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려들었다. 지금 이 사람은 상식보다 탐욕이 크다… 사기는 심리전이다.” 사람들이 왜 사기꾼에게 당하는지 영화 ‘범죄의 재구성’은 이런 대사 한 줄로 설명했다. 사기꾼은 사람들의 탐욕을 노리고 상식보다 욕심이 앞서면 그 먹잇감이 된다. 서울 구로구에서 환전소를 운영하는 A씨(29·여)가 ‘걸려든’ 건 지난 3월 26일이었다.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구모(44)씨가 “받을 돈이 있는데 같이 좀 가자” 해서
커피숍에 따라갔다.
채무자라는 사람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100달러 지폐를 100장씩 묶어 열 뭉치를 구씨에게 건네며 “우선 10만 달러(약 1억원)만 갚고 나머지는 며칠 뒤에 주겠다”고 사정했다. 구씨에게 정말 돈이 많다는 걸 A씨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채무자가 떠난 뒤 잠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보석도매상이라는 원모(51)씨가 나타났다. 그를 반갑게 맞이한 구씨는 “이 사람이 좋은 보석을 싸게 판다. 이 사람에게 사서 되팔면 많이 남는다”고 귀띔했다. 그러곤 원씨에게 220만원에 다이아몬드처럼 생긴 보석을 하나 산 뒤 A씨를 데리고 길 건너 커피숍으로 갔다. 거기서 ‘정 사장’이란 보석 매입자를 만나더니 방금 220만원에 산 보석을 넘겨주고 260만원을 받는 거였다.
불과 5분 만에
40만원을 버는 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A씨한테 구씨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구씨는 “오늘 원씨한테 보석 150점을 매입하려 했는데 6500만원이 부족하다. 돈을 빌려주면 보석을 사서 바로 되팔고
1000만원 더 얹어서 7500만원을 주겠다”고 말했다.
A씨의 머릿속엔 이미 상식보다 욕심이 커져 있었다. 자신의 환전소로 가서
현금 6500만원을 가져왔다. 원씨는 A씨에게 보석 150점을 건네며 “아까 그 정 사장에게 팔고 3억9000만원 받아오라”고 했다. A씨가 보석을 들고 커피숍을 나서는 순간 구씨와 원씨는 건물 밖으로 도주했다. 정 사장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A씨가 받아든 보석은 모두 개당 7000원 안팎인 큐빅이었다.
구씨, 원씨, 채무자, 정 사장 등은 모두 일당이었다. 대부분 조선족이고 처음부터 사기 칠 생각으로 A씨에게 접근했다. 구씨는 중국에서
의류 사업을 하다 한국을 오가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해 큰돈을 날렸다. 그때 원씨가 나타나 “가짜 보석으로 한탕 하자”고 제안했다.
타깃 물색 역할을 맡은 전모(45)씨가 환전소를 운영해
현금이 많은 A씨를 찾아냈다. 구씨는 지난 2월 초 환전소에 일부러
지갑을 두고 와 A씨에게서 연락이 오게 한 뒤
안면을 익혔다. 구씨가 재력가로 보이도록 동원된 10만 달러 뭉치는 겉만 100달러짜리고 속은 죄다 1달러짜리였다. 실제 액수는 2980달러에 불과했다.
A씨의 신고로 수사에 나선 서울 구로경찰서는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해 지난달 말 구씨와 이씨를 검거했다. A씨에게서 가로챈 돈 6500만원 중 3500만원은 구씨가,
3000만원은 나머지 네 명이 나눠가진 뒤였다. 경찰은 공범들의 행방을 쫓고 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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