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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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5. 중국인의 여유 있는 삶: 육담의 지혜 댓글:  조회:1364  추천:30  2011-01-14
중국문화풍경 4545.중국인의 여유 있는 삶: 육담의 지혜‘신사의 연설은 여자의 치마처럼 짧을수록 좋다.’ 중국 임어당의 명언이다. ‘기생은 성욕이 있을 때만 손님을 받는 것 아니다.’ 자신의 직업에 충실해라는 충고이다. 또 언어만을 배우고 문학을 하려는 사람들은 아씨에게 청혼하다가 나중에 시녀에게 장가드는 꼴이 된다는 가르침도 있다. 중국인은 여유 있고 어느 정도는 한가롭게 생활을 꾸며가는 와중에 삶의 지혜로서의 육담문화를 즐겨왔다. 옛 사람들은 남자를 쉽게 유인하는 여자를 삼상(三上), 삼중(三中), 삼하(三下)로 분류하기도 한다. 삼상은 마상(馬上), 장상(墻上), 루상(樓上) 즉 말을 탄 여자, 담장 위 여자, 누각의 여자이다, 이 시각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얼굴을 내보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남자한테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삼중은 여중(旅中), 취중(醉中), 일중(日中) 즉 여관에 투숙한  여자, 취해 있는 여자, 햇빛에 있는 여자이다, 삼하는 월하(月下), 촉하(燭下), 염하(臁下)인데 달빛아래 여자, 촛불아래 여자, 발아래로 노출된 여자이다. 또 여자의 혼인은 바지 벗는 정도에 달렸다고 한다. 너무 일찍이 벗거나 늦게 벗으면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한다. ‘어부와 마귀 병’ 의 우화와도 같다는 것이다. 여인과 같은 어부가 첫해, 두 번째 해를 보내고 세 번째 해에 남자와 같은 마귀 병을 건져 올렸기에 어부에게 차려지는 것은 재난뿐이었다. 육담이지만 일상의 지혜가 돋보이는 것이다. 한 남자가 급한 나머지 여자화장실에 들어갔다. 일을 마치고 막 나가려는데 한 여사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황급한 그 여자가 소리쳤다. ‘여긴 여자용인데요“그러자 그 남자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이것도 여자용인데요.’육담도 시대에 따라 그 내용을 바꾸고 있어 사회의 일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젊은 남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집, 방(房)이며 여자애들이 신경을 많이 쓰는 것 역시 방이다.남자들은 여자의 유방(乳房)을 보고 여자들은 남자의 주방(住房)을 본다. 남자가 살림집이 없으면 왼눈 짓하는 여자도 없을 거고 여자도 유방이 없으면 남자와 같은 신세일 것이다.  ‘여자로 태어나니 정말로 좋다(做女人挺好)’ 부녀해방을 제창하는 남녀평등사회에서 귀가 아프게 듣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말뜻은 따로 해석되고 있다. 정(挺)은 ‘매우’라는 뜻이 있지만 또 ‘팽팽하다‘, ‘우뚝 솟다‘는 뜻도 있다. 호(好)는 좋다는 뜻이 있지만 또 지속되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做女人挺好‘를 다르게 해석하면 ’여인으로 태어났으니 (유방이) 팽팽하고, 솟아있게 하라‘이다. 또 ‘별로 큰 문제가 될 것 없다‘(沒甚麽大不了)는 괜찮다는 뜻으로 많이 풀이된다. 하지만 요즘 중국의 여자들이 자주 쓰는 이 말은 다른 뜻으로 풀이된다. ’크게 못할 것도 없다‘이다. 너 남자애들이 큰 유방을 원하지 않니? 그렇게 해주마. 돈을 팔면 안 될 것 없다는 ’오만‘한 태도이다.중국의 육담을 재미로 알면 작은 휴식은 될 것이다.
중국문화풍경 4444. 중국남성과 주방문화: 십년하동 십년하서(十年河東 十年河西)한국인에게 있어서 밥 짓고  반찬하고 부옄에서 떠도는 일은 ‘천부적’으로 여성의 몫으로 간주되어 왔다. 독신 남성을 제외하고 한 가정에서 정상적인 상황에서 부옄에 있는 남성을 거의 볼 수가 없다.  아마 한민족 남성의 특권이라 할 수도 있다.하지만 중국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큰 범위에서 볼 때 큰 호텔의 요리사는 남성이 절대부분이다. 부대의 경우 취사원은 거의 남성이다. 요리강습반에도 남학생이 대다수라 한다. 작은 가정으로 볼 때 중국인 남성이 요리하고 밥하는 것은 보통일이다. 중국인 남성은 집에서 요리하는 것을 부끄러움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응당한 일로, 또는 친구 앞에서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편이 짙다. 더욱이 아내가 생육을 한 후에는 남편들은 ‘알아서’ 부옄 담당이 되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자신들은 향수요, 예술이라 하군 한다.재미있는 분류가 있다. 남성을 두 가지로 나누는데 한 부류는 평생 주방에 들어오지 않는 남자, 다른 한 부류는 평생 주방에서 지내는 남자이다. 첫 부류는 남자는 쌀을 지어오고 여자는 밥을 짓는다는 수천 년의 전통습관을 고집하는 것이다. 한 친구가 있었다. 아내와 다투었는데 화난 아내는 그만 친정으로 가버렸다. 외아들과 같이 첫 몇 날은 외식하고, 하지만 마냥 그럴 수는 없어 후에는 라면으로 대충 얼버무렸다. 아들은 그래도 셈이 좀 들었는지라 두덜대면서도 아버지와 지냈다. 친정 간 아내는 더는 할 수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미웠지만 아들이 불쌍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인 중에서 이러한 남성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남자들은 두 번째 부류이다. 남자가 밥을 하고 요리하는 N 개 이유를 밝힌 글들을 보았다. 대충정리하면 여자지위 상승이 주되는 원인이다. 남자들은 ‘체면’을 살리기 위하여 각종 변명을 늘어놓는다. 가족을 사랑하기에, 아내를 아끼기에, 아내를 관심하기에, 또는 현대화 부옄이 남성을 흡인하기에, 미적 향수를 만끽할 수 있기에, 종종 변명 같은 이유를 늘려놓지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수천 년 여성들이 거의 부옄의 대명사로 살아왔으니 인젠 당신 남자들의 할 때가 왔다는 것, 사회적으로 여성파워가 커지고 취업, 수입 등 다 방면에서 남성보다 짝지지 않는 우세가 중국여성의 어깨에 힘을 주고 목가지에 핏줄을 세우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절반하늘이 아니라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우는 위염을 토할 때가 자주 있게 되는 것이다. 세월도 많이 변하여 중국의 여성들은 온순하고 말 잘 듣는 부드러운 남성을 선호하고 있다. 여성들의 입맛이 그러니 남성들은 거기에 맞추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래부터 집에서 아내가 1인자고 남편은 2인자인데 지금은 아이를 하나 키우다보니 그놈이 황제가 되어버렸고 남편은 2인자에서 3인자의 위치로 옮기는 재간밖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힘들고 기름내 맡고 봉사하는 부옄일을 도맡는 것이다. 그것도 ‘재간 있다’. ‘착하다’, ‘맛있다’라는 아내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니 말이다.
