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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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북경동계올림픽의 시대적 의미 댓글:  조회:1068  추천:0  2021-11-18
북경동계올림픽의 시대적 의미 장경률 2022년 북경동계올림픽 성화가 지난 10월 18일 지구촌 올림픽발상지 희랍 펠로폰네소스반도의 고대 올림픽 유적지에서 채화되였다. 2000여년 된 해라 신전 유적지 앞에서 올림픽성화는 다시한번 북경을 위해 채화되였다. 10월 26일 이번 동계올림픽을 100날 앞두고 올림픽 개막 초읽기 주제활동이  주경기장으로 선정된 중국의 수도 북경에서 성대히 거행되였다. 주지하다싶이 오늘날 우리는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사태도 용케 극복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코로나19 사태가 2년이라는 심각한 고통과 준엄한 시련을 기억 속에 남기면서 점차 긴 턴넬을 지나 서광이 보이고 있다. 이런 력사적인 시기에 2022년 북경동계올림픽이 래년 2월 4일 서막을 올리고 2월 20일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하기에 그 장원한 력사적의의와 중대한 현실적 의의는 어떻게 평가하여도 절대 과분하지 않다고 보아진다. 올림픽, 그 자체가 세인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세계평화와 지구촌의 공생과 공영은 올림픽의 영원한 정수이다. 오늘날 현대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중 스포츠를 통해 세계평화에 이바지하자는 목적 아래 개최되는 것이 올림픽이다. 1894년 근대 올림픽이 쿠베르탱에 의해 시작된 이후 올림픽은 정치적 격변과 종교적, 인종적 차별 속에서도 서서히 세계평화라는 큰 리상을 이루어나가고 있다. 상업화된 올림픽과 국제적 스포츠 이벤트란 비판도 많이 있으나 스포츠를 통해 이뤄져온 상호 리해와 협력의 성과는 앞으로 국제사회의 갈등을 풀고 세계평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중의 하나의 지극히 중요한 절대 홀시할 수 없는 사례라 할 것이다. 돌아보면 현대 올림픽 127년 사상 수차례 올림픽을 보이콧하거나 하는 등 그릇된 현상도 있었지만 모두 슬기롭게 헤쳐나갔다. 정의롭고 평화를 지향하는 전 세계인들의 공동한 노력과 분투로 오늘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는 지구촌의 가장 인기적이고 가장 호평을 받는 축제의 장으로 된 것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오늘날도 일부 서방국가들이 케케묵은 리념문제, 때 지난 랭전사유, 세기적인 거짓과 오만 그리고 정치적 편견으로 중국을 공격하고 무함하면서 2022년 북경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하려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시도는 기필코 실패할 것이지만 필경 일부 영향도 끼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추태는 전세계 여러 나라의 질책과 반대를 받고 있으며 세계의 량심과 정의로운 민심의  항격과 질책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올림픽헌장은 올림픽운동의 독립성과 정치중립성을 수호하고 추진한다고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스포츠운동의 정치화는 올림픽정신과 올림픽헌장에 명확히게 위배되는 행위하로서 세계 여러 나라 운동원들의 리익과 국제올림픽사업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는 것이다. 이에 지구상의 절대 대부분 나라와 해당 국가 올림픽위원회, 국제올림픽위원회도 분명하게 이런 작법을 견결히 반대하고 있다. 2022년 북경동계올림픽이 이처럼 크낙한 세계적 스포츠행사도 이제는 역시계 읽기로 진입하였다. 북경올림픽은 세계적인 대사, 국가의 대사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일반 국민들과도 직결되는 전 인류의 가장 중대한 대사중의 하나이다. 960여만평방킬로메터의 신주대지에서도 그 뜨거운 열기가 갈수록 세차게 가열되고 있다. 전국적인 범위에서 수도 북경을 중심으로 북경동계올림픽을 주제로 각종 문화스포츠행사들이 성세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올해의 새모가 아직 한달 반 남은 시점에서 벌써부터 올림픽 새해맞이 다종다양한 행사들도 벌써 진행중에 있다. 올림픽 길상물 제작과 판촉활동 예술축제 그리고 북방지역을 시작으로 겨울철 빙설축제들도 륙속 스타트를 떼였다.  하북성내에서는 2500개 중소학교들이 북경동계올림픽 스포츠종목들을 설치하고 겨울철 교정스포츠행사와 결부시키고 있다고 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2022년 북경동계올림픽 주제 새해맞이 행사가 스위스에서 가동되는데 국제올림픽 주석 바흐가 참석하여 테프를 끓는다고 한다.   전국모범자치주 영예에 유일하게 5번이나 선정된 우리 민족은 재래로 2022년 북경동계올림픽과 같은 국가적 중대행사에서 남한테 뒤진 적이 없다. 이제 우리들의 공동한 노력으로 동계올림픽 열기가 연변지역은 물론이고 무릇 우리 민족의 모든 집거지에서 거세차게 형성될 것이라 믿어마지않는다. 이와 함께 우리들의 삶도 더욱 질적으로 한 차원 승화할 것이다. 연변일보 
85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댓글:  조회:1180  추천:0  2021-08-30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장경률 로씨아의 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로 일컽는 레브.똘스또이는 82세로 영면에 들기전 2년에 걸쳐 잠언집을 집필했다. 바로 그의 마지막 저서로 알려진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다. 이 저서는 문장이 간결하여 술술 읽혀 내려가지만 그 내용을 삶 속에서 실천하기는 결코 만만치 않다. 례컨대 그가 쓴 다음의 구절을 보자. ‘잠언집’ 68페지에서 그는 이렇게 갈파하였다. 인간사회는 ‘살인, 도둑질, 정욕, 거짓말, 음주를 다섯 가지 죄로 여긴다. 이들 죄를 피하는 방법은 자기 절제, 소박한 삶, 로동, 겸손, 믿음이다.’ 천만 지당한 말이다. 인생의 로년기에 진입한 우리 세대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황혼길이 가까워 올수록 더더욱 자기수양과 자아반성을 흔히 하게 된다. 최근 우리 6070세대의 한 모임에서 누가 제언하지 않았는데도 저도몰래 인생후반기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서로 표백하게 되였다. 그러면서 공감대를 이룬 것이 바로 “해가 가고 나이가 들수록 느는 것은 참회요, 주는 것은 겸손이다.”는 것이였다. 동시대 지인들의 겸허한 성찰도 백여년전 톨스토이의 잠언과 세대공감을 이루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인간은 한평생 자아완성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독서는 절대적이고 필수적이다. 헌데 이런 독서는 결코 맹목적이여서는 안되는 줄로 안다.  반드시 목적의식적으로 골라서 독서하고 독서하면서 자아성찰로 자아수양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하기에 생의 끝자락에 남긴 대문호의 잠언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를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닌줄로 안다. 중국고대의 성인 공자의 《론어(论语)》를 읽노라면 ‘술이편(述而篇)’에 이런 명언이 적혀있다. ‘공부에 열중하다보면 밥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공부가 즐거우면 근심걱정도 다 잊고 늙는 것도 미처 깨닿지 못단다.’ 그래서 몸은 늙어가도 배움에서 젊음을 항상 간직하고서 산다는 얘기다. 이로부터 지난 세기 60년대 중기 주은래 총리가 우리들에게 간곡하게 호소한 격문이 떠오른다. 그는 ‘인간은 늙을 때까지 살면서 늙을 때까지 공부하고 늙어서도 자아개조를 해야 할것이다(活到老,学到老,改造到老!)’고 제창했다. 아침노을이 찬란하여 아름답지만 불타는 석양노을도 눈부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지난날의 이런 불평, 저런 불만, 여러가지 후회 등 좋지 않았던 것들을 자꾸 생각하고 떠올리게 되는 것도 인간 상징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런 묵은 것에 집념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 인생은 자기 나름대로 가꾸고 자아성찰, 자기완성하기에 달렸다. 조선조 중기 평생 학문연구에 집념한 대학자 여헌 장현광(1554년-1637년)선생은 이란 글에서 ‘언어를 그치고 경영을 끓고 마음을 크게 비우고 사시에 맡겨야 한다’고 하였다. 이 뜻을 풀이하면 늙으막에는 다른 사람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고 잡스러운 일을 줄여 심신을 피곤하게 하지 말고 마음을 비워 잡념을 끊고 자신의 삶을 천지자연의 리치에 맡기라는 것이다. 같은 시대의 다른 대학자 동계 정온(1569년-1641년)선생도 이란 시에서 ‘늙으막은 의당 오게 마련인 거로 젊은 시절 호시절이 얼마나 되랴. 백발 본디 나 따르는 물건이거늘 굳이 뽑아 버릴 필요 뭐가 있으랴’라고 읊조렸다. 봄이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여름이면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이면 풍성한 열매로 결실을 맺으며 겨울이면 사라져 가면서 다른 새  봄을 잉태하는 것은 대자연의 섭리이다. 인간도 태여나고 성장하고 대를 잇고 늙어가고 사라져가는 것은 한 인간의 삶의 전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인생의 전반생이 끝나면 완전히 끝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필자는 백화가 만발한 눈부신 꽃밭에 서서 더욱 저녁에 불타는 황혼의 아름다운 노을을 즐긴다. 연변일보
84    인간 중심에 한점 소홀함 없이 댓글:  조회:1368  추천:0  2021-03-26
인간 중심에 한점 소홀함 없이 장경률 “해외에 나가있는 우리 국민, 무릇 증국동포라면 단 한 사람도 소홀함이 없이 백신접종을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우리 나라 왕의 외교부장이 얼마 전 페막된 전국 ‘두 회의’ 소식공개회에서 이렇게 피로하였다. 지난 1월 23일 한국 동포세계신문 유튜브방송 《재한 중국동포 궁금한 이야기》프로에서 중한삼강포럼 대표는 중국산 백신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이날 방송에 재한 중국동포들은 흥분하였고 한국사회에서도 적지 않은 파급효과를 일으켰다.  동시에 중국산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 걱정 없이 맞겠다고 적지 않은 시청자들이 표하였다. 당면 전세계적으로 백신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나라도 백신접종에 속도를 내고 있다. 3월 13일을 기준으로 이미 근 5878만 1200여명에게 백신접종을 하였다고 한다. 지난 3월 12일 페막된 중국 ‘두 회의’에서 왕의 외교부장은 중국이 다른 나라들과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상호 인증을 론의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중국도 ‘백신려권’ 제도를 실시할 것이라는 소식과 함께 해외에 거주하는 자국민에게도 중국산 백신을 접종하기 위한 접종소를 설치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왕부장은 “중국이 중국판 국제려행건강증명 전자서류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 “충분한 사생활 보호를 전제로 코로나19 핵산검사와 백신접종 정보의 상호인증을 실현해 안전하고 질서 있는 인적 왕래를 뒤받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신 려권이란 무엇인가? 3월 8일 련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이 대중들에게 백신접종을 장려하고 백신을 맞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려행증명서를 발급하는 방안이다. 외국에서 중국으로 오는 사람이 핵산검사 음성증명 결과와 백신려권이 있다면 14일 격리를 면제받고, 동시에 중국에서 해외로 나가는 사람 또한 백신려권이 있으면 자유롭게 려행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중국과 이스라엘은 실제로 3월 9일 지구촌에서 제일 처음으로 ‘백신려권’, ‘증국판 백신통행증’을 서로 승인하였다. 우리 나라는 자국민에 대한 보호의식이 아주 강한 나라이기에 곧 실시되지 않을가 생각해보게 된다. 해외 동포들을 위한 백신지원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왕의 부장에 따르면 중국은 인민외교를 펼치고 있는바 이번 코로나19 백신 접종에서도 ‘새싹행동(春苗)’을 펼칠 것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는 이미 지구촌의 56개 나라와 백신관련 상황을 소통하고 있다. 그중 조건을 갖춘 나라에 백신접종소를 설치해 해외동포에게 중국산 백신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 나라는 코로나19 백신은 국제적 공공제품인바 전세계가 코로나19 백신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질병관리연구소 파우치 소장의 주장도 일치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우리 나라 과학원 원사 중국 질병연구 전문가 종남산 원사와 경상적으로 대화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또 백신 민족주의 백신 정치화를 견결히 반대하고 있다. 다시말하면 지구촌의 모든 나라를 평등하게 지원하고 약소민족과 발전도상의 나라들에 더욱 중시를 돌려 지원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백신 민족주의’를 반대하고 ‘면역격차’를 만들지 않으며 백신협력을 정치화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배척한다. 모든 능력이 있는 국가들이 있는 힘을 다해 필요한 나라 특히는 발전도상의 국가에 백신을 제공함으로써 각국 인민들이 모두 백신을 사용하여 진정한 ‘인민의 백신’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지난 1년간 줄곧 해외에 진출한 중국동포들의 안위를 념두에 두었다. 