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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장 눈치기
2014년 12월 06일 20시 21분  조회:1311  추천:0  작성자: 주정배
아침에 기상하니 밤중에 꽤 많은 눈이 내렸다.

 
“어 ! 오늘은 제기차기는 다 틀렸군…” 난 주섬 주섬 옷을 주어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행여나 제기를 찰 수가 있지 않을가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였다. 눈은 퍼그나 와서 눈을 치지 않고는 제기를 찰수가 없었다. 나는 그래도 어디 눈 칠 도구가 없나 싶어 찾아 보았다. 공원 청소하는 중국 아줌마가 대나무 비자루 하나 두고 간 것이 있어서 그것으로 눈을 쓸어보았으나 눈이 좀 많이 내려서 비자루로는 역부족이다. 포장박스로 밀어 보니 그것은 생각밖에 꽤나 괜촪았다.
 
“이 없으면 이몸”이라고 난 포장박스를 쪼개여 그것으로 밀고 대나무 비자루로 쓸고 공원에 있는 우리제기 차는 운동장의 눈을 치였다. 머 운동장이라고는 하나 별로 크지도 않은 겨우 20평 남짓이 될가 하는 운동장?에 눈을 겨우?치고 나니 출근시간이 가까워 오는지라 나는 바삐 집에 와서 아침밥을 먹고 출근길에 올랐다. 눈이란 인간들이 밟기 전에 치워야 쉽고 깨꿋이 칠수가 있다. 다년간 북방에서 살고 어릴때 부터 눈을 많이 쳐온 나인지라 눈치기에는 해박한 상식?이 있다. 나는 남들이 회사앞뜨락을 밟아 놓기전에 가서 눈을 치려고 서둘러 여전보다 일찍 출근하였다.
 
그러나 이미 많은 장사군들이 앞다투어 장사를 서둘다 보니 모두들 나보다 앞서서 출근하여 이미 회사 앞은 그들의 발자국으로 아수라장이였다.
 
정말 첫눈치고는 많이 온셈이였다.
아침부터 눈을 치고 출근하자마자 눈을 친 난 피곤한 몸을 쉬우면서 진붉은 홍차 한잔을 따랐다. 진붉은 홍차는 나를 그옛날 붉은기 펄펄 날리던 그때 그시절로 되돌아가게 하였다….
 
옛날 눈만 오면 우리는 무조건 달려가는 곳이 있었으니 그것은 학교 운동장도 아니요. 자동차가 다니는 큰 신작로도 아니였다. 고속도로는 당시에는 하나도 없었고 철길에 눈도 아니였다. 우리가 최우선으로 달려가 눈을 치는 거기는 바로 연길 토배기는 다 아는 그곳, 그곳은 바로 연길 비행장이였다. 눈만 오면 학과도 뒤로 미루고 무조건 삽이나 비자루를 들고 저멀리 비행장으로 달려갔다.
 
연길시에서 학교(중확교)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눈오는 날이면 무조건 비행장 생각이 날것이다. 만약 비행장 눈치기 생각이 없다면 그분은 아마도 연길시 사람이 아니면 시골서 올라온 사람! 한국분들의 말그대로라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 아니면 북한 특무가 아닐가?!  
 
그때는 그래도 집집이 헛간이거나 사랑간?이라는 것이 집집에 하나씩 있어서 거기에 는 난방으로 쓰는 석탄이거나 화목들이 가득한 가운데 꼭 삽이나 곡괭이거나 혹은 곽지나 낫 같은 것들이 어느 구석에 세워 두지 않으면 어느 천장에 곧혀 있었다.
 
머 요즘 애들은 삽은 알고 있겠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는 어느 국민학교 교과서에 “낫놓고 기억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나오니 낫이란 무언가 물어 보더란다. 정말 기막힌 선생님은 낫을 칠판에 그려 놓고 이런 것이라고 해석해도 아무도 모르더란다. 도대체 애들이 어디서 실물을 본적이 있어야 알지? 어찌보면 요즘 애들은 그옛날에 우리 때에 이머리를 갖고 태여 나며 모두가 천재일것이 틀림이 없으나 낫놓고 그윽자도 모르는 무식한? 놈은 틀림이 없는것 같기도 하다.
 
