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출 20년.. 한국 기업들 줄줄이 밀려난다
[기로에 선 한국 기업] [1] 대륙에서 길을 잃다 롯데百, 적자 1000억… 지분 매각… 이마트, 매장 27개서 16개로 축소 SK차이나, 주재원 80% 철수시켜… 두산인프라코어, 생산량 절반 줄어 대우인터내셔널, 시멘트사업 포기
지난달 31일 오전 11시 30분, 중국 베이징(北京)의 중심가 왕푸징(王府井)에 자리 잡은 롯데인타이백화점(樂天銀泰百貨). 백화점 주변에 차단벽을 설치해놓고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차단벽 사이로 난 입구를 따라 매장 안으로 들어가보니, 번화가 요지의 백화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적막했다. 매장이 있는 6층부터 1층까지 내려오면서 세어보니 6층에 3명, 5층엔 2명, 4층엔 1명, 3층엔 4명, 1층은 5명의 손님이 있었다. 2층은 공사 중이었다. 매장 안 곳곳에 '50% 할인' 문구가 붙어 있었다.
롯데는 2008년 중국의 유명 유통업체인 인타이와 50대 50으로 이 백화점을 합작 설립했다. 하지만 매년 적잖은 손실을 보면서 지금까지 1000억원이 넘는 누적 적자를 냈다. 롯데는 결국 올 상반기 합작 관계를 청산하고, 철수하기로 인타이 측과 최종 합의했다. 검색하기">롯데백화점 측은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 실패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밀려나고 뒤처지는 우리 기업들
같은 날 오후 2시, 상하이(上海) 바오산(寶山)구 무단장루(牧丹江路) 이마트 매장. 전체 3개 층을 쓰는 대형 매장이지만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았다. 국내 1위 대형 마트인 이마트는 1996년 중국에 진출해 한때 매장을 27개까지 운영했지만, 지금은 부실 점포를 모두 매각하고 16개 매장만 남았다. 매년 수백억원의 영업손실이 나고 있고, 내부적으로 중국 사업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었다. 현지에선 "이마트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공격적인 투자로 중국 사업의 덩치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 패인"이라고 분석한다. 중국 내 최대 소매유통업체인 화룬완자(華潤萬家)는 전국에 총 4423개의 대형 할인점과 수퍼마켓이 있고, 외국계인 월마트와 검색하기">카르푸도 각각 395개, 218개 매장을 갖고 있다.
한때 중국 시장에서 잘나가던 우리 대기업들이 글로벌 기업과 중국 기업에 밀려 중국 시장에서 줄줄이 철수하고 있다. SK그룹은 올해 초 중국 지주사 격인 SK차이나 조직에 파견돼 있던 주재원 50여명 중 40여명을 철수시키고, 현지인들로 대체했다. LG전자도 지난해 중국 내 휴대폰 사업 부문을 대폭 정리했다. 대우인터내셔널도 지난해 20년을 운영해온 산둥시멘트를 현지 업체에 매각하고 철수했다.
◇글로벌 기업, 중국 기업과 버거운 경쟁
남아 있는 기업도 삼성·현대차를 제외하고는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다. 국내 1위 중장비 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도 중국 국내 업체들의 가격 공세에 밀려 최근 중국 장쑤성 검색하기">쑤저우(蘇州) 공장의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우리 기업들은 한·중 수교 직후인 지난 1993년부터 발빠르게 중국에 진출해 시장을 선점했다. 그해 2억6401만달러(2830억원)였던 대중(對中) 투자액은 2007년에는 53억3011만달러(약 5조7200억원)로 정점을 찍었다. 우리 기업들은 한때 중국 시장 각 분야에서 선두권을 달렸다. 두산인프라코어만 해도 2006년 시장점유율 19%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자들이 잇달아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 중국 국내 기업들도 급성장하면서 한국 기업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대중 투자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중국 시장이 '세계 1등'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곳으로 변하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것이다.
◇"중국은 세계 시장 축소판"
지난 1일, 중국 최대 전자상가 밀집 지역인 베이징 중관춘(中關村). 휴대전화 전문 매장인 지하 1층은 삼성전자와 애플 제품들로 도배돼 있었다. 한 매장에 전시된 26개의 휴대폰 중 9개가 삼성, 7개가 애플, 나머지는 대만의 HTC, 일본 소니 제품 등이었다. LG전자는 글로벌 휴대폰 시장의 강자이지만 이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2~3년 전 3%까지 올라갔던 중국 휴대폰 시장 점유율도 올 상반기 0.1%까지 떨어졌다.
조철 산업연구원 국제협력실장은 "중국은 이제 세계 시장의 축소판이 됐다"면서 "우리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밀려나는 것은 다른 원인이 아니라 자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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