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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77]학자의 사명감을 안고(김춘선편6)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12월6일 18시29분    조회: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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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77](김춘선편6)

우리 조선족사거나 연변지방사를 보면 하나의 독특한 특색이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정부에서도 승인하는 것인 데 그것이 바로 1980년대 문화부 부장이며 시인인 하경지가 연변을 시찰하고 남긴 유명한 시구이다. 즉 “산마다 진달래, 촌마다 렬사기념비”. 우리 연변의 지역사 조선민족사를 실로 형상적으로 잘 묘사한 시구라고 생각한다.

왕청 라자구 태평촌의 신선동 유적지 답사.

그런데 왜 이런 시구가 나올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우리 민족의 력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 민족은 항일전쟁시기, 해방전쟁시기, 항미원조 그리고 사회주의 건설시기에 뛰여난 공헌을 하였다. 그 공헌은 피의 대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민족은 기타 민족에 비해 렬사가 가장 많다. 항일전쟁시기 렬사는 길림성 전체 렬사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은 항일전쟁과 해방전쟁시기에 많은 렬사를 배출하면서 피의 대가로서 공화국의 창립에 공헌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때문에 중국의 력대 지도자들도 이 공헌을 승인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성붉은기에는 조선민족의 붉은 피가 물들어 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력사인물을 연구하는데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1980년대부터 시작하여 우리 민족의 우수한 렬사들을 뽑아서 인물전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지금까지 수십권에 달하는 인물전이 나왔는데도 그 인물전에 나온 렬사들을 통합해보면 거퍼(불과) 수십명을 초과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조선족의 렬사들은 연변만 해도 16,000여명이나 된다. 그렇다면 동북3성을 합치면 근 2만명에 달하는 우리 민족의 렬사가 있다. 촌마다 렬사비라고 책에, 신문에 그렇게 자랑하고 선전하면서도 렬사전에 나오는 인물들은 고작 수십명에 불과하니까 이것은 사실적으로도 잘 부합되지 않는다고 본다.

답사의 길에서.

또 다른 하나의 문제점이 있다. 수많은 렬사들이 그때 당시에 특히 해방전쟁시기에 많은 전투에 참여하여 수많은 희생을 냈다. 그리고 지금 현지에 가보아도 그 전투가 있었던 당지에 렬사기념비가 서있고 그 기념비에는 그 전투에서 희생된 렬사들의 이름이 밝혀져 있다. 물론 우리 연변지역이 각 촌마다 세워진 렬사비에도 그 촌에서 배출한 렬사들의 이름이 밝혀져 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정부의 민정국(퇴역군인관리사무국)이나 유관 부서에서 관리하는 렬사당안(서류)의 렬사 통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명단이 루락되여 있다. 현지의 기념비에 분명히 새겨져 있을 정도로 그때 확실히 사망된 렬사들까지도 여러가지 원인으로 지금 정부의 공인과 대우를 받지 못하는 있는 이런 실정이다. 그 원인을 분석해보면 하나는 선전분야인 책에서 많은 렬사들이 소개되지 않은 점이고, 다른 하나는 희생된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적시적인 대책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미흡한 점을 보완하고저 렬사전을 새롭게 출판할 계획을 세우고 2015년부터 자료를 수집하고 책집필에 착수하였다.

연변력사학회 제3차 년회.

《중국조선족렬사략전》은 중국정부에서 공인하는 모든 렬사들을 똑같은 형식과 분량으로 집필하는 원칙하에 만들어졌다. 퇀장이나 사장 등 높은 직에 있었던 인물은 많이 쓰고 일반 렬사는 적게 쓰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분량으로 우리 모든 렬사들을 기록에 남기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것이다. 2만여명에 달하는 렬사를 우리가 한권당 400명씩 약 50권을 출간하려고 계획하고 있고 금년까지 이미 출간된 책은 약 38권에 달한다. 연변지역의 조선족렬사들은 이미 편집이 끝났고 연변의 특수한 환경을 고려하여 제39권, 제40권, 제41권은 한족렬사들을 싣기로 하였다. 이렇게 래년까지 연변지역의 렬사전은 이미 다 마무리 되는 상황이다. 좌우간 이 렬사전의 편집에서 우선 해야될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개인적으로 학술적으로 또 학자 개인이 수집할 수 있는 자료는 극히 제한적이고 렬사 개개인에 대한 자료는 더구나 많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제일 확실하고 제일 신빙성이 있는 자료는 지금 국가 민정국(현재는 퇴역군인관리사무국)에서 보관하고 있는 증실자료이다. 이 자료를 정부에서 제공하여 주어야만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초기에 이 계획을 추진할 때 지금 주장으로 사업하고 있는 김수호가 주당위 선전부 부장이였다. 선전부 부장이 정부적 차원에서 이 사업의 중요성을 알고 우리를 적극적으로 밀어주었고 또 이것을 연변인민출판사 사장 리성권이 출판사에서 중점도서프로젝트로 출판하기로 제안하여 시작하였는데 각 민정국의 유관 부서에서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자료를 제공하여주었고 이 자료를 토대로 집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집필은 우리가 자료를 보유하고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정부에서 제공하는 그 증실자료를 검토하여 보았는데 우리가 바라던 것처럼 그렇게 완미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신빙성이 있는 것도 아니였다. 상당히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였고 력사와 부합되지 않는 사실도 인증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그것을 토대로 렬사략전을 쓴다는 것은 사명감이 없고 력사학자로서의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자료가 불완정하지만 우리는 렬사들의 행적을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사실적으로 남겨나야 된다는 사명감에서 렬사전을 집필하기 위한 참고서를 만들기로 작심하였다.

