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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신체 사이즈 대신 여성폭력 수치 소개… 기자들 갑론을박 지난달 30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2017 미스 페루 선발대회에서 “내 사이즈는 2202다. 이는 지난 9년간 페루에서 발생한 여성 혐오 살해 숫자”라고 말한 리마 대표 카밀라 카니코바. 유튜브 화면 캡처“제 신체 사이즈는 2202입니다.”
‘34-24-34’라며 가슴 허리 엉덩이 둘레를 얘기하던 미인대회에서 낯선 상황이 벌어졌다. 신체 사이즈로는 너무 크다고 생각할 즈음, 참가자는 “지난 9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여성 혐오 살인사건(femicide)의 숫자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페루 수도 리마에서 열린 ‘미스 페루 선발대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다른 참가자들도 신체 사이즈를 밝히는 대신 “페루 여성 70% 이상이 길에서 성희롱을 당한다”, “성 착취로 10분마다 여성 1명이 숨진다”며 성폭력 실태를 고발했다.
2일 오후 국제부 기자들은 이 뉴스에 주목하며 갑론을박을 벌였다. 지난달 할리우드 유명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 스캔들이 터진 이후 미국에 휘몰아친 성폭력 고발 사태가 남미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페루 사건이 위선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A 기자는 “수영복 입고 미인대회 나온 여성들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주최 측이 이목을 끌기 위해 벌인 상업적인 쇼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참가자들이 대회를 보이콧했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B 기자도 “미인대회라는 대표적인 성 상품화 조장 행위를 하면서 성폭력에 대해 비판하는 게 아이러니”라고 했다.
C 기자는 “참가자들도 내적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대회에 나가 입상하면) 성공의 길이 보장될 수도 있고 동시에 여성인권 얘기를 하고 싶고 그랬던 것 같다. 차라리 출전 안 한다고 선언했으면 그게 더 큰 뉴스가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미인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성폭력을 폭로한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예전에는 우리도 미인대회를 저녁 프라임 타임에 TV로 중계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성 상품화에 대한 비판 분위기가 생겼고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다.”(D 기자)
“넓게 보면 이중적이 아니냐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인민매매, 성착취, 성폭행 같은 성범죄와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미인대화 출전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보이콧하자는 것은 과격한 주장이다. 미인대화 출전 자체가 욕먹을 일은 아닌 것 같고, 참가자들도 자부심을 갖고 출전할 것이다.”(E 기자)
한 기자는 성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지자고 했다. F 기자는 “욕망을 가졌는데 마치 아닌 것처럼 내숭을 떠는 동안 우리 사회에 퇴폐 문화가 더 만연하고 있다”고 했다.
페루 사건의 발단이 됐다고 보는 와인스틴 성 스캔들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도 나왔다. 와인스틴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신인 여배우였던 앤젤리나 졸리, 귀네스 팰트로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여배우들의 폭로 이후 미국에서는 일반 여성들도 성폭력 피해 사례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고발하는 ‘미투(#MeToo)’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고발이 이어지는 시대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강자(남성과 ‘갑’)의 부당한 권력 행사에 대한 약자(여성과 ‘을’)의 저항이다.”(A 기자)
C 기자는 “가장 자유로운 할리우드에서 가장 봉건적인 행태가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라며 “SNS의 발달로 약자인 여성들이 조직화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라는 데 공감대가 모아졌다. 최근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남성 혐오와 여성 혐오의 대결 양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남성 혐오 사이트 메갈리아의 등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자 여혐을 표방한 일간베스트(일베) 사이트가 등장한 데 대한 반작용이다. 남성이 일방적으로 우위에 있던 성 권력 구조의 비대칭이 이미 깨졌다는 의미다.”(D 기자)
E 기자는 우리 사회의 성불평등이 더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성이 권력을 이용해 부당한 요구를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 성폭력 폭로 사태를 계기로 여성의 지위 상승을 막는 유리천장도 점차 깨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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