44    43. 중국인의 영원한 고수: 색 바래진 미인계(美人計) 댓글:  조회:1120  추천:20  2011-01-05
중국문화풍경 4343. 중국인의 영원한 고수: 색 바래진 미인계(美人計)《육도·문벌》(六韬 文伐)의 말이다.양기난신이미지 진미녀음성이혹지(养其乱臣以迷之,进美女淫声以惑之)뜻인즉 난신으로 상대를 미혹시키고 미녀을 바쳐 음탕한 웃음소리로 상대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한국인들도 익숙한 이야기이다. 중국 춘수시기 오나라 부차(夫差)와의 싸움에서 패한 월나라 꺼우잰(勾践-구천)은 와신상담 끝에 부차의 신임을 얻은 후 월나라로 돌아왔으며 최종 월나라를 멸하였고 부차는 자문(自刎)하는 비극을 맞아야 했다. 와신상담의 이야기는 한국인이 잘 아는 사자성구이고 꺼우잰에 관한 드라마도 한국에서 상영되었다. 하지만 와신상담만 갖고서 복수가 가능했을까?높게 나는 새는 먹이를 탐내 죽을 것이고 깊은 물속의 고기는 미끼로 인해 죽을 것이다. 여색이란 아편으로 부차를 ‘부식’시키는 미인계가 암암리에 시행되고 있었다. 시쓰 (西施-서시)와 쩡딴(鄭旦-정단), 얼굴을 싸쥐고 속앓이 하지만 아파하는 모습도 아름다워 동서가 흉까지 냈다는 중국4대미인 시쓰, 시쓰와  한 마을에서 태어나서 함께 자란 2년 연상인 미인 쩡딴은 부차의 눈을 흐리고 귀를 막고 국사를 망각하게 하는 천군만마와도 같았던 존재이며 어찌 보면 부차의 심장과 숨통에 박힌 두 자루의 비수였다. 아무리 미녀라도 한 명만 계속 상대하면 달이 가고 세월가면 싫증이 나기 마련이요, 둘을 상공하는 꺼우짼의 심사 또한 고사했을 것이다. 더욱이 시쓰를 내내 질투하는 쩡딴이니 말이다. 시간과 공간,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미인계는 항상 있었을 것이지만 중국에서처럼 1500년 전부터 명문으로 전해왔다는 것은 조금은 기이한 일이다. 한국인들은 중국의 삼십육계에서 미인계를 가장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불미스러운 말이지만 중국에서 한국 남자의 이미지는 좋은 평을 듣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국진출 초기인 지난 90년대에 심어준 이미지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사업에 실패했다면 처음으로 꼽는 것이 여색이라는 것이 중국인의 눈길이다. 그것도 그럴만하다. 한국의 이혼율이 세계적으로 높은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남성들의 중국에서의 성적 태도도 ‘유명 방탕’한 것이다. 현지처를 두고 조용히 생활하면 그래도 ‘양반’ 같은 처사이다. 하지만 이곳, 저곳 여색을 거치면서 돈으로 행사하다보니 중국에서 꼬이는 것이다.돈에 있어서 중국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 집착은 우리 민족을 초과한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맷돌을 돌리게 할 수 있다는 정도로 배금주의가 골수에 박혀있는 것이다. 돈만 주면 뭘 주저하겠는가? 또 돈을 빼낼 수 있는데 무얼 가리겠는가? 인구가 많은 만큼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을 거고 함정도 그만큼 깊고 많을 것이다. 눈 펀이 뜨고 뛰어드는데 원망은 웬 놈의 타령이야?
43    42. 중국인의 성서: 손자병법(孫子兵法)과 삼십육계(三十六計) 댓글:  조회:1172  추천:35  2010-12-30
중국문화풍경 4242. 중국인의 성서: 손자병법(孫子兵法)과 삼십육계(三十六計)성서(聖書)라 함은 조금은 과정 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중국문화, 중국인을 요해하는 데 있어서는 성서 이상으로 보편적 의미를 갖는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은 고대 중국의 병서로서 작자가 불명하다. 춘추시대 오나라 손무(孫武)가 쓴 것으로 그동안 널리 알려졌으며 한편 손무의 손자로서 전국시대 제나라의 전략가 손빈(孫臏)이 저자라는 설도 있었다. 또 손무는 손자병법을, 손빈은 손빈병법을 썼다는 학계의 추정이 있으며 한편 손무가 지었으나 그의 후손인 손빈에 이르러 완성했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손자병법이 중국인에게 그토록 중요했기에 책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무성한 것이다. 더욱이,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삼국사의 조조가 주해를 달았다는 것은 더욱 매력적이다. 2000여 년 전에 씌여진 손자병법은 현재 병서의 개념을 초월하여 사회전반에 그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국인들도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중국인의 일상에 손자병법 못지않게 영향을 행사하는 다른 한 책이 있는데 바로 삼십육계(三十六計)이다. 학문적 위치나 가치는 손자병법 보다는 떨어진다는 평이지만 일반 백성에게 있어서 삼십육계가 더욱 친절하고 실용적인 것이다. 중국인의 거의 모든 지혜, 꾀, 음모가 삼십육계에 모태를 두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즐겨 외우는 ‘묘수’는 삼십육계의 단어들이다. 차도살인(借刀殺人)-남의 손을 빌어 상대를 없애 버진다,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을 치는 것 같은 양상을 보이는 서쪽을 친다, 소리장도(笑裏藏刀)-진의를 숨기고 상대를 마비시키며 숨통을 찌르다, 격안관화(隔岸觀火)- 강 건너 멀리에서 불구경을 하면서 상대를 없애고 이득을 챙기다, 혼수모어(混水摸語)- 정세를 어지럽게 하여 판단을 흐리게 하면서 자기의 목적을 이루다, 타초경사(打草驚蛇) - 숨은 자를 뛰쳐나오게 하고는 기다렸다가 없애다 등은 한국인에게도 낯설지 않다. 제갈량이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성루에서 탄금하면서 연출한 공성계(공성계), 때리기를 원하고 맞기를 원하던 주유가 황개를 치는 고육계(고육계) 등 역시 삼십육계의 하나이다. 더욱이 ‘삼십육계 줄행랑’이란 말은 중국인들이 성장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삼십육계의 여섯 번째 패전계(敗戰計) 중 마지막 수인 주위상(走爲上)이다. 적아의 대치에서 열세에 처했을 때, 전세가 기울어 기고 있을 때, 상대와의 접전에서 손해만 있고 이득이 없을 때, 이번의 결전에서 망하면 다시는 동산재기(東山再起)할 수 없을 때, 줄행랑이 최고의 묘수이다. 세상이 다 아는 중국 모저우뚱(毛澤東-모택동), 주더어(朱德-주덕)의 홍군의 2만 5천 리 대장정, 기실은 2만 5천리 줄행랑이다, 장개석 정예부대가 모저우뚱의 연안을 공격해 오자 천하의 모저우뚱이 내민 카드 역시 줄행랑이다. ‘올 터면 오라. 군자는 간다.’는 식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2만 5천리의 줄행랑은 피동적인 것이고 연안에서의 줄행랑은 주동적인 것이다. 기이하게도 두 차례의 줄행랑은 모두 승리에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돈벌이에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가 된 중국 오늘날에 줄행랑은 각이한  중국인의 얼굴을 그려가고 있다, 사기꾼에게 있어서 줄행랑은 “최상‘의 안신지일 것이고 투자자나 기업에 있어서 기사회생의 결정적인 찬스일 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에게 있어서 줄행랑에 대한 추억은 아마 피투성 쪽이 많을 것이다. 중국 땅에서 투자하고 건물 짓고 공장 차리고 제품을 만드니 ’줄행랑‘이 한국인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고 보니 얼굴 맞대고 있던 상대가 한 수 더 뜰 수 있는 우세가 생기는 것이다. 유일한 대책이라면 일찍부터 상대가 줄행랑을 할 수 있는 조건이나 처지를 만들어 주지 않는 것이다.
