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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아들이 10년여간 병간호를 해 온 80대 아버지를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1일 청주상당경찰서에 따르면 20일 오후 8시 20분쯤 청주시 서원구 수곡동의 한 아파트 화단에 A씨(49)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머리를 심하게 다친 A씨는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졌다.
사고 현장에서 약 1.5㎞ 떨어진 A씨의 아파트에서는 그의 아버지 B씨(85)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집을 찾아간 경찰에 의해서다. A씨 아버지는 목 부위가 눌린 흔적이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아버지를 숨지게 한 뒤 투신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B씨의 시신 부패 정도가 심하지 않은 점으로 미뤄 B씨가 숨진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추정했다.
집 안에서는 A씨가 남긴 A4용지 한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아버지를 데려간다. 미안하다”고 쓰여 있었다. 경찰과 유족 등에 따르면 A씨는 10여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치매와 척추협착증이 있는 아버지를 간호해 왔다. 생활비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와 A씨의 형제들이 보탰다. 하지만 최근 B씨가 심근경색에 걸리는 등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하자 힘들어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극진히 아버지를 보살펴 주변에서 효자로 불렸다”며 “생활고는 없었지만, 아버지 상태가 악화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A씨와 B씨에 대한 부검을 의뢰한 뒤 결과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할 방침이다.
오랜 기간 치매나 정신질환 등을 앓아온 가족을 돌보다 지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걸 ‘간병 살인’이라 한다. 간병 살인은 1980년대 일본에서 처음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우리나라에서도 증가세다. 지난해 12월 31일 경기도 고양에서 70대 노모와 4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70대 노모는 암 수술을 수차례 받고 치매를 앓는 등 장기간 투병생활을 해왔다. 경찰은 40대 딸이 오랜 간병 생활에 지쳐 어머니를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달 초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는 정신질환을 앓던 딸과 어머니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출동했을 당시 안방에는 어머니, 작은방에서 딸의 시신이 있었다. 현장에서 어머니가 쓴 유서가 발견됐는데 “딸이 환청 등 이상증세를 보여 힘들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장기간 투병생활에 따른 돌봄이 신체적·경제적 부담과 가족관계 악화, 우울감 증가 등을 불러온다고 설명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옛말에 ‘오랜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이 오랜 간병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경제적 부담, 가족 간의 불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며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고령화 사회로 넘어가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인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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