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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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5. 중국인 사유의 밑그림 댓글:  조회:2406  추천:51  2011-05-26
중국문화풍경 8585. 중국인 사유의 밑그림: 도광양회 유소작위 韬光养晦 有所作为삼국지의 이야기이다. 류우베이劉備는 조조의 눈을 피해 집에 물러있으면서 터전에서 야채에 물이나 주면서 세상을 등지고 있었다. 관운장과 장비가 형은 왜서 천하대사를 관심하지 않고 이렇게 뒤 구석에서 소인들이 하는 일을 하는가고 하자 그대들이 아는 것처럼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도광양회韬光养晦인 것이다. 조조와 유비 두 사람이 술을 나누면서 천하영웅을 담하였다. 조조가 영웅을 묻는 말에 유비는 이 사람 저 사람을 두로 얼버무리며 열거하자 조조는 다 아니다면서 천하영웅은 너와 나 둘이라 했다. 이 말에 놀란 유비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구었다. 마침 번개가 치는 바람에 유비는 놀라서 젓가락을 떨구었다면서 고비를 넘긴다. 조조가 자기가 영우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재앙이 닥치기 때문이다. 영웅은 소견도 비슷하다고 이래서 하는 말이다.도韬는 칼집이라는 뜻으로서 감춘다. 숨긴다는 뜻도 내포한다. 회晦는 음력 그믐을 말한다. 도광양회- 재간을 숨기고 힘을 키우는 뜻이다. 개인으로는 처세의 수단이고 국가로서는 생존의 원리인 것이다. 중국인에게는 이러게 해석이 된다.중국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존경 받았던 덩쇼핑鄧小平은 도광양회 유소작위 韬光养晦 有所作为를 중국외교의 기본사상으로 정했다. 앞장서지 말며 큰 소리 치지 말며 냉정히 관찰하고 진지를 공고히 하며 할 일을 해야 한다.1990년 당시 소련의 해체로 복잡한 국제형세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으며 제3세계국가들은 중국이 앞장에 서서 달려주기를 원하였다. 이에 직면한 중국의 선택은 도광양회였다. 아직은 미국 등 대국과 맞설 힘이 축적되어 있지 않기에 그러한 모험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의 발언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정세가 어떻게 변하던가에 중국은 영원한 한 극 극이라는 사상은 동요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 중국에 대한 가장 깊은 인상은 루마니아 주재 중국대사관이 미국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사건이다. 그것도 한발이 아니라 여러 발이었으며 대사관 직원까지 폭사당하는 참안이었다. 당시 쟝저민江澤民시기었다. 국내 언론 나아가 군부에서까지 강경한 발언이 나왔으며 국가의 존엄과 민족의 자존심에 큰 타격이라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중국인은 한발 물러서는 태도로 문제의 해결을 보았으며 상황의 악화를 막았다. 아직까지 중국은 도광양회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년 11월, 미국의 小鹰号 항공모함이 중국측의 거절로 홍콩에 정박하지 못하였다. 감사절을 홍콩에서 지내려고 가족들은 이미 홍콩에 모인 상황에서 8000명 미국 관병들은 해상에 감사절을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미국정부 대변인도 홍콩정박은 사전에 협의가 있은 일로서 이번 사건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불평을 보이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건으로 중국이 도광양회의 길에서 벗어지고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지금은 중국은 10년 전과는 비교 되지 않는다는 이유이다. 이들은 중국인을 진정 모르고 있는 것이다.
85    84. 중국인의 사치스러운 소비 댓글:  조회:2314  추천:64  2011-05-24
중국문화풍경 8484. 중국인의 사치스러운 소비: 소비가 향수이다.(我消费、我享受)중국인은 돈을 아낀다. 하지만 이들이 돈을 쓰는 것을 보면 우리 조선족은 아예 발뒤축에도 미치지도 못한다, 식사 한때에 수만 위안의 상을 먹어친운다는 소문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한국인도 조선족과는 민족으로서 소비심리나 습관이 비슷하기에 중국인들의 이러한 소비에 의아적게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이다.중국인들은 해외배낭관광을 자주 가군 한다.  목적은 명확하다. 이색적 문화를 접촉하고 느끼고 배우는 것이다. 관광이 목적이다. 하지만 중국인 해외 관광객의 목적은 쇼핑편이 많다. 파리 유명한 老佛爷 백화점에는 매일 평균 중국관광객 1만 명을 접대한다. 이를 위해 중국관객 전문 서비스 영업부를 내왔다고 한다. 香榭丽舍 거리의 많은 유명브랜드 가게에서는  중어를 아는 점원을 날로 많이 고용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 기도 하다. 중국인의 인구당 GDP는 유럽인의 꼬리숫자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뉴스보도가 사실을 숨긴 것일까?중국여성은 돈을 쓸 줄 알뿐만 아니라 돈을 잘 쓴다. 유행제품의 주요한 소비군체이다. 이들의 소비는 남성보다 높은바 작년 여성 유행제품소비는 1만 9909위안이다.많은 사람들의 상상과는 다르게 중국 사치품소비의 주력군은 중산계급이다. 파리 빠이후러(百富勤)회사에서 내린 정의에 따르면 가정자산 30만 위안 이상이고 연수입 10만 위안이상이다. 또 경상적으로 쇼핑을 하려면 월수입이 2만 위안에서 5만 위안을 되어야 할 것이다. 회사 해당인사의 예측에 의하면 2010년 이 부류의 소비자가 2.5억에 달할 것이다. 돈이 있는 사람만이 사치소비를 하는 것 아니다. 상하이 한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고양은 5700원 짜리 erragamo 흰색 핸드빽이다. 이 빽을 사기 전 고양은 오래동안 망설이었다. 작년 대졸생으로서 월로임은 4000 위안이었다.  이 빽을 사기 위하여 그녀는 두 개월 동안 옷 한 벌 사지 않고 날마다 회사에서 곽밥으로 지냈다. 하지만 회사의 여자 동사자들은 브랜드를 각별히 중히 여기고 특히 홍콩에서 온 여자들은 눈길이 더욱 높았다. 첫눈에 어떤 신을 신고 있으며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는 가를 따지는 것이다. 중국 ‘시상’ (时尚)잡지는 고양 같은 여성 사치품소비자를 包法利夫人 이라 부른다. 수입이 적으므로 그녀들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브랜드를 착용하면서 자신의 부유층의 일원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자가 적지 않는 비례를 점한다. 중국인의 사치소비는 옷, 향수, 손목시계 등 개인용품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대부분은 40살 이하 젊은이다. 유럽인의 사치소비가 가옥, 자동차, 가족 관광인데 비하면 아직도 부유하지 못한 것이다.