코라나19 사태가 터져서부터 적시적으로 각국에 있는 중국 대사관 혹은 기타 효과적 통로를 통하여 손길을 내밀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해외에 나간 중국공민들을 지원하고 보호하고저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았는바 진정으로 ‘인민을 위한 외교’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상기한 우리 나라 코로나19 백신의 국제협력은 지구촌의 보편적인 긍정과 호평을 받고 있다. 3월 9일 외신에 따르면 현재 우리 나라는 69개 개발도상국가들에 백신을 무료로 지원함과 아울러 43개 국가에 백신을 수출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세계보건기구의 ‘코로나19 백신 실시계획’에 가입하여 첫 진으로 1,000만제 백신을 제공하여 발전도상국가에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여러 나라의 매체들은 중국이 백신을 전세계 공공제품으로 추진하고 백신이 전세계에서 공평하게 분배되고 사용되도록 기여했다고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금일 애급인보》는 3월 4일 아랍국가련맹본부에서 열린 중국 원조 백신 인수인계식에서 아랍국가련맹의 비서장 호샘 자키는 아랍인들과 중국인들간의 우정은 영원할 것이라고 표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또 아랍국가련맹과 중국간의 백신협력은 아랍 국가들의 방역능력을 효과적으로 강화하고 아랍국가련맹과 중국간의 전통적인 우호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며 아랍국가련맹은 중국측과 손잡고 하루빨리 전염병 역정을 이겨내기를 원한다고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중국이 코로나19 백신을 세계적인 공공제품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세계적인 전염병 예방, 통제 사업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문장은 중국 백신이 “세계 무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의 론평을 인용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 사이트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까지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이 중국의 코로나19 백신에 기대를 걸고 있다. 중국 정부는 기업들이 중국 백신 구매 의향이 있는 국가에 백신을 수출하는 동시에 부유하지 않은 국가에 백신을 지원하는 것을 장려하고 지원한다고 전했다. 지난 8일 중국은 지구촌의 103개 국가를 대표하여 세계인권리사회에 “인간중심을 견지하면서 모든 국가는 평등하다. 공동하게 코로나19 역병에 대처하고 공동저격전을 펼치여 최후 승리를 취득하자”고 호소하였다. 동시에 중국질병관리연구소 장문홍 소장은 “올해가 백신 접종의 최적기이다.”고 강조하면서 올해 안에 지구촌의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접종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연변일보 
83    흰 소 정 신 댓글:  조회:1397  추천:0  2021-02-26
흰 소 정 신 장경률 올해는 음력으로 신축년(辛丑年) 소띠의 해이다. 륙십 간지중 38번째 해로 하얀 소의 해라고도 한다. 지난해도 경자년 흰쥐띠의 해였다. 새하얀 것을 숭상하는 백의민족으로서 흰쥐, 흰소가 흔치 않은 희귀동물이라서 더더욱 그 매력에 빨려드는가 보다. 실상 소 하면 황소든지 흰소든지 그 내포는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지난날 사람들은 흔히 황소를 많이 칭송하였다 하지만 흰소, 얼룩소, 검정소, 젖소 등 그 종류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그 공성은 하나이다. 바로 소는 풀을 먹는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힘을 기여하는 동시에 고기와 우유를 공급해준다. 소는 한마디로 그 한생에 버릴 것이란 하나도 없다. 오늘날 흰소의 해를 맞으면서 새삼스레 흰소정신을 떠올리게 됨은 지난해 세밑 12월 31일 전국정협 송구영신 다과회에서 국가주석 습근평이 소의 3대 정신을 격찬하면서이다. 습근평 주석은 새로운 한해에 ‘인민을 위하여 봉사하는 유자의 소, 창의 발전하는 개척형의 소, 간고분투하는 황소’ 이 3소 정신을 충분히 발양하면서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로 전면적으로 건설하기 위하여 총력전을 펼쳐가자고 호소하였다. 우선, 일심전력 인민을 위하여 봉사하는 유자의 소부터 보기로 하자. 소가 더욱 유명해진 것은 모택동 주석이 로신정신을 찬양하면서부터라 하겠다. 실상 중국에서 지난 세기 60년대 하반기부터 문화혁명의 세례를 받으면서 지나온 세대는 거지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모택동 주석의 저작 는 거의 모든 국민이 암기할 정도로 날마다 읽고 외우고 실천하던 좌우명이였다. 동시에 로신 선생이 제창한 명언 “매서운 눈초치로 천부의 손가락질에 대하고 머리 숙여 달갑게 유자의 소가 되자”는 격언도 모택동 주석이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유자의 소가 되자”고 호소하면서 역시 좌우명으로 되여 더더욱 유명해진 것이다. 인민, 오직 인민만이 오늘날 공산당이 집권하는 근본적 취지이고 모든 로선, 방침, 정책의 출발점이고 귀속점인 것이다. 당면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습근평 주석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인민은 무엇보다도 우선이고 인민대중의 생명은 무엇보다 귀중한 것이다. 다음, ‘창의 발전하는 개척형의 소’의 정신을 발양해야 할 것이다.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020년에 중국은 코로나사태 속에서 유일하게 국민경제가 안정적으로 회복되였다. GDP가 전해 같은 시기에 비해 2.3% 성장하고 주민 인당 수입이 2010년에 비해 배로 증가했다. 2020년 전국 고정자산 투자가 2.9% 성장하고 12월 사회소비품 소매 총액이 4.6% 증가했으며 규모이상 공업원탄 생산량이 소폭 늘어나고 12월 규모이상 공업 증가치가 7.3% 증가했다. 2021년은 우리 나라가 전면적으로 발전한 현대화한 나라를 건설하는 중요한 한해이기도 하다. 습근평 주석은 그래서 창의적 발전을 주장하면서 ‘개척형의 소’가 될 것을 호소한 것이다. 그리고, ‘간고분투하는 황소의 정신’은 중화민족의 유구한 전통이고 미덕이다. 지난해 코로나19 대류행 국면에서 중국이 보여주는 놀라운 성과의 리유와 그 바탕은 무엇일가? 습근평 국가주석의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과 사회주의 체제의 강한 행정력, 중국인민의 인내와 협력 그리고 간고분투하는 황소의 정신을 발양한 것 등을 핵심적인 성공비결로 꼽을 수 있다. 이는 지구촌의 대다수 언론과 분석가들이 인정하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 일명 IMF가 2021년 1월 26일 22시 발표한 새해의 경제발전 전망보고서는 비교적 락관적이다. 이에 따르면 올해 중국은 코로나사태를 극복하고 경제가 고속 성장할 것인바 GDP가 8.2%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또한 자국발전과 관련해 ‘두개의 100년’(중국공산당 창건 100년인 2021년, 새 중국 건국 100년인 2049년)의 웅위로운 청사진을 펼치고 있다. 그중 두번째는 2049년까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하기에 새로운 력사시기에 이런 3소 정신을 고양하고 발양하는 것은 한점도 흐트러짐이 없어야 할 것이다. 21세기도 21년이 지난 오늘날 흰소의 그 정신, 그 미덕을 소리높이 노래함은 지난날은 물론이고 지금도 미래에도 우리 중화민족이 영원히 고양하고 발양해야 하는 정신적 경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변일보 
82    아버지의 어깨도 무겁다 댓글:  조회:1989  추천:0  2020-05-11
“우리 애들 잘 자라게 지켜 주십시오!”   올해 청명에도 조상들을 모신 가족릉원을 찾아 가토를 하고 제사를 지내면서 증조할아버지부터 할아버지, 부모님들에게 차례로 제주를 올리고는 항상 잊지 않고 있다가 한 말이다.   부모로서 인생의 가장 큰 작업의 하나가 바로 자식을 바로 자래우는 것이리라. 부모로서 자식사랑은 끝이 없는데 바로 이처럼 자식이 올곧게 자라서 크게 되는 것을 항상 두손 모아 빈다. 그래서 저 세상에 가서도 자식걱정하는 것이 부모일 것이다. 그런 뜻에서 자식들은 부모가 돌아가도 그네들의 음덕을 입는다고 력래로 믿어 왔다. 부모가 남겨준 정신적유산, 물질적유산은 물론이고 그네들의 혼령이 후손들을 보살펴 준다 생각한다. 그런뜻에서 해마다 청명이나 추석은 물론이고 명절이나 가족에 대사가 생기면 즉시  가문의 선산을 찾아 제사를 지낸다. 물론 조상이나 부모님들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이지만 동시에 그네들의 혼령이 후손들을 잘 보살펴 주기를 기원하는 심령에서 이기도 하다.   재래로 뛰어난 영재, 성공한 명인들의 뒤에는 훌륭한 부모들이 있었다. 그런 자녀교양에서 아름다운 사연들을 돌아 보면 어머니들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 일례로 한석봉이 과거공부를 갔다가 부모님이 너무 보기 싶어서 가만히 도망해 집에 왔는데 그의 어머니는 도리어  아들과 내기를 벌리지 않았던가. 등잔불을 끄고 칠흙같이 어두운 방안에서 어머니는 떡을 쏠고 한석봉이는 붓글씨를 쓰는데 한석봉이가 지자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아들을 훈계하여 서당으로 다시 쫓아보냈다는 일화는 엄한 모친이 강한 자식을 키워낸 옛이야기로 유명하다. 우리 민족에게는 이처럼 훌륭한 어머니의 일화는 많지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다.   애목이 자라서 기둥감 되고 애된 소년이 후날 나라의 동량으로 성장한데는 아버지들의 역할은 대단하였다. 그 표현형태가 다르고 잘 나타나지 않았을 따름이지 절대 어머니들에 못지 않은바 홀시해서는 아니 된다고 본다. 서방에는 위인들을 키워낸 인물로 아버지들이 많이 등장한다.  케인즈의 아버지, 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 케드의 아버지, 파인만의 아버지, 모자르트의 아버지, 피카소의 아버지 등이다. 존 스튜어트의 아버지는 인도의 총독이라는 아주 분망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틈틈이 아들의 학업을 돌보았고 모자르트나 피카소의 아버지들은 생업을 팽개치고 아들의 애호와 성장에 몰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자녀들과 인간적인 정을 깊이 나누면서 우선 참된 인간이 되도록 가르치고 자식들의 매 하나의 성공에서 희열을 느끼면서 자호감을 가지였다.   우리 주변에서도 자녀교양에 힘쓴 아버지들의 훌륭한 미담이 적지 않다. 원 주당위선전부 부부장이였던 채영춘선생의 수필이나 칼럼에서 아버지가 여러번 등장한 것을 보면서 감명이 깊었다. 이를테면 "아버지의"이라든가 "사랑의"에서 때론 따스하게 일깨워 주는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일깨움이나 때론 호랑이같이 무서운 얼굴로 회초리를 들고서 엄하게 훈계한 장면들은 아주 인상적이다.   우리 민족은 중화의 대지에서는 물론이고 지구촌에서 교육열이 아주 높기로 세인이 긍정하는 바이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교육을 위하여서는 무엇이든지 다 한다. 온갖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비싼 과외도 보내고 학원에 보내여 남먼저 공부시키고 특장교육을 시킨답시고 자식이 무엇이든지 하자는대로 다한다. 모종의 맹목성도 없지 않다. 아빠들은 지어 기러기아빠로 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헌데 치명적인 약점도 있으니 적지 않은 경우 아버지들은 자녀교육이나 학교공부는 어머니, 안해들이 하는 것, 그네들의 몫이라고 인정하면서 무작정 밀어맏기는 것이다. 나의 경우도 오랍누이를 키우면서 그애들이 인제는 가정을 이루고 사회상의 떳떳한 역군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그애들이 대학까지 마치고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 별로 묻지도 않았다. 안해가 다 알라서 한다고 굳게 믿으면서 다 잘되겠지 하고 방관하였다. 물론 중대사는 토의도 하고 조언도 주었지만 기본상 불간섭이였다. 오늘날 보면 이래서는 정말 안되였는데도 말이다. 물론 이미 다 지나간 옛말이지만.   올해도 어린이의 날을 계기로 5월이 어린이들의 달, 자식들에 대한 가정교양이 주제로 되는 달이기도 하다. 그래서 화제에 올려 보았다.   동북아신문 
81    ‘엄부자모(严父慈母)’가 그립다 댓글:  조회:2304  추천:0  2019-11-21
