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원으로 입사, 25년간 대표
목공소 수준 한샘, 2조 기업 키워
강승수 부회장에게 대표 물려줘
“주인으로 일하면 주인 된다”
최양하 한샘 회장이 다음달 1일 물러난다. 평사원으로 한샘에 입사한 그는 1994년부터 25년간 대표로 일했다. [사진 한샘]
“몇 년 전부터 차분하게 (퇴임) 준비를 해왔다. 이제 물러나야 할 때가 됐다.”
최양하(70) 한샘 회장은 지난 29일 이렇게 말했다. 강승수(54) 한샘 부회장과 함께한 점심 자리에서다. 지난 1994년 한샘 대표에 오른 최 회장은 25년 만에 대표 자리를 후임자에게 물려주게 됐다. 강 부회장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 대표이사직에 오를 예정이다. 국내 최장수 전문 경영인이 용퇴 의사를 밝힌 이 날 점심 자리는 무겁지 않았다. 최 회장은 이날 “올해로 딱 칠십이다. 이제는 떠날 나이가 됐다”며 “내가 경험한 시행착오를 들려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대표이사직 임기를 1년 이상 남겨두고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퇴임식은 간소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다음 달 1일 열리는 월례조회에서 그는 임직원들 앞에서 현업에서 물러나는 소회를 밝힐 예정이다. 한샘 관계자는 “대대적인 퇴임식은 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는 최 회장은 한샘 고문을 맡을 예정이다.
최 회장은 목공소 수준이던 한샘을 매출 2조원 기업으로 키웠다.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대우중공업에서 3년간 일한 그는 1979년 평사원으로 한샘에 입사했다. 설립 9년밖에 안 된 소규모 가구 기업으로 이직한 이유에 대해 최 회장은 “어려울수록 기회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최양하 한샘 회장(왼쪽에서 네번째)이 2002년 열린 주식 상장 기념식에 참석했다. [사진 한샘]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일하는 방식을 바꿨다. 입사 4년 만에 한샘 공장장에 오른 그는 수작업 중심의 가구 제작 방식에 자동화 시설을 도입했다. 가구 설계에서 연필을 버린 것도 그였다. 한샘은 89년 건축 등 일부에서만 사용하던 프로그램인 캐드(
CAD)를 부엌가구 설계에 도입했다.
한샘을 창업한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은 생산부문에서 뛰어난 성과를 낸 최 회장은 눈여겨봤고 그에게 경영 전권을 맡겼다. 94년 대표이사에 오른 최 회장은 “한샘은 가구가 아니라 공간을 파는 회사”라며 기존의 틀을 깼다. 경쟁사는 소파와 옷장을 구분해 상품을 팔았지만, 한샘은 안방과 거실 등 거주 공간 중심으로 전시장을 꾸렸다. 효율과 단순화라는 그의 엔지니어 중심적 사고는 시장에서 먹혔다. 상담-설계-시공-애프터서비스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하나로 통합해 공사 기간을 한 달에서 일주일로 줄였다.
가구 공룡 이케아가 한국에 진출한 2014년, 최 회장은 “한샘은 가구를 파는 기업이 아니라 설계부터 시공까지 사람이 하는 서비스업”이라는 신경영 전략을 발표했다. 소비자 반응은 매출로 나타났다. 한샘은 2013년 가구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고, 2017년에는 매출 2조원(연결 기준)을 깼다.
부침도 있었다. 사내 성범죄 사건으로 최 회장은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사회와 가치관이 변화했는데 회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머리를 숙였다.
최양하 한샘 회장이 임직원과 테이블에 앉아 회의를 열고 있는 모습. [사진 한샘]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장수 전문 경영인에 오른 최 회장의 지론은 그가 평소에 자주 꺼내는 주인과 머슴론으로 압축된다.
“회사에는 두 부류 사람밖에 없다. 주인이냐, 머슴이냐. 주인으로 일하면 주인이 된다. 주인은 스스로 일하고 머슴은 누가 봐야 일한다. 주인은 힘든 일을 즐겁게 하고 머슴은 즐거운 일도 힘들게 한다.”
지난 8월 한샘이 공시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최 회장은 한샘 주식 77만9730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29일 종가 기준 489억원 상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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