84    83. 중국인의 저금문화: 연연유유(年年有餘) 댓글:  조회:2308  추천:51  2011-05-23
중국문화풍경 8383. 중국인의 저금문화: 연연유유(年年有餘) 중국인이 손님을 공식적으로 접대할 때 빠지지 않는 요리가 있는데 바로 물고기이다. 중국어로 물고기는 위(魚-어)라 발음한다, 여유, 나머지 여(餘)와 같은 발음이다. 즉 연연유유의 염원을 담고 있다. 중국인민은행에서 작년 상반년에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33.4% 피조사자가 남은 돈을 저금한다고 답했다. 대부분 정기저금이다. 노후와 치료비를 대비해서였다. 중앙정부에서는 여러 가지 정책을 제정하여 소비를 추진하려 했지만 중국인의 저금심리는 그렇게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 모양이다.신화사에 따르면 2005년 연말 중국 새로 증가 된 저금액은 1.8억 위안이고 저금총액은 14만 억 위안, 약 1.75만 억 달러이다. 중국인이 재부에 대한 집착은 놀라울 정도이다. 특히 현재 중국의 토지가 국가소유인 까닭에 재부는 주로 현찰이다. 즉 저금하는 것이다. 또는 돈을 모은다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20-30년 전까지만 하여도 중국인은 돈을 저금하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보관하고 있는 이가 많았다. 특히 나이 든 층이 더욱 그러했다. 내가 직접 겪은 일들이다. 중국 할머니가 연통 밑에 현찰을 숨겨두었는데 연통에 불이  붙는 탓에 돈의 한 모서리가 많이 타버렸다. 또 돈을 오지단지에 넣어 땅에 깊이 묻기도 한다. 또는 누더기 솜옷 속에 숨겨 놓기도 한다. 지난 일들이지만 중국인의 저금문화의 심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중국인이 돈 버는 재간은 우리를 놀릴 정도다. 화상(華商)이 대표적 예로 된다. 세계에는 6000만 명 화상이 170여 개 국가에 널려있는데 대중국 투자의70%가 화상에서 온 것이다. 화상은 독특한 금전관과 경영예술로 하여 동방의 유태인으로 존대 받고 있다.중국인은 현금에 대해 극히 심중하다. 은행에 가면 중국인들이 당면에서 돈을 세는 모습을 늘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파악이 있는 거래에서도 중국인은 당장에서 거래를 결정하지 않는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니는 유형이다. 그렇게 번 돈이기에 특별이 아끼는지 모르겠다. 한국인과 달리 중국 사람은 빚지고 사는 것을 특히 불편하게 생각한다. 빚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갚는 것이다. 그리고 돈거래에서도 중간 담보인이 거의 없다. 중국인은 신의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숫자가 있다. 작년 중국의 저금율은 46%이고 미국인은 -0.5%이다. 즉 중국인은 100원을 벌면 46원을 저금하지만 미국인은 100원을 벌면 105원을 소비하는 것이다. 저금과 소비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83    82. 중국인과 세면실 문화: ‘경사무측’(京師無厠) 댓글:  조회:1964  추천:38  2011-05-18
중국문화풍경 8282. 중국인과 세면실 문화: ‘경사무측’(京師無厠)중국을 다녀온 한국인들의 불편 중 하나가 세면실이다. 중국에서는 위생실, 처스워(厠所), 화장실, 변소(便所) 등으로 불리어진다. 여러 가지 소문을 들었다. 중국 어디 시골 가니깐 칸막이가 없이 통칸이었다. 또 칸막이는 있는데 문이 없었다. 하여간 한국인들로 치면 불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온 한 노인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중국 여행길에 급기야 뒤를 보아야 하기에 여러 골목을 뒤지다가 겨우 변소를 찾았다, 급기야 들어가서 그런대로 뒤는 보았으나 불행이도 그 변소에는 화장지가 없었다. 밖에서 기다리는 조카를 불러서 화장지를 가져오라 했거늘, 주변에는 작은 가게도 없는지라 화장지를 사오느라 꽤나 오래 돌아다닌 모양이다. 화장지도 가져오고 뒤처리도 다 되었으나 노인은 너무 오랫동안 쪼그리고 앉아있었던지라 일어날 수가 없었다. 조카의 부축으로 겨우 호텔로 돌아왔으나 관광은 고사하고 온종일 침대에 누워서 앓음 자랑을 해야만 했다.  변소에 대한 기재는 중국에는 옛날부터 거의 없었지만 간혹 문구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옛날 부자들은 변소에 들어가기 전에 옷을 갈아입는다고 한다. 그래서 변소 간다는 것을 갱의(갱의)라고도 불렀다.  ‘경사무측’(京師無厠)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많다. 청나라 말까지 커다란 베이징에는 변소가 몇 개 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변소 가는데 돈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듯이 일부 도시의 변소는 돈을 받는다. 백성들은 밤사이의 오줌이며 대변물의 요강을 새벽이면 길바닥에 그대로 던지는 것이었다. 그 광경은 무척 더러웠을 거다. 청나라 말에 이르러서야 공공변소가 생겨나고 또 인분차가 다니기 시작하였다. 중국은 WTO에 가입한 그해 그달에 세계공공변소조직(W.T.O.)에 가입하였다. 국민의 별다른 주의는 일으키지 못했지만. 작년 연말 통계에 따르면 베이징에는 표준에 부합되는 화장실이 5583개, 그중 2급 이상이 1700여 개다. 2007년에는 1100개 화장실을 신설, 개건할 계획이다. 대부분 베이징 시교의 관광구역 현에 집중되어 있다. 베이징에는 고급스러운 화장실도 등장한다. 최근 새로 준공한 화장실에는 휴게실과 탈의실이 구비되었고 음악도 흐르고 있다. 그리고 뒤처리가 끝나면 자동으로 물이 쏟아진다. 지방에서도 변소혁명을 다그치고 있다. 산수로 유명한 계림에서도 관광구역과 경치 부근에 새로 위생실을 신설하고 있다. 원래 61개 공공변소가 있었지만 합격되는 것은 23개뿐이었다고 한다. 한번은 시장이 변소를 찾느라 2개 거리를 누비었다는 일화도 있다. 나중에 여인숙 주인의 안내로 뒷문으로 들어가서 뒤를 보았다고 한다. 먹을 것을 해결하고 나니 중국인의 위생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 같다.
82    81. 중국남성3 : 동서남북 각유각도 댓글:  조회:1934  추천:61  2011-05-16
 중국문화풍경 8181. 중국남성3 : 동서남북 각유각도 (東西南北 各有各道) (2)지난 세기 60년대 중반, 중국대륙에는 문화대혁명이 몰아치면서 도시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빈하중농(貧下中農 - 태체로 농촌의 무산자를 가리킴)의 재교육을 받으라는 모우저뚱(모택동-모택동)주석의 지시에 따라 산골로 밀려갔다. 기실은 도시 실업을 해결하는 묘책이었다. 내가 사는 연변에도 상하이 지식청년- 당시 농촌에 내려온 이 부류의 젊은이를 이렇게 불렀다.-들이 왔었다. 깨끗하고 총명하다는 평을 받았다. 한국말도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빨리 배우군 했다. 지금도 연변에는 당년 상하이 지식청년들이 가정을 이루고 연변에서 생활하고 있다. 상하이는 20년대부터 원앙호접(鸳鸯蝴蝶)파 문인, 숙녀들이 모여든 곳이다. 상하이 남성들은 지취금미(纸醉金迷) - 호화롭고 사치스런 생활에 빠져버리다-의 존재로서 시대의 앞장에는 거의 서지 않으나 글 쓰고 평하기는 좋아한다. 중국의 ‘4인방’이라고 불리어진 반당집단의 일원인 요원왠(姚文元-요문원)은 중국제1필(筆)로 인정받았었다. 상하이에서 출세하였던 것이다. 정면인물로는 위치유위(余秋雨-여추우, 중국당대 산문가, 대표작 ‘문화고여’(文化苦旅)가 있다.상하이 남성들은 집울타리형이다. 남편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아내는 객실에서 한담한다. 아내의 눈빛 하나가 남편을 좌우지 한다. 또 상하이남자들은 물질형이다. 특히 오늘날 세계금융 중심으로 발돋움 하고 있는 상하이에서 남성은 부지런의 대명사이기도 하다.꽝뚱(광동-광동)은 중국 개혁개방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이다. 더욱이 지리상에서 항구를 끼고 있어 중국 최초의 무역인으로 등장하였으며 외부와의 상업거래가 끊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광동사람은 장사에 일찍 감치 눈이 트이었다. 게다가 90년대 초에 행운이 또 찾아와 그야말로 돈이 돈을 버는 격이 되었다. 잔머리를 굴리려면 꽝뚱 남자를 상대하지 말아야겠다. 체구가 작은 편이나 속계산은 너무나 빨랐다. 또, 부지런하기로 소문났다. 아침 6시면 거리에 행인이 가득하다. 이 시간대면 다른 도시에는 청소부들만 있을 뿐이다. 꽝뚱에는 하루에 20시간 일할 수 있는 남자들이 있다. 빠른 절주를 즐기고 돈벌이에는 정신이 없다. ‘여자를 남자로 쓰고 남자를 기계로 쓴다. 기계가 고장 나면 고치면 그래도 쓸 수 있다’ 꽝뚱 남자들이 늘 하는 말이다. 하지만 떠도는 글에서 보면 꽝뚱이란 이름과 걸맞지 않게 쭝싼(中山-중산)대학은 전 중국에서 가장 느슨하고 놀기 좋은 대학이라 한다.
81    80. 중국남성3 : 동서남북 각유각도 (東西南北 各有各道) (1) 댓글:  조회:1746  추천:54  2011-05-13
중국문화풍경 8080. 중국남성3 : 동서남북 각유각도 (東西南北 各有各道) (1)대학시절에 영어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한 생각이 난다. 전국 각지를 다니노라면 가장 나쁜 사람은 베이징사람이라 한다. 길을 물으면 동쪽으로 가야하는데 서쪽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또 지방에서 온 사람들을 무척 깔본다 한다. 황제의 발밑에 살고 있으니 ‘근수루대 선득월’(近水楼台先得月)의 뜻이다. 베이징 남자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가 있다.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데 3시간이 걸린다. 첫 1시간은 국제형세를 말하고 두 번째 1시간은 국내형세를 말하고 세 번째 1시간의 30분은 베이징 형세를 말하고 나머지 30분 중 29분은 인생에 대한 관점을 말하고 나머지 1분은 ‘사랑한다“(我爱你)세 글자를 말한다.베이징에 출신이면 황족 귀족과 혈연관계가 없는 이가 몇 이나 될까? 사돈의 팔촌이래도 걸리겠지. 수도에 있다는 우월감으로 지방에 대한 멸시감을 감추지 않으나 풍운을 휘어잡는 정치인은 불행하게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중국 군대의 전투영웅 중 쓰촨(사천-사천)출신이 유별하게 많다. 쓰촨 고추는 작지만 맵다고 사천남자 역시 그러하다. 용맹전진하도라면 뒤를 돌보지 않는다. 90년대 중반, 중국프로축구의 쓰촨 쵄씽(全興-전흥)팀에 한때 주장으로 있던 수비수 워이췬(魏群-위군)선수가 있었는데 국가대표팀 선수로 뛰기도 했다. 워이씨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보조공격을 할 때면 제 위치를 버리고 공격에 가담하기에 늘 치명적인 습격을 당하였다. ‘워이췬 공간’이라 불릴 정도였다.  쓰촨 남성은 용맹한 멋과 달리 안이한 맛도 보이고 있다.구름다리 밑으로 내가 흐르고 한잔의 맑은 차물에 마작 한 개, 거기에 오터(奧托) 승용차 한 대면 만사대길이다. 그들은 물질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다. 중국문학계에는 이런 설이 있다. 외부사람이 문학에 성공하려면 사천으로 가야하고 사천사람이 문학에 성공하려면 사천을 떠나야 한다. 스마샹루우(司馬相如-사마상여, 서한시기 위대한 사부(辭賦)가, 중국고대 4대 미인의 한사람  줘원쯔윈(卓文君-탁문군)과의 사랑이야기도 유명하다), 궈머루어(郭沫若-곽말약, 원명 郭开贞, 중국현대 유명작가, 1914년 일본 유학, 중국 신시의 정초인, 정무원 부총리, 중국과학원 원장, 중국과학기술대학 총장, 중국문연 주석 등 요직을 담당, ‘궈머루어문집’(17권), ‘궈머루어전집’ 출간), 빠진(巴金 - 파금; 원명 李尧棠, 소설가, 20세기 중국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 사람, 1927년 말 프랑스 유학, 중국작가협회 주석을 수차 담임, 대표작은 ‘집’, ‘빠찐전집’ 출간) 등은 쓰촨 출신의 저명한 문인이다.
