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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06 10:09
▲ 마리사 메이어 야후 CEO / 일러스트 =최지웅 연구원
‘슈퍼 모델 외모에 컴퓨터 달인(supergeek with the supermodel look)’이 야후 CEO(최고경영자)에 발탁됐을 때 그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대단했다. 구글 등장 이후 줄곧 쇠락의 길을 걸었던 야후에 다시금 서광이 비치는가 싶었다. 기대는 잠깐이었고 실망은 길었다.
마리사 메이어(Marissa Mayer) 야후 CEO는 왜 실패했을까. 2012년 말 철수한 야후코리아의 임원 증언과 외신들의 평가를 종합하면, 최근 사망한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명언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가 떠오른다. 부드럽게 조직을 다루면서 송곳이 구멍을 뚫듯 하나씩 결과를 냈어야했는데, 메이어는 반대였다. 갑작스러운 해고 조치로 조직의 신망을 잃었고, 야후가 보유한 중국 알리바바 지분 처리는 질질 끌었다.
그가 야후 지휘봉을 잡은 지 4년 만에 야후는 인터넷 서비스 등 핵심 자산을 매각한다. 현재로선 메이어가 거액의 퇴직금을 받고 22년 역사의 야후 인터넷 서비스 문을 닫는 경영인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야후 직원들은 이제 그를 '에비타'(아르헨티나 비운의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의 애칭)’라 부른다.
◆ 조직을 벌벌 떨게 한 메이어式 해고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메이어는 ‘엄친딸에 독종’이다. 스탠퍼드대 졸업, 금발, 구글 20번째 입사,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와의 교제, 엄청난 금액의 스톡옵션, 만 37세에 올라선 야후 CEO 자리, 출산 2주만에 출근 등이 그렇다.
마리사 메이어가 야후 CEO에 깜짝 발탁된 것은 2012년 7월 16일이었다. 그는 임신 28주차에 받은 제의를 겁없이 수락하고 야후 CEO에 올라탔다. 첫 직장 구글(최종 직책은 부사장)을 떠난 첫 이직이었다.
외신들은 야후 사령탑으로서 메이어가 단행한 해고 조치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2014년 8월 그는 본격적으로 야후 직원들을 자르기 시작한다. 5분기 연속 이익 감소라는 부진한 성적을 낸 후였다. 수개월동안 매주 조금씩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었다. 다음 주에 누가 무슨 이유로 해고될 줄 몰라 조직은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2015년 3월 메이어는 “더이상 피를 묻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1100명을 추가로 잘랐다. 메이어는 2016년에도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기업경영 전문지 INC는 “해고는 ‘수술’처럼 해야한다. 깊고 빠르게 잘라내고 치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메이어는 그렇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메이어의 경영 스타일은 2012년 야후코리아 해체에서 이미 예고됐던 것이다. 메이어는 야후 CEO로 취임한 지 불과 몇 개월도 안돼 야후코리아 법인을 폐쇄했다. 야후코리아 전직 임원들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장이 메이어의 경영 스타일을 간파하고 야후코리아 폐쇄를 골자로 한 구조조정안을 냈고 메이어가 전격 수용했다.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면, 야후코리아처럼 될 수 있다는 일종의 엄포성 구조조정이었다. 당시 야후코리아는 네이버와의 경쟁에서 뒤처졌지만, 연간 영업이익이 500억원씩 냈었다. 국내에서 꽤 인기있는 야후 서비스도 적지 않았다.
미국 인터넷 경제지 비즈니스인사이더의 니컬러스 칼슨 편집장은 2015년 출간한 ‘마리사 메이어와 야후 구하기(Marissa Mayer and the Fight to Save Yahoo!)’라는 책에서 “메이어는 직원 고과를 SㆍAㆍBㆍCㆍD로 나누고 S10%, A 25%, B 50%, C 10%, D 5% 식으로 줬다”고 썼다.
▲ 미국 캘리포니아 주 서니베일에 위치한 야후 본사 / 블룸버그
◆ 수많은 인수합병(M&A), 결정적 한방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야후는 1994년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동료였던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가 만들었다. 야후는 주 매출원인 온라인 배너 광고의 침체,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등장에 따른 사용자의 관심 분산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메이어의 전략은 ‘모바일 퍼스트’였다. 그는 사람들이 매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서비스를 ‘뉴스 읽기’ ‘날씨 확인’ ‘이메일 확인’ ‘사진 공유’로 정하고 이 분야 1등 앱을 만들겠다는 전략을 내놓았다. 야후는 뉴스 요약 앱 ‘섬리’(2013년), 마이크로 블로깅 서비스 ‘텀블러’(2013년), 모바일 앱 분석업체 ‘플러리’(2014년)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 야후 매출 추이
그의 방향은 옳았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11억달러(약 1조2000원)를 주고 인수한 텀블러는 모바일 앱으로 변신하지 못하고 웹 기반 블로그에 머물렀다. 비슷한 시기 페이스북에 인수된 인스타그램의 가치가 340억~370억 달러로 평가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야후 내 모바일 팀이 워낙 약했던 탓도 있다.