룡가미원 신규식조각상 제막식에 참가해.

내가 주필을 맡았기 때문에 나를 중심으로 이 집필에 참여하였던 많은 학자, 그리고 항일전쟁시기, 해방전쟁시기의 각 지역 력사유적을 답사하면서 많은 연구성과를 올렸던 당사자들을 모여놓고 십여차의 좌담회를 거치면서 참고서 작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토대로 참고서에서는 첫째, 우리 조선족들의 초기의 항일무장이 어떻게 형성되였고 발전하였는가를 하나하나 상세하게 체계화시켰다. 대체로 항일전쟁시기, 해방전쟁시기, 항미원조시기 세개 시기를 나누어서 매개 시기마다 우리 조선족렬사들의 발자취를 참고서를 보면 쉽게 찾아가고 론증할 수 있겠끔 하였다. 례하면 몇년도 몇월 몇일 어느현 어느촌에서 입대하였다면 이분은 어느 부대에 입대하였고 후에 어느 부대에 편입되였고 어떤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어떤 행적이 남겨져 있는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고 어느 지역에서 희생되였다면 우리가 이분은 어느 부대에서 어느 전투에 참가하였고 어떻게 희생되였다는 것을 우리가 아주 과학적으로 학술적으로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었다. 이러한 원인으로 지금까지 출간된 책들을 유가족들이 받아보고 많은 사람들이 감개무량해하였다. 자기의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 어머니들의 력사를 말로만 듣고 있었는데 그렇게 상세하게 문자기록으로 서술된 것은 이번에 처음 봤다면서 상당히 기뻐하는 것이였다.

저의 생각으로는 이 책이 완미하게 출간되면 유관 정부기관에서도 이걸 참조해서 기존에 보관되여 있거나 기존에 작성되였던 잘못된 력사기록들을 정밀히 조사하여 새롭게 보완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가고 생각한다.

김춘선교수가 <신해혁명과 중국조선족> 학술회의를 사회하고 있다.(2011.10.10)

우리들은 우선 이런 렬사들이 렬사책에 나간 다음 우리가 장악하고 우리가 자료를 수집하여 인정한 렬사들, 그러나 정부에서 아직 인정하지 않은 렬사들을 다시 정부와 교섭하여 후손들이 있으면 후손들을 유가족으로 내세우고 없으면 우리 민족력사연구소라든가 력사학회라든가 이런 학술단체에서 그의 후손들을 대신하여 정부와 교섭하여 이들을 다시 렬사로 추인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공적을 인정하고 력사의 기록에 남기는 것도 우리의 사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이런 사업은 우리가 일찍 한 바 있다. 조선의용군이 화북지역에서 싸울 때 희생된 렬사들이 있었으나 이들 렬사 후손들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에 우리 민족연구원에서 그분들의 후손들을 대신하여 정부에 서류를 제출하고 그분들을 중국정부의 혁명렬사로 추인한 사례가 있다. 이와 같이 오직 우리가 진정성이 있고 책임감 있게 모든 일들을 추진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전쟁시기였고 또 사회가 혼란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의 가족이 조선으로 나가거나 기타 지역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유가족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루락될 수밖에 없었던 이런 렬사들을 우리의 노력으로 새롭게 발굴하고 인정하고 이런 사업을 추진한다면 렬사들에게나 렬사들의 유가족에게 미안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었다는 긍지감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이번에 우리가 출간하는 《중국조선족렬사략전》은 단순히 우리 연변 뿐만 아니라 연변을 제외하고도 길림성 기타 지역과 료녕성, 흑룡강성의 렬사들에 대해 래년과 후년에 지속적으로 사료를 수집하고 추진할 예정이다.

연변인민출판사 리성권 사장으로부터 도서를 전달받고 있다.(2010.12.3)