80    79. 중국인남성 2: 낭만; 비불능 내불위야 댓글:  조회:2057  추천:53  2011-05-11
중국문화풍경 7979. 중국인남성 2: 낭만; 비불능 내불위야 (非不能,乃不为也)미국영화 ‘魂断蓝桥’의 낭만이 늘 머리에 남아있다. 또 2차 세계대전 승전 소식을 접한 뉴욕(?)의 거리에서 한 해병이 낯모를 처녀와의 낭만의 키스를 남기는 경전으로 꼽히는 사진이 늘 그립다. 낭만은 생각의 차이이지 능력의 차이는 아닌 가 본다. 중국남성은 낭만을 모르기로 정편이 나있다. 그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유교의 ‘남존여비’에 우월감이 부푼 남자들이 ‘비천한’ 여인한테 낭만을 베풀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다. 최근 몇 십 년에 이러한 의식은 많이 퇴색되어 간다하지만 낭만을 즐기기 전에 중국남자의 어깨에 떨어진 것은 재부의 창조와 누적이라는 압력과 스트레스였다. 남보다 더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야 했다. 집을 마련하고 현금을 저축하고 사업을 펼치고 자녀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고, 이 모든 것이 낭만을 뒤로 제치게 하였다. 사회에서는 존중을 받아야 했고 그렇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홀로 삼키며 이 눈치 저 눈치를 가늠해야 했고 집안에서는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구석까지 살펴야겠다. 언제 아내에게, 친구 여성들에게 낭만을 생각하겠는가?또 중국 옛날에는 ‘발호정, 지호예“(发乎情,止乎礼)라 하였다. 정에서 우러러나나 예에서 멈춘다는 뜻이다. 또 표면의 낭만보다 마음속의 진실이 더 났다고 전통파는 우기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한 중국여인이 쓴 글을 그대로 옮긴다면, 많은 남성들의 머리에는 권력과 이익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돈이 있으면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낭만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여자가 함께 어려움을 이겨나가기를 바라면서 고생 끝에 낙이 올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돈 있는 남자는 미녀들이 찾아와 몸을 바치니 낭만이 필요 없을 것이고 생각하면 남자들은 가련하기 짝이 없다. 나쁜 남자여야 여인들이 와 사랑한다고 말한다. 나쁜 남자가 낭만하지 않다는 말을 거의 못 들어보았다. 나도 나쁜 남자가 나를 사랑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비록 사랑한다고 말한 것이 거짓이고 이튿날이면 변심한다고 하더라도, 한마디 빈말이라 해도 이러한 나쁜 남자가 내 생명에 나타나 한 가닥 낭만의 사랑을 남겼으면 한다. 여자마다 생각이 다르지만 여자는 선천적으로 낭만을 즐기는 종속이라는 것은 거의 부인할 수 없는 생활법칙일 것이다. 또 중국의 남성은 낭만의 세포가 거의 없다는 것도 공인하는 사실이다. 중국남성은 왜 배낭을 어깨에 메고 세계 일주를 할 생각을 하지 않는가? 이들은 왜 사랑한다는 말에 그리도 인색한가?중국남성의 가슴에는 여성의 낭만을 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불능 내불위야 (非不能,乃不为也)-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낭만을 모르는 것이 정답이다.
79    78. 중국남성 1: 사라지는 군자의 위엄 댓글:  조회:2201  추천:59  2011-05-09
중국문화풍경 7878. 중국남성 1: 사라지는 군자의 위엄현재는 남성위주의 사회이다. 한국도 그렇고. 이로 인하여 여성해방과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단체와 운동이 20세기 역사의 반짝이는 점이 되었던 것이고 지금도 여성문제는 민간한 문제로 되고 있다. 먼 곳은 말고도 현재 한국 대선에서 여러 대통령 후보들은 특혜다운 여성정책을 역설하고 있다. 장관의 50%를 여성으로 한다는지, 국회의원의 몇 퍼센트 이상으로 여성의원을 확보한다던지, 생육, 보육, 취직 등 사회 여러 면에서 여성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으로 당선의 기회를 더 잡아당기고 있다. 이들의 여성정책이나 작법이 맞고 틀림을 떠나 여성이 사회의 약자임은 시사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웃 중국에서는 상황이 조금은 다르다. 정치 등 분야에서 여전히 남성이 천하인 반면 다른 많은 분야에서 남성은 부득이 다가오는 ‘모씨 사회’의 물결에 신발이 적셔짐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베이징대 의학부 후(호)교수는 장기연구 끝에 중국 남성의 생활 질이 여성보다 낮다고 발표한다. 가장 주요한 원인은 남성의 직업화 정도가 여성보다 높은 탓으로 남성이 고혈압 등 15가지 주요한 사인이 여성보다 높으며 남성 자살율이 상승세를 긋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이 85세까지 살수있는 확률은 여성의 절반 수준이다. 남성들은 심리부담과 사회 압력이 크며 남성권익을 보호하는 전문기구가 없는 것이다. 사천(四川-쓰촨)부련회의 소식에 따르면 일년에 약 800명 남성들이 찾아오는데 주요한 문제는 부부가 화목하지 못하고, 아내가 바람피우고, 자녀 DNA 감정을 요구하며, 아내가 남편을 구타하며 심지어 남편이 자살충동까지 있다는 것이다. 호북(湖北-후베이)성 의창(誼昌- 이창)구역에 남자하인(남부)광고가 일어나 한동안 시민들은 들썽거렸다. 광고내용인즉 광범한 범위의 가무이다. 수금표준을 보면 노인을 보살피면 월 1500위안(한화 20만 원), 아이를 보면 월 1000위안(한화 약13만원), 밥을 함께 먹어주면 시간당 20위안(한화 2600원)이다. 중국남성의 전반적인 저항력이 여성보다 낮다는 의학연구결과가 있다. 중국의 남성들은 점차적으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으며 우울함과 고독의 노예로 되어가고 있다. 광명정대하지 못하며 일처리나 사업에서 결단성과 신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금년(2007) 11월 3일까지 호북(湖北-후뻬이)성 ‘초천풍채(楚天风采)복권은 7개 대상을 뽑았으며 그중 5명은 단독개인이다. 당선금은 500만 위안(한화 약 6억 6천만 원) 이상한 것은 이들은 모두 남성이며 그중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4명 남성은 500만 위안 당선된 소식을 아내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 원인인 즉 자기가 이 돈을 지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에서였다. 즉 아내를 ’통제‘할 수 없으며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다. 조금은 상상외이다.
