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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한 게이 남자, 사회적 타살을 당하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11월18일 13시25분    조회: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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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팀 쿡 애플 CEO가 커밍아웃을 했다. 언론 기고를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그의 글을 읽는 순간, 또 다른 동성애자의 오랜 흑백 사진이 떠올랐다. 사진 속 그는 한없이 착해만 보였다. 벌레 하나 해칠 수 없을 것 같은 순수한 눈빛이었다. 사실 그는 조국을 구한 영웅이었다. 오늘날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조국이 벌인 전쟁 승리에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조국은 그를 배신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그를 죽였다. 자살이었지만, 사실상 사회적 타살이었다. 당시 그의 조국은 1954년 영국이었다.
 

알란 튜링 (출처: 위키피디아)

2011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영국 의회에서 연설을 한다. 영미 두 나라는 과학과 첨단 연구로 세계를 이끌었다면서 두 나라의 대표 과학자와 혁신가의 이름을 거명한다. 미국의 에디슨과 아인슈타인에 대응해 영국의 뉴튼과 다윈을 언급했다. 그리고 미국의 스티브 잡스에 대응해 영국의 알란 튜링(Alan Turing)의 이름을 거명했다. 이들 4명 중 셋은 삼척동자도 아는 이름이지만, 알란 튜링은 무명이다. 그러나 튜링의 업적은 잡스의 아버지 뻘이다.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컴퓨터가 개발됐다. 굳이 따지자면 맥킨토시 컴퓨터를 개발한 잡스는 튜링의 손자 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튜링은 2차 세계대전 승리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는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자살해야 했다. 조국이 그에게 안긴 수치심을 그는 이겨낼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영국은 독일에 지고 있었다. 제해권을 놓친 게 컸다. 독일의 잠수함 U보트에 영국은 전함 수백 척을 잃었다. 당시 영국의 대서양 보급로는 완전히 끊겼다.

그러나 전세는 역전됐다. 튜링이 일했던 암호해독기관 `블래츨리 파크`가 큰 역할을 했다. 튜링은 암호해독기계 `봄베’를 개발해 독일군의 암호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당시 독일군은 자신들의 암호기 `애니그마`가 만드는 암호는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이를 풀 수 있는 확률은 `1만 경의 1`보다 낮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튜링과 블래츨리 파크 동료들의 활약은 이 같은 독일군의 자신감을 비웃는 것이었다. 심지어 블래츨리 파크에서는 튜링의 이론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컴퓨터 콜로서스를 개발해 빠른 속도로 독일군의 암호를 풀어냈다. 이제 영국은 U보트도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암호 해독을 통해 U보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연합군은 독일군의 거의 모든 비밀 통신을 도청했고, 암호를 풀어냈다. 이는 연합군 승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당연히 튜링은 전쟁 영웅이어야 했다. 2013년 영국의 한 잡지는 알란 튜링의 얼굴 사진을 표지에 싣고 `세계를 구한 게이 남자`(The GAY MAN WHO SAVED THE WORLD, 사진)라고 썼을 정도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영국은 달라져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튜링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성을 인정하는 환경 속에서 일했다. 그러나 전쟁 후에 튜닝이 살았던 영국은 그렇지 않았다. 동성애자였던 튜링을 범죄자 취급했다.

전쟁 중에 튜링이 일하던 `블래츨리 파크`에서 `다양성`은 마치 산소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또한 산소처럼 없어서는 안될 요소였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괴짜도 많았다. 이곳을 방문한 한 군인이 블래츨리 파크를 `군인정신병원`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윈스틴 처칠 당시 영국 총리가 "(암호 해독과 관련해) 인재 모집에 제한을 두지 말라고 지시를 하기는 했지만, 문자 그대로 그렇게 할지는 몰랐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실제로 블래츨리 파크`에 모인 사람들은 직업과 학문적 배경이 천차만별이었다. 과학자와 기술자 외에도, 작가, 교사, 체스 챔피언, 낱말 맞추기 중독자, 대기업과 백화점의 간부 등이 모여 일했다.

이 같이 다양한 사람들을 함께 일하게 한 효과는 대단했다. 낱말 맞추기 중독자, 체스 챔피언뿐만 아니라 해초 전문가까지 암호 해독에 큰 기여를 했다. 이 같은 다양한 지식이 융합되고 연결됐기 때문에 블래츨리 파크는 독일군의 암호를 풀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전쟁이 끝난 영국에서 `다양성`은 산소처럼 당연하게 아니었다. 특히 튜링과 같은 동성애자에게는 더욱 그랬다. 당시 그는 동성애를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풀려난 뒤에도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했다. 부작용으로 여자처럼 유방이 커졌고 발기불능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수치심을 이길 수 없었다. 그는 1954년 6월 자살을 선택한다.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안았던 영국 사회가 조국을 구한 영웅이자 천재 과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 같은 튜링의 사례가 남긴 교훈은 그가 죽기 몇 달 전 친구에게 보낸 암호문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온 편지`라는 암호문에서 "배척의 원리는 자유롭게 내버려둔다면 타락하거나(또는 악마가 될) 사람들에게만 적용돼야 한다"고 썼다. 타락할 사람도 아니며, 악마도 아닌 자신을 배척한 영국 사회에 던지는 피맺힌 항의를 담은 암호문이었다.

최근 팀 쿡 애플 CEO가 커밍아웃을 위해 쓴 글에서도 이 같은 항의를 읽을 수 있다."여전히 많은 주에서 단지 성적 취향을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는 일이 합법이다. 많은 지역에서 집주인은 세입자가 게이라는 이유로 쫓아낼 수 있다. 배우자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가족이 아니라며 병문안을 거부당하거나 유산 상속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이들, 특히 아이들이, 성적 취향 때문에 매일 공포와 학대에 직면하고 있다."

마음 아프게도 인간은 이 같은 차별을 저지르는데 익숙하다. `차이`를 이유로 타인을 `차별’하는데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성적 취향이나 피부색뿐만 아니라, 출신 지역, 출신 학교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자를 차별한 역사가 있다. 소수자에 대한 불합리한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 이를 합리화해 왔다.

이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분명하다. 첫째, 알란 튜링과 같은 천재를 잃는 것이다. 그가 만약 42세에 자살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많은 업적을 쌓았을까? 컴퓨터와 인공지능은 더욱 빨리 발전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는 제2, 제3의 알란 튜링이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을 것이다. 젊은 인재들이 소수자에 대한 차별로 좌절하고 기회를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대가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 탓에 다양성에서 오는 창조와 혁신의 에너지를 잃을 것이라는 점이다. 불가능하다고 했던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한 집단은 암호 전문가로만 구성된 미국 암호해독팀이 아니었다. 오히려 온갖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영국팀이었다.

이처럼 다양성은 창조와 혁신의 원동력이다. 덜 똑똑해도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진 그룹이 똑똑하지만 단일한 그룹으로 채워진 그룹보다 훨씬 성과가 높다. 이 사실은 이미 스콧 E 페이지 미국 미시간 대학교 교수가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는 이론을 통해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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