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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모두 '독립유공자'로 표창한 혁명가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3월31일 10시09분    조회:3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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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서를 빠져나와 감쪽같이 사라진 거물급 공산주의자 '이재유'


일제가 만주를 석권한 1934년 4월 13일 밤. 조용하던 서대문경찰서에 한가닥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이어 "이재유가 달아났다"는 고함소리와 함께 당직경찰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경성과 경기도 경찰부 모든 병력이 총동원되어 시내를 뒤졌지만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

일본 경찰이 더 충격을 받은 것은 이재유가 한달 전 탈출했다가 다시 붙잡혀 2명의 감시인을 붙이고 양손에 자동수갑까지 채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시 이재유는 경찰서 고등계 형사실에서 고문과 구타를 받으며 조사를 받다 양심적인 일본인 모리다 순사의 묵인 아래 1차 탈출에 성공했다.

그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정동 골목길로 달리다 경찰이 보이자 어떤 집의 담장을 넘어 들어갔다.

그러나 하필 그 곳은 미국 영사관이었다.

미국 영사는 이 초라한 행색의 조선인을 도둑으로 단정하고 일본경찰에 넘겨줘 1차 탈출에 실패했다.

그러면 이번에 이재유는 어떻게 탈출했나?

그는 배달되는 우유의 양철 병뚜껑과 짓이긴 밥알을 이용해 수갑 내부의 형을 떠서 열쇠를 만들었다.

이어 개인 사물함에서 외투와 마스크, 지폐를 꺼내놓고 탈출 기회를 노렸다.

그러다 같은 방에 있던 피의자가 설사 때문에 당직경찰과 함께 화장실에 간 사이 유유히 경찰서를 빠져 나갔다.

택시를 타고 이재유가 찾아간 곳은 동숭동 경성제대 교수 관사였다.

평소 친분이 있는 일본인 사회주의자 미야케 교수가 반갑게 맞았다.

이 곳에서 다다미 밑의 나무마루 아래 흙을 파서 토굴을 만들었다.

이재유는 38일 후 미야케 교수가 다른 사건으로 체포될 때까지 이 토굴에 은신했다.

경찰이 미야케 교수 집을 샅샅히 뒤지고 떠나자 이재유는 토굴에서 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농사를 지으며 조직을 재건하다 다시 체포

탈출하기 2년 전에 1차 수형생활을 마친 이재유는 동지들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상황은 이미 민족주의 진영이 친일로 돌아서고 조선공산당 마저 궤멸되자 사실상 일본에 대한 저항은 끊긴 상태였다.

이재유는 붕괴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기로 하고,비타협적 운동가들과 함께 경성시내 노동자와 부두 노동자, 학생운동, 농민조합을 연결해 연쇄파업, 동맹휴학을 지도했다.

일련의 파업을 주시하던 일본 경찰은 배후에 조직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대규모 검거와 고문수사 끝에 이재유를 검거한 것이다.

1937년 일제의 어용신문인 <경성일보>호외. 이 신문은 이재유 체포 기사에서 "집요흉악한 조선공산당 마침내 괴멸하다"고 보도했다. (사진=사회평론 제공)

 
<조선일보>의 1937년 5월 1일자 호외.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로 두 손을 앞에 모은 인물이 체포된 이재유다. 일본 형사들은 체포 성공을 기념한다고 변장한 복장 그대로 기념촬영을 했다. 당시 서대문경찰서는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사진=사회평론 제공)

 
이재유는 갓 출옥한 동지 이관술(전 동덕여고 교사)을 만나 서울서 멀지 않은 경기도 양주군 공덕리(지금의 노원구 창동)의 농촌마을에 정착했다.

두 사람은 여기서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전국 조직에 뿌릴 팜플렛을 만들었다.

이재유는 수시로 서울로 나가 조직 재건에 몰두했다.

이재유의 뒤를 쫒던 일본 경찰은 드디어 성탄절인 1936년 12월 25일 창동역 부근 야산에 이재유가 나타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오전 11시, 온갖 복장을 한 형사 60명이 코밑에 수염을 기른 농부 차림의 사내를 덮쳤다.

이재유는 끌려가면서도 미친 사람처럼 소리지르며 저항했다.

"놔라~ 이 더러운 쪽발이놈들아! 일본이 영원할 줄 아냐?"

그가 소리지른 것은 자기를 기다리는 이관술에게 빨리 도망가라는 신호였다.

이렇게 해서 이재유는 서대문경찰서에서 탈출한 지 2년 8개월만에 붙잡히고, 6년 후 1944년 10월 26일 해방을 보지 못하고 청주보호교도소에서 병사하였다.

일본이 패망한 뒤 북한 정권은 이재유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남한 정부도 독립운동을 통해 건국에 기여한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이재유 계열의 일제하 마지막 저항운동…'경성꼼그룹'

1930년대 독립운동을 하던 사회주의자들이 자주 접선하던 '황금정' 일대. 현재의 을지로이다. 이재유는 서대문경찰서에서 2차 탈출한 뒤 택시를 타고 이 곳에 내렸다. (사진=사회평론 제공)
이재유가 체포되자 잠적한 이관술은 다시 이재유의 조직 재건에 나섰다.

그는 전국을 돌며 이재유와 연결된 인물들 100여명을 엮어 전국 조직을 만들었다.

지도자로는 감옥에 있는 이재유 대신 조선 공산주의운동의 상징인 박헌영을 영입했다.

이 조직이 36년간의 일제치하에서 마지막으로 저항한 '경성꼼그룹'이다.

그러나 1941년 몇 차례에 걸친 검거 선풍으로 조직원 대부분이 체포되면서 와해된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있던 제3차 조선공산당 대표였던 김철수씨의 회고담이다.

"감옥에 자꾸만 박헌영파만 잡혀와. 공산당 재건운동 한다고 잡혀오는거야.우리 파는 이권운동이다 양조장이다, 정미소나 하면서 왜놈들한테 얻어먹고 다니는데…. 그걸 보고 일본놈들이 패망하면 아무래도 박헌영을 내세워야지 그런 생각을 했지."

해방이 되자 이재유 계열이 조선공산당의 주도권을 잡는다.

그러나 남북 분단과 미소 주둔, 단독정부 수립, 한국전쟁을 거치며 남과 북에서 버림받는다.

하지만 여자들은 살아남았다.

이재유로부터 지도를 받은 이관술의 동덕여고 제자 이효정 할머니는 이렇게 과거를 되돌아봤다.

"일제시대에는 사회주의가 진리였습니다. 사회주의도 많은 일을 했어요. 적어도 독립운동에서는 그랬어요. 나는 젊음을 사회주의 운동에 바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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