42    41. 궁지에 몰린 중국인: 궁칙변 (窮則變) 댓글:  조회:978  추천:27  2010-12-30
중국문화풍경 4141. 궁지에 몰린 중국인: 궁칙변 (窮則變)‘궁칙변 (窮則變) 변칙통(變則通) 통칙령(通則灵)’궁지에 몰리면 변화를 꾀어야 하고, 변화가 있으면 통하기 마련이고, 통하면 여유가 생긴다.글깨나 읽은 중국사람 치고는 모를 수가 없다. 늘 듣는 말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모오저뚱(毛澤東-모택동) 전 주석이 입버릇처럼 외웠던 글발이다. 아마 모우의 이런 사고패턴이 호두(好斗)하는 그의 성격을 키웠을지도 모른다. 기실 이 말은 모우의 발명은 아니다. 주역에서 따온 것이다. 중국인들은 한국인처럼 주역 공부를 통하여 주역사상을 익히는 것 아니다. 많은 중국인은 주역을 읽지 않는다. 주역의 사상은 평소 무의식적인 전파를 통하여 보통 백성에게 뿌려지지만 그 생명력은 대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궁지에 몰리다.’- 중국인에게는 딱 맞는 표현이다. 그들 삶의 가장 생동한 역사의 표현이라 할 수도 있다. 늘 궁지에 몰려 쫓기고 허덕이고 굶주리고, 또 억압 받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 참 말이 아니었다. 외적에 몰리지 않으면 외족에 밀리고 그렇지 않으면 내전이 일고 자연재해에 쫓기고 늘 궁지의 몸이었다. 나라가 그 신세이니 백성도 따라갈 것이고 그러니 변화, 탈출의 꾀여야 했다. 살려고 하니 늘 머리를 짜가며 살길을 가늠해야 하고, 좋은 표현으로 말하면 지혜가 생기고 나쁜 표현을 쓰면 음모가 생기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신세라 정당한 수단으로는 상대를 이기지 못할 것은 불 보듯 명백한 일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궁지에 몰리지도 않을 것이고.화자는 지금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한국 사람은 대체로 곧은 성격이다. ‘하면 한다,’  ‘망하더라도 밀어붙인다.’  ‘한번 뺀 칼은 도로 집어넣지 않는다. 호박이래도 내리 찍어야지’ 하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살펴보면 대개 궁지에 몰린 상황은 아니었다. 모종의 ‘자존심’, 또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자아희생이다. 내란 사람이 이렇다는 것을 상대나 제3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중국인과의 다른 점이 뚜렷한 것이다.사유의 방식은 일상생활의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이 궁지에 몰려야만 그렇게 변화를 꾀한다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할 때도 한국인과 다른 그런 사유가 몸에 배인 것이다. 중국인 어느 누구도 자기가 주역의 뜻에 따라 사유한다고 느끼지 않아도 그렇게 사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중국 사람과 보통 5-6년, 길어서 10여 년을 접촉한 한국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느끼지 못할 것이고 설상 알고 느낀다 할지라도 그것을 한국인의 몸속에, 한국인의 냄새로 바꿀 수는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타민족의 문화가 내 몸에 배이게 하려면 우선 그 민족의 더러운 점, 악취까지 피부에 와 닿고 감지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면 그 민족의 우수성이 혜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1    40. 아문의 턱은 높아: 벼슬 '관' (官- 관)의 매력 댓글:  조회:1373  추천:23  2010-12-28
중국문화풍경 4040. 아문의 턱은 높아: 벼슬 ‘꽌‘ (官- 관)의 매력성인 쿵즈(孔子-공자)는 논어에서 연장자를 높이 모시고 권력자를 존경할 데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역시 군자가 지켜야 할 예절의 하나였다. 중국인은 권력, 벼슬에 대하여 존경하고 흠모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권력자를 우러러보며 권력을 숭배하는 심태를 대대로 이어가면서 가지고 있다. 옛적부터 중국인들이 벼슬을 사고파는 일이 종종 있었다. 돈이 있어 무엇 하겠는가? 벼슬이 있어야 얼굴에 빛이 나고 가문에 영광이 있다고 늘 생각하군 했다. 구관(求官)-벼슬을 구하기; 매관(賣官)-벼슬을 팔기란 말은 낯설지 않다. 지금은 이러한 현상이 거의 근절되었으나 중국인의 의식과 실생활에서 여전히 그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뒷짐을 쥐고 아랫배를 내밀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유유작작하게 걷는 모양을 일러 관보(官步)라고 한다. 벼슬아치의 걸음걸이란 뜻이다. 벼슬아치가 사주는 술은 관주(官酒), 벼슬아치 가 사주는 밥은 관반(官飯), 관반을 먹는 사람은 관복(官服)을 입었고 벼슬아치가 타는 차는 관차(官車)라 부른다. 또 눈길 사나운 벼슬아치를 욕하는 말로 관덕성(官德性)이 있다. 자그마한 벼슬아치처럼 폼을 잡는다는 비하의 말이다. 지금의 정부기관을 옛날에는 아문(衙門)이라 불렀다. 백성에게 있어서 아문은 감이 엄두도  내지 못하는 하늘 밖 세상이었다. 아문에 관한 말들을 살펴보면 퍽 재미가 있다. "一字进衙门,九牛二虎拔不出"   한 글자 공문이래도 관청에 들어만 가면 아홉 마리 소도 끌어내오지 못한다. '衙门的钱,下水的船'    관청에 먹인 돈은 물에 들어간 배와 같다. 건질 수 없는 것이다. 衙门口朝南开,有理无钱莫进来   관청의 문 남쪽으로 열려 있지만 돈이 없으면 도리가 있어도 들어오지 못한다. 衙门八字开,有理无钱莫进来   관청의 문 팔자로 쫙 열려 있어도 도리가 있더라도 돈이 없으면 들어오지 마라. 铁打的衙门,流水的官   철로 만든 아문이요 유수 같은 관리여라, 도리가 있어도 돈이 없으면 안 되고 돈이 있어도 '관계'가 없으면 아문의 문턱을 넘기가 힘들다. 소향무문(燒香無門) - 부처님께 향을 피여 올리려고 하여도 부처님이 계시는 문을 찾을 길 없는 것이다. 한숨 쉴 일밖에 남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관리나 벼슬아치를 허술한 존재로, 마구 욕하고 분풀이 하는 상대로 보는 것(한국에 있으면서 늘 이런 느낌을 받는다.)들이 더 짙은 노예성이 있다할까. 아니면 더 문명한 자질을 소유하고 있다 할까? 조금은 궁금하고 웃음이 나온다.
40    39. 허물없는 중국관료: 평역근인(平易近人) 댓글:  조회:1078  추천:29  2010-12-24
중국문화풍경 3939. 허물없는 중국관료: 평역근인(平易近人)얼핏 보면 모순되는 견해이다. 중국은 관료가 판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아직 민주와가 잘 되어있지 않고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관료의 힘은 ‘도장’에 있는 것이고 이러한 고충을 맛본 한국인, 특히 한국기업인들은 이 글을 보면서 쓴 체험을 되새기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사실인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관료는 관료가 아닌 백성에 대해서는 몹시 너그럽다. 특히 고위급 관리일수록 이러한 행실을 미덕으로 간주하고 있다.  ‘관불대 가자불소’(官不大 架子不小)라는 말도 있는데 그것은 하찮은, 볼꼴 없는 밑바닥 관리들을 비꼬는 말이다. 즈마관(芝麻官)-참깨만큼 큰 심부름꾼(관리)이 폼을 잡듯, 모두의 웃음거리밖에 못되는 못난이인 것이다.평역근인(平易近人)이란 아무런 틀도 없이, 보통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선다는 뜻이다. 이것은 중국 관료의 미덕으로서 이미 사업풍격의 하나로 정부에서 제창하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관료들은 백성에게 너그러우며 그렇지 아니하고 행패를 부린다거나 큰 소리 친다거나 하는 행위는 주변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되기 일수이다. 조소의 대상, 최저의 인격도 갖추지 못한, 앞날이 막막한 사람으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료와 관료가 마주서면 서로의 자존심을 세우지만 일단 백성과 마주서면 어른의 자태로 베푸는 것을 기쁨을 생각한다. 도리는 간단하다. 물은 배를 뜨게 할 수도 있고 또 배를 뒤엎어 침몰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리는 배고 백성은 물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관리를 일러서 부모관(父母官)이라 종종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즉 관리는 자식을 보살피는 부모와 같다는 것이다. 또 중앙정부로부터 관리들이나 공무원에게 공복(公僕)의식을 대대적으로 심어주고 있다. 기관의 공공장소에 가면 벽이나 대형표어에 써놓은 인민의 공복이란 글자를 쉽게 보게 되는 것이다. 중국 대표적인 문인 루슌(魯迅-노신)도 ‘부수감위유자우(俯首敢爲儒子牛)- 머리를 숙이고 달갑게 시민의 소가 되겠다는 명구절을 남기었다. 또 70년대 중국에서 유행했던 유화 한 점이 있었다. 논두렁에서 현위서기와 농부가 마주치게 되었는데 현위서기는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논두렁 아래 진흙탕에 서서 농부에게 길을 내주고 있는 모습이다. 관료의 소탈하고 특세 없는 공복의 한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관료는 중국의 백성들 사이에서 언제나 흠모의 대상이며 ‘관’자는 백성들에게 영원히 매력적인 것이다. 돈보다는 관을 더 따르는 중국인의 습성, 같은 술을 사도 관에서 사면 관주(官酒)가 되는 법, 관주를 마신다는 것은 기분이 절잖게 좋아지는 것이다. 그 술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말이다.
중국문화풍경 3838. 중국인의 심오함: 바닷물을 어찌 두로 가늠하랴(海不可斗量) 사진 38(사마천) 설명: <사기>열전의 맨 앞에 나오는 '백이열전', 백이와 숙제는 분명 의인이었건만 하늘은 무심하게 그들을 굶어죽게 만들었다.  남송시대 이당이 그린 <채미도>, 수양산속의 백이와 숙제,  곁에 고사리를 캐어 담은 바구니가 보인다. 한국인이 중국에 얼마동안 머무르게 되었다. 친구들과 한 주점을 자주 다니게 되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 중국인과 자주 만나게 되었고 점차 익숙해지면서 내왕하게 되었다. 별다른 사연은 없었다. 그저 함께 만나 한담하고 가끔 술을 서로 사면서 지내는 사이었다. 그 중국인은 너무도 평범했었다. 그래서 더욱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한국 친구는 대단히 놀랐다고 한다. 볼 데 없이 평범한 그 중국인이 기실은 중국 어느 엄청나게 큰 국영회사의 부총재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옆 사람이 말해준 덕분에 알았다는 것이다. 한국 같아서는 도저히 접촉할 기회도 거의 없을 그런 중량급 인물이었다.중국에서 흔히 있는 경우이다. 누추한 옷차림의 할머니가 백만장자일수도 있고 한가히 차물을 마시면서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사람이 고위직에 근무하는 거물일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있겠지만 중국에서 더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즉 인불가모시(人不可貌視)-사람은 곁 모습을 보고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해불가두량(海不可斗量)-바닷물을 어찌 두로 가늠하랴.중국 사람을 알려면 심오한 철리나 역사적 기원을 알려는 노력이 일반 한국 국민에게는 지나친 ‘사치’일 것이다. 이웃나라라고 하지만 필경은 딴 나라이고 동양의 문화권이라 하지만 필경은 타민족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에서 한자를 사용한다지만 필경 제한적으로 배우고 있으며 또 고전을 읽기에는 너무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제체 놓고, 중국인을 알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중국인의 소박함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 소박함에서 중국인의 인내성이 유래되고 소박하기에 내성적이고 자신을 숨기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다. 이에 따라는 것이 말보다는 생각이 앞서고 생각에는 깊이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고 보면 중국인의 성격이 형성되고 독특한 매력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반면으로는 똑같이 독특한  열근성이 따라다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것이다. 중국인의 회식장에서 직위의 상하관계를 확인한다는 것은 한국인을 치고는 어느 정도의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중국인들의 ‘평등‘ 개념은 한국인보다 보편적이고 짙다. 특히 술좌석에서 상하관계보다는 연상영하의 관계로 술판이 돌아가는 것이다. 일반 기사라도 국장님과 똑같은 상에 앉아서 식사하고 술 마실 수 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화애하고 평등한 분위기인 것이다. 기사라 하여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며 국장도 이 모든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상사 앞에서 자기변명도 제대로 못하는 한국인과는 크게 대조되는 대목인 것이다. 평역근인(平易近人)이란 단어를 익숙히 할 필요가 있다.
