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서 무작정 떡볶이 장사..."밑천은 언어와 열린 자세였죠"
필리핀 야시장에서 시작한 떡볶이 장사를 8개 프랜차이즈로 발전시킨 안태양씨는 한국 음식을 해외에 수출하는 케이푸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초등학생 때 핸드볼 선수였던 그는 6학년이 돼서야 처음 교실 책상에 앉아봤어요. 운동하다 갑자기 쓰러진 후 선수를 포기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죠. 중학생 땐 아웃사이더였습니다. 공부는 따라가기 힘들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방법도 몰라 3년 내내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잠만 잤죠. 지금은 성공한 외식사업가인 안태양(35) 푸드컬처랩 대표의 청소년 시절 이야기예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의 ‘자기주도진로 인터뷰’ 22.안태양 푸드컬처랩 대표
“중3 때 살던 경기도 부천에서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고입 선발고사를 치러야 했어요. 중학교 내신 성적이 거의 바닥이었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께서는 상업고등학교에 원서를 내라고 하셨죠. 원서 접수 마지막 날 어머니가 선생님께 통사정해 겨우 인문계고 원서에 서명을 받았어요. 원서를 내러 가는 택시 안에서 어머니가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나요.”
운동선수 출신 특유의 승부욕과 투지가 발동했습니다. 시험까지 남은 기간은 100일. ‘보여주고 말겠다’는 각오로 하루 10시간씩 공부했죠. 초등 교과서부터 다시 찾아보고 이해가 안 되는 것은 통째로 암기했어요. 결과는 부천 심원고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례로 합격. 중학교 내신 전교 꼴찌가 학력고사 상위 10%라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을 받았습니다.
고교 시절 태양씨는 내내 우등생이었죠. 3년 동안 반에서 1등을 도맡았고 전교 부회장으로도 활동했지만 대학 입시에서 생각하지 못한 시련을 겪었어요. 아버지의 사업이 갑자기 힘들어지면서 고3 1학기 중간고사를 망쳤고, 그 바람에 목표했던 대학의 수시전형에 지원하기에는 성적이 부족했어요. 기대하지 않았던 대학 한 곳에서만 합격 통지를 받았죠.
대학에서는 수업이 있는 낮을 제외하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아르바이트의 연속이었습니다. 과외 교습, 접시 닦기, 전단지 돌리기, 학원 복사대행, 청소,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주말에도 일하고 또 일했죠. 카페, 빵집 등 요식업과의 인연은 이때 시작됐어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막막했어요. 무작정 미국에 가서 영어를 배우겠다 마음먹었지만 가진 돈은 달랑 300만원뿐이었죠. 그때 필리핀을 다녀온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필리핀행을 결정했어요. 영어도 배울 수 있고 물가도 싸다고 해서요.”
2008년 10월 31일 태양씨는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필리핀으로 떠났습니다. 스물셋 외국인 여성에게 타국생활은 쉽지 않았죠. 고시원 같은 작은 방에서 힘든 나날을 보냈고, 억울한 일을 겪어도 하소연할 데가 없었어요. 우선 돈을 좀 벌자는 생각에 필리핀에 사는 한국 청소년을 상대로 개인과외를 하며 생활을 유지했죠. 그렇게 2년의 휴학기간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갈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어요.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보다 좋은 대학 나온 잘난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만약 필리핀에서 성공한다면 여럿 중 한 사람(one of them)이 아닌 유일한 한 사람(one & only)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는 복학을 포기하고 필리핀에서 사업을 해야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필리핀의 올티가스 야시장에서 떡볶이·잡채·제육볶음 등을 판매한 안태양씨.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스스로를 레고처럼 뜯어보는 버릇이 있어요. 내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장단점을 비교 분석해보는 거죠. 내가 무엇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는지 고민하다 필리핀 친구들과 한국음식점에 갔을 때가 떠올랐어요. 친구들에게 ‘파전에는 막걸리를 마셔봤는지, 삼겹살은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 등을 설명할 때 무척 행복하고 즐거워했다는 것이 생각났죠.”
‘필리핀에서 한국음식을 만들어 팔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한국에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여동생 찬양씨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했어요. 무작정 가게부터 얻겠다는 태양씨를 필리핀인 지인이 말리며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 내 가장 큰 야시장에서 테스트해볼 것을 조언했죠. 매주 금요일 밤 11시부터 다음 날 11시까지 열리는 올티가스(Ortigas) 야시장은 하루 방문객이 5000명 정도로, 한류가 불기 시작한 이곳에서 한국음식을 판다면 대박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2010년 3월, 동생 찬양씨와 올티가스 야시장에서 첫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대박 날 거란 기대감에 떡볶이부터 김치찌개, 잡채까지 수십 가지 메뉴를 100인분이나 준비해 갔죠. 하지만 12시간 동안 목이 터져라 호객행위를 해서 판 것은 달랑 2500원짜리 떡볶이 2인분.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3개월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지난해 서울 강남구 학여울역 세택(SETEC)에서 열린 '2018 대한민국 한류문화 대상' 시상식에서 푸드컬처랩이 상을 받았다.
“왜 안 될까, 과연 장사란 뭔지, 사업이라는 게 뭔지 고민하다 3개월쯤 지나고 나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나는 한 번도 장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거죠.”