78    77. 중국남성의 미덕 댓글:  조회:1937  추천:26  2011-05-06
중국문화풍경 7777. 중국남성의 미덕: 치꽌얜 (妻管嚴-처관엄)  중국 대문호 소동파(苏东坡)의 수많은 명시, 명구 중 백성들에게 널리 전해진 ‘하동사후(河东狮吼)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북송시기에 진계상 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용구 선생이라 자칭하였다. 박식하고 또 글재주도 있었고 호랑이도 쏘아 명중하는 활쏘기 명수였다. 하지만 진 씨도 약점이 많아 술과 가무에 빠져있었고 집에는 가기(歌妓)를 두고 있었다. 부인 유 씨는 이에 불만이 컸으며 늘 진 씨와 다투었다. 매번 아내 유 씨가 소리 한번 지르면 진 씨는 사시나무 떨듯 했으며 손에 쥔 지팡이마저도 떨어 드리곤 하였다. 소동파는 이를 시로 써 풍자하였는데 이 시가  하동사후(河东狮吼)의 전고(典故)가 된 것이다. 현대 중국에는 치꽌얜(妻管嚴)-여자가 남편을 엄하게 굴다-이란 유행어가 있는데 곧바로 하동사후의 뜻과 같다. 지난번 인터넷에서 우연하게 중국도시 ‘치꽌얜’ 순위표를 보았는데 재미가 있었다.상하이 남자들이 아내들을 제일 무서워한다. ‘치꽌얜’이 가장 심하단 뜻이다. 오래 역사를 거쳐 날린 명성을 날리었다. 이로 인하여 상하이여성은 중국에서 가장 부러움 받는 여성으로 되었다. 청두(成都-성도)에는 유명한 교통도구가 있다. 자전거 오른편에 휠체어를 다는 것이다. 아내가 편안하게 앉아라고 발기한 아이디어라고 한다. 속칭 ‘퍤싼룬(偏三轮-편삼륜)’이다. 애칭은 ‘빠얼두어(粑耳朵-파이타)이다. 아내의 무엇이라고 말하면 무엇인 것이지, 따르지 않으면 귀는 비틀어지는 것이다. 우한(武漢-무한)의 여자들은 무섭기로 소문이 났다. 그녀들은 칼처럼 날카롭고 고추처럼 매우며 단독직입 적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출중한 살림꾼이다.조주(潮州)의 남자들은 자고자대하지만 여자들이 남자의 모든 것을 조종한다. 벌어온 돈은 아내가 엄격히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치꽌얜에 대한 유모아도 많이 있다. 남편이 퇴근하여 집에 오니 아내가 말하는 것이었다. ‘오늘 저녁 요리는 마음대로 선택하라’고, 남편이 ‘무슨 반찬을 있는가?’ 물으니 오이 반찬이란 것이다. 반찬 하나를 가지고 선택하라니, 남편의 말에 ‘먹든지 말든지 선택하는 거죠.’라고 태연하게 대꾸하는 아내였다.  중국 민간에서는 1등 남편은 아내를 무서워하고 2등 남편은 아내를 아끼고 3등 남편은 아내를 구타하는 것이다. 많은 중국남편들은 치꽌얜(妻管嚴)을 부끄러움이 아닌 자아만족으로, 심지어 남 앞에서의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꼴사나울지 모르지만 중국남자들에게는 좋은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77    76. 중국인의 미신: 횡재의 또 다른 지름길 댓글:  조회:2499  추천:56  2011-05-03
중국문화풍경 7676. 중국인의 미신: 횡재의 또 다른 지름길중국인은 소문나게 미신적이다. 2002년 2월 2일, 중국에는 결혼열풍이 일었다. ‘맹연(盲年)’을 피해서 구정 전에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다. 이해는 말띠 해였고  말띠 해는 ‘과부년’으로 알려졌기에 사람들은 ‘무춘년(无春年)’이라고도 한다. 또 2002년 2월 2일은 짝수 ‘2’ 가 여러 개 들었기에 성쌍성대(成双成对-서로 짝을 이루다)하여 좋은 징조로 간직되었던 것이다. 또 토요일(周六)에도 짝수가 들어있어 신혼부부는 길조로 생각한다.  구정이 지난 후에도 미신은 계속 된다. 초이튿날 가장 돈벌이가 잘되는 곳은 컴퓨터 손금보기와 컴퓨터 이름 짓기이다.  구정휴가가 끝나면 첫날부터 공장, 가계, 정부(전부가 아님) 정문 앞에서 폭죽을 터뜨린다.  구정 기간 도시에서는 폭죽을 엄금하기에 그 인을 발사하는 듯 했다. 폭죽도 시간을 맞추어 터진다. ‘8시 18분’, ‘8시 28분’의 행운을 잡는 것이다. 괜찮은 직장에서는 직원들에게 훙뽀오(红包-홍보) - 상여금을 준다. 카이먼훙(开门红-개문홍)-첫 시작부터 좋은 운을 기한다. - 이다.중국과학원 권위인사들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에서 2명 중 1명이 제비 뽑고 부처를  미신하며 4명 중 1명이 성좌를 미신하며 5명 중 1명이 ‘주공해몽’을 미신하며 중국인의 노소를 막론하고 흥취 있는 미신 활동을 하나 정도는 있다. 반대로 50명 중 1명만이 최소의 과학기술 수양 또는 상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봉건미신으로 몰리며 설자리조차 없었던 운세, 이름 짓기, 풍수는 부동산 시장과 상업시장의 영향으로 하여 중국에서 새로운 부활을 이루며 ‘횡재의 지름길이 되고 있다.베이징 훙밍쐔(宏名轩-굉명헌)회사의 이름을 짓는 것을 예로 보면 전업선생, 전문가, 주지(대표)가 이름 짓는 가격은 198위안, 398위안, 1380위안이다. 기업이름을 지을 때는 보통기업과 대 , 중형 기업으로 나누는데 비용은 800-8000위안과 2-8만 위안이다. 풍수를 조절하면 비용이 높다. 현지조사는 평방미터 당 100위안이다. 보도에 따르면 총 건축면적이 19만 평방미터인 아파트는 1900만 위안의 풍수현지조사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협상하면 200만 위안이 된다. 또 ‘봉황주간’에 따르면 현장조사비용이 소문처럼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100 평방미터 이내는 평방미터 당 10위안이며 주지가 집 풍수를 조절하면 표준의 3배이다. 음기(조상의 묘)풍수를 조절하면 베이징에서는 1만 위안이고, 베이징 외는 2만 위안이다. 부동산회사의 현장풍수조사는 건축면적이 아닌 부지로 계산하는데 수금표준은 건당 1000위안이다. 200만 위안은 과장된 설법이라 한다. 절을 찾아 향을 태우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 가운데 지방 관리들이 더욱 눈에 띠운다. 후난(湖南-호남)성 모 지방에서는 새해 첫 향을 태우려면 10여 만 위안 ‘부조’를 넘어야 한다고 한다. 또 돈만 있어서는 첫 향을 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산동 한 도시 관리의 부인들은 동아리 비슷한 조직을 만들어 가지고 태산에 가서 향을 태우는데 일 년에 수 만 위안이 “부조”된다는 것이다. 부인들은 남편과 자신이 평안하고 횡재하기를 빈다고 한다. 또 남편이 바람피우지 말게 해달라고도 ‘기도’한다는 것이다
76    75. 중국인 상술 - 기업정치가 댓글:  조회:1973  추천:46  2011-04-27
중국문화풍경 7575. 중국인 상술 - 기업정치가:  이상부관(以商附官) 이신사호(以身饲虎) 이상부관(以商附官) 이신사호(以身饲虎)-상업은 권력에 붙고 몸은 호랑이 먹이 되다.중국의 전통문화는 수천 년의 축적으로 형성된 것이며 그 속에서 자라난 모든 이들은 봉건관념의 물색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옛날의 ‘홍정상인(红顶商人)’들은 상계와 정계의 양다리를 거쳐 관(官)으로 상(商)을 밀고 이(利)를 구하였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이들의 욕심은 관직을 얻는 것이 아니라 관방의 지지를 따는 것이다. 주하이(珠海-주해)시의 스위이주(史玉柱-사옥주)는 처음에 38층 거인빌딩을 지으려 하였다. 후에 한 영도가 거인회사를 참관하게 되었고 빌딩을 좀 더 높게 지면 좋겠다는 건의 하에 70층으로 올려, 주하이시 상징물로 지으려 했다. 모든 자금을 다 투자하였으나 빌딩은 올라서지 않았고 거인은 쓰러졌다. 기업이 투기를 하여 ‘정치’의 빛을 보려고 정치인의 ‘정적(政绩)’에 비우를 맞추는 것이 화근으로 되었다. 뿌씬썽(步鑫生-보흠생)은  셔츠제조 전문가이다. 한 고위층 영도가 양복이 유행이니 한번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영도의 체면을 지키느라 작은 규모로 시작하였으나 후에 더 큰 영도가 당신은 전국모범이니 무엇하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하기에 생산규모를 대대적으로 확충하였다. 나중에 하이얜(海盐-해염)셔츠공장은 파산되었다. 중국최대의 ‘기업정치가’는 무우치쭝(牟其中-모기중)이다. 1941년생인 모씨는 중경사람으로서 천진개발구 난더어(南德-남덕)경제그룹 법인대표이다. 1974년 공저로 《중국은 어디로 가야하는가?(中国向何处去?)》를 출간한 탓에 사형을 선고받고 옥고 4년을 치리다가 1979년 누명을 벗고 상업에 발을 들여 놓았다. 1989년 모씨는 ‘가죽으로 구 소련비행기를 바꿔온’ 신화를 성공시켜 하루 밤 사이에 명인으로 탈바꿈하였다. 1995년 2월, 《푸부스(福布斯)》잡지는 모씨를 1994년 세계부호에 이름을 올렸으며 중국대륙 부호 4호인물로 평가하였다. 중국 《차이푸우(财富-재부)》잡지는 모씨를 ‘중국제일 민간 기업가’, ‘대륙 초특급부호 제1호’로 위상을 높이였다.하지만 1999년 11월 1일 우한(武漢-무한)시중급인민법원 대법정에서는 모씨 등 5명이 신용증 위장개설 등 행위로 7500여 만 달러를 사기하였다고 판정, 모씨를 무기형에 언도하였다. 모 국가지도자가 퇴직하면 모신다던 모씨는 과분한 정치열정으로 끝내는 미치광이가 되고 말았다. 정치와 엉켜있거나 개별 관원과 지나치게 밀접하면 종종 정치의 몽둥이에 허리가 잘리는 법, 권력을 이용하여 금전을 모으려던 것이 나중에는 이신사호(以身饲虎)의 결말로 막이 내린다.