38    37. 자신을 숨기는 지혜: 대지약우(大智若愚) 댓글:  조회:1506  추천:28  2010-12-20
중국문화풍경 3737.  자신을 숨기는 지혜: 대지약우(大智若愚)한국에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중국의 역사, 철학 고전들이 많이 출간되고 또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그 책들을 읽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 생각 같아서는 중국 사람보다도 한국인이 더 집착하면서 읽는 것이다. 좋은 일이라 기쁘게 생각한다. 공자, 맹자보다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겠지만 원만한 한국인이라면 노자를 알거나 들은 적 있을 것이다. 로즈(老子-노자)는 중국고대철학의 개척자로서 성은 이(李)씨이고 이름은 이(耳), 초나라 고현(苦縣, 현 鹿芭縣)사람이며 약 기원전 571-471년에 생활하였고 유작으로는 도교의 경전으로 꼽히는 《5천문》, 즉 《도덕경》, 《노자》가 있다, 《5천문》은 일본, 독일, 구 소련, 영국 등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미국 ‘뉴욕시보’는 세계10대 고대작가의 첫 사람으로 로즈를 뽑았다. 대지약우(大智若愚)란 단어는 송나라 팔대문호의 한사람 쑤쓰(蘇軾-소식)에 의해 쓰여졌지만 원뜻, 어원은 로즈가 말한 것이다. ‘대음희성, 대상무형(大音希聲, 大象無形)’인 것이다. 너무 큰 음은 소리로 안 들리고 너무 큰 상은 형이 없는 것이다. 그런즉 지나치게 큰 지혜는 우둔해 보이는 것이다. 중국인의 극진한 지혜의 결정(結晶)이다. 지혜가 넘치기에 앞장서서 얼굴을 나타내지 않으며 예봉을 피하는 것이다. 머리 내민 새가 총알을 먼저 받으니 말이다. 지자가 지인을 알아본다고 은둔하고 참고 있으면 찾아올 지자는 있는 법, 와룡 제갈량의 식이다. 지혜가 넘치니 사소한 일은 무시할 것이고 자신의 사유대로 세상을 인지하니 일상의 법칙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거고 그러니 중요시하지 않을 것이요. 보통사람이 보기에는 우둔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대지약우, ‘대지’가 아니더라도 ‘약우’ 행세하면서 자신의 참뜻을 숨기면서 야심을 이루는 이도 적지 않다. 타이완(臺灣-대만) 리떵휘이(李登輝-이등휘)는 쟝징궈어(蔣經國-장경국) 시기 자신을 둔재로 낮추며 곧잘 은신하였다. 보고를 들여도 소파가 아닌 딱딱한 의자에 앉는 것으로 자신을 낮추었으며 고개를 깊이 숙인 채 가능한 비굴한 제세를 취하면서 ‘옳은 말씀입니다’를 반복하군 했다는 일화가 있다. 권력의 쟁탈에서 뒤로 물러서며 ‘약우’ 처사한 것이다. 허나 훗날 대통령이 된 자는 바로 그 약우 리떵휘였다. 성인에서 권력자, 나아가 일반 백성에게까지도 이러한 사유방식은 자리 잡고 있다. 좋은 뜻으로는 허회약곡(虚怀若谷)-계곡처럼 넓고-이고 나쁜 의미로는 장풍매사(裝瘋賣傻)-팔부처럼 꾸민다. -이다. 허심한 흉금에는 계곡같이 깊은 바다라도 품을 만한 지혜가 꿈틀거리는 것이요, 일상에선 늘 겸손하고 한발 뒤로 물러나서 인간사를 바라보는 지혜를 가지는 것이다. 잘 살펴보면 중국인들은 앞장서기 좋아하지 않는다. 장거리 뛰는 육상선수처럼 두 번째, 세 번째 위치에서 달리기를  즐기는 것이다. 미친것처럼 자신을 위장하고 바보짓을 하면서 대방을 미혹시키는 것이다. 먼 옛날로 치면 위대한 스마챈(司馬遷-사마천)이 있고 가까운 현대에는 충칭(중경-중경) 중미합작소 감옥에서의 중공당의 투쟁을 묘사한 유명 보고문학  ‘훙얜(紅岩-홍암) "의 쉬원펑(许云峰-허운봉) 씨일 것이다. ’훙얜'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10여 가지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발행부수가 천만 부를 넘으면서 중국 당, 현대장편소설의 발행기록을 세웠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 ‘열화 속에서 영생(在烈火中永生)’, 가극 ‘강 누나(江姐)’, 화극 ‘붉은 바위(红岩)’가 제작되었다. ‘대지약우’, 실로 좋은 말이다.  사람은 얼굴만 보고 판단할 바가 못 되는 것이다.
37    36. 벌레 같은 인간: 저삼하사(低三下四) 댓글:  조회:1191  추천:30  2010-12-14
중국문화풍경 3636. 벌레 같은 인간: 저삼하사(低三下四)흔히 우리는 자신의 주장이 없고 아첨에 능하며 늘 바람처럼 흔들리는 갈대 같은 인간들을 놓고 무골충 또는 벌레 같은 인간이라고 비웃는다. 불행하게도 현실에서 이러한 인간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벌레라함은 땅 위에서 기어다니는, 더 이상 추락할 여지도 없는 최악의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어로는 저삼하사(低三下四)라는 성구가 알맞은 해석이다. 낮은 저(低), 하(下) 역시 아래라는 듯, 삼(三)과 사(四)는 숫자의 의미를 떠나 양적으로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 그렇게 인간을 저삼하사하는 무골충으로 만드는 것인가? 더욱이 중국인을.중국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살펴보자. 중국의 조선족은 자식을 중국어학교에 입학시키는 일이 종종 있다. 심하게는 유치원 때부터 중국인 유치원에 보낸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중국어에 익숙하지 못하면 사회진출한 후 푸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조선족 학교에서 배운 중국어와 중국인 학교에서 배운 중국어는 차이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타자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문제는 중국인 학교에서 괴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학교에서 생활하노라면 종종 선생님의 꾸중을 듣게 된다. 이상한 것은 선생님의 꾸짖음에 대꾸하는 학생은 십상 팔구는 조선족학생이다. 한족학생이 선생님께 대드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한족학생은 우리 조선족학생보다 보통 체구가 더 크다. 그리고 평소에도 말썽을 많이 부리지만 선생님에 대해서마는 백의백순이다.  한국에 와서도 같은 느낌이 있다. 심지어 느낌이 더욱 심한 것 같다. 학부형들이 무리지어 학교에 찾아와서 해당 선생을 ‘폭행’하는 장면까지 뉴스에 종종 잡힌다. 학생을 학대했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이다. 듣고나면 그렇게 야단칠만한 대단한 일은 아닌 것이다. 우리 조선족이나 한국인은 피 속에 그 무슨 똑같은, 어떠한 ‘성분’이 공유된 것 같다.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 가지 이유, 권력에 대한 태도이다. 중국에서 금전은 엄청난 마력을 갖고 있다. 특히 현 단계에서 민주화적인 법이 건설 중에 있고 여러 구석구석에서 아직도 법보다는 금전이 통하는 사례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금전보다 더 중한 것이 있다, 곧 권력이다. 권력 앞에서는 억만 부자도 저삼하사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 많은 사람들은 권력을 비웃는 폐단이 있으며 권력자를 경멸하는 ‘풍습’이 있다, 한국에는 대통령을 마음대로 비웃고 욕하고 심지어 **새끼라는 인격모욕까지 서슴치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권력을 숭배하며 권력자를 존경하고 우러러 본다. 권력자 앞에서 저삼하사하는 것을 추악한 것으로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출세의 수단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필수수양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드리는 것이다.저삼하사하(低三下四)는 사람이 우리들이 늘 말하는 소인인가? 무골충인가? 노자는 대지약우(大智若愚)라 하였다. 큰 지혜는 일반인이 보기에는 우매한 것 같다는 뜻으로 풀이 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지혜인 것이다.
