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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화풍경 60
60. 상상을 초월한 상상: 세계 제8대 기적 - 친스황병마용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인은 알 수가 없는 상대라고 늘 말한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노리는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은 옳은 말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상상, 이것이 바로 중국 사람이다. 그중 하나가 시안 친스황병마용이다. 프랑스 대통령 시라크가 세계 제8대 기적이라고 극찬했던 것.
‘황제’란 말은 한국 사람들도 익숙하다. 바로 이 ‘황제’란 단어를 만들어낸 천고의 위인이 바로 친스황(秦始皇-진시황)이다. 13살에 왕위에 올라 39살에 황제라 칭하였으며 기원전 230년부터 전 221년 사이에 전국시대 6국을 멸하고 중국통일 하였으며 다민족 전제주의국가를 세웠다.
친스황은 살아서 장성을 쌓고 민간에서 몰수한 무기 12개 금사람을 주조하였다. 아방궁과 여산묘(骊山墓)를 수건하였다. 수천 명 동남동녀를 동해로 보내 신선을 구하고 장생불로약을 얻으려 했다. 살아서 폭군의 악명과 기적을 남기고 죽어서는 땅 밑에 병마용을 묻었다.
1974년 3월. 친스황릉 동쪽 서양촌의 농민들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하게 도용의 쪼박과 청동병기를 발견하였다. 수천 년 땅 밑 5미터 깊이 속에 잠들었던 수천의 진나라 용사가 땅위에 솟아오르는 기적의 순간이었다. 20세기 고고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였다.
친스황병마용은 친스황릉과 1.5킬로미터 상거하며 1호, 2호, 3호 갱을 주체로 하는 친스황병마용박물관은 부지 300여 무로서 규모가 굉대하고 기세가 웅위롭다. 역사 기재에 따르면 친스황은 70여 만 장인들을 동원하였으며 건조시간은 38년 이란 기나긴 세월을 이어왔다. 1987년 12월, 친스황릉과 병마용은 《세계유산명록》에 이름을 올렸다.
병마용에는 8000 병마용이 부활한 군단마냥 친스황릉을 지키고 있다. 친스황릉에서 발견된 청동 마차 무게는 2.3톤이며 7000개의 부속으로 되었다. 마차 천장 청동 덮개 막의 가장 얇은 곳은 1mm에 불과하다. 또 직경 6mm, 길이 5m인 청동선도 있다. 야금술의 수수게기이다.
2003년 1월 3일자 중국 원휘보오(文滙報-문회보)는 친스황병마용 ‘발견권’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시안시임동구 양씨 등 3명은 9명의 병마용 ‘발견자’를 대표로 진용박물관과 섬서성 문물국에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이들의 요구하면 ‘진병마용발견인’이라는 증서를 주고 두 번째는 병마용 1호 갱 소개에서 ‘당지 농민들이 우물을 팔 때 발견’이란 글 중 ‘농민’을 자기들의 이름으로 고쳐달라는 것이다. 이들의 요구가 거절된 뒤 시안 임동구 수리사업대에서도 친스황병마용관에 신청을 내어 소속 임원 손씨 등 사람들의 병마용 ‘발견권’을 인정해달라고 하였다. ‘신청보고’ 형식으로 이런 제기하다니, 이 역시 상상을 초월한 상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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