우리 말에 ‘엄부자모(严父慈母)’란 격언이 있다. 문자 그래도 ‘엄한 아버지에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말이다. 지난날에는 자녀에 대한 가정교양, 특히 자녀들의 인성교양, 례절교양, 사회교양 등 자녀교양의 절반은 아버지들이 분담하였다. 물론 그 교양방식과 교양내용과 교양태도가 어머님들과는 판이하였지만 말이다. 만약 아이들이 어른들한테 버릇이 없거나 동네에서 자녀들에 대한 고소가 들린다면 아버지들은 서슴없이 ‘회초리’를 들었다. 그리고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버릇이 없거나 교양이 없이 행동한다면 곁에서들 흔히 “누구네 애인지 애비없이 자랐구나”, “애비교양이란 모르고 컸구나.” 하고 그 애의 아버지를 탓하였다. 만약 자식 때문에 이런 소리들 듣는다면 아버지로서는 최대의 모욕과 불명예로 간주되였다. 물론 시대가 바뀌면서 사회발전과 더불어 ‘훈육’이 문제시되고 ‘엄부’가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작금의 상황에서 ‘엄부’의 역할을 해야 할 아버지들이 아이들의 요구라면 다 들어주는 ‘다정다감한 아버지, 자부(慈父)’로 된 것이다. 부모들의 역할분담으로 아버지들은 자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어머니들보다는 훨씬 적어졌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자식들과의 정감을 나누고 아버지로서의 좌표를 분명히 하고저 채찍을 드는 ‘엄부’보다는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는 ‘자부’로 되기를 즐긴다. 실상 그래서 아버지의 엄한 교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오늘날의 적지 않은 아이들은 례절이 바르지 못하고 버릇이 없고 모든 것이 자기중심주의적인 문제아로 커가는 경우가 많다. 실로 자녀교양에서 숙고해야 할 현실적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아직도 아주 많은 아버지들은 자녀교양에 무관심하다. 자기들의 몫은 집 밖에서의 일이고 집에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등 경제적 조건만 잘 창조해주면 만사대길로 간주한다. 동시에 자녀교양은 집안의 일로서 엄마가 도맡는 것이 지당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문제들이 많다. 이런 연구결과가 있다. 모 사범대학이 한 정신병원과 련합으로 정신과와 관련하여 사회 각계의 방금 성인으로 성장한 젊은이 100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렸다. 결과 46명 근 절반이 사회공포증과 공항장애증상이 엄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그 병인을 캐여보면서 어릴 때부터 받아온 부모들의 양육방식에 대하여서도 알아보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아이들의 정신건강과 향후 자립성의 강약에 직결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어머니들의 교양이 아무리 적극적이더라도 아버지의 무분별하고 아이들의 잘못을 모르는 상황에서 덮어놓고 든 ‘훈육’이나 ‘회초리’가 결국 크면서 아이들이 사회공포증에 시달리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공포증이란 타인에 의하여 발생되거나 감지되는 두려움증이 한가지 이상으로 지속되면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로부터 볼 수 있는바 아버지의 양육태도가 자녀들이 독립적이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서 지극히 중요함을 단적으로 시사해준다. 재래로 뛰여난 영재, 성공한 명인들의 뒤에는 아버지의 엄격한 교양과 자애로운 배려가 있었다. 고금중외에는 그런 사례들이 많고도 많다. 애목이 자라서 기둥감 되고 애된 소년이 후날 나라의 동량으로 성장한 데는 아버지들의 역할은 대단하였다. 서방에는 위인들을 키워낸 인물로 아버지들이 많이 등장한다. 케인즈의 아버지, 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 케드의 아버지, 파인만의 아버지, 모자르트의 아버지, 피카소의 아버지 등이다. 존 스튜어트의 아버지는 인도의 총독이라는 아주 분망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틈틈이 아들의 학업을 돌보았고 모자르트나 피카소의 아버지들은 생업을 팽개치고 아들의 애호와 성장에 몰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 민족의 사책을 펼쳐보아도 상기한 사례와 손색이 가지 않는다. 멀리 말고라고 오늘날 우리 신변의 걸출한 인물, 중대한 업적을 이룩한 교수, 전문가들의 성장과정에도 엄한 아버지의 그림자를 력력히 볼 수 있다. 필자의 경우도 수많은 책에서 읽었고 엄부(严父) 관련 미담도 많이 듣고보았는지라 아들과 딸을 엄하게 키우느라고 흉내를 내였지만 줄곧 그렇게 되지 못하였다. 소학교 6학년까지는 그래도 엄한양 하였지만 아들이 초중에 진학하고 키도 비슷해지면서부터는 그런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합격된 아버지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지금 반성하고 후회한들 모두 행차 뒤의 나발에 불과하다. 저명한 교육학자 필립 체스터필드의 명언을 옮긴다. “나의 애정은 너의 어머니의 온유한 애정과 다르다. 나는 결코 자식의 결점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점을 재빨리 발견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부모로서 나의 의무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십분 지당하다. 연변일보 
80    [칼럼] 숭늉 그리고 그 화려한 승화 - 장경률 댓글:  조회:2190  추천:0  2019-07-11
 장경률    숭늉 그리고 그 화려한 승화    얼마전 연변지역의 유명한 항일전적지를 답사한 적이 있다. 당시 답사와 더불어 투숙했던 주인집에서 마련해준 풍성한 시골밥상도 지금까지 머리에 선하다.    어스름이 깃들 무렵 하루일과를 원만하게 마치고 집주인과 함께 안주인이 잘 마련한 밥상을 마주했을 때의 그 기분은 상긋하다 못해 진정 둥둥 뜨는 것만 같았다. 시골 특유의 시래기 토종돼지갈비, 느타리나무버섯채, 개암버섯채, 산토끼탕에 통배추김치, 총각김치, 가을통무우치미 게다가 불군 지 몇해 되여 잔뜩 고아진 들죽에 오미자술이 주최가 되니 두말이면 잔소리다. 시가지는 물론이고 어지간한 벌방에서도 하기 힘든 건강식, 자연식이라 거기에 넉넉한 시골인심이 바탕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뒤미처 들어오는 것이 숭늉이다. 낯설지 않지만 도시 가정에서는 하기 힘든 존재로 여겨지던 그 맛, 구수한 그 기장밥숭늉이 또한 일품이다.   민속학자의 말에 따르면 숭늉이란 한자어로 숙랭(熟凉)이 오랜 세월 내려오면서 변한 단어라고 한다. 그 뜻인즉 그대로 ‘찬물을 익힌 것’ 다시 말하면 밥을 지어낸 솥에 찬물을 부어 만든 것이다. 숭늉을 조선반도에서는 고장마다 제나름인데 제주도사투리는 ‘누렁이 물’, 자강도사투리는 ‘당수’라고도 한다. 고대 당나라사람들이 즐겨 마신 차와 비슷하다고 한다.   한 민족백과사전에서도 “밥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한소끔 끓여 만든 음료.”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반탕(饭汤), 취탕(炊汤)이라고도 한다. 이 숭늉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임원경제지》에서 숭늉을 숙수(熟水)라 하였고, 《계림유사 (鷄林類事)》에 “숙수를 이근몰(泥根没: 익은 물)이라 한다.”는 표현이 나오므로 고려 초나 중엽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른 고서들에서도 숭늉에 대한 기재가 많은 바 종합해보면 오늘날 같은 밥짓기의 시작은 청동기가 유입되면서 시작되였고 철기시대부터 무쇠솥이 사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여있다. 그 방법은 대동소이한데 거지반 밥을 짓고 난 솥바닥에 밥알이 눌어붙은 것이 누룽지고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인 것이 숭늉이라고 불렀다. 예로부터 조선반도는 자연수(自然水)가 좋아 조선시대부터는 차(茶)보다 숭늉이 보편화되였다. 바늘 가는 데 실이 따라가듯이 누룽지에는 숭늉이 따르는데 조선시대 광해군때 시인 박인로의 〈숭늉〉시조에 “서홉밥닷홉죽에 연기도 하도 할사 설 데인 숭늉에 빈 배속일 뿐이로다.”   이런 곱돌솥이나 그러잖으면 무쇠솥에 장작불을 지펴 만든 누룽지는 바삭하고 고소한 감칠맛을 내는 저칼로리 영양식이며 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 지금의 과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 허준(许俊)의 《동의보감(东医宝鉴)》(1613년)에는 ‘취건반(炊干饭)’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여있다. “음식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못하거나 넘어가도 위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이내 토하는 병증으로 오래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는 병은 누룽지로 치료한다.”   그 외에도 “여러 해가 된 누룽지를 강물에 달여서 아무 때나 마신다.”고 하여 누룽지가 약으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누룽지는 군것질에 굶주린 어린아이들의 간식이였으며 과거를 치르기 위해 상경하거나 장사길을 떠날 때, 먼길을 갈 때 함께하는 휴대식량이였다. 이러한 누룽지를 강밥 또는 깡밥이라고도 하는데 단단히 만들어놓은 밥이란 뜻인 강반(强饭)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처럼 누룽지로 만든 숭늉은 우리 고유의 음료로서 밥 짓는 법과 관계가 깊다. 중국의 밥짓기는 처음에 물을 풍부하게 넣어서 충분히 끓어오르면 물을 퍼내고 약한 불로 뜸을 들이거나 다시 찌므로 숭늉이 발달하지 못하였다.   일본에서는 같은 방법으로 밥을 짓지만 숭늉을 먹지 않는다. 이것은 부엌구조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의 부엌구조는 부뚜막 아궁이와 온돌이 일체가 되여있고 솥은 고정식이므로 솥을 씻기가 힘들다. 따라서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이면 숭늉을 마실 수 있다. 그리고 솥을 씻는 방법도 되기 때문에 발달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밥을 먹고 숭늉을 마시거나 숭늉에 밥을 말아먹으면 식사의 순서가 끝나는 식문화를 형성하게 되였다. 조선반도에서는 조선시대로 오면서 숭유억불사조와 함께 차문화가 쇠퇴되면서 숭늉문화가 더욱 발달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우리 민족이 밥이나 죽, 별미 음식을 만드는 솥으로는 곱돌이 주재료이다. 그제날 곱돌은 조선반도의 남단 전라북도 장수지방에서 생산되는 것이 품질이 제일 좋았다고 한다. 그 방법은 곱돌을 쪼아 솥의 형태로 만든 뒤 안을 파서 만드는데 이런 곱돌솥은 열이 빠르게 전도되지 않는 반면 밥을 지으면 뜸이 고르게 들고 잘 타지 않아 밥맛이 아주 좋으며 쉽게 식지도 않는다. 옛날 어머니들은 밥을 지을 때 일정한 분량의 물과 쌀을 가마솥에 넣고 끓이다가 여분의 물이 없어질 때까지 뜸을 충분히 들인다. 가마솥에 수분이 남아있는 동안은 아무리 가열하여도 100℃ 이상이 되지 않으나 뜸을 들이는 과정에서 솥바닥은 수분이 없어져서 220∼250℃까지 올라간다. 이 온도에서 3, 4분간이 되면 밥알에 갈변이 일어나고 갈변한 누룽지 부분에서 전분이 분해하여 포도당과 구수한 냄새의 성분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물을 붓고 푹 끓이면 구수하고 푸근한 맛의 숭늉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누룽지와 숭늉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민족 고유의 독특한 맛의 음식이며 음료이다.   지난 30여년 전까지만 하여도 지금처럼 전기밥솥이나 가스레인지나 오븐이 없던 시절, 시골농촌에서는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하였다. 그때 장작으로 불을 피워 밥을 해 먹는데 밥 한공기에 김치 한두가지, 간장종지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였지만 마지막에는 항상 구수한 숭늉이 있어 행복했다. 밥을 거의 먹어갈 때쯤 어머니가 주시는 숭늉 한그릇은 모락모락 피여나는 김에 섞인 구수한 냄새가 코는 물론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푸근하게 만드는 맛이였다. 지금은 전기밥솥에 밥을 하거나 그것도 귀찮아서 인스턴트 밥을 사 먹기에 옛날처럼 구수한 누룽지를 맛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쇠솥이 없어지고 양은솥이 나오면서부터 누룽지가 생기지 않게 하려고 애쓰게 되였다. 그리고 전기밥솥의 보급으로 누룽지가 생기지 않게 되면서 숭늉을 마시는 풍속이 점차 사라지게 되였다. 요즈음에는 숭늉 대신에 보리차를 끓여서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아무리 어떻게 변신하거나 다르게 만들어도 슝늉의 그 고유한 진가, 그 참맛에는 비교가 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일부 식당에서는 일부러 커다란 가마솥을 가게 앞에 걸어놓고 구수한 숭늉냄새로 손님들을 유인하기도 한다.   오늘날 누룽지와 거기서 파생되여 나온 슝늉은 새로운 시대에 맞게 변신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누룽지의 구수한 맛의 매력은 잊혀지지 않는가 보다. 전기밥솥 기능에도 누룽지를 만드는 기능이 더해지고 있으며 누룽지과자가 상품으로 나와 인기를 끌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아침을 거르는 일이 많은데 누룽지를 끓여 숭늉을 마시면 속이 든든하고 편하다. 이렇듯 가난을 상징했던 누룽지는 이제는 현대인의 웰빙식품, 다이어트 식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처럼 누룽지와 숭늉이 오늘날 화려한 승화를 하고 있어 한결 반갑다. 우리 민족 자치주 수부 연길에만 하여도 백년돌솥밥, 부산돌솥밥, ABC돌솥밥 등 돌솥밥집들이 수십호, 연길뿐만 아니라 룡정, 화룡, 훈춘 등 8개 시와 현에 숱한 분점도 두고서 서로 치렬한 경쟁을 벌리고 있다. 그리고 북경이나 상해, 광주, 청도, 위해 등 우리 민족이 많이 산재한 대도시의 집거구에는 거의 모두 돌솥밥집들이 있다. 그리고 식후의 후식으로 구수한  누룽지와 숭늉이 료리와 만나면서 형식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동시에 선조들의 령혼과 삶의 지혜와 슬기가 슴배인 이 음식문화유산을 이어간다는 당찬 호기도 선명하게 엿보여 더더욱 흡족하다.   물론 진부하고 고루한 민족적 편견은 버려야 한다. 하지만 사회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음식문화를 통한 우리 민족의 전통, 민족의 정신, 민족의 문화유산은 그 어떤 형식으로든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더더욱 높은 차원에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79    동전 한잎이 삶의 철리 선사 댓글:  조회:2388  추천:0  2019-02-14
