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성완종 전 회장이 포함된 2008년 1월 1일자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특별사면에는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의 주범 전재천(당시 38세)씨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법무부는 "극악범인 데다 다른 사형수와 형평성 문제가 있다"며 그의 사면을 강력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그의 변호인이었고, 사면 당시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이 사건은 1996년 8월 2일 새벽 남태평양을 항해 중이던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15호'에 탔던 전재천(당시 38세)씨 등 조선족 6명이 한국인 선원 7명을 한 명씩 조타실로 유인해 흉기와 둔기로 잔인하게 살해한 후 시신을 바다에 버리고, 인도네시아 선원 3명과 조선족 선원 1명 등 모두 11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배에 탔던 조선족 전씨 등은 작업이 서툴다는 이유로 한국인 선원들과 마찰을 빚었고, 이 때문에 배에서 내려야 할 처지에 놓이자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사건은 같은 달 24일 일본 앞바다에서 기름이 없어 표류하던 '페스카마 15호'가 일본 어업지도선에 발견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전씨 등은 1심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부산 지역 인권 변호사였던 문 대표는 97년 초 2심 때부터 변론을 맡았다. 그는 당시 "조선족 선원들이 어로 경험이 없어 일이 서툴고, 평등주의가 강한 중국식 사회주의 문화와 달라 멸시로 받아들이면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폭력 사건"이라는 취지로 변론했다.
하지만 그해 7월 대법원은 전씨에게 사형을, 나머지 5명에게 무기징역을 각각 확정했다. 그리고 11년 뒤 주범 전씨는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특별감형(사면의 한 종류)됐다. 문 대표는 당시 언론에 "법원이 사형을 확정했지만 우리나라는 사형 집행을 안 해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이고 전씨도 특별감형으로 무기징역을 살게 됐으니 결과적으로 (나의) 변론이 결실을 본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편자주: 페스카마호 사건의 주범 전재천씨를 변호한 부산지역 인권변호사 문재인, 훗날 노무현정권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면서 법무부에 압력을 넣어 전재천씨를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특별감형시켰다'고 새삼스레 대서특필하고 있는 언론재벌이 있다. 이 사건을 현 새정치연합 대표로 있는 문재인씨를 공격하는 빌미의 하나로 들고 나온 것이다. 문재인은 당시 이 사건의 변호에서 "조선족 선원들이 어로 경험이 없어 일이 서툴고, 평등주의가 강한 중국식 사회주의 문화와 달라 멸시로 받아들이면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폭력 사건"이라는 취지로 변론했다.
최근들어 박춘풍사건 등 조선족에 의한 강력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데는 문재인 대표가 지적한 이런 "문화차이 배경"이 오랫동안 곪았다가 터진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별압력"을 떠나 문재인의 시각은 현유 조선족문제를 바로보는 잣대가 아닌가 심사숙고해볼 필요가 있다.--조글로미디어
부록:
페스카마호 사건의 전말
한국어선 페스카마호는 1996년 6월 7일, 남태평양에서 조업을 하기 위해 한국인 선장을 포함한 한국인 선원 7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10명을 싣고 부산남항을 출항하였다. 6월 15일에는 괌에서 조선족 선원 7명을 추가로 실었다. 조업중이었던 8월 2일에는 육지에서 맹장수술을 받기 위해 다른 원양어선으로부터 승선한 동원수산 소속 실습기관사가 추가되었다.
6월 27일부터 남태평양에서 조업을 시작하였으나, 조선족 선원들은 작업에 익숙하지 않았고, 선장이 기합을 주자 뱃일이 힘들다고 하선을 요청하면서 난동을 부렸다. 인도네시아 선원 1명은 다른 배에 옮겨탔다. 8월 1일에는 선장이 더 이상 정상 조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조선족 선원들을 사모아에 하선증명서 없이 하선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선족 선원들은 회사측이 임금을 주지 않을 수 있고, 징계로 하선하면 다른 선박으로의 채용이 어려워지는 데다가 불법체류자로 강제송환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다른 선원들을 살해하고 배를 침몰시켜 사고로 위장하고 일본으로 탈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조선족 선원들은 8월 2일 새벽에 선장을 살해하고 이용가치가 있다고 살려 두기로 한 1등항해사를 제외한 나머지 한국인 선원들을 조타실로 한 명씩 불러내어 살해했다. 살해된 시신은 바다에 던졌다. 타 선박에서 중도 승선한 실습선원도 산 채로 바다에 빠뜨렸다. 살인에 반대하던 조선족 선원 1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3명은 냉동창고에 5일간 감금한 후 몽둥이로 실신시켜 바다에 던졌다. 인도네시아 선원 6명도 살해하려 했으나 한국인 항해사의 반대로 저지되었다. 8월 20일경에는 탈출할 뗏목을 만들었다.
8월 24일, 페스카마호가 일본 도리시마 부근을 지나면서 연료 소모로 기울어졌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조선족 선원 5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3명이 냉동창고에서 작업하다가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조선족 선원들을 창고에 가두는 데에 성공하였다. 나머지 조선족 1명도 한국인과 인도네시아인 선원들이 협력하여 포박하였다. 1시간 후, 인근에 일본의 어업지도선이 지나갔고, 생존자가 일본 선박까지 직접 헤엄쳐 도움을 요청하였다.
재판
선원들을 살해한 조선족 노동자 6명은 1996년 12월 24일 열린 공판에서 전원 사형판결을 받았다. 다음해 4월 2심에서 주범 1명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이들은 그해 7월 법원의 상고심 기각으로 형이 확정됐으나 전재천은 수 년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으며 이후 용의자 모두 추가감형이 확정되었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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