중국문화풍경3535. 차마 웃는 낯에 침 뱉겠니?  이화위귀(以和爲貴)와 외유내강(外柔內剛)중국인들의 첫 인상은 대체로 친화하다. 별 탈 없는데 얼굴을 내리 깔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해치러 온 것도 아니고, 또 ‘이화위귀(以和爲貴)’를 신조처럼 받드는 이들이 꽤나 많은 것이다. 서로의 화목을 도모하는 것이 가장 좋은 처세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중국인은 유연하게 보일 때가 많다. 꺾이지 않으려면 참대처럼 유연해야 할 것이다. ‘유’를 말하려면 한국인들이 가장 쉽게 받아 들릴 수 있는 것은 타이지쵄(太極拳-태극권)이다. 때로는 중국인의 만만디 성격으로 비유도 되는 바로 그것이다. 설상 중국에 다녀온 적 없어도 중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하여 태극권을 어느 정도는 알 것이다. 중국 도시민들이 길가나 공원에서 혼자 또는 집단으로 태극권을 연습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남녀노소가 직위고저를 막론하고 즐기는 운동이다. 한국의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짜장면 정도라 하겠다. 태극권도 알고 보면 역사가 오래되고 유파도 엄청 많은 것이다. 중국 명나라 말기에 허난(河南-하남)성 원(溫-온)현의 천쟈거우(陳家溝-진가구)에서 천식 태극권이 발원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300-400년의 역사가 된다는 것이다. 또 양(楊)식 태극권, 우(武)식 태극권, 쑨(孫)식 태극권, 우(吳)식 태극권, 훙(洪)식 태극권, 리이(李)식 태극권, 허(和)식 태극권 등 20여 유파가 있다. 무술영화 ‘짱산펑(張三豊-장삼풍)에서 보여준 것은 짱산펑 태극권인 것이다. 중국 무술성지의 하나로 꼽히는 우땅(武當-무당)산에는 우땅 태극권이 발원되기도 하였다. 다시 한마디로 묶으면 중국인의 유는 오랜 형성의 시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일조일석에 변할 수 없는 것이다. 태극권은 유(柔)의 전형적인 조화이다. 태극권의 수련요령은 ‘화경위유(化硬爲柔)‘-강하고 탄탄한 것을 유하고 연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유‘를 통하여 최고경계에 달하는 것이다. 즉 “불욕(不慾)-욕망이 없어진다고 한다. ”무위이무소불위(無爲而無所不爲“-노자의 말이다. 욕망이 사라지면 못 이루는 일 없다.그렇듯 물이 흐르듯 유연하고 율동적이며 신중한 동작을 강조하는, 전민 신체 조련으로 흥행하는 태극권이 공격과 방어의 권법으로도 이용되는 것은 꽤나 신기한 일이다. 태극권을 알고 중국인의 ‘외유내강’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감이 잡힐 것이다. 고의적으로 상대에게 자신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문화 환경에서 이미 그러한 자질이 굳어진 것이다. 강한 중국인, 하지만 ‘저삼하사(低三下四)’-종대 없는 인간도 있기 마련이다.
중국문화풍경 3434. 고집불통 중국인; 죽어도 참회하지 않는 ‘사불개회’(死不改悔)   40대 중반 중국인은 아마도 ‘사불개회(死不改悔)‘에 대하여 여러 번 들었을 것이다. 문화대혁명 기간 당시 중국국가 주석인 유소우치(劉少奇 유소기)에 대한 중공당의 ’판결‘은 ’사불개회‘ 즉 죽어도 참회하지 않는 ’당권파‘-집권자이다. 약 10년 뒤, ’사불개회’는 다시금 중국의 대륙에서 재생을 얻어 그 ‘위엄’을 중국 백성에게 선보였다. 지금 중국 개혁개방 총설계사로 존대 받는 떵소우핑(鄧小平-등소평) 당시 부총리에 대한 ‘평판’이다.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 중국 총리가 병환에 시달리며 마지막 길을 다투는 시기였음으로 떵 부총리가 국무원의 일상 사무를 총관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떵소우핑은 다시 한번 운명의 시달림에 모대기게 되었으며 사상 ‘사인방’이라고 칭하는  모우저우뚱(毛澤東-모택동)주석의 부인 쟝칭 (江靑-강청)집단에 의해서 ‘사불개회’하는 ‘자조파’-자본주의 길로 나가는 집단이라는 ‘모자’를 쓰게 되었다. 아마 상대에 대한 가장 적절한 평가라고 생각되었기에 ‘사불개회’가 이렇듯 총애를 받았을 것이다.정치권의 권력자들이 이러는가 하면 평민백성도 이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불인착’(死不認錯“-죽어도 잘못을 승인하지 않는다는 사자성어가 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자기행위의 정당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 원인으로 주요하게 ‘자아개념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부조화’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인의 이러한 ‘사불인착’은 그러한 심리적 각도에서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잘못을 구지 정당화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잘못한 일은 내가 알고 처리하는 것이지 구지 옆에서 잘못했다고 떠들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내 일하는 반경-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며  나의 자존심을 짓밟는 무리한 일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속으로 잘못을 뻔히 알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죽어도 승인을 하지 않는, 이로 인하여 내가 불이익을 당할 수 있고 그리고 불이익을 당할지라도 그것은 나의 자존심에 비하면 새발에 피라는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중국인은 남의 시스템에 휩쓸리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좋으나 나쁘나 나식대로, 나만의 영역에서 내가 왕이 되어 즐기며 부족하더라도 나의 시스템을 유지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사유, 생활 시스템에 아무리 좋은 뜻에서 ‘조언’하더라도 조언자는 호박 쓰고 돼지우리 들어가는 격이다.  중국인하고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가 아니라면.개인의 이러한 사유는 국가의 의식형태에서도 나타난다. ‘중국식 사회주의’이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한국인들은 아마 혼돈이 생길 것이다. 무슨 뜻인가? 사회주의가 아니란 말인가? 그러면 자본주의다? 그런 같지도 않다, 자본주의면 자본주의라 해야겠는데...중국인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들을 따르는 것이 상책이다. 따르다 보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진짜로 고집불통, 곁으로는 유연한 것 같지만 속은 강해-외유내강(外柔內剛)이다,
34    33. 중국인의 윤리와 성해방 댓글:  조회:1265  추천:33  2010-11-29
중국문화풍경 3333. 중국인의 윤리와 성해방중국인은 성(性)을 신비롭게 생각하였고 성에 대하여 극히 제한하여왔으며 공자의 전통적인 유교예의도덕이 사회생활을 수천 년간 지배하여 왔다. 성은 신성한 것이며 가족과 사회, 책임과 의무와 연결되어 있었다.중공당은 건국 후 기생집과 매춘을 역사의 무대에서 지워버렸다. 그 당시 누가 불륜의 관계를 저질렀다면 그 사람은 만인의 저주대상으로 되며 관직을 잃고 출세의 길도 막히게 된다.  큰 길을 지나가는 쥐의 신세가 되어버린다. 어느 때부터인지 중국인의 윤리에는 변화가 생기였다. 금전의 힘이 막강해지고 자아실현과 자아가치가 지나치게 언급되면서부터 가정에 관한 개념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으며 독신주의가 대두하였다. 경제의 독립과 더불어 결혼을 마다하는 새로운 계층이 형성된 것이다.이를 동반하여 성에 대한 전통 관념이 무너지고 있었다. 순결성은 망각의 늪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성은 일종 본능의 만족, 남녀의 순간 즐거움의 방식으로 재정의 되고 있었다. 탈태완골(脫胎換骨)한 것이다. 창녀가 빛도 들지 않는 구석에서 꿈틀거렸고 허무한 사람들은 이녀들을 찾아 교역을 하고 있었다. 중국사회의 비밀이 아닌 비밀인 것이다.불륜 또는 혼외정사는 더는 격렬한 비난을 받지 않는다. 혼인은 책임감보다는 사랑이 앞서야 한다는 논리에서 적지 않은 사람은 혼외정사에 이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성해방에 대한 묵인이다. 지금 세대들에게 과거 불륜관계를 저지른 여자는 직장에서 쫓겨나고 동네에서 고립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고 아마 먼 옛날의 천방야담으로 들을 것이다.현재 중국에는 핸드폰 소지자가 4억 명이다. 그리고 인터넷이 보급되어 있다. 이는 성해방에 촉매제가 된 셈이다. 남녀는 핸드폰으로 쉽게 연계하고 또 인터넷 화상을 통하여 상대를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으며 즐길 수 있다. 독신들은 혼인에 대하여 거의 이야기하지 않으며 연인들도 앞날에 대하여 말하기를 꺼린다. 한편으로 부유한 계층은 향수의 즐거움으로 가정을 초월하여 성을 소유하고 금전의 힘을 과시하면서 자기가치, 사업의 성취에 대한 보상과 만족을 느끼고 있다.  다른 한편은 사회에 대한 불안감과 자신의 진로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하여 가정이란 보금자리를 요원한 미래로 상각하고 있으며 따라서 독신이나 장기적인 동거 나아가 하루살이 신세를 얻게 된다. 요즘 중국의 적지 않은 대학교학생들은 ‘일주일 주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만나고 이야기하고 데이트하고 하루 밤 자고 감정을 정리하고 갈라지는 것이다. 이 주기가 딱 일주일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생활방식이라고 자칭한다. 하지만 이에 따른 허다한 사회문제는 급속히 해결하여야 할 난제로 그대로 남아있다.