우리 그때는 그렇게 눈만 왔다하면 모두들 삽 한자루거나 비자루 하나씩 들고 저멀리 비행장으로 향하였다. 학교에서는 대렬을 지어 가기도 하였는데 비행장에 가서는 모두들 제 단위에서 맡은 구역에 눈을 치는라 바쁘다. 눈은 본래 눈 온뒤 이튿날에 가장 맵짭은 날씨인데 그런 날씨에 눈을 치다보니 귀를 얼구거나 손발을 얼구는 애들이 대단히 많았다.
 
요즘 학부형들은 만약 그런 눈치기에 애들을 동원시켰다가 귀나 손발을 얼구어 돌아 온다면 대 난리가 나지 않을가 싶다. 적어도 학부형들이 교장의 목덜미를 잡고 교육부 부장한테 끌고 가지 않을가 싶다. 우리애를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때 우리 부모들은 어째 그렇게 온순한지 … 난 60 이 다된 지금도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그래도 어찌 보면 그때 우리 부모들이 참 존경스럽다.
참! 그렇게도 온순하다가도 어떻게 혁명에는 그렇게 열정이 높던지 당시에 유명하던 코신부대들이 바로 우리 어머니들로 결성된 조직이 아니였던가…
 
비행장 눈치기 가면 그래도 기대하고 은근히 바라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점심이였다. 비행장이라 비행사들의 식당에서 나오는 점심이라 그많은 사람들한테 밥까지는 다 주지 못하지만 그 소탕국은 모두들 한사발씩 나누어 주는데 정말 맛있었다. 소고기는 정말 소가 장화 신고 지나 갔는지 몇오리가 둥둥 뜬것이였지만 그 추운 날씨에 뜨근은 쇠탕은 정말 죽인다.
 
더욱이 그때는 모두가 어찌나 가난하였던지 그런 멀건 국물도 정말 맛이 있었다. 그래 그런지 난 아직도 60이 넘은 이나이에도 눈이 많이 오면 비행장 눈치기가 생각나며 비행장 눈치기 하면 그 구수한 소고기 국물이 생각나군 한다.
 
눈치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 올때면 모두들 삽을 들 맥도 없이 피곤한것도 있겠지만 재미로 삽들을 비행장 콩크리트바닥에 질질 끌고 오는데 그 소리 또한 비행기 발동소리보다도 뒤지지 않게 소음이 대단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이미 강추위에 언귀거나 언발을 뒤늦게 발견한다.
 
우리큰형은 그 비행장 눈치기에서 귀를 얼구어서 저녘에 어머니한테 꾸중을 모질게 들었다. 멋부리는라 모자를 쓰지 않았다고 말이다. 추운데 무슨 멋이 있는가고 손으로나 아니면 목수건으로라도 머리를 동일것이지…
 
책망을 하시면서도 어머니는 가지 말린것을 물에 불구어 놓았다가 그것을 삶은 물에 형의 귀를 담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둘째 형도 발을 얼구어서 형이 불근 가지물에 자기 발도 집어 넣고 … 참 그때는 그래도 누가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그저 그것으로 끝내였다. 
 
요즘 부모들 같으면야 될가. 이튿날로 당장 교장 사무실에 찾아 가지 않을가 싶다. 참 그때 우리 부모들은 어쩌면 어질다면 대단히 아니 지나치다 싶이 어질었고 혁명에 헌신하는 것을 보면 또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것 같다. 참 대단한 우리 어머니 세대였고 정말 가난하고 무식해도 세계혁명을 하였던 우리 어머니 세대였다. 
 
그때는 모든것이 혁명을 위한 것이였고 모든것이 전비(战备)를 위한 것이였고  모든것이 혁명조직을 위한 것이였다. 
 
난 오늘 온 눈을 치다보니 그 옛날 눈오는 날이면 달려가던 비행장 눈치기가 생각났다. 눈을 치지 않으면 미제국주의가 쳐들어 오는데 우리 비행기가 날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요즘은 세월이 많이 좋아져 그런 눈치기는 이미 옛말이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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