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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또 세모다. 젊은이들은 벌써부터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면서 잔뜩 부풀어있다. 늙은이들도 양력설, 음력설을 어떻게 쇨가 하면서 즐거운 고민이다. 크게 해놓은것이 없는데 벌써 또 한해가 훌쩍 지나가니 조금은 서글프지만 그래도 감개가 무량하다.
실상 가는 해가 좋았다. 나로 말하면 비록 정년퇴직하는 해였건만 마지막 날까지 일터에서 자기 직무에 충실하면서 열심히 인생의 전반생을 마무리하였다는데서 자기안위한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신문사의 혜택으로 조선나들이 두번, 조건이 생겨서 한국나들이 두번 하면서 안계도 많이 넓혔다. 이는 나의 인생을 2모작하는데 아주 훌륭한 토대가 되였다. 그리고 정년퇴직하면서 오는 공허감에서 해탈하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데 좋은 계기가 되였다.
가는 해에 명실상부한 할아버지로 된것도 하나의 경축거리라 하겠다. 4월에 손군을 보고 7월에 환갑생일을 쇠고 얼마후 손군의 백일잔치도 치른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아바이”라고 불리우는게 딱 질색이였다. 그만큼 준비도 안되고 또 아직도 새파란데 “아바이”라니 하는 생각에 항상 마음이 불편하였다. 그래서 나보다 한참 후배인 친구들이 먼저 “아바이”가 되여 “로짱은 아직 멀었다니”하면서 놀려줄 때도 오히려 홀가분하였다. 헌데 세월할아버지는 못 속이는것이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면서 승인할것은 승인하고 그에 알맞는 삶을 사는것이 옳바른 선택이고 분수에 맞는 처사라는것을 점차 터득하게 되였다. 그렇잖고 맹목 자신하면서 자기를 과시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상반되는 상황을 맞게 될수도 있다는것이다.
퇴직하면 완전히 끝나는가 하였더니 그것이 아니였다. 한 려정이 끝나니 새로운 시작이였다. “정년퇴직하고 환갑도 지났으니 인젠 볼장을 다 보았다. 인제는 사회와는 담을 쌓고 천륜지락이나 누리면서 고독이나 즐기면 된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게 아니였다. 인생은 2모작이라고 정년퇴직후에도 역시 나름대로 할 일이 있고 그것을 성사하고나면 그에 알맞게 즐거움이 온다는것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절대 “성 쌓고 남은 돌”이 아님을 알것 같다.
“성 쌓고 남은 돌”, 공직에서 물러나고 정년퇴직만 하면 흔히 이렇게 말한다. 또한 그렇게 되기마련이다. 하지만 설사 성 쌓고 남겨진 막돌이라도 역시 그 막돌로서의 존재가치가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그 “돌”의 하기에 따른다.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유용한 “돌”이 된다면 다시 “옥돌”이 될수도 있지만 그냥 자포자기하고 부담거리가 된다면 그때는 걸림돌이 되는것이다.
실상 우리 주변에는 “성 쌓고 남은 돌”이 되였지만 자기 가치를 열심히 살려가면서 만년에 우리 문화지킴이, 새세대양성보도원, 훌륭한 사회봉사자 등 유익한 일을 하는분들이 적지 않다. 멀리 말고라도 얼마전에 작고한 중국조선족의 저명한 언론인 오태호선생이 훌륭한 본보기이다. 그는 퇴직한후 26년간을 일각도 천금처럼 아끼면서 불시로 타계하는 그때까지도 집필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래서 선후로 《인생에 부치는 편지》, 《마닐라의 풍운》, 《세계를 가는 기자》, 《세로잡곡》 등 15부의 무게있는 작품을 남기지 않았던가. 이는 후대들에게 남긴 극히 중요한 유산이 아닐수 없다.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사장으로 10여년간 사업하다가 정년퇴직한 한석윤선생의 사례도 지극히 귀중한 전형이다.
“지나친 불평으로 애끓지 말고 안계 넓혀 풍물을 멀리 내다보시라. 모택동주석이 생전에 늙은이들에게 권고한것이다. 예순이 넘고보니 지난날의 이런 불평, 저런 불만, 요런 후회 등 좋지 않던것을 자꾸 생각하게 되는것도 지어 평생 다시 보지 않겠다고 작심할 정도로 미웠던 사람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묵은것에 집념하는것은 다 부질없다. 오직 자기에게만 해로울뿐이다. 그러니 마음을 비우고 긍정해주고 리해해주고 용서해주는 그런 바다 같은 심태가 가장 절실한 시점이다.
물론 가는 해도 좋았지만 오는 해는 더욱 좋을것이다. 그러니 모든것을 먼지 털듯이 털어버리고 거뜬한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하자. 새해를 맞아 떠오르는 첫 해돋이가 가장 찬연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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