33    32. 중국 차 즐기기: 차 마셔서 날씬하냐? 댓글:  조회:1453  추천:27  2010-11-25
중국문화풍경 3232. 중국 차 즐기기: 차 마셔서 날씬하냐?  중국인은 차(茶)에 중독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집에서 마실 뿐만 아니라 출장길에서도 차와 컵은 가방에 넣고 다닌다. 하지만 차나 찻잔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유리통조림 병을 사용하거나 싸구려 물컵을 찻잔으로 몇 년이고 그대로 쓴다. 차를 지루하게 마시여 찻잔에 차 때가 낄 정도이다. 기차를 타면 500ml 크기의 물병에 차물을 몇 고부씩 마시는 것은 보통일이다. 그러기에 중국열차는 백성에게 서비스하는 차원에서 끓인 물을 무료로 꼭 공급한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목격했다. 라면을 산 승객에게만 끓인 물을 주는 것을 몇 번 보았다. 역시 상업적이었다. 중국에서 차는 5000 여 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발원지는 대만과 가까운 푸짼(福建-복건)성이다. 차란 일반적으로 동백나무과의 차나무에서 어린잎을 따 가공하여 만든 차 덩어리를 말한다. 당나라에 이르러 차를 마시는 풍조가 유행되었고 당시 차 세금을 징수할 정도였으니 그 호황을 상상할 수 있다. 그 후 차는 중국인의 일상생활의 한 구석을 점점 채워가게 되였다. 중국인은 생활의 필수조건으로 7가지를 꼽는데 그중 하나가 차이다. 술은 홀로 마실 수 없으나 차는 온종일 홀로 마시며 음미할 수 있는 것이다.차는 발효정도에 따라 구분되는데 불 발효는 리위차(綠茶-녹차)가 대표적이고 반 발효는 우룽차(烏龍茶-오용차)가 대표적이며 완전발효는 훙차(紅茶-홍차)가 대표적이다.중국에는 10대 명차가 있다. 우리가 늘 접촉하는 차는 저쟝(浙江-절강)성의 시후룽징(西湖龍井-서호용정), 안휘이(安徽)성의 황산모펑(黃山毛峰-황산모봉), 치먼훙차(祈門紅茶-기문홍차), 푸짼(福建-복건)성의 안시테꽌인(安溪鐵觀音-안계철관음) 등이 있다. 삼국지의 류뻬이(劉備-유비)가 2년 간 돗자리와 발을 만들어 모은 돈으로 노모에게 차 한 통을 사드렸다는 일화가 있듯이 당시 차는 값이 비쌌다. 지금도 고급차는 가격이 상당이 높다. 중국백성은 종이나 비닐주머니로 포장한 저렴한 녹차를 즐겨 마신다. 생활적으로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 차물은 꼭 끓인 물을 사용한다. 찻잎이 잠길 정도로 물을 부으며 찻잎이 좀 불어나면 재차 물을 가득 붓는다. 첫 잔을 마신 후 다시 물을 부은 두 번째 차물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중국차는 선물용으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화차(花茶)를 선물하는 것은 좀 실례되는 일이다.  화차는 녹차를 만들고 남은 향이 없는 찌꺼기에 꽃을 넣어서 꽃의 향기로 맛을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일본인들은 중국인들이 우룽차를 마시기에 몸이 날씬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룽차 보다는 녹차를 마시기 때문인 것이다.
주성화의 중국문화풍경 3131. 중국인의 손님접대와 음주예절: 복제할 수 없는 모오타이쥬(茅台酒-모태주)  중국인은 귀한 손님에게는 식사를 청하며 때론 자기 집에 모시기도 한다. 음식은 될수록 푼푼히 준비한다. 음식이 남는 것을 호객의 표현으로 생각하고 있다. 요리의 가지 수는 짝을 이루며  홀수는 될수록 삼가 한다. 주빈은 주인의 왼쪽 편에 앉는 것이 통례이다. 코스 메뉴는 주인의 왼쪽 주빈부터 서브하고 그 다음 주인에게 서브하는 순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주인은 수시로 주빈에게 음식을 집어준다. 배려의 뜻이다. 물고기가 오를 경우 머리는 항상 주빈 쪽으로 향한다. 어떤 지방에서는 물고기의 머리와 꼬리가 향한 사람끼리 함께 한잔을 굽 내는 풍습도 있다. 한잔을 더 권하는 것으로 주빈에 대한 성의를 다시 한번 표시한다. 생선을 먹을 때는 뒤엎는 것을 삼가야 한다. 특히 연해지역에서 음식을 들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고기의 윗면을 먹고 뒤번지는 것을 중국어로 판(翻-번)이라고 하는데 이는 배가 뒤집어진다는 판촨(翻船)을 연상시킴으로서 어부들에게는 불길함을 뜻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젓가락으로 고기 등뼈를 집어내는 것이 관례이다. 중국 사람은 식사 전에 술을 드는 습관이 있다. 보통 빠이쥬(白酒-백주), 빠이깔(白乾-백간)이라고도 한다. 한국인들이 말하는 소주와 같다, 하지만 중국의 빠이쥬는 곡주이고 한국의 소주는 화학주이다. 본질적 차이가 있다. 또 빠이쥬는 알콜농도가 36-38도가 보통이다. 한국의 19-20도의 소주와는 틀리다.  중국에는 4500여 종의 빠이쥬가 있다. 모우타이(茅台-모태)주는 국주(國酒)로서 중국의 제1주로 평 받고 있으며 뀌저우(貴州-귀주)성에서 생산한다. 53도, 양조과정은 5년, 300여 종의 향으로 빚어진다. 1915년 모우타이술은 파나마 국제박람회에서 금상을 얻었다. 1935년 6월 모우타이진을 점령한 홍군은 당시 백성으로부터 소량의 모우타이술을 샀으며 술을 마이는 사람은 조금씩 마시고 다른 사람들은 물통에 담았다가 장정 때 모우타이술로 발을 닦았는데 효과가 기이했다고 한다. 쓰촨(四川-사천)성 우량예이(五粮液-오량액)는 5곡으로 양조되었으며 중국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고 싼시(陝西-섬서)성에는 시이펑(西風-서풍)이 있으며 안휘이(安徽-안휘)성 구징꿍쥬우(古井貢酒-고정공주)는 한우띠(漢武帝-한무제)에게 조공을 올린 술이고 뚱쥬우(董酒-동주)는 130종의 약재를 첨가하여 만들었다. 1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싼시(山西-산서)성 펀쥬우(汾酒-분주)는 청향형에 속하며 조조가 즐겼다던 뚜캉(杜康-두강)은 허난(河南-하남)성에 생산지를 두고 있다. 중국의 명주는 50도, 심지어 60도 이상이 대부분이다.중국인이 술을 권하는 풍속은 한국인과 많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주인이 먼저 세 잔을 권한다. 번마다 권하는 이유를 말한다. 축하, 희망, 안부의 말을 많이 한다. 주빈은 술좌석의 기분이 흥성한 후 술을 권하는 것이 통례이다. 사전 주인의 ‘승낙’을 받는 것이 예의적이다. 중국인은 술잔이 고르면 첨잔한다. 꽉 차있는 만(滿)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술잔을 돌리지 않는다. 깐뻬이(干杯-건배)라고 하면서 술을 권하는데 한국의 ‘원쌋’란 뜻과 같다. 술을 들 때 서로 잔을 부딪치는데 후배는 잔을 아래로 대는 것이 예절이다.  