도시의 큰 백화점 입구에 거지 한 명이 구걸하고 있었다. 백발의 로인인데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흰머리도 한껏 헝크러져 있어 지난 밤도 길거리나 어느 골목에 누워잔것 같았다. 그래도 미소는 잃지 않고 두 손을 내밀며 구걸하였다. 문뜩 한 댓살쯤 되여 보이는 예쁜 녀자애 하나가 다가 오더니 고사리손을 내밀고 동전 한 잎을 내밀었다. 거지는 허리를 구십도로 굽히며 받았다. 그것도 잠간, 어른들이 먼곳에서 볼라니 거지가 아이의 손에 무언가 쥐여주는것이였다. 아이는 기뻐서 어쩔줄을 모르면서 엄마한테 달려갔다. 그 엄마도 아이가 내민것을 받는 순간 깜작 놀랐다. 글쎄 아이의 손에 동전 두 잎이 쥐여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엄마가 거지한테 말하였다. 그러자 거지가 말하였다. 동전 한 잎도 몹시 아쉬운 그였지만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해맑은 어린아이 앞에서는 어른이고 싶었던 거지이다. 이로부터 어릴 때 로인들에게서 전해들은 “담치기”미담이 떠오른다. 먼 옛날에도 우리 겨레들은 해마다 초봄부터 앞만 보고 일에 쫓기다나니 세밑이 되여야 비로소 한 해를 돌아보고 이웃도 살펴보는 여유를 갖게 되였다. 그때면 동네 어르신들은 아이들을 시켜 풍물을 치며 집집이 돌아다니게 한다. 그러면 집집마다 나름대로 쌀자루를 풀어내주는데 이를 모아 로인만 사는 집이나 중병에 시달리는 집안, 가난한 집들을 돌아다니면서 담너머로 곡식자루를 던져주고 간다. 누가 이런 곡식자루를 주고 갔는지 알지 못하였다. 알아도 모른체하였다. 가난한 이웃들이 추운 겨울과 설명절에 배를 곯지 않게 보살피는 이웃정이였다. 이로부터 시간이 지난후 그젯날 가난했던 이웃들도 도움을 받아 춰서게 되였다. 그러면 그네들도 그젯날 이웃들이 했던것처럼 가난하거나 곤경에 처한 이웃들에게 그 은혜를 배로 갚았다고 한다. 우리 민족에게는  이처럼 재래로 전해 내려 온 곤경에 처한 누군가를 도우면 즐거움도 배가 된다는 소박하지만 철리가 깊은 아주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이 많고도 많다. 일전에 이름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는 한 자선가가 거금을 해당 부문에 전하여 대학입학생중 빈곤한 학생들을 부조해줄것을 바랐다는 소식이 매체에 실렸다. 청화대학 입학생을 비롯한 대학입학생 다섯명이 등록자금을 해결하는데 큰 보탬이 된것이다. 물론 자선가는 이름도 주소도 밝히지 않고 흔연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불우이웃돕기활동이 수시로 펼쳐지고있다.  회사에서, 단위에서, 기관에서, 무릇 집단이 형성된 그런 곳이면 당연지사로 여겨지고있다. 얼마 입지도 않은 새옷을 내여놓거나 넉넉치 못한 살림에서도 수백원이나 의연하는 아름다운 선행을 수시로 보게 된다. 이렇게 모여진 물자나 성금은 그자리로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전달된다. 참여자들의 진심이 푹 배이고 받는이들도 소박한 기쁨을 느끼는 이런 값진 자선활동은 언제나 광범한 호응을 받는다. 자고로 “베푸는자는 받는자보다 복하다”는 격언이 전통미덕으로 전해내려왔다. 무릇 베푼다고 하면 우선 남을 위하여 그 무엇을 하였다는 즉 다시 말하면 곤경에 처하였거나 원조를 갈망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었다는데서 오는 만족감에 자기도취되기에 자기절로 즐거움을 금치 못한다는 얘기다. 받은자는 물론이고 베푼자도 그 순간 한갈래의 따사로운 감정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름을 감지하게 되는것이다. 이웃간에 서로 물건이나 돈으로 도와주고 자기 힘을 보태면서 어려움을 풀어주고 종이장도 맞들면 가볍다고 하면서 조그마한 편리라도 도모해주는것은 전통적인 거의 본능에 가까운 아름다운 거동이였다. 물론 이는 선행의 일종이지만 오늘날 우리들이 널리 일반화하고있는 자선사업과는 많이 다르다. 오늘날의 자선은 서로 모르지만 조직적인 활동을 통하여 그 무슨 바람도 없이 체계적으로 소리없이 펼쳐지는것이다. 우리는 자선사업을 펼치면서 선량함을 보이고 덕을 쌓으라고 선전하면 흔히 그 무슨 거창한 일을 펼치고 남 보기에도 감복할만큼한 거동을 보이는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인데 실제는 자그마한 일들이 큰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다. 사소한 일, 자그마한 거동에서도 그 마음을 읽을수 있으면 되는것이다. 우리 여러 신문들에는 수시로  불우이웃을 돕거나 빈곤학생을 위해 의연한다든가 혹은 무료봉사활동을 펼치는 감동적인 기사가 실린다. 그 형식도 다양하여 대부분 심금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다. 사랑은 꽃과 같이 아름답고 보석같이 고귀하다고 시인들은 읊조린다. 이런 사랑은 받는 사랑인것이 아니라 주는 사랑이다. 참된 사랑은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것이며 준다는것은 언제나 헌신과 희생을 동반한다. 연변일보 
78    정음정보기술 표준화 이대로 괜찮을가 댓글:  조회:2320  추천:0  2018-12-11
민족언어문자 정보문화공동체 안에서 언어문자정보 기술표준 제정이 선행되여야 하며 이는 필수적이다. 정보기술 표준화가 미비한 문자는 소실되거나 침체되여 글로벌화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동북아지역의 조선어/한글(이하 정음이라 표기함)의 정보기술 표준화 상황을 살펴 보면 심히 우려된다. 중국조선어정보학회 현룡운 회장은 《정음은 위대하지만 국제 정음정보기술 표준은 아주 뒤처져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고 직설적으로 지적하였다. 언어문자 정보처리 기술표준의 표준과 정의란 언어문자 정보처리 범위 안에서 교류, 교역, 교환의 편의, 안전, 효률을 위해서 당사자들이 자발적 합의나 국가적 의지에 의해 지키기로 약속한 지침이나 규정을 말한다. 기술표준의 국가별 정책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합의의 정당성을 검증하면서 기술인정기관의 승인절차와 최적의 표준질서 확립, 공통중복사용에 취지를 두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정, 보정을 하기도 하고 도태, 페지되기도 하는 교역, 거래 시장과도 관계가 많은 분야라는 것이다. 현룡운 회장에 따르면 오늘날 조선반도(일명 한반도)의 남과 북 그리고 중국조선족은 같은 하나의 언어문자권이지만 아직도 통합검색 엔징마저 없다. 한국의 나 ,  조선의 같은 통합검색사이트 역시 모두가 자기 울타리 안의 우물 같은 존재로서 국제화 서비스에는 적용 못되고 있는 것이다. 당면 여러가지 과학기술용어사전과 언어문자사전도 각기 제나름으로 출판되여 기계번역이나 국제공용번역에서도 참고하기가 난감한 상태이다. 국제표준이 남, 북 대결과 우렬(優劣)주의에 의하여 좌우되고 있다. 지어는 정보기술표준자료의 교류자체를 거리끼는 한심한 일도 있다. 정보기술 국제표준 통일이 통일비용을 절감하는 지름길(捷境)이지만 표준공동체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후발 중국 조선어 정보기술 표준제정 기회는 국제화 산업화의 지름길인데 이를 외면하고 있다. 앞으로도 국제상 언어문자규범모순과 언어문자 정보기술 표준의 충돌과 격차가  부단히 발생하고 증가될 것임은 십분 자명하다. 나라별 언어정책이 점차적으로 세계의 중요한 공용정책으로 발전될 것으로 전망한다. 따라서 접경언어와 과경언어의 규범화, 표준화 분야에서 은 여러 국가별 기술표준의 경쟁적 제정으로 새로운 국제기술 표준화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정음의 지금 상태는 중국의 GB/한국의 KS/조선의 국규/국제표준 ISO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자모건반배렬, 용어, 자모순서, 문자부호집 등 분야가 서로가 다 부동한 체계이다. 정음>은 정치, 군사적, 력사적 원인으로 국제 언어규범 모순과 언어문자 정보기술 표준이 충돌이 심한  심각한 언어문자로 되였다. 동북아지역 정보기술 고속도로에서 상호련계-상호소통-정보통-언어통(互联—互通—信息通—语言通)문제가 원활히 해결되여야 하지만 아직도 인터넷(互联网)가상공간에서 중국, 조선, 한국간의 정음 정보기술표준이 다름으로 인하여 심지어 서로 다른 입력 장치에 다른 부호집을 사용하고 달리한 사전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의 국가적 의지는 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동북아지역은 언어규범과 표준기술의 교류협력 장벽이 높다. 언어문자 정보기술 표준 발전정도가 정보화의 발전수준을 결정하며 단순 표준화, 규범화 령역과 다른 교차학문(交叉学科)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언어문자 정보처리 핵심기술이 가지는 특점으로 된 것이다. 정음은 중국, 조선, 한국 등 동북아지역의 정부, 기업, 사회기구와 가정, 개인 등을 상대하여 언어문자서비스를 하는 도구이다. 동류 언어문자는 반드시 국가별 언어기획(规划), 자문(咨询), 교육(教育), 번역(翻译), 정보기술지원(信息技术支撑) 등 상태에 대한 상시적 교류가 필수적이다. 중국은 인터넷 가입자만 8억이 넘는 거대시장이다. 중국조선족은 해외 70여만, 국내에서 40~50만명이 북경, 광동, 상해, 청도, 의오, 심수 등 새로운 집거지를 형성하였다. 그래서 반드시 네트웨크화 해야 하는데 정음(正音)이 그 무기이고 그 도구이다. 바로 이런 국제적 대환경 속에서 이  21세기 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딩 컴퓨팅+ 령역에 진입 못하면 하나의 세계적인 산업문자로서 위상이 추락된다. 동북아지역에서 정음은 이미 일부 나라와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문자이며 우리 모두한테는 력사가 우리한테 조성하여준 언어문자 소통, 지역의 자원과 도구로서 가장 자호감을 가지게 되는 우세이다. 동시에 이는 급속발전의 천연조건이며 우리 중국조선족이 중화민족의 대가정에서 그 일원으로서의 독특한 우세인 것이다. 따라서 이 우세를 충분히 발휘하여 다종 언어문자정보 기술표준화의 격차를 해소하는 과제가 절박한 시점이다. 연변일보 
77    미수 졸수 백수 댓글:  조회:2444  추천:0  2018-08-30
미수, 요약하여 설명하면 인간의 나이 88세를 일컫는 말로서 흔히 쓰는 일본식 조어(造語) 가운데 하나이다.  일본인들은 장수에 관심이 많아 66세의 경우에는 ‘아름다울 미(美)’를 써서 미수(美壽), 77세의 경우에는 ‘기쁠 희(喜)’를 써서 희수(喜壽), 99세의 경우에는 ‘흰 백(白)’을 써서 백수(白壽) 등으로 표기하는데 이들은 모두 초서(草書)와 파자(破字)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나이를 일컫는 한자용어는 10대  충년(沖年), 15세가 지학(志學), 20세가 약관(弱冠), 30세가 이립(而立),  40세가 불혹(不惑),  50세가 지천명(知天命),  60세가 이순(耳順), 70세가 고희(古稀) 혹은 종심(從心),  77세가 희수(喜壽),  88세가 미수(米壽), 99세가 백수(白壽), 100세가 상수(上壽), 그 후는 기원지수(期願之壽)로 더 부르지 않았다. 우리 민족은 항간에서 그냥 88세가 미수(米壽), 90세가 졸수 (卒壽), 99세가 백수(白壽), 100세가 상수(上壽), 그 후는 기원지수(期願之壽)로 더 부르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병건강장수를 기원하는 의미, 그것만은 만천하가 동일한 것인가보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의학의 눈부신 발전의 혜택으로 80세, 90세 100세라는 희망이 인제는 현실로 되고있는 것이다. 그제날 사람들은 누려보지 못한 건강과 장수를 향수할 수 있게 되였다. 로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로령인구는 늘어나고 늙은이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 긴 삶을 살 수 있게 된것이다. 자신의 야망을 실천해가는 젊은 시절, 왕성한 의욕으로 일을 하면서 리상을 현실화해가고 있는 장년 시절은 예전에 비해 크게 늘어난것이 없다. 하지만 그에 반해 늘그막의 삶은 배로 늘어났다. 현대인간의 늘어난 삶의 대부분은 늘그막삶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론이다. 이처럼 늘어난 삶을 한결 윤택지게 하고 참뜻을 부여하면서 질적으로 풍요로운 늘그막삶을 영위하자면 물론 여러가지 여건이 충족되게 마련되여야 함은 필수적이다. 자고로 ‘준비된 장수는 향락이지만 준비없는 장수는 불행이 다반사’라고 하였던가. 자식과 배우자를 포함한 타인에게 페를 끼치지 않고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아름답게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축복받을 만하다. 헌데 이런 준비할 여건중에서도 물론 가장 중요한 조건이 바로 건강과 체력 그리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기조건에 못지 않은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정신적 건강이다. 늙은이는 늙은이 다워야 한다. 그러자면 늘그막의 마음가짐이 특히 중요하다. 늙은이로서의 정신적 수양이 뒤받침되지 않는다면 세속적인 욕망에 찌든 삶을 살게 될 것인바 그러면 타인들로부터 존경은커녕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조선조 중기 평생 학문연구에 집념한 대학자 여헌 장현광(1554년-1637년) 선생은 이란 글에서 ‘언어를 그치고 경영을 끊고 마음을 크게 비우고 사시에 맡겨야 한다.’고 하였다. 이 뜻을 풀이하면 늘그막에는 다른 사람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고 잡스러운 일을 줄여 심신을 피곤하게 하지 말고 마음을 비워 잡념을 끊고 자신의 삶을 천지자연의 리치에 맡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름답게 곱게 늙어가기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늙은이들은 “곱게 늙어간다.”는 말과 정반대로 가고 있어서 눈살이 찌프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건강한 체구를 련마하고 병치레 없는 삶을 영위하려는 그 뜻은 리해하지만 혹자는 무작정 자기만 좋으면 된다는 식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연길시 부르하통하와 연집강이 합치는 합수목, 연홍교부근에서 늙은이행렬에 갓 가입해보이는 로인 한분이 확성기를 잔뜩 높이고서 노래련습을 하고 있었다.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소리는 온 강 량안에 쩌렁쩌렁 울려펴져 소음이 따로 없었다. 물어보니 노래련습하면서 신체단련을 하는 겸 TV에서 조직하는 경연참가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시민들이 조용조용하면서 제나름으로 자기에게 알맞게 자기심신을 련마하는 마당에서 유아독존이였다. 보다 못해 몇번 말렸지만 마이동풍격이였다. 결국 얼마 후 젊은이들의 괄시를 받으면서 ‘쫓겨’가고 말았다. “멋 있는 늙은이는 늙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다. 보통 ‘멋’ 하면 젊은이들의 점유물로 오인하기 십상이다. 실상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로인들이 공중장소에서 진정 ‘로인답게’, ‘어른스럽게’ 처사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 그 멋스러움은 그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돋보인다. 그런 멋 가운데의 중요한 내포의 하나가 바로 “공중장소에서 타인에게 페되는 행위를 하지 말자”, “매사에서 항상 어른스럽게 처사하자”는 등등이다. 로인들의 이런 멋스러움은 기대 이상으로 사회의 귀중한 정신적 재부로 남는 것이다. 연변일보 2018.8.29