메이어는 2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동영상 포털 사이트 ‘스크린’을 개설하고 동영상 광고회사인 브라이트롤을 6억4000만 달러에 샀다. 미국 방송국 NBC의 시트콤 '커뮤니티' 시즌 6 제작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사용자를 확대하기 위해 콘텐츠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야후는 시트콤 투자로 4200만 달러의 손해를 봤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이 동영상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알리바바에 대한 의사결정은 느렸다
헤지펀드 매니저인 에릭 잭슨(Eric Jackson)은 2014년 7월 미 경제지 포브스닷컴에 "야후는 '빅4(애플,페이스북,아마존,구글)에 파는 게 답"이라는 요지의 글을 기고했다. 당시 야후 기업가치는 330억 달러였는데, 그는 야후가 보유한 중국 알리바바 지분 가치를 370억 달러, 야후 인터넷 서비스의 가치를 마이너스 40억 달러로 계산했다.
야후 인터넷 서비스의 가치를 '마이너스'로 본 것에 대한 이견은 있지만, 야후의 시가총액 대부분은 알리바바 주식 보유 덕분이라는 것은 중론이었다. 야후는 2005년 중국 알리바바에 10억달러를 투자해 이 회사 지분 40%를 취득했고 현재도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잭슨의 기고 후 야후의 알리바바 지분 처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메이어는 주주들에게 떠밀리다시피 의사결정을 내려야 했다. 당초에는 메이어는 알리바바 지분을 처분해 야후 핵심 자산에 투자하려고 했지만, 세금이 예상외로 많이 나와 지분 처분 계획을 접었다. 이 결정을 내리는 데 약 1년이 걸렸다.
현재 메이어는 야후 인터넷 서비스 부문을 매각하고 야후를 알리바바 지분을 관리하는 회사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난 4월 야후 인터넷 사업부 매각 입찰에 참여한 버라이즌, 텍사스퍼시픽그룹(TPG), 베인캐피탈, 비스타에쿼티파트너스, 워렌 버핏 컨소시엄 등은 대략 20억~40억 달러 수준의 가격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입찰참여자가 많았던 이유는 야후의 월간 사용자수가 7억명에 달할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에서 야후 검색 점유율도 15% 정도 된다.
◆ 실적하락 → 질책 → 인재 유출...악순환에 빠진 조직
▲ 마리사 메이어 야후 최고경영자(CEO)가 2014년 칸 국제광고제에서 강연하고 있다. /블룸버그 제공
메이어의 리더십에 결정적 상처를 입힌 것은 핵심 임원들의 무더기 퇴사였다. 메이어는 자신이 영입한 엔리케 데 카스트로(Henrique de Castro) 최고운영책임자(COO)를 2014년 1월 내보냈다. 메이어는 구글 파트너 비즈니스 솔루션 사업부 부사장이었던 카스트로를 영입하면서 그에게 4년간 6000만달러에 달하는 연봉을 약속했다. 메이어는 실적이 나오지 않자 영입 1년 3개월 만에 그를 해고했다.
2015년에는 야후 유럽 책임자인 돈 에어리, 마케팅·미디어 책임자인 캐시 새빗, 개발 책임자였던 재키 리시스 등이 잇따라 회사를 떠났다. 메이어 체제에서 엔지니어링, 제품개발, 마케팅, 광고 등 핵심부문에서 퇴사한 고위 임원만 수십 명에 달할 정도다. 메이어가 일부 임원들을 붙들기 위해 거액의 보너스를 제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후 직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메이어의 주요 정책 중 하나가 재택 근무 폐지였다. 그는 재택 근무를 ‘야후병(炳)’으로 생각했다. 외근을 핑계대며 유유히 일찍 퇴근하는 직원, 재택 근무를 핑계로 창업을 준비하는 직원 등 도덕적 해이와 적당주의를 고치지 않고서는 야후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완벽주의자’ 메이어의 생각이었다. 그는 2012년 첫째 아들 일명 ‘BBBB(Big Baby Boy Bogue, Bogue는 남편 성)’를 낳은 후 14일만에 야후에 출근했고 2015년 둘째 딸 쌍둥이를 낳은 후에도 별로 쉬지 않고 출근했다.
독종에 완벽주의자도 야후를 구하지 못했다. 기사와 책을 통해 줄곧 마리사 메이어를 비판해온 니컬러스 컬슨 비즈니스인사이더 편집장도 “마리사 메이어가 아니라 누가 와도 야후를 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야후는 2008년~2012년 5명의 CEO가 불명예 퇴진한 ‘CEO의 무덤’이다. 콘텐츠 중심의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사업을 확장할수록 돈이 많이 들었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과의 기술 경쟁에서도 계속 밀렸다.
메이어는 야후를 구하는 데 실패했지만, 거액의 퇴직금은 챙길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메이어가 퇴진할 경우 5500만 달러(약 627억원)을 받게 된다고 보도했다. 야후의 매각으로 경영권이 교체되면 메이어는 주식 및 옵션 보상을 통해 5200만달러를 얻게 되며 추가로 현금 300만달러의 퇴직금을 받는다.
AP통신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연봉 3600만달러(425억원)으로 여성 CEO 연봉 퀸이었다. 연봉은 100만달러(약 11억원)에 그쳤지만 그가 받은 스톡 옵션 가치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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