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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2시, 서울 YWCA에서 개최
우당 이회영 선생 [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만주 지방에 한인 자치기구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강습소’를 설립해 독립군 양성에 이바지한 우당 이회영 선생을 기리는 탄신 150주년 기념식이 21일 오후 2시 서울 YWCA 강당(서울 중구 명동 소재)에서 열린다. 이날 기념식은 (사)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회장 홍일식)와 광복회(회장 박유철)가 공동으로 주관한다.
선생은 한말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의 4남으로 태어났다. 일제에 국권이 침탈당하자 장래가 보장된 명문대가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구국운동에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다. 선생은 1910년 12월말 6형제 50여명의 가족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만주로 망명해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망명 후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 추가장에 정착한 선생은 1912년에 이주 동포들을 위한 자치기구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했다.
1919년 3·1운동 직전 중국 북경으로 다시 망명길에 올라 상해에서 동지들과 임시정부 수립 문제를 논의했다. 이후 북경으로 돌아와 1924년 4월 류자명·이을규·백정기 등과 함께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조직하고 ‘정의공보’를 간행했다.
1928년 6월 상해에서 한·중·일·필리핀·대만·안남 등 각국의 아나키스트들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이 창설되자 ‘한국의 독립운동과 무정부주의운동’이라는 논문을 보내 한국 독립 지원을 호소했다. 1930년 아들 규창과 함께 상해의 ‘남화한인청년연맹’에서 활동했다.
1932년 중국의 동지들과 만주에서 한·중 연합의 항일투쟁을 계획했다. 11월 초 대련행 기선을 타고 상해 황포강을 출발해 만주로 가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다 11월 17일 66세를 일기로 옥중에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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