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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수기] ​아픔으로 이어지는 삶(련재2) _ 김명숙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3월6일 06시19분    조회: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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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으로 이어지는 삶(련재2)


김명숙 

룡정시북안소학교
 
2

 

    젊은 시절에 그렇게 첫밗을 겪고나니 평생 아픔으로 이어가야 할 교사의 직업은 내 마음에 감당키 어려운 무게로 느껴졌고 때론 심한 자비심에 젖어들면서 갈림길에 서 헤매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심한 흔들림을 이겨내고 36년이란 담임사업을 오늘까지 견지해오게 된 것은 바로 나의 중학시절의 담임교원의 형상이 내 마음에 훌륭한 멘토로 되여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뒤늦은 배웅

 

    교문을 나서는데 하늘에서 거위털같은 눈송이들이 수없이 날아내린다. 매번 기말 시험을 끝내고 방학식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피로에 푹 절어있던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군 한다. 하지만 웬지 퇴근길에 다그쳐야 할 내 발걸음이 흩날리는 눈 속에서 멈칫멈칫 절주를 잃어간다. 눈 내리는 날은 그리움의 날이라던 누군가의 말이 실감으로 느껴지는데 홀연 하얀 눈송이들 사이로 인자한 얼굴이 희미하게 안겨든다.
   “아! 은사님…”
    가슴을 축축히 적셔주던 시간들이 벌써 일년이 흘렀다. 그 날 일에 묻혀 부재 전화들을 일일이 확인하지 못한 나는 안타깝게도 그 비보를 접하지 못했고 그래서 은사님의 마지막 길도 배웅해 드리지 못했었다. 비애가 짙어가는 송년의 날 나는 눈내리는 추억의 늪가에서 겉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애타게 바장인다.  

 

 


    은사님(南昌星)은 나의 중학시절의 담임이셨다. 화룡시 편벽한 시골에서 소학교 를 마치고 큰 형부를 따라 처음으로 연집중학교에 갔을 때 은사님은 40대초반의 혈기 왕성한 젊은이셨다. 작다마한 키에 몸집이 좀 왜소한 편이셨지만 늘 엄격하셨고 학생들에게 가끔 주먹도 날리시군 하셨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깊이 느껴지는 점이라면 그 때 은사님은 진심으로 학생들을 사랑했고 무엇보다 학생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아끼지 않은 훌륭한 분이셨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 나는 은사님에게 늘 시름같은 존재였다. 
    마지막 졸업학기였다고 기억된다. 방학이 되여 집으로 갔다가 개학이 되여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해 집구석에 들어박혀 눈물만 삼키던 일을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고향에 중학교가 없어지는 바람에 내 또래 친구들은 모두 학업을 포기하고 밭일을 하였지만 나만은 고집스레 큰 형부의 힘을 빌어 연집중학교에 가서 학업을 이어가게 되였다.

 

 

 

    그런데 새학기가 되자 두 동생까지도 외지 중학교로 가게 되는 바람에 나는 더이상 ‘억지’를 부릴 수가 없었다. 망망한 대해에서 방향 잃고 헤매는 듯한 내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은사님은 즉시로 나한테 돈 10원을 부쳐주셨다. 송금통지서가 300리 길을 날아 우리 집에 도착되던 날 우리 가족들은 물론 온 동네가 감동으로 젖어 있었다. 
    혼자 월급으로 장기환자인 사모님과 네 자식을 섬겨야 하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은사님은 한 제자의 장래를 념두에 두셨다.(그 때 은사님 로임 35원) 그 때의 그 10원의 가치를 나는 지금 무엇으로 얼마로 어떻게 계산해드리면 될가? 그렇게 되여 나는 한달만에 학교에 돌아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문득 학교에 찾아오셨는데 나를 체포’하러 오신 줄로 알고 친구집에 숨어있었다. 은사님 하고 밤새 술잔을 나누셨다던 아버지가 이튿날 교실에 찾아와서 나한테 소비돈 10원이나 쥐여주시며 좋은 선생님을 만났으니 잘해보라고 하셨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한테서 받아본 첫 소비돈이였고 첫 응원이였다. 눈물이 볼을 타고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은사님은 이처럼 한 제자의 암울했던 삶에 광명을 주셨고 용기를 주셨으며 끈끈한 힘을 주셨다. 내 생애에 이 같은 은사님이 계셨기에 고향의 여덟 동갑내기중에서 나는 유일하게 나라의 봉록을 타먹는 직장인으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고 있다.
    은사님은 반급의 학생들에게도 하나같이 관심을 쏟으셨다. 어느 한번 석인으로 식수하러 갔던 날 xx친구 어머니가 갑자기 사망하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은사님은 그 친구를 데리고 그처럼 어려운 형편에 부조금까지 지니시고 30리길을 도보로 다녀오셨다.

