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조선족 피해자 가족도 애끊는 심정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세월호 참사로 여동생이 실종된 중국 국적의 조선족 한잉지(51) 씨는 팽목항 임시보호소에서 2∼3분마다 새로 들어온 소식이 없는지 살펴보러 나간다. 며칠간 거의 잠을 자지 못했고 하루는 실신해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악화하고 있지만 한 씨는 팽목항을 떠날 수가 없다. 팽목항에 있어야 동생에게 더 가까이 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에 중국인 4명이 포함된 가운데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23일(현지시간) 이들 가족의 애끊는 심정을 전했다.
한 씨의 여동생 금희(37.중국명 진지) 씨는 2004년 한국에 와 안산의 전자부품 회사에서 일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몇 달을 일하기도 했다.
금희 씨는 공장에서 만나 혼담을 나누던 조선족 이도남(38.중국명 리다오난) 씨와 여행길에 나서 세월호에 탔다가 함께 변을 당했다.
이 씨는 세월호 승선 직전 자욱한 안개를 보며 표를 환불할까 고민하다가 이미 실은 차를 내릴 수 없다고 해 배에 탔다. 배에서 어머니(62)에게 출발 소식을 알렸지만 마지막 연락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사고 소식을 듣고 진도로 달려와 아들의 행방을 수소문하며 돌아다녔다. 신발이 다 떨어져 슬리퍼를 구해 신은 어머니에게 돌아온 것은 아들의 사망 소식이었다.
부축을 받아 간신히 서 있던 어머니는 "똑똑했던 내 아들이 죽다니…"라며 오열하다가 휴대전화와 지갑 등 아들의 유품을 소중히 챙기고 돌아섰다.
또 다른 사망자 이상호(47. 중국명 리시앙하오) 씨는 직장을 구하러 제주로 가다가 변을 당했다.
이 씨의 형은 배를 타고 제주에 간다는 동생의 문자메시지에 '조심히 잘 다녀오라'고 답장했고 그것이 형제가 나눈 마지막 인사였다.
상호 씨는 사고 엿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형은 "동생을 어서 고향으로 데려가고 싶다"면서 상호 씨의 시신을 서울로 옮겼다.
중국인 실종자 중에는 여중생도 1명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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