조선족력사연구에서 자료중심 혹은 연구중심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지속적으로 밀고 나아가려면 제일 중요한 것은 인재중심이다. 비록 우리 중국조선족사 연구인재들은 중국의 많은 대학교들에서 양성되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중점적으로 연변지역에 있는 연변대학, 민족대학으로서의 연변대학이 그 중요한 임무를 떠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연변대학에서는 과거에는 력사학과에서 중국조선족사 혹은 동북사, 혹은 조선족사를 일부 강의하면서 학자들을 양성한 바 있었는데 이러한 학부생으로는 조선족사연구를 체계화시키고 국제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능력있는 학자를 키우기는 역부족이였다. 그리하여 1980년대 중반부터 중국의 대학 학제가 개변되자 연변대학에서도 최초로 석사학위점을 내오게 되는데 력사분야에서는 1985년도에 중국조선족사라는 석사연구생학위점을 내오게 되였다. 이 학위점에서 지속적으로 많은 석사연구생들을 양성하였는데 지금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많은 조선족사 연구교수들은 거의 대부분이 바로 최초로 연변대학에 설치된 조선족사 석사학위점에서 양성된 학생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 석사학위로서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1990년대 중반에 연변대학에서는 다시 세계사 박사학위점을 설치하게 된다. 세계사는 우리 중국에서 아마 동아시아력사 내지는 조선사, 한국사, 일본사 연구에서 연변대학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에서도 연변대학에 세계사 박사학위점을 두게 된 것이다. 그후부터 연변대학에서는 세계사 박사학위점을 통해서 수많은 박사생들을 양성하는데 세계사 박사학위점의 중점은 바로 조선사이다. 이 조선사에서 육성된 많은 박사생들이 지금 중국의 각 대학에서 많은 학생들을 양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사졸업생들과 함께.

두번째는 력사연구를 어떻게 더 활성화시키는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서 연구생을 양성하는 방법에서도 문제가 있다. 유럽과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여러가지 문제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점은 대학교까지 연장되는데 대학교 교수도 완전한 주입식은 아니지만 주입식 위주의 교수방법을 타파할 수 없다. 현재 우리의 민족사 학위점에서의 교수에는 주로 창의성 교수가 많다. 이에 따라 석사연구생 교수는 주입식이 아니라 자기절로 자료를 찾고 자기절로 사유하고 자기절로 주제를 잡고 발표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렇다면 론문을 써야 하는데 론문을 쓰는 주제의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자료를 발굴하고 어떻게 자료를 분석하고 어떻게 그 문제를 론증하느냐 어떻게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준확하게 인과관계를 설명하느냐 하는데 착안점을 두고 인도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사에서 육성된 많은 연구생들은 이같은 교육을 받았기에 창의성이 기타 학과에 비해서 좀 더 우월하다.

교실에서의 강의로서는 지금의 학술연구나 발전추세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리하여 적극적으로 이들을 력사현장에 투입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는 학생들을 양성할 때 교실에서의 강의와 토론 등 형식을 떠나서 그들과 같이 력사현장을 직접 답사하면서 력사현장 속에서 강의를 함으로써 조선민족의 이주사, 수전개척사, 항일투쟁사, 해방전쟁사 등등을 생동하게 가르칠 수 있었다. 이러한 답사과정을 통해 학생들도 배우는 질이 훨씬 제고되였고 터득하는 능력도 많이 향상되였으며 문헌에서 찾은 자료를 어떻게 현지답사를 통해서 더 정확하게 분석하고 승화시키느냐 하는 등등 연구능력을 제고시켰다.

세번째로 내가 말할 것은 연구후계자 양성(문제)이다. 이 면에서 우리는 과거에 주로 조선족학생들을 중심으로 양성하였다. 그러나 금후 추세는 조선족학생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타 민족 학생들도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과에서는 약 10년전부터 학생모집으로부터 기타 민족을 우대하는 그런 방법을 취했고 입학 후에도 조선족학생 뿐만 아니라 한족 혹은 기타 민족의 학생들도 중점적으로 양성하여 금후 조선족사연구의 진정한 후계자로 육성될 수 있도록 우리가 많은 관심을 주었다.

묘향산 답사의 길에서.

조선족력사학계에서 대학을 제외하고 제일 중요한 기구로는 연변력사학회라고 볼 수 있다. 연변력사학회는 문화대혁명 직후 설립되였는데 아마 1978년경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에 연변력사연구소에 배치되였을 때 최초로 연변력사학회 년회에 참가하였는 데 그때는 연변력사학회 기구가 지금처럼 세분화되지 않았다. 연변력사연구에 종사하는 모든 분야와 학자들 다시말하면 대학교 교수들과 연구기관의 연구인원들, 각 고중의 력사교원들 그리고 력사 뿐만 아니라 정치분야도 력사학회에 공동으로 참여하여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연변력사학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런 력사학회가 1990년대에 이르러 점차 세분화되면서 당사학회, 력사교육학회, 력사학회로 확대되였다. 력사학회의 초대회장에는 박문일교수였고, 그후 황룡국, 박창욱, 최홍빈 이렇게 이어졌으며 나는 제4대 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오고 있다.

연변력사학회의 주된 임무는 조선족사 연구보다도 주요하게 지방사 연구이다. 다시 말하여 연변력사학회의 주요임무는 조선족사가 아니고 연변의 지방력사를 어떻게 정리하고 발굴, 발전시키겠는가 하는 것이다. 때문에 연변력사학회 주요임무는 지방정부와의 교섭을 어떻게 추진하는가 하는 것을 포함하여 각 지방 각 분야에서 력사연구에 종사하는 인원들을 적극 도와 연변력사연구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림신문 글 구성: 김태국

영상 사진: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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