그때부터 주경야독이 시작됐습니다. ‘장사’와 관련된 책 50권을 비행기로 공수받아 몇 개월간 밤새워 공부했죠. ‘내가 정말 장사를 하나도 모르는구나, 막무가내로 시작했구나’ 하는 깨달음의 연속이었어요. 배운 것 중 괜찮은 방법은 야시장에서 바로 적용해보기도 했고요.
“어떻게 하면 고객이 환영받는다고 느낄 수 있을까, 나를 기억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30분씩 웃는 연습을 했어요. 또 시장 사람들에게 깍듯하게 인사하는 건 물론 50~60인분씩 남는 식재료를 1인분씩 포장해 나눠주고 음식 맛이 어떤지 조언도 부탁했고요.”
지난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개최한 케이푸드 홍보행사에서 김치 파우더를 홍보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맛있다고만 하던 상인들이 조금씩 진솔한 평가를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가지 메뉴로 정신없던 메뉴판도 6개월째부터는 떡볶이·김말이·잡채·라면·불고기덮밥·제육볶음 6가지로 정리했죠. 끊임없이 고민하며 수정해가니 조금씩 손님이 늘었어요. 가게 앞에 100~200명씩 줄을 서기 시작하자 직원도 채용했죠. 자리 잡은 가게를 동생에게 맡기고 2호점을 냈습니다. 2호점 역시 1호점과 비슷하게 매출이 나와서 내친김에 3호점까지 열었죠.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어요.
“1·2호점과 똑같은 음식을 팔았는데도 3호점은 매출이 안 나오는 거예요. 고민하다 보니 한 가지 사실을 알겠더라고요. 고객들이 저희 가게에 오는 이유가 바로 한국의 젊은 여성, 즉 저와 동생을 보러 온 거였다는 점이죠. 그제야 우리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다시 브랜드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죠. 고민 끝에 ‘서울시스터즈’로 이름 짓고 자매의 얼굴을 본 딴 로고와 밝은 느낌이 나는 노란색의 CI(Corporation Identity·기업의 이미지를 통합하는 작업)를 만들었습니다. 브랜드 디자인을 적용한 3호점을 한 달간 테스트한 결과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고 이후 3년간 서울시스터즈 프랜차이즈 매장을 8개까지 냈어요. 필리핀에서 독자적인 프랜차이즈를 성공시킨 태양씨는 연 매출 8000억에 이르는 중국기업 GNP트레이딩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습니다. 고민 끝에 서울시스터즈를 매각하고, 동생과 함께 입사했죠. 4년 동안 ‘K펍 비비큐’, ‘오빠치킨’ 등 2개 브랜드를 만들어 동남아 시장의 프랜차이즈로 키웠어요.
김치맛 양념인 김치파우더는 현재 베트남에서 출시를 앞두고 있고 중국·호주·미국에서도 계약을 앞두고 있다.
큰 회사에서 사업해 보니 필리핀보다 더 큰 시장에서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문에 대한 갈망도 커졌어요. 2016년 매주 필리핀과 한국을 오가며 14주 과정인 중앙대 외식업 프랜차이즈 최고경영자과정을 수강했죠. 이듬해에는 필리핀과 한국을 오가는 프리랜서로 컨설팅을 했어요. 국내 투자회사의 요청으로 필리핀의 복싱영웅 매니 파퀴아오의 회사 설립과 관련된 일을 맡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3월에는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어요. 필리핀 진출을 원하는 한국의 식품 제조회사 대표로부터 컨설팅 요청을 받아 케이푸드(K-Food)의 제조·유통·판매까지 토탈 서비스를 담당하게 된 거죠. 태양씨의 첫 케이푸드 사업 아이템은 ‘김치 파우더’. 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김치맛 시즈닝, 어디든 편하게 뿌려 먹을 수 있는 조미료를 만들겠다는 계획으로 기획부터 연구개발을 거쳐 완제품이 나오기까지 10개월이 걸렸죠. 13개국에서 테스트하며 끊임없는 수정을 거친 끝에 베트남에서 첫 계약을 체결했고 중국·호주·미국에서도 계약 체결을 앞뒀어요. 태양씨는 글로벌 시장에서 사업가로 성장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세 가지 역량으로 외국어와 편견 내려놓기, 다름을 인정하는 열린 자세를 꼽았죠.
끊임없는 연구와 13개국 테스트를 거쳐 개발된 김치파우더.
지난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케이푸드 페어(F-Food Fair)에 참가한 안태양씨. 베트남 바이어와 1:1로 진행하는 수출상담회를 가졌다.
“사업은 결국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라 마음과 마음이 맞아야 합니다. 해외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그 나라의 언어로 소통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외국어를 할 줄 알면 그만큼 나의 세계가 넓어지죠. 또 한국인들이 은근히 편견이 많은데요, 편견이 많을수록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듭니다. 마지막으로, 다름을 내 기준만으로 틀렸다고 보는 순간 외국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다를 수도 있다, 다른 문화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에게는 이렇게 조언했어요.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20대 초반에 필리핀에서 떡볶이 장사를 안 했다면 지금의 안태양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살아보니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부모님이나 TV가 보여주는 직업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리고 뭐든 도전하기 전에 공부하고 준비하세요. 저는 맨땅에 헤딩하듯 했지만 최소한 책도 찾아보고 사람도 만나볼 것을 권합니다. 사업을 하고 싶으면 먼저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출처: 중앙일보] [소년중앙] 필리핀서 무작정 떡볶이 장사..."밑천은 언어와 열린 자세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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