76    홍과 송 댓글:  조회:2223  추천:0  2018-08-06
연변일보 6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연변 장흥잣나무재배기지유한회사와 응암촌 대상 협력가동식이 룡정시 로투구진 응암촌에서 개최됐다. 연변장흥잣나무재배기지유한회사는 ‘기업+기지+농호’ 모식으로 응암촌에 40헥타르에 달하는 잣나무를 재배해 빈곤해탈 난관공략에 일조하고 있다. 상기회사가 자주적으로 개발한 장흥잣나무 일명 홍과송은 접목품종, 수년간의 개발을 거쳐 성공적으로 열매를 맺었다. 잣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20, 30메터 높이로 미끈하게 자란 아름드리 홍송을 떠올리고 대량의 지방유와 단백질이 함유되여 입에 넣으면 고소한 잣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짧아서 18년 길어서 20년 이상을 자라야 잣이 달리고 또 잣을 따는 데 대량의 인력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많은 림산작업소나 농호들에서는 수요량이 많고 경제수익주가 보다 짧은 이깔나무나 백양나무를 심을지언정 잣나무를 선뜻 심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페경육림정책으로 림지가 되는 페경지에 잣나무를 심으면 국가에서 보조금을 발급하면서 고무하는 형편이다. 그런데 홍과송은 생장기간과 결과기간을 대대적으로 단축시키는 새로운 품종으로 잣나무연구계를 놀래우면서 잣나무재배가 남다른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런 잣나무는 일반 잣나무에 비해 잣송이가 빨리 달리고 3년 좌우면 열매가 맺혀 수익이 빠르고 재배가치가 높다. 일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기적의 창조자가 바로 상기회사의 리사장 라동도이다. 라동도는 40여년 전 로수하림업국중학교를 다닐 때 동학들과 함께 집체로 묘포장에 가서 묘목에 가접하는 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당시 늙은 홍송의 가지를 어린 묘목에 가접하는 일이였는데 참으로 재미있었다. 하지만 14세 어린 나이였던 그에게 리해되지 않는 것이 많았다. 다 같은 홍송인데 왜 가접하며, 가접하면 어떤 좋은 점이 있는가 하는 것이였다. 묘포장기술원은  그에게 잣이 많이 달리는 늙은 홍송가지를 3년생 묘목에 가접하면 생장기를 단축하고 생산량을 제고할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그 후 그가 다시 묘목에 손대기 시작한 것이 12년 전 일이다. 그는 대량의 연구서적을 탐독하고 모아산을 비롯한 주변의 산들을 다니면서 산에 자생하는 묘목에 무려 수천번에 달하는  가접실험을 하였다. 령지, 상황과 같은 야생버섯을 경영하는 그는 늘 산에 다닐 때가 많았고 항상 전지가위를 몸에 지니고 다녔다. 대흥안령과 소흥안령, 장백산과 같은 유명산은 물론 이름없는 산간벽지에도 그의 발길은 닿아있었다. 어느 한번 대흥안령에서 가접한 묘목을 수분하시의 어느 산허리에 심은 적이 있다. 이듬해 가접부위 비닐을 풀려고 가보니 몰라보게 커 있었다. 거기에 일년 자란 나무가 화분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해마다 그곳을 찾아 동품종의 묘목을 심고 관찰하였는데 이듬해에는 잣송이가 달리고 3년철에는 한메터가량 높이로 자란 나무에서 한근 되는 두송이의 잣을 딸 수가 있었다. 지금 그곳에는 해마다 50여송이 달리는 높이 3메터 반가량 되는 8년생 잣나무 한그루와 30여송이 달리는 7년생 잣나무, 10여송이 달리는 6년생 잣나무 수십그루 있다. 6년생이라야 2메터가량 되다보니 보통키의 사람이 선자리에서 잣을 딸 수가 있다고 한다. 이 품종에 붙인 이름이 바로 홍과송이다. 라동도의 첫번째 장거가 홍과송의 성공적 배육이였다면 그의 두번째 장거는 바로 보급일 것이다.  만약 창조만 있고 보급이 없다면 그리고 현실적인 생산력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이는 죽은 거나 다름 없고 하나의 꿈에 불과하다. 라동도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라동도는 어떻게 하면 홍과송을 보급하여 인류에게 복을 주는 결과물로 되게 하겠는가에 골몰하였다. 그는 대흥안령지역에 첫 육모기지를 세웠다. 연변지역보다 기후조건이 더 악렬한 흑룡강성에 묘목재배기지를 두었기에 이 회사에서 생산한 묘목은 연변에 옮긴 후 동해를 보는 일이 전혀 없고 생명력이 왕성하다. 혹한을 이겨내면서 시련을 거친 애목들을 지난해에는 정식으로 안도현, 룡정시, 연길시, 화룡시의 4.5헥타르 면적에 4500주를 옮겨 심었다 그리고 실천을 통하여 벌써 다른 잣나무에 비해 한두뼘씩 더 자랐음을 증명하였다. 올해에는 50만주를 연변지역에 심기로 계획하였는데 그 재배면적은 500헥타르에 달한다. 그에 따르면 “지난 4월 초부터 계약을 체결한 후 묘목을 배달해주고 있는데 이미 300여헥타르 면적의 식수를 마친 상태이다. 지금도 계약주문이 비발치고 있다. 라동도의 세번째 장거는 바로 장흥잣나무회사라는 이 기업을 통하여 ‘기업+기지+농호’ 모식을 도입,  응암촌 농호들과의 협력 재배 모식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을 농호들에 배당금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농호들은 페경육림정책에 호응함과 동시에 잣송이 수익 주기를 단축할 수 있어 수입증대 통로를 더한층 확장할 수 있게 됐다. 이 회사에서는 재배호들의 어려운 사정과 여러가지 우려를 해소하고 또 그들의 리익을 담보하기 위하여 나무에 잣이 달린 후 종합적으로 수매하며 합당하게 리윤을 배분하는 조건으로 모든 묘목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무료로 재배호들을 찾아다니면서 기술지도를 하고 있다. 연변장흥홍과송재배기지유한회사는 2017년에 정식으로 설립되였으며 홍과송묘목 재배와 보급 및 잣 심가공을 일체화한 현대농업산업체이다. 회사는 과학적인 육종, 육모, 재배, 시비 기술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재배모식을 타파하고 이미 생태화, 표준화, 규모화 육모중심을 건설하였다. 장흥회사는 5월 15일까지 연길, 안도, 화룡, 도문, 룡정 등 5개 현시에 300여헥타르 면적의 합작재배기지에 홍과송을 심었고 앞으로 해마다 500~800헥타르의 면적에 추가보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응암촌촌민위원회로부터 명예 촌주임으로 위촉된 장흥회사 라동도 리사장은 “역경은 수험생이 없는 대학으로 그것을 헤쳐나온 사람은 모두가 강자다.”고 하면서 회사 전체 직원들과 응암촌 촌민들과 함께 응암촌을 물 맑고 산이 푸르며 잣관광을 포함한 과학보급, 잣문화개발, 양생보건 등 산업이 일체화된 세외도원으로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과송, 이미 힘차게 고고성을 울리고 전면 보급의 새로운 장을 펼쳐가고 있는 이 새로운 품종의 잣나무가 연변의 사과배처럼 조국의 산야에서 기적으로 기록되는 장미빛 래일이 밝기만 하다! 연변일보
75    대필고금담 댓글:  조회:2080  추천:2  2018-06-07
오늘날 인간세상이 발전할수록 사회와 경제 제반업종도 세분화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가 보다. 그제날에는 ‘36업종에 업종마다 장원이 나온다(三十六行, 行行出状元)’는 격언을 흔히 썼는데 지금은 36만, 360만인 것이 아니라 3600만도 더 되는 것 같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요즘 잘 나가는 대필업을 보더라도 그렇다.   대필, 말그대로 남을 대신하여 글씨나 글을 써준다는 얘기다. 대필이 언제 이 세상에 생겼는지는 고증을 거치지 않아서 모르지만 고금중외 인간세상에서 그 어느 때 그 어디서나 존재하였고 지금도 존재할 뿐만 아니라 갈수록 더 흥성해지는 업종으로 되고 있는 것 만은 사실이다.   대필은 재래로 정상적인 현상으로 치부되였다. 그러니 수치스러운 행위는 더욱 아닐 것이다. 무릇 누가 위탁하고 위탁을 받은 그 누가 대신 써 준다면 지적재산권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고전에서도 보아왔겠지만 먼 옛날 농부를 포함한 밑바닥인생을 사는 무식쟁이 백성들은 글 쓸 일이 있으면 자연히 동네나 이웃의 수재 혹은 글깨나 읽은 타인에게 청탁하기 마련이였다. 이런 글은 본인들의 요구에 따라 받아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글을 윤택이 나게 잘 쓰면 금상첨화라 더욱 좋기 마련이다. 멀리 말고라도 지난 세기 60년대말 본인도 농촌에 귀향하였을 때 가방끈이 짜른 일부 촌민들을 위하여 편지나 기타 글을 대필하여 준 적이 적지 않다. 그때는 교통이나 통신이 몹시 락후하였기에 편지가 가장 편리하고 믿음직한 소통수단이였다. 그래서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생겼다. 특히 젊은이들이 련애를 하거나 처음 혼사말이 들어오면 주요한 교제방식이 편지였다. 련인에게 편지를 쓸 때면 글깨나 잘 쓰는 친구한테 부탁하여 련애편지를 쓰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남자들의 꿀발린 달콤한 미사려구에 처녀들이 넘어가서 성사된 혼사가 얼마나 많았던가. 새 각시가 신랑의 진면모를 알았을 때는 이미 죽이 다된 때였었다. 물론 당시에는 녀자가 시집문턱을 넘어서면 무조건 남편과 백년해로하는 것이 법이였으니깐 말이다.   인류의 사책을 뒤져보면 먼 옛날부터 황제나 관직에 높직이 앉아있는 관료들은 어려서부터 천자문을 암기하여 글을 알면서도 종래로 자기가 직접 글을 쓰지 않았다.황제가 내리는 조서는 어사가 모두 대필하였다. 그리고 관료들은 전문일군이 그들의 의사에 맞추어 써주면 그만이였다. 이런 관습이 전해져서일가. 지금도 괜찮은 관직에 높직이 앉아있는 관료들이 자기가 연설고나 기타 조사보고를 직접 쓰는 것이 흔치 않다. 있어도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은 십분 자명하다. 일부 책임있는 간부들은 자기가 직접 써야 할 자료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이런 간부들이 사업이 바쁘거나 당시 상황으로 직접 쓰지 못할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대필도 할 것이 있고 하지 말거나 지어 배격할 것도 있다는것이다. 이를테면 얼마 전에 한 거액을 탐오하고 회뢰한 큼직한 호랑이급부패분자가 당적과 공직을 모두 떼우고 쇠고랑이를 찼는데 그가 한때 ‘학습전형’으로 명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헌데 후에 들통이 난 것이지만 그의 학습필기와 심득문장이 모두 비서가 써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 기관의 모 부문에서는 거의 모든 주요간부들이 사회상의 전문일군을 고용하여 학습필기를 통일적으로 씌운 일도 사업작풍정돈 가운데서 폭로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사회상에서 ‘대필전문호’까지 출현하였겠는가?   얼마 전 인민일보 1면 코너에서 한 지역의 ‘두가지 학습, 합격된 당원 되기’학습교양을 할 때 생긴 일을 폭로하였다. 그에 따르면 한 단위의 기층지도부 성원들에게 반드시 10개 면에 맞춰 문제목록을 정리하고 또한 매개 면에서 적어도 3개조목의 구체문제를 파낼 것을 요구했다. 이에 질적으로 수행한 간부들도 있지만 일부 간부들은 수량표준에 도달하기 위해 머리를 짜고 온갖 신경을 다쓰며 심지어 허구로 주어맞추기도 했다는 것이다. 연후에 자기들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타인이 대피한 걸 해당 부문에 교부하였는데 그것이 들통이 나서 집단경고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정부기관의 바르지 못한 작풍의 구체표현이기도 하다.   대필문제는 문풍문제의 하나이지만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우리 당은 력대로 문풍은 작풍을 구현하고 당기풍을 반영하기에 반드시 깊은 중시를 돌려야 한다고 인정해왔다. 18차 당대회 후 당중앙은 문풍개진을 작풍건설의 중요내용에 넣었는데 중앙 8가지 규정에서 문풍개진이 바로 그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바르지 못한 대필 풍조는 반드시 엄숙하게 대해야 할 것이다. 연변일보 2018.6.6
74    청춘도 아프다 댓글:  조회:2661  추천:0  2018-05-10
5.4청년절이 지난 지 며칠 된다. 올해는 99돐, 래년이면 100돐이 된다. 그래서 올해는 래년의 성대한 행사를 위하여 여론 조성, 분위기 띄우기 하는 의미에서도 그 어느 해보다 행사들이 많고 내포도 무게가 있었다. 청춘, 젊은 시절은 언제나 희망과 밝음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모택동 주석께서도 당시 청년들과 대화하면서 “당신들은 아침 8,9시경의 태양과도 같다.”고 고무격려하여주었던 것이다. 오늘날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한 만큼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당신의 인생시계도 그만큼 여유로워질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청년들에 대한 또 다른 셈법이 등장하였다. 시대가 발전함과 더불어 그에 걸맞게 청년이라는 외연도 그제날에는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확대되였다. 청년이라는 년령에 대하여 공청단에서는 28세 이하라고 하는데 국가통계국에서는 34세 이하로, 유엔에서는 45세 이하로, 세계위생기구는 65세 이하를 청년이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처럼 어쨌든 많이 늘어난 것만은 사실이다. 이처럼 청춘, 젊은이들의 앞날은 창창하고 찬연하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나 모두 장미빛인 것만은 아니다. 누구나 진통과 곤혹 속에서 이 시기, 이 인생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가장 우선적인 것이 바로 어떤 인생의 길을 찾아 어떻게 개척해나가느냐 하는 인생과제가 놓여있다. 이 과정은 모순과 갈등, 고통과 아픔, 수없는 시행착오와 좌절로 점철되기가 일쑤이다. 젊은이들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자라고 성숙된다. 인생의 목표를 정하였다면 그 목적에 도달하는 그 과정이 처절하고 장엄한 것이다. 그래서 청춘도 아프다! 인간은 한생의 인생행로에서 기필코 자기 나름 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기 마련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여 어떻게 걸어가느냐에 따라 그 인간의 인생에는 판이한 결말이 생기게 됨은 십분 자명하다. 