31    30. 중국인의 하루 세끼와 명절음식 댓글:  조회:1246  추천:35  2010-11-03
주성화의 중국문화풍경 30 30. 중국인의 하루 세끼와 명절음식중국인은 먹는 것을 중요시하지만 평소의 하루 세끼는 극히 간소하다. 아침식사는 출근길에서 노점이나 작은 식당에서 대충 먹는다. 일반적으로 좁쌀죽이나 입쌀 죽, 콩물, 유툐(油條), 만두, 칭팡(靑方-청방), 짜차이(搾菜, 절인 반찬)등으로 때운다. 북방사람은 만터우(饅頭-만두), 짜차이, 죽을 주식으로 하며 큰 도시에서는 유툐, 튀긴 밀가루 전병, 뽀즈(包子) 그리고 떠우루우(豆乳-두유)를 사서 먹는다. 만터우는 한국인이 말하는 만두와는 다르다. 한국인들이 말하는 만두는 중국의 뽀즈(包子)인 것이다. 만터우는 밀가루를 조금 발효하여 속없이 만든다. 북방 중국인의 주식이다. 북방인들은 쌀밥을 먹으면 인츰 배가 곱아진다면서  밀가루를 즐겨 먹는다. 특히 체력일을 하는 경우 더욱 그렇다. 절강사람들은 전날 밥을 물에 말아서 짜차이와 함께 먹는다. 상해사람은 가장 값이 싼 양춘면을 먹는다. 광동사람은 쪼오차(早茶)를 먹는다. 마시는 차가 아니라 짜차이, 뽀즈와 과자류, 죽 등을 포함한 아침식사이다. 서부사람은 양고기 삶은 국물에 전병을 넣고 조미료를 넣어서 조린 마늘과 함께 먹는다. 점심은 더욱 간단하게 먹는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국수를 먹는 경우가 많다, 또는 쌀밥 혹은 뽀즈(한국인이 말하는 만두)를 먹는다. 반찬은 만들지 않으며 국물을 해서 마신다. 저녁은 비교적 풍성하게 차린다. 요리도 한, 두 가지 정도 볶고 주식 외에 부식을 준비하군 한다. 중국인은 여러 가지 명절을 쇠나 춘절, 즉 구정을 가장 큰 명절로 알고 있다. 중국인의 춘절은 음력 초하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음력 12월 23일부터 시작된다. 이날은 부옄신이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라고 한다. 춘절 전날 자정에는 온 집식구가 모여앉아 죠즈(교자)를 먹는다. 한국인이 말하는 만두는 기실 죠즈와 가장 가깝다. 죠즈는 당나라의 시안(西安-서안)에서 생겨난 것으로 알려진다. 설 전날 밤까지 잠을 자지 않는 중국인은 묵은 자시(子時, 밤 12시를 가리킴)를 보낸다는 죠즈(交子)와 발음이 비슷한 죠즈(餃子)를 대표적인 설날 음식으로 간주한다. 묵은해와 새해가 교체된다는 뜻이다. 설날아침에 먹는 죠즈는 ‘갱세교자(更歲餃子)’라고 하는데 죠즈를 먹어야 진짜 한 살을 먹는다는 풍속을 따른 것이다. 죠즈는 그 모양이 청나라의 말굽 모양의 은화와 비슷하기에 금전운을 상징하기도 한다. 말굽은은 한국 최초의 은화인 대동은전의 원료로 쓰여졌다고도 전해졌다. 만두가 고려시대에 일반음식으로 한국에 등장하였다는 기록이 《영접도감의 궤》에 남아있다. 당시 찐빵에 가까운 ‘쐉화(霜花-상화)’ 또는 ‘촹화(床花-상화)’로 불리였다. 중국의 음식이 한국에 끼친 영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30    29. 먹어서 가난한 나라: 중국의 4대 요리(3) 댓글:  조회:1809  추천:27  2010-10-25
주성화의 중국문화풍경 2929. 먹어서 가난한 나라: 중국의 4대 요리(3) ‘먹는 것은 꽝뚱(廣東-광동)에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지역은 옛적부터 요리가 상당히 발달한 곳이다. 특히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꽝뚱요리가 외국에 널리 알려져 중국요리하면 꽝뚱요리로 생각되었을 정도이다. 특히 꽝저우(廣州)는 16세기에 스페인, 포르투갈의 선교사, 상인들이 많이 왕래하였기에 일찍부터 꽝뚱요리를  천하제일이라고 칭찬하였다. 꽝뚱요리는 부드럽고 담백하며 기름지지만 입맛이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상어지느러미, 제비집, 녹용 등 특수재료를 이용하고 뱀, 쥐, 개, 원숭이 등을 이용한 요리가 유명하다. 또 서구요리의 영향을 받아 쇠고기, 서양 야채, 도마도 케첩, 우스터 소스 등 서양요리의 재료와 조미료를 받아들인 요리도 있으며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가 많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탕수이러우(糖水肉-탕수육), 빠뽀우차이 (八宝菜-팔보채)가 바로 꽝뚱요리이다. 이름난 음식으로는 뱀과 고양이, 닭을 주재료로 한 룽후떠우(龙虎斗-용호투), 서차이(蛇菜-사채, 뱀 요리), 구운 돼지고기인 차소우(叉烧-차소), 어린 통돼지구이인 피러우루주(皮乳猪-피유돈, 파인애플과 고기를 탕수소스에 넣고 볶은 요리), 상어지느러미찜, 푸륭세이(芙蓉蟹-부용게 연꽃게살 완자) 등이 있다.상하이(上海-상해)요리는 중국 중부지역을 대표하는 요리로서 양자강하류 일대의 상하이, 난징(南京-남경), 쑤저우(蘇州-소주), 양쩌우(陽州-양주) 우시이(无锡-무석) 등 지방 요리를 총칭한다. 습관적으로 뻔빵차이(本邦菜-본방채)라고 부르며 가정 반찬에서 발전되어 왔기에 소박하고 실제적이다.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해산물을 많이 이용하고 있으며 특산인 간장을 조미료로 써서 만드는 요리가 독특하다. 간장과 설탕으로 달콤하게 맛을 내는 찜이나 조림요리가 발달하였고 기름기 많고 맛이 진하고 양이 푸짐한 것이 특징이다. 모양보다는 깊은 맛에 중점을 두기에 장식은 거의 없다. 대표적 요리로는 돼지고기에 진간장을 써서 만든 훙쏘러우(红烧肉-홍소육), 한 마리 생선을 가지고 부위별로 조리법과 양념을 다르게 하여 맛을 낸 생선 요리, 초어를 재료로 한 항저우 시후처우위(西湖丑鱼-서호추어), 난징의 얜코야(腌烤鸭-염고야, 소금오리구이), 양저우 초우판(炒饭-초판, 비빔밥), 스즈터우(狮子头-사자두, 고기 간 것을 살짝 튀겨 찐 요리), 탕보우(汤包-탕보, 만두의 일종) 등이 일품이다. 특히 9월말부터 1월 중순에 맛볼 수 있는 상해의 게요리는 세계 식도락가들이 최고로 뽑는 진미이다. 따쟈세이(大闸蟹-대갑게)는 상하이 인근 쑤저우의 유명 식품으로서 산지는 양떵호(阳澄湖-양호)이다. 상해 유명 간식으로는 쓰요룽보오(小笼包- 소롱포)가 있고 단음식으로는 떠우사궈빙(豆沙锅饼- 두사과병)이 있다.