75    74. 중국인의 상상 초 상상 댓글:  조회:1916  추천:41  2011-04-25
중국문화풍경 7474. 중국인의 상상 초 상상:  요리의 명물 허우노탕(猴腦湯-후뇌탕)중국인의 상상은 현실적이고 그들의 실용원칙은 초사상적이다. 역사가 길고 지역이 광대하고 인구가 많고  종족이 다양한 것과 정비례 되게 이들은 현실적이고 초상상적이다. 중국인에게서 가장 현실적인 것은 먹고 자는 것이다. 그중 먹는 것이 첫째이다. 현실적이며 또 상상적이다. 상상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스쳐 지나지 않으며 그 상상은 또 현실로 돌아온다. 괴상한 논리로 생각된다. 먹는 것에서 야, 미, 향을 빠뜨리지 않는다. 짐승이라면 원숭이에서 오소리까지, 날짐승은 소쩍새, 꿩에서 참새, 제비까지, 나무 타는 다람쥐, 올빼미, 풀숲을 기어 다니는 뱀, 물 위의 오리, 바다의 오징어, 물개, 새우, 자라, 거북, 진품으로 알려진 상어등지느러미, 제비집, 해삼 등은 중국인의 식탁에 이름을 올린 손님들이다. 요리의 재료가 이렇듯 요리 방법도 다양하다. 또 어떤 요리방법에는 잔인무도한 인간의  그림자까지 깔려있다. 허우노탕(猴腦湯)은 명말청초(明末清初)부터 식탁에 올려졌다. 전하는데 의하면 중국 우싼뀌이(吴三桂-오삼계)가 청나라 군대를 이끌고 광동에 진입한 후 그의 무장들은 용맹함을 뽐내며 산 원숭이를 우리에 가두고 몽둥이로 머리를 까고 골을 식용하였다고 한다. 허우노탕은 현재 광동의 유명요리이다. 살아있는 원숭이를 기절시켜 목을 따고 피를 뽑아낸 다음 털을 뽑고 두개골을 쪼개 골을 꺼낸다. 머리가 없는 원숭이 고기는 참새나 올배미의 살과 함께 살이 뼈에서 떨어질 때까지 충분이 고아낸다. 이것이 허우노탕이다. 뇌에서 꺼낸 골을 대접에 담아 돼지 허벅자살과 닭고기, 생강, 화학조미료, 설탕, 소금 등을 첨가한 탕의 한가운데 띄우고 탕이 충분히 고아지도록 끓인다. 골이 익으면 그 골을 다시 원숭이머리에 집어넣고 골이 들어있는 머리를 탕에 넣고 약한 불에 천천히 끓인다. 이 허우노탕을 반드시 자기그릇에 담아 식탁에 올린다. 탕은 황금색으로 입안에 들어가면 맛이 달고 부드러우며 영양이 풍부하다.허우노탕을 먹는 방법도 특이하다. 살이 있는 원숭이 머리를 식탁 중앙에 나오게 장치하고 손님들은 테이블 가장자리에 빙 둘러 앉는다. 다음에 뜨거운 물을 원숭이 머리에 끼얹고 두개골을 뽀개면 물렁물렁한 골이 나온다. 여기게 뜨거운 기름과 갖가지 조미료를 뿌려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한편, 원숭이의 비통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한편 맛있게 먹는다. 허우노탕의 높은 영양가가 비명소리와 함께 인간의 욕망에 가접된다. 연민의 반대는 잔인이다 하는데, 우린 이때 부처의 자비가 연민이 아니라 잔인하다는 느낌이 든다. 불심(佛心)의 중국인.
74    73. 중국의 남방인과 북방인 댓글:  조회:3175  추천:45  2011-04-22
중국문화풍경 7373. 중국의 남방인과 북방인: 난쵄뻬이튀이(南拳北腿-남권북퇴)일반적으로 장강 이남이면 남방이라 하고 이북이면 북방이라 한다. 남방인은 운남, 광서, 복건, 호남, 호북 지역이 주되고 북방인은 동북지역이 주된다. 남방인은 쌀을 즐기고 북방인은 밀가루를 즐기며 남방인은 추위를 두려워하고 북방인은 더위를 싫어한다. 또 남방인은 주관적이고 북방이는 객관적이다. 또 중국의 무술도 남북을 나눈다. 난쵄뻬이튀이(南拳北腿-남권북퇴)이다. 남파는 주먹이고 북파는 다리인 것이다. 이러한 설법은 통속적인 의미이다. 중국인은 자신들을 염황자손(炎黃子孫)이라 자칭한다. 염제와 황제는 형제였지만 물불과 같았다. 그럼 염황은 어디로 갔는가? 남방에로 도주했고 자손들은 번식하여 오늘의 남방인으로 되었다고 한다. 황제는 줄곧 중원을 점하고 정통으로 자칭하면서 오늘의 북방인이 된 것이다. “남강북조(南腔北调)”라는 말이 있다. 남과 북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전하는데 의하면 원나라시기 사람을 4등급으로 나누었는데 1등은 몽고인이고 2등은 색목인(色目人) 즉 서방인이고 3등은 한(汉)인이고 4등은 남방인이다. 여기서 말하는 한인은 중국북방의 한족, 즉 한족으로 동화된 외족인이고 ‘남방인‘은 송나라의 유민으로서 한족이라 하지만 한 단계 낮은 하인으로 구분되었다. 남방인은 왜 하등인으로 분류되었는가? 전쟁에서 북방인을 이기지 못하지 때문이다. 역사상 무수한 남정북벌에서 남정이 북벌을 이긴 차수가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남방은 북방보다 부유하다. 농경시대에서 남방은 농사에 더욱 적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조는 북조에 의해 북주로 통일되었고 금나라는 북방의 요나라에 멸망되었고 금나라는 더욱 북방에 있는 몽고에 의해 자취를 감추었다. 동북에서 발기한 만족인은 남쪽의 명나라를 밀어냈고 남경의 장개석도 북방에서 숨 돌린 중공당(中共黨)에 의해 쫓겨났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북방인은 휘황한 전적을 기록하고 있으나 남방인이 자호감을 느낄 수 있는 승리는 너무나 드물다.  북방인이 늘 승자로 되는 원인은 무엇일가? 경제나 문화적 차이가 아니다. 성격의 차이이다. 얼핏 보면 건성하고 무엇이든 마음에 두지 않고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뒷걸음 모르는 기개, 즉 이들이 말하는 남자기개이다. 자신들이 늘 말하는 한자(漢子-한자)-사나이, 대장부이다. 북방인은 감정을 중히 여기고 남방인은 효율을 중히 여긴다. 북방인은 와이프를 위해 천리 밖에서 달려올 수 있고 남방인은 돈을 벌기 위해 천리 길을 떠날 수 있다. 북방인은 직장 동료 앞에서 아내의 자랑을 하지만 남방인은 아내 앞에서 직장 동료의 흉을 본다. 북방인은 낭만적이다. 오리를 보면서 어느 날은 두루미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방인은 최악의 경우에서 사물을 생각한다. 종달새를 보면서도 털이 빠지면 한 마리 닭보다 못하다고 생각을 굴린다.남방인과 북방인, 하지만 중원에로 근접하면서 남방과 북방의 융합이 짙어진다. 모든 사물은 상대적이며 호상 전환 가능한 것이다.