이를테면 이 순간 당신 앞에 두갈래의 길이 펼쳐졌다고 하자. 하나는 평탄한 길, 이미 타인이 개척해놓은 비교적 안정된 길이다. 하다면 다른 하나는 한치 앞도 예측키 어려운 험난한 길, 그 누구도 가본 적이 없은 미지의 길이다. 어느 길을 선택할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탄한 길을 선택할 것이다. 헌데 인간세상에서 성공한 명인, 인생의 커다란 족적을 남긴 현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인생 철학을 후대들에게 이렇게 전수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한 길이라면 당신은 망설일 필요 없이 그 길을 포기해야만 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두번째 길을 가거나 또 다른 세번째 길을 갈 수 있다면 당신은 크게 성공할 것이다.”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는 큰돈을 벌던 담배사업을 포기하고 새로운 인생항로를 찾음으로써 세계 해운업계의 거물이 되였다. 1922년 난민신분으로 그리스에 들어 온 오나시스는 돈 한푼도 없는 거지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하루 16시간씩 일하고 야근까지 하면서 고달픈 창업을 하였다. 오나시스는 한푼돈도 헛쓰지 않고 그 돈으로 담배사업을 펼쳐 성공, 큰돈을 모았다. 오나시스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였다. 당시 카나다의 국영기업이 자금난에 모대기면서 6척의 화물선을 내놓았고 오나시스는 그 배를 몽땅 사들여 해운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해운사업은 대단한 불경기상태라 그의 행동을 무모하다고 비난하였다. 얼마 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전쟁이 치렬해지면서 해운사업도 재빨리 회복되여 오나시스의 투자가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그의 6척의 배는 하나의 황금광산마냥 벌이가 대폭 확장되여 일약 그리스의 선박왕이 되였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해운사업이 다시 기로에 들어서자 오나시스는 과감하게 유조선에 투자하였다. 2차대전 전에는 그의 유조선 총적재량은 1만톤에 불과하였지만 1975년에는 이미 유조선 45척을 가진 거대한 해운대왕이 되였다. 그의 유조선중 15척은 적재량이 20만톤을 넘는 초대형 유조선이였다. 진정으로 큰 사업을 펼치고 성공하려면 단순 용기로만은 부족하다. 남다른 혜안이 있어야 하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대담하게 개척하는 그런 개척정신이 있어야 한다. “광범한 청년들은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생력군으로 되여 국가와 민족의 희망을 짊어져야 한다.” 일전에 5.4청년절 99돐과 북경대학 개교 120돐 경축일에 즈음하여 중공중앙 총서기 습근평이 북경대학을 고찰하면서 청년들에게 이렇게 호소하였다. 습근평 총서기의 호소는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나아갈 길, 그네들이 짊어진 력사적 과업을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 “원대한 리상과 사회를 위한 기여, 인민을 위한 봉사를 결합시켜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불꽃 튀는 실천 속에 융합시키고 연변의 개혁, 발전을 추진하는 가운데서 리상과 포부를 실현하고 인생의 가치를 빛내며 청년의 힘을 보여주자.” 공청단연변주위에서도 이번 5.4청년절을 맞으면서 ‘전 주 단원 청년들에게 보내는 발기문’을 내여 이렇게 호소하였다. 젊은이들이여 청춘도 아프다. 그래서 더더욱 분발해야 한다! 연변일보 
73    종이신문의 매력 댓글:  조회:3711  추천:0  2018-04-03
“종이신문은 오라지 않아 없어 질것이다. 사회발전의 추세를 보면 10년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 지난 세기 90년대말부터 학계에서 여론이 되고 한때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미 20여년이 지났지만 의연히 존재하고 있다. 비록 독자층이 많이 줄고 사용가치도 퍼그나 떨어졌지만 그래도 아직도 상당한 독자군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일정한 매력과 흡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실상 종이신문은 이 세상에 군림해서부터 이미 상당한 매력을 과시했다. 프랑스의 저명한 화가 폴 세잔은 자기가 명인이 될 수 있은 것은 신문을 보면서 자양분을 섭취한 것과 갈라놓을 수 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회고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은행가였다. 아버지는 아들이 법률가가 됐으면 했다고 한다. 세잔은 아버지 뜻을 따라 법대에 갔지만 화가의 꿈을 접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못마땅했다. 1866년 스물일곱 살 세잔이 그린 아버지는 소설가 에밀 졸라가 인상파를 옹호하는 칼럼을 싣던 일간지 《레벤망》을 읽고 있다. 세잔은 육친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신문은 세잔과 아버지를 이어주는 끈이였다.   과거 신문애독자 모임은 항상 인기적이였다. 발언자들은 흔히 자기들의 신문의 매력에 대한 경험담이 가득하다. 특히 한 애독자가 쓴 글이 인상적이였다. 그의 문장은 이렇게 씌여져있다. "신문은 잘 차려진 밥상이라고 한다. 며칠 전 신문을 꼼꼼히 뒤지다 '밥상'을 발견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면은 밥과 김치, 된장찌개다. 특집은 특별메뉴 연변소갈비찜, 기획은 계절나물 무침과 장아찌, 어린이 지면은 메추리알 조림 같다. 밥상만 받고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으면 소용없다." 애독자의 생생한 비유가 미소를 머금게 한다.   얼마 전에 중앙일간지의 한 특약론평원이 쓴 칼럼이 가 화제이다. 그는 두달간 스마트폰 뉴스 앱을 껐다. 대신 광명일보, 북경일보 등 수도권의 주요한 일간지 신문 3종과 주간지 하나만 집에서 읽었다. 쉴 새 없이 긴급속보를 알리던 스마트폰을 끄고 나니 괴물에서 해방된 것 같은 느낌이였다. 두달간 그는 책을 여러권 읽었고 도예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더 나은 남편과 아버지가 됐다고 썼다.   그 특약론평원은 종이신문 읽기는 외롭지만 뉴스와 직접 만나는 기회라고 했다. 스마트폰에서 쏟아내는 부정확한 정보 대신, '진짜 뉴스'만 가려 전달해주는 게 종이신문의 미덕이라고도 했다. "수백명의 전문가가 나를 대신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해서 집까지 배달해준다."   부부가 침대에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뉴스중독' 시대이다. 대화는 사라지고 불필요한 정보는 넘쳐난다. 종이신문에는 정확하고 깊이 있는 뉴스를 싣기 위해 취재부터 배달까지 사람 손을 거친 정성과 온기가 배여있다. 종이신문만 줄 수 있는 별미인 것이다.   하다면 인터넷신문과 종이신문, 당신은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실상 두가지 종류의 신문은 제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당연히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겠지만 정보습득이 중요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자신에게 맞는 신문을 선택하는 것은 꽤 중요한 문제이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정보를 접할 지 고민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신문의 특징과 장점을 분석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종이신문에 대한 애독자들의 평가는 이렇다. 종이신문은 말 그대로 종이에 인쇄되여 제작되는 신문을 말한다. 종이신문 산업은 19세기 전신기술과 철도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속적으로 발달하는 인쇄술도 종이신문 산업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라지오와 텔레비죤 등 새로운 매체들이 등장하면서 종이신문의 위상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인터넷신문의 등장은 종이신문에 있어서는 치명적이였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종이신문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종이신문만이 가진 매력 때문이다.   우선 종이신문은 다양한 정보를 한번에 습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신문의 경우 카테고리별로 들어가서 뉴스를 봐야 한다. 그러나 종이신문은 여러가지 내용이 커다란 종이우에 새겨진 ‘정보시장’과도 같다. 물론 섹션 별로 나뉘여져있긴 하지만 헤드라인만 보고 뉴스내용을 짐작해야 하는 인터넷신문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종이에 직접 인쇄되여있어서 내용에 집중하기가 쉽다. 사실, 모니터로 보는 뉴스는 쉽게 집중이 되지 않는다. 스크롤바를 내려가다보면 앞의 내용을 금세 잊어버리기도 하고 눈이 쉽게 피로해져 머리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헌데 종이신문은 밑줄을 그으며 읽거나 스크랩하는 맛도 있다. 굳이 인터넷신문을 인쇄해서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종이신문은 중요한 부분을 표시하거나 자기에게 필요한 부분을 오려서 스크랩할 수도 있으니 활용도가 높다.   인터넷신문에서 흔히 보이는 배너 광고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인터넷신문을 읽다보면 광고 팝업창이 떠서 방해가 되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종이신문은 광고용 페지가 할당되여있어 방해받지 않고 기사를 읽을 수 있다.   게다가 종이신문은 즉물적(대상을 있는 그대로 포착함)인 매체이다. 손에 느껴지는 종이의 감촉은 ‘진짜’ 신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에 한 애독자는 “많은 정보들이 내 손에 직접 들려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똑똑해지는 것 같다.”며 종이신문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로부터 결론적으로 말하면 종이신문도 시대의 발전, 과학기술의 비약과 동반하여 그 어느 날 력사적 종지부를 찍고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지만 아직도 그 매력이 있는한 일정한 력사적 시기에 그 역할을 지속할 것임은 의심할 바 없다. 연변일보  
72    장인정신, 영원한 직업정신 댓글:  조회:2182  추천:0  2018-03-15
일반적으로 두세번 가고 나면 다시 발길을 돌리기 싫은데 그렇지 않은 집이 있다. 바로 연길시 의란진 춘흥촌에 살고 있는 대목장(大木匠) 황호림의 전통가옥 ‘호림석고헌(浩林石古轩)’이다.   록음이 깃든 정원에 고풍스러운 기와집이 백년 묵은 거부기처럼 버티고 있는 ‘호림석고헌(浩林石古轩)’은 매번 갈 때마다 새로운 매력이 있어 느낌이 좋다.   기와집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방들이 있어서 열두칸 기와집이 부럽지 않다. 정주방에 들어서면 놀랍게도 샘물터가 나타난다. 샘물터에는 산에서 에워왔다는 맑은 샘물이 흐르고 있는데 그 샘물에는 금붕어와 민물고기들이 놀고 있다. 샘물터 주변에는 바위돌이 우뚝 서있고 푸르른 넝쿨들이 물가에 드리워졌다. 이 천년바위돌도 뜻이 깊다. 이 바위돌은 뒤산꼭대기에 거연히 솟아있은 것인데 황목장이 동네분들의 도움으로 산정에서 굴려내려온 것이다. 먼저 이 바위돌을 잘 안치한 후 후에 이 바위돌을 중심으로 집을 지은 것이란다.   온돌주변에는 나무조각품,돌조각품.종이공예품들이 즐비하고 또한 옛날 재봉침 등 수많은 골동품을 전시해 민속박물관을 련상케 한다.   앞뜨락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화초가 만발해서 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면 가을까지 꽃이 지지 않는다. 진황도에서 가져왔다는 무궁화꽃도 역시 보기 좋다. 작은 돌다리를 넘어 남쪽뜰안으로 가면 우선 장인의 공방이 나타난다. 그 공방에는 나무조각,석조각,금속조각과 목수,석장,야장에 쓰는 모든 도구가 갖추어져있다. 공방 한쪽에는 황목장이 알심들여 제작한 꽃가마가 시집갈 새각시를 기다린지 오래다. 공방 앞에는 이제 막 불을 지펴도 될듯한 토기가마가 누워있는데 그것을 잘 짓기 위해서 강서성 경덕진의 도공을 초청해 배웠다고 하니 참 놀랍다.   필자가 황목장에게 이러한 재간들을 어떻게 배웠는가 물었다. 황목장은 할아버지가 옛날에 목수,석수,야장을 하면서 많은 기술을 소유했고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그러한 재간들을 물려받아 목장,석장,야장을 하면서 한옥을 짓고 소수레를 메우고 가장집물을 짰다고 한다. 70년대부터 어린 황목장은 아버지의 일손을 도우면서 어깨 너머로 목수,석수,야장 기술을 익혔다. 후날에 황목장은 과수원에서 일하면서 과일나무재배는 물론이고 용접과 선반기술까지 익혀서 다면수 장인으로 자라났다. 황목장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신토불이장인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그렇찮아도 그는 우리 민족 전통가옥 전승인으로서 길림성무형문화재로 등록되기도 하였다.   장인정신이란 바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전념하거나 한가지 기술을 전공하여 그 일에 정통하려고 하는 철저한 직업 정신을 말한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일정한 직업에 전념하거나 한가지 기술을 전공하여 그 일에 정통한 사람을 '장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 민족의 정신 속에 내면화되여 있는 철저한 장인 정신과 직업 륜리의 근본적 표현이다. 즉 ‘장이’는 순수한 우리 말로 전문가를 뜻하는데, 사람이 전력을 다하여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 자기의 최선을 다하는 철저한 장인정신의 소유자를 말한다.   