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녀성동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은적이 있다. 특히 집 아이한테 물림옷을 입히는 문제를 두고 말하던 한 후배의 이야기가 퍽 인상적이였다.
그녀가 잘 나가던 남편의 회사가 불경기를 겪으면서 사업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을 때였다. 줄곧 돈 걱정을 모르던 그녀는 오누이 둘을 키우면서 빠듯한 살림을 꾸려나가야 했다. 그런데 그녀의 집안 먼 친척중에 한 언니가 있었는데 바로 그 집의 딸애가 그 녀의 딸보다 세 살 더 위였다. 어느날 그 언니가 이쁜 옷 몇벌을 들고 그 녀앞에 나타났다.
“집의 딸애가 입던 옷인데 1년도 채 못입었으니 너네애가 이쁘게 입을수 있을것 같다”며 그 녀앞에 조심스레 내놓더라는 것이였다. 그렇잖아도 한창 계절이 바뀔때라 애들의 옷도 장만해야 할텐데 걱정하고있었는데 그 녀에게는 가물에 단비였다. 그녀는 친척 언니한테서 반갑게 옷을 받았다.그뒤로 그 친척언니는 딸애가 입다가 작아진 옷들을 잘 보관했다가는 깨끗이 씻어서는 그 녀에게 갖다주었다. 그냥 입던 옷만 건네주는것이 미안하다며 가끔 옷보따리속에 별로 비싼건 아니지만 새 옷도 한벌씩 넣어서 보내오군 했단다…
그렇게 그녀는 거의 2년간 언니 딸애의 옷을 받아 딸애에게 물려입히면서 제일 힘든 고비를 넘겼다. 그뒤 남편의 회사가 생기를 되찾고 그 녀네도 살림이 펴이기 시작했단다. 어느 한번 친척들 모임에서 친척언니가 또 딸애의 옷보따리를 들고 왔더란다. 사람 마음이란 참 뒤간에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그때는 그 옷보따리가 반갑지 않더란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앉아있는데 남편이 글쎄 한참후 술이 거나해지자 큰 소리를 해댈줄이야, “아주머니, 이젠 우리도 남의 옷을 물려받아 입을 신세가 아닙니다. 그깟거 이젠 들고 다니지 마십시오.”
사실 2년동안 그 언니에게서 딸애 옷을 받아입히면서 그 녀 역시 따뜻한 인사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녀의 남편한테서 감사는커녕 이런 싫은 소리까지 듣게 됐으니 언니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그때로부터 친척언니는 그들과 거리를 멀리 했고 그녀도 언니 볼 면목이 없어 몇 번이고 언니에게 사과하려고 하다가도 말이 떨어지지 않아 랭가슴만 앓는다는것이였다.
우리는 종종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감사한 마음보다는 쉽게 불평불만을 부리고 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선의나 친절속에 살지만 스스로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것이다. 앞의 녀성분의 친척언니는 2년동안이나 작은 도움을 베풀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는 한마디 못듣고 싫은 소리를 들었으니 얼마나 서운하였겠는가!
“물림옷문제”는 주로 관념문제이고 인식문제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물림옷”을 어떤 시각에서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서 다르다고 본다. 지난 세기 50년대, 60년대는 그런 물림옷도 일종 향수였다. 당시 우리 동네에 한 친구는 연길에서 직장 다니는 사촌형님이 있었는데 방학만 되면 연길에 갔다가 오면 옷이랑 신이랑 모자랑 새것을, 그것도 보지도 못하던것을 가지고 와서는 자랑하였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야, 이건 우리 연길형님이 입던거다.” “야, 이건 말이야, 우리 연길형님이 쓰던거다. 이건 연길형님이 신던거구”하면서 우리 앞에서 실컷 자랑하였었다. 그때 우리가 그 친구의 “연길형님”을 얼마나 부러워 하였던지. 그리고 그 애의 옷이랑, 신이랑, 모자랑 정말 얼마나 갖고싶었던지 모른다.
예전부터 우리는 동네나 집안에서 일반적으로 잘 나가는 친척이나 집안이 번창한 이웃의 집에 가서 옷이나 기타 생활필수품들을 우정 가져다가 자기자식들에게 입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그 잘가나는 집 애들처럼 되라는 거다. 하다못해 그 체취라도 받아서 우리 애들도 남 못지 않게 건실하게 당당하게 자라나 달라는 그런 심리였을것이다. 우리 집 아들애나 딸애도 미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에서 친구들이 가져 온 “물림옷”을 많이 입었었다. 지난 세기 90년대 그 애들이 어릴 때는 물론이고 조금 커서 새 천년에 들어서서도 말이다.
필자는 “물림옷” 현상은 실상 기부문화의 한 일례라고 본다. 물질기부인것이다. 자기에게 있는 것, 쓰지 않는 것을 필요로하는 이웃이나 친척이나 직장동료 등에 선사하는것이니 말이다.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기부문화가 많은 사람들속에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그와중에도 가끔 안타까운 사연들을 접하게 된다. 어려울 때 주위 사람들의 사랑의 손길을 받고도 감사의 마음을 제대로 표달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더욱이는 도움을 주는 쪽에서 그 어떤 사정으로 더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수 없을 때 되려 도움받는 쪽에서 목소리가 높아진다든가 하는 사례들도 목격되면서 말이다.
내가 못 살때는 혹 난경에 처했을 때는 기부나 방조나 배려를 당당하게 받아 들이고 내가 후에 셈평이 펴이면 사회에 되려 갚으면 되는것이다. 자기는 못살면서 난경에 처해가지고도 못할 짓을 하는것처럼 외면한다면 이는 한참 잘못 된것이다. 이 면에서는 우리 민족이 더욱 그러하다. 손바닥만한 낯이 가려워서 그럴것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는 “선비는 굶어도 밥 빌지 않는다”거나 “량반은 덜덜 얼어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속담도 생겨난것이리라. 이것도 나라와 민족과 종족간에 문화의 차이라면 차이일것이다. 그래서 화제에 올려 보았다.
연변일보 20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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