29    28. 먹어서 가난한 나라: 중국의 4대 요리(2) 댓글:  조회:1435  추천:26  2010-10-21
주성화의 중국문화풍경 2828. 먹어서 가난한 나라: 중국의 4대 요리(2) 京师美肴,莫妙于鸭베이징요리가 크게 발달된 시기는 청나라 때이기에 또 청(淸)요리하고도 부른다. 북방에 위치함으로 화력이 강한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며 튀김요리와 볶음요리 등 맛이 진하고 기름진 요리가 특별히 발달했다. 밀을 비롯한 농작물, 청과물 등이 풍부하여 만두, 삥 등 가루음식과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내장, 양고기, 오리고기, 어패루 등을 이용한 요리가 발달하였다. 대표적인 요리는 베이징코야(北京烤鸭, 통오리구이), 쏴양러우(刷羊肉-쇄양육, 양고기 신선로), 베이징불고기(烧烤)등이 있다. ‘경성미효 막묘어야’ (京师美肴,莫妙于鸭)-경성의 미식은 오리보다 묘한 것 없다-한다. 베이징코야는 ‘쵄쥐더 코야땐(全聚德烤鸭店-전취덕고야점)’이 가장 유명하다. 창시인 양쵄런(杨全仁-양전인)은 허뻐이(河北-하북) 지현(蓟县)사람으로서 1864년 베이징 챈먼와이(前門外-전문외)에 ‘쵄쥐더’오리구이점을 꾸렸다. ‘쵄쥐더(全聚德)’란 글자 그대로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음식을 쓰면서 한담하고 덕담을 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베이징코야는 특수하게 사육한 오리를 재료로 한다. 부화한 후 50일이 지난 오리를 어둡고 좁은 곳에 집어넣어 먹이를 준다. 오리의 깃털과 물갈퀴, 내장을 빼고 껍질과 살 사이에 공기를 넣어 부풀게 한 후 몸 표면에 엿을 발라서 햇볕에 쪼인 다음 아궁이에서 표면이 계란색이 될 때까지 굽는다. 먹을 때는 얇은 밀전병에 벗겨낸 껍질, 채, 파와 양념을 함께 사서 먹는다.베이징의 쏴양러우(刷羊肉) 역시 100여 년 역사를 지닌 이름난 요리이다. 그 중 ‘뚱라이쑨’(东来顺-동래순)이 가장 유명하다. 창시인은 띵즈칭(丁子清-정자청), 1905년, 베이징  뚱안시장에서 ‘뚱라이쑨(東來順 - 동래순’패쪽을 걸고 영업하였다. 후엔 베이징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칭쩐관(清真馆-청진관)이 되였다. 쏴양러우는 내몽고 지닝(集宁-집녕)의 짧은 꼬리 불 친 양을 재료로 하는데 한 마리에서 쏴양러우 고기를 7kg 정도 얻을 수 있다. 매 250g 고기는 길이 6촌, 너비 1.5촌이 되게 40 - 50 조각으로 썬다. 쏴양러우 가마는 배가 나오고 아구리가 큰 구리가마를 사용한다. 썬 양고기 조각을 부글부글 끓는 가마 속에 넣어 살짝 데쳐서 양념에 찍어 먹는다. 동시에 당면이나 야채를 함께 넣어 끓이고 함께 식용한다. 위를 덥히고 기름기를 줄인다. 쏴양러우는 베이지의 사계절 음식으로 호평 받는다. 불고기 역시 베이징의 대표적인 요리로서 3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베이징 불고기는 내몽고 지닝지방의 짧은 꼬리 불 친 양 또는 젖소의 살고기를 재료로 한다. 냉동하여 자른 고기를 양념하여 담근 후 구어 먹는다.  “烤肉”是北京久负盛名的特色菜肴,已有300多年的历史。以羊肉为主,精选西北绵羊,取肉部位为“上脑”“大小三岔”“黄瓜条”“磨档”等,肥瘦搭配得当,调味后烤熟。香味馥郁,肉质极嫩,不膻不腻,风味独具。  
28    27. 먹어서 가난한 나라: 중국의 4대 요리(1) 댓글:  조회:1370  추천:26  2010-10-15
주성화의 중국문화풍경 2727. 먹어서 가난한 나라: 중국의 4대 요리(1)중국의 음식문화는 수천 년의 전통을 이어오면서 중국인의 사상, 도덕, 심리, 신앙, 생활방식, 예절 등이 용합되어 있다. 중국인은 입는 것보다 먹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일이 있으면 일하고 일이 없으면 밥 먹는다’(有事干活 沒事吃飯)는 말은 중국 사람들의 입버릇이 되었다. 중국인의 음식섭취는 ‘장생불로’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맛을 낼 때도 5미, 즉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의 조화를 강조하는데 이는 5미가 인간의 5장, 간장, 심장, 비장, 폐, 위장을 보양한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장생불로의 차원에서 중국요리는 곰, 자라, 고양이, 쥐, 벌레에 이르기까지 모두 독특한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또 하나의 생명체는 전부 먹는 것이 좋다고 여겨 어떤 재료라도 남기고 버리지 않는다. 생선은 머리부터 꼬리, 날개까지, 야채라면 잎부터 줄기, 뿌리까지 통째로 먹는 것이 관례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중국요리는 조리방법만 40여 종, 상용하는 재료가 3000여 종, 총 재료는 1만 종이 넘는다고 한다. 요리 가지 수가 많음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음식의 특징을 동부지역이 음식이 맵고 서부지역이 시고 남부지역 음식은 달고 북부지역이 짜다. 대체로 4대 요리로 분류하는데 이외에 8대, 16대 요리로도 분류된다. 4대 요리는 황화유역의 싼뚱(山東-산동; 베이징(北京-북경) 포함), 남부 연안지방의 꽝둥(廣東-광동), 양자강 하류의 상하이(上海-상해), 서부 대분지 쓰촨(四川-사천)요리가 그것이다. 싼퉁 지역은 중국고대문화의 발원지이다. 춘추전국시기의 대학자 공자와 맹자도 식을 논하는데 정통했다고 한다. 논어의 구절을 대충 정리하여 드리면 ‘(공자는) 밥은 정미된 흰 쌀밥을 싫어하지 않으시고 회(육회를 가리킴, 저자 주)는 가늘게 썰은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 또한 생선이 상해 냄새가 나고 뭉그러진 것은 먹지 않으셨다. 알맞게 익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시며 때가 아니면 먹지 않으셨다. 바르게 잘라지지 않으면 먹지 않으셨고, 간이 맞지 않는 것도 먹지 않으셨다. 고기가 많아도 주식보다 많이 먹지 않으셨다. 시중에서 산 술이나 육포는 먹지 않으셨다. 나라의 제사를 도와주고 제물로 받아온 고기는 밤을 넘기지 않으셨다. 자기 집 제사에 썼던 고기는 사흘을 넘기기 않으셨고 사흘이 넘으면 먹지 않으셨다....’ 이다.     싼뚱 요리는 황하유역 중, 하류 및 기타 북방지역 나아가 동북까지 영향을 미쳐 ‘북방 요리’의 대표로 되었다. 날짐승 및 해산물을 많이 사용하고 탕을 중시한다. 요리의 특징은 맛이 약간 짜고 담백하되 느끼하지 않으며 신선하며 깨끗하고 향기로우며 바삭거리고 부드럽다. 대표적인 요리로는 탕수육과 같은 형태로 고기 대신 황하의 잉어를 사용하여 만든 탕추우지위(糖醋鲫鱼), 대파와 해산 불린 것을 볶아낸 훙쏘우하이썬(红烧海鲜), 뜨거운 설탕시럽에 사과를 익혀낸 빠스핑궈어(拔丝苹果), 9가지 약재와 6가지 조미료로 닭을 기름에 튀긴 후 찜 해낸 요리인 더저우파지(德洲扒鸡) 등이 있다.
27    26. 의심 단지 중국인: 호상선투(互相猜疑) 댓글:  조회:1282  추천:23  2010-10-14
주성화의 중국문화풍경 26의심 단지 중국인: 호상선투(互相猜疑)중국인은 여인에 대하여 푸뉘이싼두(婦女善妒)라고 말한다. 여인은 질투심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 질투의 투(妒)는 미워할 독(毒)과 동음이다. 즉 여자는 독하다는 뜻으로도 표현된다. 독한 여자이니 세상 무슨 일인들 못 저지르겠는가? 뒤에 따르는 것은 여자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다. 과부 문전에 시비가 많다(寡婦門前是非多)는 것이 더욱 노골적인 표현이다. 중국인의 의심병(病)은 두 가지 면에서 비롯된 상 싶다. 첫째는 상대를 요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상상으로 추측하니 의심이 생기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상대를 요해했기에 생긴다. 내가 무슨 일을 하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이다. 역시 의심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중국 사람은 선천적으로 뭉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상호 신임하기 싫어한다. 표면상에서 자그마한 믿음을 주는 일을 때때로 하지만 진심에서는 상호 신임을 멀리하고 있다. 역사상 중공당과 국민당은 두 번이나 합작을 하였다. 상호 신임한 것 같지만 일정한 조건이 깨지고 이득관계가 파탄되면 헤어지는 것이다. 진심에서의 신임은 없다는 예이다. 중국 어린애들은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부터 부모들로부터 의심에서 비롯된 조심성을 강조 받는다. 자라난 후 다시 재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충분하다. ‘일인불진묘, 이인불규정(一人不進廟, 二人不窺井)’이란 말이 있다. 혼자서는 절간에 들어가지 않으며 둘이서는 우물 안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혼자서 절간에 가면 중(스님)이 강탈할 수 있고 둘이 우물을 들여다보면 다른 그 애가 나를 우물에 처넣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재물을 탐내거나 나에게 앙심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심에서였다.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하기에 중국인은 매사에 한발 뒤로 물러서는 자세로 뿌관(不管)이란 태도를 취한다.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부동성, 난상권’ (不同姓 難相勸), 같은 집안 (성씨) 아니면 권고하기 어렵기에 나는 너의 일에 상관하지 않으며 너도 내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처세철학이다. 서로가 자기할 일만을 하고 편안하게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이다. 어찌 보면 중국인과 오래도록 사귈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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