73    72. 중국인의 국가적 욕질 타마디 댓글:  조회:2213  추천:39  2011-04-20
중국문화풍경 7272. 중국인의 국가적 욕질 타마디(他媽的)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 또는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후진국을 막론하고 세계 각국에는 욕설이 있다. 사람을 욕한다는 것은 언어로 다른 사람을 모욕, 중상하는 것을 뜻한다. 즉 욕설의 ‘철학’이다. 영, 미인들의 욕설철학은 한마디로 ‘기시’이다. 대방의 인격, 출신, 종족에 대한 모욕이다. 가장 많이 쓰는 욕설은 ‘shit’, 즉 ‘똥오줌’이다. 또 늘 쓰는 욕설은 “sonofabitch”-즉 ‘기녀’란 뜻이다. 일본인은 상대의 재능이나 수양을 비꼰다. ‘바까야로’가 대표적이다. 뜻인즉 말이나 사슴도 구변할 줄 모르는 촌놈이하는 뜻이다. 중국 국가적 욕질의 기원은《전국책. 조책(战国策.赵策)》중 《진위조지한단(秦围赵之邯郸)》일문이라 한다. 이 문장에 제위열왕은 자신을 멸시하는 주열왕을 ‘이모비야(而母婢也)”라고 욕했다. ’이모비야‘는 지금의 말로는 ’너 어미는 천한 여자‘, 또는 ’너 어미는 하인‘이라는 뜻이다. 이 말이 민간에 와서는 ’이모X야(尔母X也)”로 변했으며 구조에서도 ‘너의 어미는..’이  ‘너의 어미의...’로 변신했다. 또 오랫동안 써오면서 맨 끝의 명사를 생략하고 또, 2인칭이 3인칭으로 되어 오늘 중국의 국가적 욕설로 되었다. 중국 당대의 대문호 루쉰(魯迅-노신)도 ‘타마디(他妈的)를 논하여’라는 문장을 쓰기도 했다. 노신은 이 욕설을 중국 국가적 욕설이라고 말했다. 중국 국가적 욕설은 역사가 유구할 뿐만 아니라 사용범위가 극히 넓다. 아마 중국인이 발자국이 찍힌 곳에서는 이 욕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남녀노소가 거리낌 없이 입 밖으로 내뱉는다. 곰곰이 생각하면 국가적 욕설은 특이한 점이 많다. 나 또는 너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를 욕하는 것이다. 또 상대의 조상이나 자식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욕하는 것이다. 또 어머니의 무엇이라 욕하는데 뒷말은 생략하고 있다.중국인의 욕설철학은 ‘체면제일’의 성격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인이 욕설을 할 때 목청을 될수록 크게 높인다. 대방보다는 주위사람들이 모두 들으라는 뜻이다. 상대를 면목이 없게 만들려는 심산이다. 중국의 중소도시를 가노라면 길가에서 욕설을 퍼붓는 아낙네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아낙네들은 단번에 몇 시간 욕설할 수 있고 목이 쉴 때까지 그치지 않는다. 손시늉까지 하면서. 이것이 중국인들이 말하는 마아제(罵街-매가)이다. 이런 아낙네를 종종 퍼푸우(泼妇-발부)-막돼먹은 여자-라고 한다.중국의 전통중의학은 화는 신체에 유해하다고 한다. ‘기’란 분노가 속에 쌓이면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기’를 마음속에서 배출하겠는가? 거리에서 욕설을 퍼붓는 것 자체가 울분을 발사하는 가장 좋은 수단의 일종이라 한다. 중국인들 욕설풍경의 원인일 것이다.
중국문화풍경 7171. 중국어의 세허후위: 철로경찰 각관일단(鐵路警察 各管一段)중국어 ‘세허우위(歇后语-헐후어)’라면 한국의 속담과 비슷하다. ‘세허우위’는 앞, 뒷부분으로 나누는데 대체로 앞은 비유어이고 뒤는 그 비유를 설명한다. 통상 앞부분만 말하면 뒷부분을 세(歇-헐)-정지시키다-해도 본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세허우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헐후’ 단어는 당나라시기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났지만 이러한 언어현상은 일찍 진나라시기 전에 출현하였다. 《전국책. 초책4(战国策.楚策四)》에는 ‘망양보로, 미위지야(“亡羊补牢,未为迟也)라는 구절이 있는데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세허우위와 같다. 세허우위는 문자로 전해진 것보다 민간에서 구두로 전해온 것이 많다. 柴草人救火——自身难保/ 벼짚 허수아비가 불 끄다 - 자신도 보호할 수 없다瞎子吃馄饨——心中有数/ 소경이가 혼돈자 먹다 - 심중 숫자 있다哑子吃黄连——有苦无话处/ 벙어리가 황련을 먹다 - 고통을 하소연 할 곳 없다.猪八戒照镜子——里外不是人/ 저팔계가 겨울 보다 - 안팎으로 사람이 아니다. 兔子尾巴——长不了 /토기 꼬리- 길지 않다 또 어떤 세허우위는 한 개 이상의 뜻으로 풀이 될 수 있다. 大年初一看历书 / 초하루에 달력 보다- 앞날이 길다: 처음부터 시작하다大雨天上房  / 비오는 날 지붕에 올라가다 - 구멍을 찾다; 힘에 부치다小脚女人走路 / 족발여인이 길 가다 - 좌우로 흔들리다: 늘이다老虎头上拍苍蝇 / 호랑이 이마의 파리를 잡다 - 간 큰 사람; 고생을 찾아서 하다杀鸡取蛋 / 닭을 죽여 알을 꺼내다 - 후과를 생각하지 않는다;  본전마저 잃다 鸭子吞筷子 /오리가 젓가락을 삼키다 - 목이 꿋꿋이 서다; 커브를 돌 수 없다. 十五的月亮 /십오의 달 - 원만하다; 광명정대하다孔夫子游列国 /공자가 제국을 돌다 - 도리가 가득하다; 상가 집 개鲁班面前耍大斧 /노반 앞에서 도끼 재간을 부리다 - 자신을 모르다; 노장에 도전장 던지다沙滩上盖房子 /백사장에 집 짓다 - 튼튼하지 못하다; 오래가지 못한다.三九天吃冰棍 /삼구날에 얼음과자 먹다 - 마음이 냉해지다; 춥고 더운 것은 자기가 알다전문가들은 세허우위를 몇 가지 종류로 나누기도 한다. 첫 번째는 해음류, 예로 ‘小葱拌豆腐’- 파로 두부를 무치다-는 <一清(青)二白>, 즉 청백하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사실을 비유하는 종류로서 예로 冷水发面 -냉수로 밀가루를 이기다-는 큰 진전이 없다는 뜻이다.  세 번째는 사물을 비유하는 종류로서 예로 棋盘里的卒子 - 장기판의 졸-은 앞으로만 가지 뒤로는 후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네 번째는 이야기종류로서 예로 曹操吃鸡肋-조조가 닭갈비를 먹다 -는 먹자니 맛없고 버리자니 아깝다는 뜻이다. 다섯 번째는 혼합종류인데 예로   纸糊的琵琶 -  종이로 바른 피바-는 연주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 된다. 세허우위는 언어예술이기도 하지만 일면 말장난이기도 하며 저속이기도 하다. 하지만 독특한 언어현상으로서 중국문화의 또 다른 점을 반사하는 것이다.  
71    70. 중국여성의 대표복장 치이포 댓글:  조회:2179  추천:47  2011-04-14
중국문화풍경 7070. 중국여성의 대표복장 치이포: 원간색 근간관(远看色,近看款)원간색 근간관(远看色,近看款)-멀리서는 색상을 보고 가까이에서는 스타이를 보라- 치이포 (旗袍-치이포, 중국 여성들이 입는 긴 원피스 형태의 전통 의복)에 대한 찬사의 말이다. 홍콩의 명배우 장만옥이 주연한 영화《화양년화(花样年华)》는 중국에서 치이포의 품을 일으겼다. 극중 장만옥이 선보인 26가지 치이포는 새해 봄바람과 함께 중국의 호화한 거리와 예식장을 단장하였으며 고전과 현대의 멋은 여성들이 추구하는 또 하나의 모범이 되었다. 《사해(辞海)》에 따르면 치이포는 청나라 만주족 여성들의 복장으로서 아래는 열지 않았고 팔소매는 8촌에서 1자이며 옷 변두리에는 수놓았다. 신해혁명(1912년)후 한족여성들도 치이포를 보편적으로 입었다고 한다. ‘치이포’란 ‘기녀의 포’란 글자 뜻이라는 해석도 있다. 청나라 광서, 현통 연간 상해 시체여성들의 사진을 보면 치이포에 서양식 코드를 입은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지난 세기 30년대에는 해파의 경전으로 발전되었다. 중국 현대 대소설가 모오뚠(矛盾-모순) 선생의 명작 《자야(子夜)》에는 치이포에 관한 묘사가 있다. 봉건보수통인 고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상해로 왔다. 승용차에 앉아 외탄을 지나는데 창밖으로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황색 인력거에 앉은 아가씨가 보였다. 색상이 진한 치이포를 입었는데 바림에 치이포가 들리면서 아가씨의 눈같이 하얀 허벅다리가 보이는 것이었다. 고 할아버지는 놀란 나머지 두 눈을 꼭 감고 “만악(萬惡)에서  음란이 첫째라‘고 입속으로 외우는 것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병석에 들어 누었는데 끝내 서천으로 가고 말았다. 치이포의 살상력은 보통이 아니었다.20년대 말, 송경령은 꽃무늬 치이포를 입고 열병대에 올랐으며 상해의 광고에 치이포를 입은 여성들의 풍채가 나타났다. 명문아가씨. 마님들은 분분히 모방에 나섰고 치이포의 차림은 사교장에 들어섰다. 서방에 극히 민감한 상해는 서양복장의 몸에 붙는 재단법을 옮겨와서 넓은 치이포의 양식에 변화를 주었으며 이로서 치이포에는 여성의 곡선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3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치이포에 줄무늬를 달았으며 아래 부분을 열기 시작하였고 한때는 거의 둔부까지 펼치었다. 어딘가 유혹의 성분이 다분한 것이다. 하지만 상해의 명문 여성은 필경 신분이 있고 단정함이 요구되었다. 치이포는 다시금 무릅까지 열게 되었으며 길이는 땅을 거의 쓸 정도였다. 훗날 전시가 어지러워지면서 치이포 길이는 다시금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넓은 옷소매는 가늘고 섬세하게 변하면서 몸에 붇게 되였다. 여성의 성숙된 몸매와 우아하면서도 노련한 풍도를 다시금 치이포에 담게 되었다.하지만 상해의 명문 여성은 필경 신분이 있고 단정함이 요구되었다. 치이포는 다시금 무릎마디까지 열게 되었으며 길이는 땅을 거의 쓸 정도였다. 훗날 전시가 어지러워지면서 치이포 길이는 다시금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넓은 옷소매는 가늘고 섬세하게 변하면서 몸에 붇게 되였다. 여성의 성숙된 몸매와 우아하면서도 노련한 풍도를 다시금 치이포에 담게 되었다.치이포는 중국의 국복(國服)으로 여성들은 간주하고 있었다. 항일시기 송경령은 미국작가 스노 부인 버리에게 치이포를 선물로 드렸으며 버리 여사는 이 치이포를 입고 미국에서 항일강연을 하면서 모금활동을 벌리었다. 임종 시 버리 여사는 이 치이포를 주인에게 되돌려달라는 유언을 하였으며 1998년 이 의미심장한 치이포는 60년 표류하던 중 마침내 ‘송경령옛집(宋庆龄故居)’로 돌아왔다.
