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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화풍경 37
37. 자신을 숨기는 지혜: 대지약우(大智若愚)
한국에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중국의 역사, 철학 고전들이 많이 출간되고 또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그 책들을 읽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 생각 같아서는 중국 사람보다도 한국인이 더 집착하면서 읽는 것이다. 좋은 일이라 기쁘게 생각한다.
공자, 맹자보다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겠지만 원만한 한국인이라면 노자를 알거나 들은 적 있을 것이다. 로즈(老子-노자)는 중국고대철학의 개척자로서 성은 이(李)씨이고 이름은 이(耳), 초나라 고현(苦縣, 현 鹿芭縣)사람이며 약 기원전 571-471년에 생활하였고 유작으로는 도교의 경전으로 꼽히는 《5천문》, 즉 《도덕경》, 《노자》가 있다, 《5천문》은 일본, 독일, 구 소련, 영국 등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미국 ‘뉴욕시보’는 세계10대 고대작가의 첫 사람으로 로즈를 뽑았다.
대지약우(大智若愚)란 단어는 송나라 팔대문호의 한사람 쑤쓰(蘇軾-소식)에 의해 쓰여졌지만 원뜻, 어원은 로즈가 말한 것이다. ‘대음희성, 대상무형(大音希聲, 大象無形)’인 것이다. 너무 큰 음은 소리로 안 들리고 너무 큰 상은 형이 없는 것이다. 그런즉 지나치게 큰 지혜는 우둔해 보이는 것이다.
중국인의 극진한 지혜의 결정(結晶)이다. 지혜가 넘치기에 앞장서서 얼굴을 나타내지 않으며 예봉을 피하는 것이다. 머리 내민 새가 총알을 먼저 받으니 말이다. 지자가 지인을 알아본다고 은둔하고 참고 있으면 찾아올 지자는 있는 법, 와룡 제갈량의 식이다.
지혜가 넘치니 사소한 일은 무시할 것이고 자신의 사유대로 세상을 인지하니 일상의 법칙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거고 그러니 중요시하지 않을 것이요. 보통사람이 보기에는 우둔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대지약우, ‘대지’가 아니더라도 ‘약우’ 행세하면서 자신의 참뜻을 숨기면서 야심을 이루는 이도 적지 않다. 타이완(臺灣-대만) 리떵휘이(李登輝-이등휘)는 쟝징궈어(蔣經國-장경국) 시기 자신을 둔재로 낮추며 곧잘 은신하였다. 보고를 들여도 소파가 아닌 딱딱한 의자에 앉는 것으로 자신을 낮추었으며 고개를 깊이 숙인 채 가능한 비굴한 제세를 취하면서 ‘옳은 말씀입니다’를 반복하군 했다는 일화가 있다. 권력의 쟁탈에서 뒤로 물러서며 ‘약우’ 처사한 것이다. 허나 훗날 대통령이 된 자는 바로 그 약우 리떵휘였다.
성인에서 권력자, 나아가 일반 백성에게까지도 이러한 사유방식은 자리 잡고 있다. 좋은 뜻으로는 허회약곡(虚怀若谷)-계곡처럼 넓고-이고 나쁜 의미로는 장풍매사(裝瘋賣傻)-팔부처럼 꾸민다. -이다.
허심한 흉금에는 계곡같이 깊은 바다라도 품을 만한 지혜가 꿈틀거리는 것이요, 일상에선 늘 겸손하고 한발 뒤로 물러나서 인간사를 바라보는 지혜를 가지는 것이다. 잘 살펴보면 중국인들은 앞장서기 좋아하지 않는다. 장거리 뛰는 육상선수처럼 두 번째, 세 번째 위치에서 달리기를 즐기는 것이다. 미친것처럼 자신을 위장하고 바보짓을 하면서 대방을 미혹시키는 것이다. 먼 옛날로 치면 위대한 스마챈(司馬遷-사마천)이 있고 가까운 현대에는 충칭(중경-중경) 중미합작소 감옥에서의 중공당의 투쟁을 묘사한 유명 보고문학 ‘훙얜(紅岩-홍암) "의 쉬원펑(许云峰-허운봉) 씨일 것이다. ’훙얜'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10여 가지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발행부수가 천만 부를 넘으면서 중국 당, 현대장편소설의 발행기록을 세웠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 ‘열화 속에서 영생(在烈火中永生)’, 가극 ‘강 누나(江姐)’, 화극 ‘붉은 바위(红岩)’가 제작되었다.
‘대지약우’, 실로 좋은 말이다. 사람은 얼굴만 보고 판단할 바가 못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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