 매달린 개미들을 냠냠 입으로 죽죽 훑어먹는단다. 그리고는 다시 풀대를 넣고… 다시 죽죽… 배가 부를 때까지. 바로 그 호기심 때문에 개미들이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고 약삭바른 원숭이란 놈은 그런 깜직한 방법을 구사할 법한데 미련하고 우둔한 곰님은 어디서 배웠지? 아무래도 원숭이한테 배웠다 할 수밖에.

원숭이나 곰이 개미를 맛 있게 먹는 걸 봐서는 우리 인간들도 개미를 먹을 수 있겠다. 나는 또 이런 엉뚱한 생각을 굴렸다. 사실 엉뚱한 생각이 아니고, 개미는 이미 식용에 이용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연변만 하여도 지난 80년대 한 동안 도문에서 붉은 개미술이 나와 인기리에 팔리지 않았던가? 개미술이 원기를 북돋고 남자들 정력에는 최고라고 하던데. 현재 이 사천에 와보니 식당에서 개미술을 팔던데 대단히 비싼 편이다. 우리 연변의 개미술도 새롭게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근간에 무슨 생태평형이요, 동물보호요 하며 야단들을 피우니 내 마음이 요새 알알이 아파난다. 바퀴벌레나 백개미의 원혼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바퀴벌레와 백개미를 철천지 원수 죽이듯 워낙 많이 죽인 내가 아닌가. 생태평형이나 동물보호의 거창한 얘기를 떠나 불교의 살생계도 나는 엄청나게 어긴 셈이다. 이제 윤회가 있다면 나는 지옥에 떨어지리라. 그리고 바퀴벌레나 백개미의 원혼들에 의해 시달림을 받을 게다. 겁이 나기도 하다. 어쩌지? 그래도 입은 살아 나를 변호할 수밖에. 아무리 동물이나 곤충이 존귀하다 해도 사람 있고 있는 법. 그것들이 泛滥成灾할 때 정당방위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은 높이 살만하다. 그리고 인위적인 적당한 살상은 오히려 생태평형을 유지하거나 그들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 됨! 여기에 견주어 볼 때 결국 바퀴벌레를 피해 도망간 나는 인간존엄에 먹칠했다. 그렇지만 살상을 멈춤셈이니 적당한 살상은 된다. 백개미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살상한 감이 없지 않으니 인간존엄은 지켰으되 적당한 살상이라는 도를 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앞으로는 경험교훈을 살려 扬长避短해야 지! 

2007-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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