이런 장인정신은 실상 민족이나 종족을 초월하여 전 인류의 공동한 직업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우리 동양에서는 바다 건너 일본인들이 바로 이런 장인정신이 가장 탁월한 민족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일본의 장인정신에 바탕이 된 배경중 가장 신빙성 있는 주장은 도쿠가와시대부터 있던 사무라이 가족형태라고 한다. 일본의 장인정신은 거의 가업을 이어받거나, 가업이 아닐 경우 스승과 제자 사이가 마치 부모와 자식처럼 위계가 확실하게 짜여진 구조를 보인다고 한다. 즉, 장인정신의 기틀은 확고한 가족질서의 확립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관계에서 마치 군대와도 같은 상명하복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초기의 장인정신이란 21세기 지금과 같이 그냥 단순히 어떤 분야의 띄여난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전수해준 가문이나 가장에서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절대적인 충성을 뜻하는 것이였다. 시체말로 까라면 까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가면서 철두철미하게 복종하면서 배우고 터득한 것이 지금의 일본인들의 장인정신의 토대를 이룬 것이다.   우리 중국도 이런 장인정신이 수천수만년을 이어오면서 하나의 숭고한 직업정신을 형성하고 있다. 1800여년전부터 도자기장인들이 창조한 경덕진도자기는 중국을 차이나(CHINA)로 부르게 했던 것이다. 현재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 등 선진국들에는 아직도 ‘백년가게’가 많아 수작업으로 명품브랜드 양복,가방,구두,시계 악기,와인,바비인형 등을 생산하는 것이 바로 그 반증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민족은 많은 장인들의 대가 끊겼다. 그래서 황금개띠해를 맞으면서 새해벽두에 ‘장인축제’와 같은 행사도 펼치면서 장인정신을 고취하면서 길이길이 이어가자는 바램에서 화제에 올렸다. 연변일보 2018.3.14
71    올림픽성화가 주는 계시 댓글:  조회:2466  추천:0  2018-02-08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는 한국 평창동계올림픽이 2월 9일 정식으로 막을 올린다. 이날 평창의 주무대에서 타오르는 올림픽성화는 17일간의 치렬하고 화려한 력사의 장, 화합과 평화의 장을 장식하게 된다. 그리고 5년후인 2022년 2월 4일 북경에서 동계올림픽을 펼쳐지게 된다. 하기에 우리 나라에서는 다음의 주최국답게 방대한 동계올림픽대표단을 구성하여 한국의 평창으로 달려간다. 올림픽성화, 말그대로 신성한 불씨라는 말이다. 그리고 성화봉송, 이는 올림픽대회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자 올림픽의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 전 세계에 령감을 전달하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이벤트다. 성화와 성화봉송의 력사는 이러하다. 그리스 신화에는 프로메테우스와 불에 관한 얘기가 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신들이 갖고 놀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준 데 분노해 프로메테우스를 산꼭대기 바위에 묶어 두고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는 고통을 겪게 한다. 불은 신적인 것이며 신적인 것 덕분에 인간은 동물의 세계에서 벗어난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서도 경기장에 불을 피웠다.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인간에게 선물한 불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였다. 1896년 아테네에서 근대 올림픽이 처음 열렸을 당시엔 성화가 재현되지 않았다. 192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의 제9회 대회에 이르러 성화가 등장했다. 그리고 1936년 제11회 베를린 대회 때 첫 성화 봉송(Olympic Torch Relays)이 시작됐다. 칼 디엠 (제11회 올림픽 조직위원회 부회장) 박사의 구상에 따라 올림피아에서 채화 된 성화를 성화봉에 점화하여 그리스부터 독일까지 운반하였다. 그 이후 올림픽 성화봉송과 성화대 점화는 올림픽 대회의 도래를 알리는 올림픽 의전의 주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되였다. 성화는 고대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 오목 스틸 거울에 태양광선을 비추어 채화한다. 채화된 성화는 고대 그리스 시대를 재현한 항아리에 담겨 고대 올림피아 스타디움으로 운반되며 첫번째 올림픽 성화봉에 점화된다. 성화봉송은 최종 목적지인 개최 도시의 올림픽 경기장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진다. 마지막 성화봉송 주자는 경기장까지 봉송을 이어가며 성화대 점화를 끝으로 성화봉송을 마무리 한다. 경기장 성화대로 옮겨진 성화는 페막식에서 점멸될 때까지 불타오르게 된다. 남녀로소 상관없이 사회 각 분야의 모든 사람들은 성화봉송 주자로 뛸 수 있으며 성화봉송 주자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올림픽의 리상을 구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 명의 주자가 뛰는 거리는 약 200m로 노인이나 장애인 포함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제 이런 동기올림픽이 한국의 평창에서 펼쳐지게 된다. 혹자는 이제 바다건너 한국 평창에서 펼쳐지는 이 동기올림픽은 우리와 거리가 너무 멀어 크게 련관이 없지 않는가고도 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올림픽의 정신, 올림픽의 리념은 바로 우리 신변에 있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올림픽은 페어플레이 정신과 련대감을 목적으로 각국의 선수간에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심신을 향상하고 문화와 국적을 아우르는 차이를 극복하는 화합의 의미를 새기고 있다 인간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척도는 그 사람이 승리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노력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승리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올림픽 운동은 세계에 하나의 리상을 심어주는 일이며, 그 리상은 바로 현실생활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기쁨, 미와 교양, 가정과 사회에 봉사하기 위한 근로 이런 3대 요소로 이루고있다. 2008년 우리 나라 수도 북경에서 펼쳐진 하계 올림픽에서는 지구촌의 204개 국가가 참여했다. 당시의 슬로건은 이며 북경올림픽이 새로운 역사를 여는 신기원이자 전환점(turning point)이라고 선언하였다. 실상 북경 올림픽은 우리 나라의 창조적 령감의 원천이 되였다. ‘새둥지’(鳥巢) 주경기장의 설계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중국전통양식의 창조적인 결합을 읽을수 있었다. 올림픽개막식을 통해서 중국의 전통문화의 재료와 최첨단기법을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가를 전 세계에 알렸다. 북경올림픽의 성공적개최는 우리 나라의 개혁개방 30년의 성과가 실제로 성취된 증거물이자 100년 넘게 지속된 치욕과 굴절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는 대결산이였다. 경제적발전의 기반 위에 조성된 전국민적 자긍심은 중국사회 전역에 산출할 수 없는 무한 긍정의 효과를 낳았다. 2008년말 세계는 전지구적 금융위기로 휘청거렸지만 중국은 여전히 올림픽의 마술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무한효과를 내뿜었다. 중국의 위상은 오늘날 어느새 'G2'로 부상했다. 우리 나라는 이미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더는 서방국가를 더 이상 뒤쫓아가거나 따라 잡으려고 노력하는 시대가 아니라 중국 자체의 리념, 정책, 전략, 실천으로 서방 국가들을 대체하여 지구촌을 이끄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남의 나라에서 올림픽을 개최한다고 해서 절대 강건너 불 보듯 하지 말고 적극적인 참여자의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길림신문 2017.2.7
70    타인의 시간을 훔치지 말자 댓글:  조회:2876  추천:0  2018-01-19
유태인들이 항상 강조하고 자기도 엄격히 지키는 격언중의 하나이다. 유태인들은 줄곧 이처럼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이렇게 하고있다.   그들은 하루 8시간 근무한다면 언제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고방식에 철저히 매료된 그들은 시간관념이 투철한데서 시간을 도둑맞는다는 것은 마치도 자기의 상품을 도둑맞는 것 같고 자신의 금고속의 돈을 도둑맞는것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월수입이 20만딸라라고 할 때 그는 하루에 8000딸라, 한시간에 1000딸라를 버는 셈이다. 1분간의 수입은 17딸라좌우 되는데 만약 근무시간에 타인한테 1분이라도 용무외의 일을 처리한다면 그것은 그만큼 수입이 줄어듬을 의미한다. 이런 경우 쓸데없는 만남으로 5분간을 허비하였다면 85딸라의 수입을 도둑맞힌거나 다름이 없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유태인들의 철저한 시간관념이자 사고방식인것이다.   라는 격언이 있다. 지난 30여년간 우리 나라가 일사천리로 비약하면서 폭발적발전을 이룩한 대명사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눈부신발전을 이룩한 대표적도시로서 심수는 바로 1분1초도 쪼개쓰는 그런 철저한 정신으로 눈부신 발전을 창조한것이다. 여기서는 , 고 하면서 절대 헛되게 랑비하지 않는 정신이 철저하게 내포되였다. 이런 실례가 있다. 연변의 한 이름난 합자기업 사장이 상해, 광주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그 걸음에 심수에 가서 대학동창생을 찾았다.   안내담당직원이 상냥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손님의 대답이였다.   동창생은 보기좋게 거절당하였다.     담당직원이 단호하게 말하였다,   물론 사전약속이 없이 면회를 신청한다는 것은 다소 무례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인정상 몰상식하다고 비난할바는 아니다. 하지만 는 그런 정신에는 맞지 않는것이다. 미리 약속하지 않은 불의의 방문객을 근무시간에는 응하지 않는 것이 기본인것이다. , 오늘날 심수사람들의 시간관념은 철저하다.   영화 “옛지 오브투모로우”의 주제는 시간에 대한 상상력을 담고있다. 외계인의 시간지배능력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주인공은 우연하게 시간을 지배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데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상대를 이길 방법을 모색하기에 골몰한다. 주인공이 택한 방법은 바로 시간을 쓰지 않고 정지상태에 있게 하는것이다. 시간을 쓰지 않으니 결과도 없었다. 감정적, 육체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다른것에 더 많이 집중할수 있었다는것이 이 영화가 고취하는 주제였다. 촌음도 금싸락이라 그래서 일각도 헛되이 쓰지 않으려고 택한것이 바로 헛된 시간을 정지상태로 만든것이다.   우리는 일상 생활가운데서 본의가 아니게 원치도 않게 남한테 시간을 략탈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 비일비재이다.   회의석상에서 흔히 회의격을 높이느라고 모셔온 일부 모모한 큰 인물들을 목격하게 된다.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사회자가 이런 큰 인물들을 홀대하는 것 같아서 지나가는 말로 하고 청하는데 그 다음부터 가관이다. 단상에 올라 차물을 훌훌 불면서 장편대론을 펼치기가 일수다. 한두마디 간단하게 수인사만 하면 그만인데 요행 차려진 기회라 끝이 없이 자화자찬이나 그 어떤 “박식함”을 표현하는데 청중은 울며겨자먹기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면 “노!”하고 웨치면서 그만하기를 호소하거나 그렇찮으면 아예 회장에서 퇴장해버리거나 할것이지만 이런데 아직도 약한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큰 국면을 위하여 즐겁게 “나”를 희생시키는것이다. 그 장황한 연설자가 숱한 청중 다시말하면 행사참가자들의 금쪽 같은 시간, 아니 그네들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가고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지금도 자기방심하는 사이에 아까운 시간, 아니 자기의 생명과같은 무가지보를 “찬탈”당하고있다. 아직도 상기한 현상이 도처에서 버젓이 살판치고있으니 어찌겠는가! 그래서 올해는 이러지 말자고 시간의 귀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면서 타인의 금쪽 같은 시간을 훔치는 행위를 삼가하자는 의미에서 화제에 올렸다. 연변일보 2018.1.17
69    독에 든 쥐의 탐욕 댓글:  조회:2347  추천:0  2017-11-23