    또 졸업시험으로 긴장하게 보내던 어느 날 한 남학생이 학교 앞에서 리유도 안되는 조건으로 매를 맞았다는 소리를 들으신 은사님은 번개같이 뛰여나갔다. 당장 우뢰가 터질 것같은 조바심을 안고 은사님을 따라 나간 우리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은사님한테 멱살을 잡힌 그 사람이 손이야 발이야 수차 용서를 빌어서야 손을 거두시던 은사님은 참으로 우리들에게 아버지같은 존재였고 믿음이였다. 

 

 


    내가 고향의 조선족 소학교에 취직한 후 처음으로 찾아갔을 때 은사님은 1년전에 담임교원 자리를 내놓고 력사, 지리 학과들을 가르친다고 하셨는데 귀밑머리에 희슥희슥 서리가 내렸지만 의연히 패기를 잃지 않으셨다. 꼭 해낼 줄 알았다며 그처럼 흡족해하시던 그 날 은사님의 표정은 내가 교편을 잡던 첫날 웃음을 그칠 줄 모르시던 아버지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였다.

    은사님의 이렇듯 드팀없는 사랑과 기대 응원들은 시종 나에게 교원이라는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하였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는 든든한 멘토가 되여주었다. 
    동창만회후 귀국한 친구와 함께 오랜 만에 은사님댁에 갔었는데 은사님은 연길 북대에서 보모의 시중을 받으며 생활하고 계셨다. 전혀79세 로인답지 않게 연집중학교 건교일이 1958년 4월 13일이라는 것과 우리들의 졸업사진을 꺼내놓고 이름들을 하나하나 뜸도 들이지 않고 외우셨다. 하지만 전혀 본 적 없는 우울한 눈빛과 과묵해진 모습에서 우리는 은사님이 말못할 아픔을 겪고 있음을 보아냈다.

    사모님을 보내신 뒤 얼마 안되여 작은 아들도 보내셨다는 은사님의 얼굴에는 주름이 눈에 뜨이게 깊어졌고 머리도 많이 세여있었다. 그 날 우리를 바래시느라 문밖까지 나오신 은사님은 섣달의 쌀쌀한 추위로 더욱 안쓰럽게 보였다.

 

 


    “추운 겨울 몸조리 잘하세요.”
    은사님은 거리의 앙상한 가로수들에 눈길을 돌리시며 침울한 기색을 애써 감추셨다.
    “저렇게 벌거벗은 나무들도 용케 겨울을 견디는데 파란 잎들이 무성하게 둘러있는 나야 먼 걱정이 있겠나 허허…” 
    은사님은 이처럼 제자들을 늘 마음속에 두고 계셨지만 진정 따스한 잎이 되여드리지 못한 죄책감으로 오늘은 가슴이 더더욱 저려난다.
    송년의 밤은 각일각 짙어가고 바야흐로 새해 벽두가 다가오는 이 시각 하늘도 비애에 잠긴듯 슬픔으로 몸부림을 하는 하얀 송이들을 계속 흩날리고 있다. 매번 은사님을 떠올릴 때마다 작은 어려움앞에서도 동요를 하고 당연히 짊어져야 할 일들을 무게로만 생각해왔던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다. 민족의 운명을  이어가는 성스러운 이 길에 어찌 아픔과 고달픔이 동반하지 않으랴. 비록 늦었지만 저 멀리 서녘하늘을 우러러 두손 모아 다시 한번 은사님의 명복을 빌어드린다. 
    은사님!
    다음 생애에도 교원의 삶을 선택하시고 우리 제자들을 열심히 가르쳐주세요.
    아픔도 리별도 가난도 없는 천국에서 부디 행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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