70    69. 중국 고대 4대 재녀(才女): 이청조가 도박고수? 댓글:  조회:2651  추천:40  2011-04-12
중국문화풍경 6969. 중국 고대 4대 재녀(才女): 이청조가 도박고수?중국 고대 4대 재녀라면 첫 사람으로 이청조를 꼽게 된다. 리칭조우(李清照-이청조, 1084년-약 1155년)는 남송시기 제남사람이다. 부친은 소동파의 학생으로서 유명 산문가이다. 리칭조우는 문재주로 일찍 이름 날렸고 18살에 시집갔으나 남편이 일찍 죽었고 1132년에 재가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갈라졌다. 1134년 저명한 저서 《금서록후서(金石录后序)》를 남기었다. 중국근대문학사에서 손꼽히는 여류 작가로서 완약파(婉约派)의 대표적 인물이다. 청나라 때 《수옥집(漱玉集)》5권이 출간되었는데 사 78수, 시18수, 문 5편이 수록되었다. 차이원지(蔡文姬 약 177년-?)는 한말시기 저명한 금가(琴家)이다. 사서에도 그녀의 박학과 재능에 대한 기록이 있다, 차이원지의 부친은 조조의 친한 친구였다. 16살에 결혼하였으나 1년도 못가서 남편이 죽었고 23살에 흉노에게 붙잡혀가 좌현왕의 왕비로 되었다. 12년 흉노생활에서 자식 둘을 보았다. 208년 조조는 친구의 정을 생각해서 황금 천 냥, 백옥 한 쌍으로 그녀를 되찾아 왔는데 그때는 35살이었다. 조조의 알선으로 뚱시(董祀-동사)와 결혼하게 되었으며 이듬해 남편이 죽을죄를 범하게 되자 차이원지는 조조를 찾아 애원하였고 동사는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전하는데 의하면 조조가 차이원지가 소장한 서책에 흥취를 가진다고 하자 그녀는 4000 여권 장서가 있었으나 전란에 모두 소실되었다고 아뢰었고 조조의 실망하는 기색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400편을 암송하여 조조를 크게 기쁘게 하였다. 빤조오(班昭-반소)자는 한나라 사람이며 부친 빤뾰오는 당대 대문호였고 반소는 늘 황궁에 입궁하여 황후와 기타 귀부인들에게 경사를 읽어 드리었다. 빤조오는 14살에 결혼하였고 오빠를 도와 《한서(汉书)》를 편찬하였다, 이 책은 중국 첫 기전체단대사로서 ‘사기’와 명성을 같이하고 있다. 당시 대문호  마룽(馬融-마융)은 반소의 가르침을 받기위해 동관장서각외 꿇어앉았다는 일화도 있다. 반소의 또 다른 저서 《칠계(七戒)》 7편은 빤 씨 여자들의 가정교육 교재로 씌어졌으나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빤조오는 사학자이자 문학가이며 또 걸출한 정치가이다. 빤조오는 고희연을 넘어서 죽었다.  줘어원쥰(卓文君-탁문군, 약 기원전 179년-기원전 117년)은 한나라 사천사람으로서 대부자 가문에서 태어났다. 금은보화 속에서 자란 그녀는 17살에 시집갔지만 반년 후 남편이 죽어 다시 본가로 돌아왔다. 가난한 서생이 타는 《봉구황(凤求凰)》에 마음이 움직여 17살 과부는 야밤에 서생에게로 달려갔고 이튿날 서생의 고향인 성도로 사랑의 도피를 연출하였다. 이 서생이 바로 훗날 서한시기의 유명한 재간둥이 사마상여(司马相如)였다. 한무제의 중용을 받은 사마상여는 점차 아내가 싫증났고 어느 날은 궁중에서 편지 한 장을 보내왔다. 13자가 적여 있었는데 ‘12345678910백천만’이었다. 총명한 줘어원쥰은 ‘만’ 뒤에 ‘억’ 없는 것을 알아보았고 ‘억’이 없다는 “무억(無亿)‘은 중국어에서 뜻이 없다는 ”무의(無意)’과 동음이므로 남편의 뜻을 알 수 있었다. 남편에 보낸 그녀의 답장 ‘도순서(倒顺书)’ 《원랑시(怨郎诗)》는 명구로 전해지고 있으며 《백두음(白头吟)》,《결별서(诀别书)》; 《망강정(望江亭)》도 널리 전해지고 있다. 탁문군과 사마상여의 사랑도주는 민간에 널리 전해졌으며 소설, 극의 소재로 되고 있다.   재미있는 ‘소문’이 있다. 이청조가 고금제일 여 도박고수라는 글이 인터넷에 떠 있다. 이유인즉 이청조는 중국도박유희를 전문 연구하였으며 《타마부(打马赋)》, 《타마도경(打马图经)》등 문장을 남겼고 각종 도박유희 오락성을 손금 보듯 잘 알고 있었다는 근거이다. 도박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얼마나 큰 도박을 하던지 패한 적이 없다고 한다. 믿어지세요?
69    68. 중국 젊은 세대의 성의식 댓글:  조회:2734  추천:44  2011-04-11
중국문화풍경 6868. 중국 젊은 세대의 성의식:  얼나이(二奶-이내)와 매음(賣淫)중국사회는 많이 변해가고 있다. 그중에도 사람의 의식이 가장 앞서는 같다. 그 앞장에는 성의식이 서있을 거고 그 주인은 당연히 가장 빨리 서양문화를 접수하는 대학생들이다. 여대학생과 성이 손잡으면 당연 새로운 성문화의 뉴스거리가 가득 할 것이다. 2005년 4월, 대학재학중인 주이안(여)이 전 세계에 ‘나는 에이즈 감염자이다.’고 말함으로서 그녀는 중국 에이즈감염자 중 유일하게 자신의 병을 공개한 사람이 되었다. 기실 10년 전에 벌써 대학생 중에서 에이즈 감염환자가 발견되었다고 해당 인사가 말했다. 또, 2006년 7월중국 위생부 대변인은 대학생은 에이즈 감염전파의 위험한 집단이라고 발표했다. 이뿐만 아니다. 뉴스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살 먹은 여자애는 자신의 헤아릴 수 없는 성 파트너와 두 번이나 되는 임신과정, 성 교역체험을 일기형식으로 써 인터넷에 올려 쟁의를 일으켰다.2004년 베이징사범대학 성건강교육쎈터에서는 약 30개 대학 1만 여명 재학생 성 행위관념 조사를 진행하였다. 결과 남성대학생의 15.7%, 여대학생 5%가 성행위가 있었고 결혼 전 성행위를 천성하는 남성대학생은 57%, 여성대학생 26.7%였다. 또 중국 매체의 보도에는 이런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허다한 지역에서 주말이면 대학교 부근의 초대소(여관)는 초만원이다.’, ‘방은 부근 대학교 연애하는 학생들이 다 차지하여 장사가 더없이 잘된다.‘고 주인들은 말하고 있었다. ‘하룻밤 잠자리는 한번 쯤 별문제 아니다.‘ 라는 것이 부분적 대학생들의 심태이다. 자신들의 매성(买性)에 관한 그들의 태도는 더욱 비약적이다. 신빙성 있는 조사 자료에 따르면 대학생 조사대상자 중 53% 남성, 5.8%여성이 ‘매성(买性)’을 생각해 보았으나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고 1.3% 남성은 매성하려 했으나 성공치 못했고 3%남성은 매성하였다고 답했다. 또 매음(卖淫)에 대한 태도는 20% 남성, 10% 여성이 매음을 생각해 보았으나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고 0.4% 남성은 매음하려 했으나 성공치 못했고 0.6% 남성은 매음하였다고 답했다. 여성의 0.2%는 매음하였다고 승인하였다. 작년 중국 주간지 《청년참고(青年参考)》는 문장을 발표하여 여대학생이라 자칭하는 여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XX지역 여대학생 중 최저 8-10%는 매음에 종사하며 몸은 팔지 않지만 웃음 파는 여학생은 4분의 1 정도라고 피로했다. 이 보도는 사회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고 사후 보도가 사실과 어긋난다고 판명되어 해당 기자와 책임자가 처분을 당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사생활로 간주하고 있으며 타인의 간섭을 싫어하고 있다. 하지만 여대학생들의 성의식은 여전히 사회의 관심초점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신화네트도 문장을 발표하여 여대학생 중에서 존재하는 주말이내()현상을 보도한바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 방학 때면 하이커우(海口-해구)시 일부 대학교 정문 앞에는 고급 승용차가 여대학생들을 싣고 사라진다. “주말얼나이(周末二奶)‘라고 당지 사람들은 이들을 부른다. 꽝뚱(廣東-광공) 보스와의 한 장 협의서로 그녀들은 대학생활 비용을 이어가고 있다. 주말얼나이에 관한 뉴스는 계속된다.2007년 2월 7일 자 《제로석간(齐鲁晚报)》에 따르면 제남 여대학생 왕모는 반포얼나이(反包二奶)사이를 개설하고 부친이 이내를 둔 사실을 폭로하였다. 하지만 당지 법원은 왕모가 모욕죄를 구성하였다고 판정하고 사이트의 폐제를 판정하였다. 중국 대지에서 성의식은 요동치고 있다.