이런 우화가 있다.   큼직한 암쥐 한마리가 반나마 찬 쌀독에 빠졌다. 며칠간 굶주린 상황에서도 쥐는 허기진 배를 부여안고 마음을 달래며 귀를 쫑긋하고 경각심을 늦추지 않고 씩-씩하고 냄새를 맡았다. 하기야 며칠 전 자기 새끼 세마리나 독을 발린 곡식을 먹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어쩌지 못하였던 것이다. 교활한 쥐는 먼저 표층의 쌀을 조금 먹어 보았다. 아무런 부작용이 없었다. 쥐는 그제야 시름을 놓고 만폭식하였다. 쥐는 이처럼 먹고는 자고 자고는 또 먹고 하면서 퍼그나 긴 시간을 보냈다. 그 기간 쥐는 여러번 뛰쳐나올 생각을 하였지만 그때마다 새하얀 입쌀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쌀독바닥이 거의 드러나서야 정신이 버쩍 들었다.   이때에야 쥐는 까마득하게 보이는 쌀독어구를 바라보면서 버둥버둥 애를 썼지만 인제는 어쩔 수 없었다. 주인에게 발각되여 맞아죽던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굶어죽던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없게 되였다. 조금만 먹고 나왔더라면 이런 봉변이 없었을 것이였지만 인젠 후회막급이였다.   탐욕스러운 쥐에게는 그 반나마 찬 쌀독이 그지없이 유혹적인 도박판과 같았다.  결국 탐욕에 목숨과 바꾸고 말았다. 먼 옛날이나 지금이나 탐관들의 흑심은 바로 이 쌀독에 든 쥐와 같다고 할가!   중앙규률검사위원회 감찰부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9월까지 전국규률검사감찰기관은 총 38.3만건을 립안하고 33.8만명을 처벌했는데 그중 성부급 및 이상 간부가 56명이고 청국급 간부가 2300여명이였다. 그중 갑작스럽게 비리혐의로 락마한 손정재 전 중경시 서기가 두달여에 걸친 조사 끝에 당적과 공직 박탈을 당하고 처분을 받았다.  길림은행 원 당위서기,리사장 전학인의 수뢰안에 대한 1심 공판에서 전학인은 무기도형에 언도되고 정치권리를 종신박탈당했으며 개인의 전부 재산을 몰수당했다. 전학인은 연변주당위 서기, 길림성 부성장을 력임, 1919만원을 수뢰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에 연변규률검사감찰기관은 일련의 군중리익을 침해한 부정기풍과 부패문제를 엄숙하게 조사처리하여 군중의 리익을 착실히 수호했다. 연길시 소영진 오봉촌당지부 원 서기 박숙자는 구좌와 자금을 사설하여 촌집체자금을 암암리에 취득했다.  2017년 3월, 박숙자는 당내 직무철수 처분을 받았고 사법기관에 이송되여 법에 따라 처리되였다. 돈화시 흑석향 자안촌당지부 원 서기 왕해하는 돈화시 흑석향 자안촌당지부 서기를 담당하는 기간 직무의 편리를 리용하여 가족의 명의로 불량주택개조 공사 보조자금 1.2만원을 편취했다. 2017년 4월, 왕해하는 당내 엄중경고 처분을 받았다.   ‘천길 바다는 메울 수 있어도 한길 사람속은 채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상기한 탐관, 부패분자들은 실상 탐욕스럽고 속된 인간들로서 그 속은 채울길 없다. 하지만 독안에 든 쥐같은 족속들인 것만은 사실이다. 이미 법적제재를 받은 자들은 물론이고 아직도 발각되지 않은 수많은 탐관들은 비록 은페되여있지만 법과 도덕이라는 큼직한 독에 빠져있는것이다. 혹자는 행운스럽게 아직도 폭로되지 않지만 그 끊없는 탐욕으로 하여 그 어느 때인가는 기필코 들통이 나 법적제재를 면치못할 것은 십분 자명하다.   ‘전당은 용감하게 문제를 직시하고 대담하게 뼈를 깎아 독을 치료하며 당의 선진성과 순결성을 손상시키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여  당의 정치지도력, 사상인도력, 군중조직력, 사회호소력을 끊임없이 강화할것이 요청된다.’ 습근평총서기가 19차 당대회에서 호소하였다. 우리 당이 자각적으로 그지없이 탐욕스러운 ‘쥐’들을 수시로 철저하게 척결하여 당의 선진성과 순결성을 손상시키는 모든 요소를 제거할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면 기필코 당의 건강한 유기체를 침식하는 모든 바이러스를 제거하여 우리 당이 영원히 왕성한 생명력과 강대한 전투력을 시종 확보할 수 있을것이다. 연변일보 2017.11.22
68    예순이 되여 50대 돌아 보기 댓글:  조회:2474  추천:0  2017-10-12
인생이 류수라더니 어느덧 예순도 중반을 넘어서니 지나 온 인생의 전반생을 돌아 보면서 감회가 깊다. 특히 우리들이 갓 지나 온 50대, 오늘날의 적지 않은50대들이 아직도 갈팡질팡 방황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깊어진다. 그래서 그 느낌도 더더욱 강렬한가 보다. 공자는 인생의 마흔에 불혹이요 쉰에는 지천명이요 예순이면 이순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정작 오늘날의 현실은 랭혹하다. “40대는 활개를 쭉 펴면서 활보하지만  50대부터는 서서히 주눅이 들고 60대에 가서는 눈치를 보면서 일하며 산다”는 말이 있다. 이를 간략하여 “나래펼친 40대, 주눅이 든 50대, 눈치보기 60대”라고 한다. 자칫하면 자기절로도 “쉰하면 인젠 쉬쉬하다”고 하면서 자포자기하기 십상이다. 나도 50대의 적지 않은 시간은 이렇게 보냈다. “인젠 성 쌓고 남은 돌이라 볼장을 다 보았으니 명예로운 퇴직이나 준비하자”고. 헌데 정작 그 시기를 지나 한참 더 살고보니 그것이 아니였다. 진정 할 일이 많고 가장 인생을 빛내는 년대였다는것을 뒤늦게 남아 터득하게 되였다. 실상 50대는 문자 그대로 인생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량분할 때 바로 그 중간기라고 할수 있다. 이 시기 전반부를 반성하고 정리하며 후반부를 준비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그런 과도기인것이다. 청소년기는 사람이 태어나 가족의 울타리안에서 살다가 그것을 벗어나 새로운 사회적 자아로 성립되는 시기인데 루소는 이것을 제2의 탄생이라고 하였다. 사람들마다 그 정의가 조금씩 다를수 있는데 루소의 수사학을 빌린다면 중년기는 제3의 탄생기로서 개성화를 통하여 자신의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과정이라고도 할수 있다. 그리고 자신과 타인, 개인과 사회, 젊음과 늙음, 삶과 죽음, 남자와 녀자 이런 대극을 극복하고 보다 성숙하고 조화로운 삶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다고 볼수 있지 않을가. 우리는 나이에 대해 얘기할 때면 흔히 고 한다. 50대도 한창 왕성한 나이여서 거둘것이 많은 단계라는 뜻으로도 되는것이다. 사실 많은 본보기들은 50대가 되어도 여전히 건강하고 활동적이다. 그들은 심리적으로도 안정되고 여러 경험을 통해 더욱 지혜로워졌다고 할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상당한 전문성과 지위를 획득했고 생애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소득도 누리게 되는 이른바 인생의 황금기를 한창 살아가고 있는것이다. 그런 반면에 중년은 또 소위 점성원리에 의해 힘겨운 청년기를 거쳐 점진적이고 자연적으로 도달하는 안정된 기간이 아니라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고 중대한 선택을 내려야 하고 또 그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과도기에 해당한다고도 볼수 있다. 과도기란 말그대로 안과 밖을 넘나드는 문턱이자 접점 혹은 경계로서 항상 혼란과 갈등이 있다. 그리고 고통과 방황이 수반되는 불안하고 일시적인 상태라고 보면 될것이다. 중년 특히 50대에 들어서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회의와 정체감의 혼동이나 갈등을 경험하고 삶의 후반부를 새롭게 준비해야 하는 고통스런 심리적 사회적 과제를 감당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40대는 활보하고 나래펼치는 년대임은 틀림없었다. 오늘날 지식경제시대, 과학문화시대에 진입하면서 전 사회적으로 년소화가 추세이다. 지금도 퍼그나 년소화하였는데 앞으로 의연히 중요한 일터의 임직나이가 더욱 앞당겨질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있다. 그리고 당정기관은 물론이고 기업 사업단위들도 전문성을 앞세워 대학본과생도 인젠 뒤로 밀리우고 석사, 박사 혹은 전문특장생을 선호하면서 30대, 40대가 대거 등용되기에 50대의 퇴장이 훨씬 앞당겨지는것이다. 지금도 특수상황을 제외하고는 행정간부직은 물론이고 기술간부직에서도  50대부터는 등용과 발탁에서 많이 제한을 받는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절대적이여서는 안될것이다. 고금중외의 사책을 뒤져보면 “대기만성(大器晚成)” 이라고 큰 인물의 늦둥이가 적지 않은것이다.  50대와 60대의 로련함과 경험과 지혜는 젊음으로서 해결되는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인류가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50__60대의 조기퇴장은 사회의 중대한 손실인 동시에 역시 사회적부담으로 되는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저력과 재능을 어떻게 발휘시켜 사회에 유용한 력량으로 전환시키는가에 달렸다. 실상 사회가 50대를 잘 등용하고 적재적소에 잘 써 준다면 이들이 로익장을 과시하면서 퇴직전에 거대한 에네르기를 발휘할것은 의심할바 없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50대에 절대 주눅이 들지 말라, 그리고 흔들리지 말라. 그래야 제2인생이 즐거워진다. 연변일보 2017-10-11
67    서향만리 댓글:  조회:2733  추천:0  2017-09-14
천고마비의 계절, 황금의 가을은 역시 독서의 계절이기도 한다.   새로운 력사시기 전 사회적으로 독서붐이 일고있는가운데 지난 2006년 중공중앙 선전부와 국가신문출판라지오텔레비죤총국 및 관련부문에서는 전국적인 범위에서 전민열독활동을 조직할것을 요구, 이에 부응해 2007년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비릇하여 신주대지에서 터전을 잡은 우리 민족은 뒤지지 않고 전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독서절행사를 펼치였다.  “열독, 진보, 화합”을 주제로 한 제1회 “연변독서절”을 조직해 전민독서활동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지난 4월 26일 제11회연변독서절을 10월말까지 개막하였다. 올해 독서절의 주제는 로서  8개분야로 나뉘여 다양한 독서행사를 조직한다. 그리하여 대중적인 독서열을 한껏 끌어올림으로서 좋은 책을 많이 읽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함과 아울러 중국꿈을 실현하는데 일조한다는것이다.   실상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문화인으로 가는 길에 독서는 빠질수 없는 기본적인 일과이다. 하기에 인생과 독서, 진정한의미에서 이 량자는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독서라고 하면 책을 읽는 행동을 말하는데 글은 다양한 삶의 표현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니 글을 읽는다는것은 인간의 다양한 삶과의 만남이라 할수 있다. 특히 좋은 글은 삶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때문에 독서를 통해 글쓴이의 인생에 대한 통찰력과 개성을 음미하는것이다. 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책에 들어있는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해서 자신의 삶과 련계시키는데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위인전을 읽을 때면  인물전기의 주인공을 바르게 파악하는것이 중요하다. 그 인물이 어렸을 때의 생활은 어떠했는가?  어떤 고생과 어려움을 참고견디며 살아왔나는가?   전기의 주인공이 존경받게 된 점은 무엇인지 이런것을 생각해보면서 그 인물이 오늘날까지 존경받고있는 리유는 무엇인가? 그 인물이 살았을 당시와 오늘날을 비교해보면서 오늘날 우리는 어떤 점을 본받아야 하는가?   하는것들을 생각하며 전기를 읽게 된다. 이렇게 책을 읽으며 우리는 그속에서 느낌을 가지게 되고 저도 모르게 자신을 승화시키는과정을 거치게 된다.   정보화시대에서는 과거에 비해 읽어야 할 내용이 훨씬 많아졌다. 독서는 개인이 직접 경험할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안내해주고 공간과 시간을 무한정으로 확대하여 대리경험을 시켜준다. 독서는 독자를 수천년전의 과거로 안내하기도 하고 또 미래의 세계로 인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안내되고 인도되면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행동도 하고 감정을 서로 주고받기도 한다.  또한 사회의 가치, 규범과 문화를 습득하고 공동체적인 삶의 질서속에 개인과 주체적인 삶을 련관시키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독자는 폭넓고 깊이있는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할수 있다.   독서에서 빠질수 없는 중요한 한가지는 정보와 지식을 획득하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독서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정보획득의 수단이라는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실용적인 가치를 지닌다.  독서는 정보획득 이외에도 지식습득이란 더 본질적인 기능을 가지고있다. 인간은 자신이 발견한 지식을 문자로 기록하여 후대에 책으로 전승하여왔기때문에 이전시대의 사상, 과학기술. 력사, 문화 등을 알기 위해서는 독서에 의존할수밖에 없다.   현대 정보화사회에서 독서가 어느때보다 더 필요한 리유는 정보가 대부분 활자매체를 통하여 전달되기때문이라고 할수있다. 물론 활자매체가 아닌 전파매체 같은것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인쇄매체가 속도면에서는 도저히 전파매체를 뒤따를수가 없지만 순간 전달로 곧 사라져버리는 전파매체의 특성때문에 복합적이고 고차원적인 정보는 아무래도 활자매체를 통해 얻을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올해도 우리 연변을 비릇하여 우리 나라 곳곳에서 독서절행사들이  다양하게 펼치고있다. 21세기는 지식경제시대라고 한다. 학습을 중심으로 하는 시대인만큼 지식은 이미 새로운 세기 사회경제발전을 추동한 원동력이 되고있다. 번영하고 문명하며 조화로운 지역사회를 건설하자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종합적자질을 제고하고 학습능력과 혁신능력을 높여줘야할것이다. 그러자면 우리 매개인이 책임의식과 긴박감을 가지고 학습을 제1수요로 인식하며 학습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독서절의 형식에 매이지 말고 항상 노력하고 분발하는 자세로 독서를 내 생활의 하나의 중요한 습관으로 자리잡게 해야 하지 않을가싶다. 그러자면 책 읽는것은 즐겁고 유익한것이라는 관념을 확고하게 수립하는것이 절실하다.   가을, 독서의 계절을 맞으면서 서향이 만리에 그윽한 문화적인 사회를 구축하자는 의미에서 독서를 재삼 재사 강조하여도 결코 과분하지 않다고 주장하는것이다. 연변일보 2017-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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