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련 한국인(상)회 박신헌 회장 인터뷰
▲ 박신헌 대련한인회장. |
바다와 평야에 접하고 있는 관계로 각종 해산물과 과일, 야채 등이 풍부한 대련시는 산과 바다가 모두 있는 휴양도시로서 기후, 치안, 물가, 교통 등 생활 여건이 중국 내에서 가장 좋다고 평가받고 있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은 대련을 ‘북방의 명주’라고 부른다. 또한, 이곳에는 안중근, 신채호, 이회영 선생을 비롯해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은 수많은 순국선열들의 사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애국의 도시이기도 하다.
애국의 도시에서 열정과 패기 그리고 도전정신까지 고루 갖추고 실패에 좌절하지 않으며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정진하고 있는 대련 한인회 박신헌 회장을 만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어떤 곳인가요?
대련 한인회는 고대 한민족의 주요 활동 무대 중 하나로 한국인들의 공동체입니다. 대련에는 한 때 3만5,000 여 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기도 했으나 최근 중국 경기 침체와 제조업 경쟁력 악화로 현재는 1만2,000 여 명의 한국인과 8만 명에 가까운 동포들이 살고 있습니다.
주요 산업은 지금은 파산을 했지만 ‘STX 대련 조선소’의 진출과 중국 ‘대련 조선소’의 영향으로 조선 관련업에 많은 한국인이 종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중 FTA 체결과 함께 중국인들의 한국 화장품과 생활용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자상거래를 위한 유통 업체도 많이 진출했습니다. 또한, 신발과 의류 제조업도 비교적 많이 남아 있습니다.
▲ 안중근의사 행사 주최 및 참석한 박신헌 대련한인회장(오른쪽 두번째). |
대련한인회는 한중 수교 직전인 1991년 대련에 진출한 몇몇 기업인들이 친목을 도모하고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대련의 한국인’이라는 모임을 가진 것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한중 수교 이후 대련에 진출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대련 거류민의 수도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기업과 교민들의 해외 생활 애로를 해소하고 한국인 간의 결속을 다지며, 나아가 중국 정부에 대한 재외국민 보호 요구를 위한 공식적인 조직의 필요성이 제기 되었습니다. 이에 1996년 ‘대련한국인(상)회’로 확대 개편이 되어 2016년 현재 제18대 한인회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인회의 주요 역할은 어떤 것인지요?
지난 20 여 년 동안 부단히 성장해 온 대련한인(상)회는 이제 회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뿐만 아니라, 한중 양국의 우호 협력 증진과 교류 활성화 및 조선족 동포들과의 민족적 연대감 고취 등을 통해 양국 발전의 모범을 창출하겠다는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기업들과 한인회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한 활동은 우리 기업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대한 이미지 제고에 큰 효과가 있기에 CSR 관련 각종 설명회 등을 개최하고 있으며, 한인회를 중심으로 CSR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대련 한인회가 주축이 되어 대련 TV의 한국어 방송인 중한 브릿지 방송과 함께 진행한 ‘착한 어린이 한국에 가요’라는 프로그램은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범 사례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양국 어린이들이 상호 방문을 통해 서로 교류하며 우의를 다지는 행사였는데, 대련 방송을 통해 어린이들의 활동이 방영되면서 대련 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박신헌 대련한인회장 국경절행사 참석. |
내부적으로는 재정 확보를 위한 각종 수익 사업들을 한인회 회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서비스로 전환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회원으로 누리게 될 각종 혜택을 더욱 늘려갈 것입니다.
재작년부터 하나은행과 협력해 시작한 회원 제휴카드 발급과 같은 사업을 통해서도 회원들에게 각종 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할 방침입니다. 또한, 최근 중국의 외국인 체류 관련 법규의 강화와 기업 경영 환경의 악화로 지역 한인들과 기업들이 크게 위축되어 있는데, 관련 법규 설명회 및 투자 기업 경영지원 설명회도 자주 개최해 불안감을 해소해나갈 계획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조선족 동포와 연대 사업에 큰 힘을 쓸 생각입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행사와 사업들을 진행했지만 대부분 서로 초대를 하거나 초청을 받는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부터는 좀 더 연대의 수준을 높여가고자 합니다.