68    67. 중국인과 ‘얼서우훠’(二手貨-이수화): 중고품과 재혼녀 댓글:  조회:2145  추천:45  2011-04-02
중국문화풍경 6767. 중국인과 ‘얼서우훠’(二手貨-이수화): 중고품과 재혼녀중국어에서 화(貨)라 하면 물건, 물품을 가리킨다. 하지만 물품의 경우 비유하는 대상에 따라 각이한 뜻으로 해석된다. 물건의 교역과 이동은 부두를 통하여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나라 사이의 무역은 바다나 부두를 끼고 있는 지역이 우선 발달되기 마련이다. 즉 수로를 통하여 들어오는 물건을 수이훠(水貨-수화)라 한다. 지금은 항공운수가 많다. 하지만 ‘수이훠’란 단어는 대표적 의미로 지금도 사용된다. 수이훠는 밀수품이 아니다. 대리상을 거치고 않고 직접 출품회사에서 물건을 가져왔을 따름이다. 수화와 상반되는 단어는 항훠(行货-행화)라고 한다. 보통 수이훠의 가격은 항훠 보다 높다, 운수와 세관비용이 붙기 때문이다. 밀수품은 사사로운 교역으로 이루어졌기에 저우스훠(走私貨-주사화)라고 한다. 화(貨)에 대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단어가 있다. 촨훠(窜貨-찬화); 시장경영학에도 없는 개념이지만 실체 판매에서는 골치 아픈 문제이다. 도우훠(倒货-도화), 충훠(冲货-충화)라고도 하는데 그 뜻인즉 제품을 지정된 관할지역을 초과하여 판매하다는 것이다.  로오수훠(老鼠货-노서화): 류추훠(流出货-유출화)라고도 하는데 쥐처럼 훔쳐온 물건이란 뜻으로 생산직장의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서 몰래 훔친 물건을 말한다. 품질은 좋고 나쁨이 섞여 있고 가격은 싸다. 그리고 또 워이훠(尾货-미화)라고 있다. 꼬리 ‘미(尾)’자, 글자 뜻대로 마지막, 또는 나머지란 뜻이다. 중국 복장업종은 이미 ‘세계 가공공장’으로 불러지고 있다. 외국에서 명표 제품 원료가공을 위탁하면 오다보다 좀 많은 원자재가 제공된다, 가공업체는 물건을 계약대로 넘긴 후 나머지 원자재로 새로 똑 같게 가공하는데 이 제품을 미화라고 한다.5위안이면 가공이 괜찮은 셔츠를 , 10위안이면 좋은 바지를 살 수 있다. 전업시장을 통하여 미화를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북경 리저쵸(丽泽桥-려택교) ‘천난천(天兰天)’은 원근에 소문이 자자하다. 중국에서는 매년 수십 억 건의 복장을 가공한다. 통상 3-5%를 미화로 계산하는데 그 수치는 천문학적이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2007년 5.1황금주일에 미화시장은 20만 인차의 고객을 접대하였다. 허베이(河北-하북), 탠진(天津-천진), 싼시(山西-산서). 뚱베이(東北-동북), 네이멍고(內蒙古-내몽고) 등 지역의 도화인(淘货人)이 3만 여명이다.  또 자료에 따르면 이 시장의 일주일 출하량은 60만 건을 초과하며 교역액은 700만 위안을 넘는다. 한화로 환산하면 약 10억 원이다. 소매복장 가격이 20-50위안인 것이 60%를 점한다.이상의 많은 물건을 부르는 명칭은 중국의 상업경제가 자리 잡으면서 중국백성에게 익혀진 단어이다. 기실 물건에 관하여  가장 익숙히 알려진 것이 얼서우훠(二手貨-이수화) - 두 번 손을 거친 물건-이다. 민간에서 중고품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공식적인 사전에는 방언으로서 재혼한 여자를 가리킨다고 적혀있다. 사람을 물건에 비유할 때는 그럴듯한 칭호인가 싶다.
67    66. 중국인과 대학 서열: 호간불여호흘(好看不如好吃) 댓글:  조회:2104  추천:57  2011-04-01
중국문화풍경 6666. 중국인과 대학 서열: 호간불여호흘(好看不如好吃)한국인은 늘 곁 포장에 신경을 쓴다. 자신의 옷 치례에도 여간 소홀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한국 상품은 무엇보다 눈이 즐겁다. 그에 반해, 중국인은 속을 굳힌다. 허술한 옷을 걸쳐도 주머니에는 항상 돈이 들어있고 뱃속에는 기름이 번지지하다. 멋보다 실속을 챙기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방식 또는 사유의식이 차이는 대학진학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우선 서울대학교에 붙어야 한다. 한국 제일의 대학이니깐 체면이 서는 것이다. 전공은 둘째로 되는 선택이다. 학부모나 학생이나 똑 같은 태도이다. 취업 때에도 서울대학교면 쉽게 통한다. 또 한국은 학연이 엄청 파워가 있는 풍속이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대학의 서열, 명성보다 학과, 전공을 따진다. 호간불여호흘(好看不如好吃)- 보기 좋은 것보다 먹기 좋은 것이 낫다-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학교서열은 조사기관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상위 5위권은 청화대학, 북경대학, 복단대학, 절강대학, 남경대학 순이다. 그 외 10위권으로 치면 상해교통대학, 무한대학, 길림대학, 화중과학기술대학, 남개대학 등이 있다.  청화대학은 력학, 재료과학공정, 전기공정, 전자과학, 정보통신공정, 통제과학공정, 계산기과학, 공상관리 등 학과에서 중국 제1위의 우세를 나타내고 북경대학은 수학, 화학, 철학, 언어문학. 생물학, 공공관리학 등 학과에서 제1위를 점한다. 중국인은 진학 때 서열도 중시하지만 자신의 희망 학과, 전공을 따져가면서 진학의 길을 선택한다. 이론경제학, 응용경제학, 법학, 사회학, 신문학 등을 전공하려면 중국인민대학이 우선 대상이 될 것이고 교육학, 심리학, 계통과학을 지망하면 우선 북경사범대학을 고려한다. 방직을 전공하려면 동북대학, 천진공업대학을, 구강의학은 사천대학을, 중의학은 광주중의약대학, 남경중의약대학, 상해중의약대학을, 약학은 중국협화의과대학을, 식품과학, 수의학, 축목학, 식물보호학은 중국농업대학을, 도서관관리 전공은 무한대학, 남경대학을, 토목공정은 동제대학을, 야금은 북경과학기술대학, 동북대학을, 컴퓨터과학은 국방과학기술대학을 우선 생각하는 것이다. 학과뿐만 아니라 전공까지도 고려하는 중국인이 많다. 반도체 분야는 길림대학이 유명하고 송나라 역사전공은 하북대학, 레이저광학은 장춘 레이저학원, 러시아어 전공은 흑룡강대학이 최고이다. 한국인들이 만든 만두는 껍질이 두껍지만 속이 적고 중국인이 만든 만두는 껍질은 엷지만 속이 많다, 중국인은 확실히 한국인보다 조금은 실용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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