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뉴스큐레이션팀 정진이
고대 이집트에서 16세기 르네상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그리고 20세기 중반까지는 대체로 풍만한 체형의 여성이 아름답다고 여겨졌다. 이 시대에 그려진 그림이나 조각, 아름답다고 여겨졌던 배우들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21세기로 들어서면서 마른 몸매가 미의 기준이 됐다. 전 세계적으로 다이어트 열풍이 불었고 이로 인해 건강을 잃고 섭식장애(거식증 또는 폭식증)까지 얻는 여성들이 급격히 늘었다. 이 때문일까. 최근에는 평범한 몸매가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지는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 움직임이 일고 있다.
프랑스 모델 이사벨 카로(Isabelle Caro)는 2007년 거식증의 위험성을 알리는 캠페인의 모델로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그 역시 13세 때부터 거식증을 앓았고, 촬영 당시엔 165cm에 30여kg이었다. 이사벨 카로는 2010년 28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이사벨 카로의 죽음으로 인해, 44사이즈 이하의 모델이 사회적 문제로 주목받았다. 결국, 지난 5월 프랑스 정부는 마른 모델(44사이즈 이하)의 패션업계 활동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모델 에이전시나 브랜드, 디자이너에게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이어 이달 초에는 세계 명품업계 1·2위를 다투는 프랑스 기업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와 케링(Kering)이 지나치게 마른 모델을 고용하지 않겠다는 공동 헌장을 이달 초에 발표했다. 두 그룹은 이탈리아 밀라노, 영국 런던, 미국 뉴욕의 런웨이에서 자사가 고용하는 모델들에게도 이 헌장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처럼 최근 1~2년 사이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 움직임이 전 세계 패션업계와 미디어를 변화시키고 있다. 깡마른 모델들의 활동에 제한을 둔 데서 그치지 않고, 풍만한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이 상승세를 탔다.
가장 주목받는 이는 단연 애슐리 그레이엄(Ashley Graham·29)이다. 그는 175cm에 약 80kg(한국 사이즈로는 XL~XXL)으로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애슐리 그레이엄은 다양한 '최초' 기록들을 세웠다. 그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 최초로 <맥심(Maxim)>과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의 표지를 장식했다. 또, 패션지 <글래머>가 선정한 '2016 올해의 여성'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세계적인 패션 잡지 보그(Vogue)' 영국판의 2017년 신년 호 커버도 장식했다.
그는 '신체 긍정의 아이콘' 답게 소셜미디어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두꺼운 허벅지가 생명을 구한다(thickthighsaveslives)'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셀룰라이트가 보이는 허벅지를 찍어서 올렸다. 이 영향을 받은 많은 여성이 자신들의 두꺼운 허벅지를 찍어 SNS에 올리기도 했다.
여성들만 '군살 없는 몸'에서 자유로워진 건 아니다. 몸짱 열풍에 지친 사람들은 건강한 뱃살을 '자신감' '여유로움' '쿨함의 상징'이라며 매력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아빠 몸매'라는 뜻을 가진 '대드 보드'(Dad Bod·Dad's Body의 줄인 말)가 사랑받는다. 피자와 맥주 등으로 얻은 얇은 지방층 아래 적당한 근육이 숨겨져 있는 체형으로 꽃미남 스타로 유명했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43), 코믹 연기로 유명한 애덤 샌들러(51) 등이 대표적인 대드 보드 매력남이다.
한국에서도 대드 보드를 매력으로 어필하는 스타들이 있다. 배우 조진웅(41)과 류승룡(47) 등이다. 식스팩은 없지만, 적당한 살집과 자신감, 여유를 매력으로 소화한다.
강박적으로 관리하지 않아도 내 몸을 사랑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는 듯도 하다. 하지만 아직도 남자들에게는 조금 더 관대한 것이 현실이다. 식스팩보다 매력적인 아빠 몸매는 있어도, S라인보다 더 탐나는 엄마 몸매는 없는 탓이다. 최근 불기 시작한 자기 몸 긍정주의의 바람을 타고 누구든 자신의 외형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조금 더 빨리 오길 바라본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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