매년 3월에 열리는 ‘안중근 의사 추모제’를 동포들과 함께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교민들과 동포들에게 애국애족의 정신을 깊이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와 같은 노력을 지속한다면 대련에서부터 한민족이 하나 되는 모범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대련시 한국의 날’, ‘대련 한국 주 행사’, ‘한중 음식문화 교류회’, ‘K-POP 경연대회’, ‘한국어 스토리텔링 대회’, ‘대련 한인 송년회’ 등의 각종 행사들을 대련시민과의 소통을 위해 더욱 내실 있게 진행할 계획입니다.
▲ 시장 일행과 만나는 박신헌 대련한인회장(오른쪽). |
우리 대련에는 한국인들이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만들어 낸 3가지 큰 자랑이 있습니다.
첫째는 대련에 진출한 기업인과 그 주재원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대련에 진출한 우리 중소기업인들과 교민들이 바자회 등의 모금 행사와 기부를 통해 만든 ‘대련한국국제학교’입니다.
두 번째는 대련시 정부에서 지원하여 운영하고 있는 ‘중한브릿지’ 한국어 방송 프로그램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음악적 소양을 키우고 이를 통한 정서 함양을 목적으로 만든 ‘대련한국청소년 오케스트라’입니다. 이 활동들은 모두 교육과 방송 그리고 문화 활동 영역에서 대련 시민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중국에서의 혐한 분위기를 이겨내고 양국 관계가 발전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한인회의 비전이나 목표는 무엇입니까?
대련 한인회는 지역의 기업과 교민의 행복을 위한 활동은 물론이고,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생각하는 한인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에서도 통일을 위해서는 재외동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대련 한인회는 조금은 특별한 ‘대련 한인회가 가는 길’이라는 비전과 목표를 만들었습니다.
▲ 통일준비위원 대련 방문. |
저는 한중 수교 직전인 1992년에 중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해 오던 장신구 제조 공장이 인건비 상승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중국으로 나가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일찍부터 중국 진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중국 진출을 준비하면서 여러 과정을 통해 중국에 대한 공부를 했고, 그 덕분에 중국 안산시에서 처음 시작한 사업은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당시 투자 초기의 여러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중국 안산 한국인 투자 기업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 성장했는데, 그 때의 작은 성공 덕분에 제3대 안산 한인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안산 한인회장 재임 시 대련을 자주 방문하면서 대련의 우수한 생활환경과 투자 조건을 보고 2003년 대련으로 다시 공장을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대련 개발구로 이전해 새로 시작한 장신구 제조는 안정적인 수출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처음 진출 시 품었던 중국 내수의 꿈을 펼치기 위해 ‘피아치’라는 브랜드를 론칭하고 중국 백화점 등에 입점을 했습니다.
중국 시장 진입의 벽은 상상 이상으로 높았지만,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사업을 이어 왔고, 온라인 판매에 성공을 하며 사업이 큰 규모로 커지게 되었습니다. 장신구 제품보다는 일본과 한국산 생활용품 및 유아용품과 화장품 판매가 더 많이 이뤄지면서 사업의 다각화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이민생활에서 힘든 점은?
개혁 개방이 시작되면서 많은 외자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을 했는데,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이고 거래처마저도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올 거라고 믿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모든 어려움과 불신을 극복하고 시장의 신뢰를 얻기까지가 초기 중국 투자자들의 공통된 과제였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관계를 잘 맺어 온 주위 중국 친구들의 도움과 직원들의 헌신적인 협조로 여러 어려움들을 잘 극복해 냈던 것 같습니다.
▲ 대련 아카시아축제 및 한국의 날 행사 주최. |
저는 우리 공장의 제품을 이곳에서 생산해서 전 세계에 팔겠다는 꿈, 그리고 그 기반을 통해 중국인들에게도 우리 제품을 팔아보겠다는 중국 시장 개척의 야무진 꿈이 있었는데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 꿈이 현실이 되어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꼭 살아남겠다는 열정도 있었는데, 저에게 이 열정이 없었다면 어렵고 힘들었던 과정과 수없이 맞닥뜨려야 했던 절망적인 상황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아직은 누구에게 자랑할 만한 처지는 아니지만, 오직 꿈과 열정을 무기로 모든 난관을 극복해 온 저의 경험이 앞으로 중국에 진출하려는 후배 기업인들에게 조금이라도 용기를 주고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재외동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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