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서울대림동 “장사하고 싶어도 상가가 없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2월11일 07시53분    조회:329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대림동 차이나타운 24시> 한국 속 작은 중국 “장사하고 싶어도 상가가 없다”

대림2동에 중국인들이 몰려들면서 상권이 활성화되고 있다. 사진은 대림2동 도깨비시장 거리.


아주경제 김현철·권경렬·노경조 기자 = "대림2동 상권은 경기를 타지 않습니다. 권리금이 치솟아도 상가를 넘기지 않는 이유는 이 권리금으로 다른 곳에서 사업을 해봤자 여기만 못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대림2동 L공인 대표)

지난 9일 비가 내리는 오후에도 서울 속 작은 중국으로 불리는 영등포구 대림2동은 오가는 중국 사람들로 북적였다. 길거리 간판은 대부분 한자로 쓰여 있었고, 거리에는 중국 노래가 흘러나왔다. 상인들은 중국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대림2동의 상권은 지하철 2·7호선 대림역 11번 출구 인근이 중심이다. 출구로부터 500m가량 이어지는 중앙시장, 이른바 도깨비시장이라 불리는 길가에 상가들이 줄지어 있다. 지하철역 출구를 끼고 있는 대로변 상가들은 2억원이 넘는 권리금이 형성돼 있었다.

◆"강남 저리 가라"…불황 모르는 대림동 상권

대림2동 상권은 5년 전 중국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 상권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약 3년 전부터다. 인근 가리봉동에 밀집해 살던 이들이 재건축으로 인해 대림동으로 하나둘씩 이주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국내 최대 규모 차이나타운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최근 역 바로 앞 대로변 식당을 계약한 영업주는 2억5000만원의 권리금을 넘겨준 것으로 전해졌다.

대림2동 인근 서울공인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로변 상가 권리금이 1억~1억5000만원이었지만 최근 2억여원까지 올랐다"며 "현재도 2명이 1층 상가 계약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자리가 나지 않아 대기상태"라고 말했다.

도깨비시장 내 상가는 대로변 상가보다는 저렴했지만 여전히 높은 시세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에 자리잡은 L공인 대표는 "지난해 권리금 4000만~5000만원이었던 상가가 최근 7000만~1억원에 임대료 1000만원, 월세 150만원 선"이라며 "웬만한 강남 상권 부럽지 않다"고 강조했다.

도깨비시장에서 약간 떨어진 곳의 점포는 권리금 3000만원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60만원 선으로 적어도 이곳에서는 부동산시장이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권리금과 임대료가 치솟고 있다.

하지만 도깨비시장을 중심으로 불과 50m 떨어진 양 옆에 있는 도로변 상가는 권리금이 없다.

무진 공인 대표는 “도깨비시장 옆 도로 상가는 보증금 1000만~1500만원, 월세 50만~85만원 선에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의 상권 및 주거권은 이전 독산동과 가리봉동, 대림동에 이어 신림동으로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이유 있는 대림동 상권 호황

비싼 권리금에도 상가는 없어서 못구할 정도다. 이처럼 대림2동 상권이 부흥하게 된 이유는 중국인들이 가게를 운영하면 재외동포 비자(F4)를 발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개인사업체를 경영하거나 기능사 이상의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일정 조건에 해당하면 F4 비자 발급을 통해 영구 체류가 가능하다.

또 중국 정부에서 한국으로의 이주를 적극 권장하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국내 사업자등록증이 있는 중국인의 경우 관련 서류를 보내면 중국 내 은행에서 전액 융자를 해주는 등의 지원을 해준다.

이 같은 중국 정부의 지원에 따라 대림동은 주거권 또한 포화상태다. 매년 중국 본토에서 대림동으로 넘어오는 이들의 수가 상당하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다는 조선족 권모씨(78)는 "중국의 조선족 마을에는 노인과 아이들만 남아 있다"며 "지금까지도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한국으로 이동하는 조선족들이 많다"고 말했다.

도깨비시장에서 양말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김모씨는 "중국인 유동인구가 점차 늘면서 원룸이 많이 생겼다"며 "다만 중국인들이 살기에는 비싼 감이 있어 월 25만~35만원의 고시원 등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잘 나가는 대림2동 상권이지만 도깨비시장을 중심으로 한 대부분의 점포들이 중국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어 정작 한국인들은 설 땅이 없다는 것은 풀어야 할 숙제다. 기존에 대림동에 거주하던 한국인들은 세를 주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실정이다.

몇 년 전까지 이곳에서 안경집을 운영한 양모씨는 “중국인들 수요가 많다 보니 임차인 구하기는 쉬운데 특히 중국인 임차인들이 임대료를 안내고 도망치는 등 어려움을 겪는다”며 “철물점 등 중국인들과 경쟁이 안되는 업종에서 장사를 하면 상관 없겠지만 굳이 한국인이 와서 장사를 하라고 추천하고 싶진 않다"고 전했다.

아주경제 김현철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양로사업을 영원한 직책으로 여기는 ‘이쁜 아가씨’ 박진화의 이야기 “로인을 돌보고 어린 애들을 보살필수 있는 양로원, 고아원을 차리는것이 어릴적 저의 꿈이였습니다.” 아니운서라는 화려한 후광을 벗어둔채 2011년 2월, 호리원으로 탈바꿈하면서 지금 사회복리원 특수호리구역에서 주임...
  • 2018-01-03
  • 뻐스정류소에서 길다랗게 줄지어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일본인들/리홍매특파원 일본인들의 줄서기를 그들의 문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조금은 망설임이 앞서는 일이다. 하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에 거부감이 전혀 없는 듯한 일본인들에 대해 처음에는 생소함을 느끼다가 점차 거기에 적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
  • 2017-12-26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5) ◇서정숙(중경)     언니가 보낸 다시 돌아오지 않는 〈2016년의 렬차〉란 글을 읽으며 감개가 무량하다.   무정한 세월은 드팀없이 꾸준히도 흘러 장장 45년이 지나 그제날의 갓 사업에 참가했던 짧은 량태머리 언니도, 늦은 공부라도 하려고 학교 다니던...
  • 2017-12-25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4) ◇주청룡(룡정) 1973년, 내가 생산대대의 과학실험소조에서 일할 때였다. 그 때 우리 대대에도 주에서 공작대들이 내려와있었는데 당시 주당위 선전부 리휘 부장이 우리 공사에 온 공작대의 총 책임자로 우리 대대에 와 주둔해있었다. 그 해 여름의 어느 날 리휘 부장은 대...
  • 2017-12-25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3) ◇남걸(목단강) 1976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목단강시전염병병원에 배치받아 의사사업을 한 지도 어언 4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매번 백설같이 흰 의사복을 떨쳐입고 병원 각 과실(科室)을 순시할 때마다 나에게 진정한 의사자격을 가져다준 감명 깊었던 40년 전 그 날의...
  • 2017-12-19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2) ◇황혜영 (길림) 50년 전 추억의 색바랜 사진(왼쪽이 어린 시절 필자) 어제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니 아침에 나가보니 아직 익지 못한 시퍼런 복숭아 열매가 나무 밑에 쭉 깔렸다. 복숭아를 볼 때마다 복숭아의 맛보다 그 씨가 어떨가 하는 생각을 먼저 해보는 나다...
  • 2017-12-19
  •   남편류학시절의 경제담보인이였던 노토 아키히로(能登昭博)씨는 대학교 졸업론문을 이라는 테마로 썼을 정도로 중국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아사히신문》(朝日新聞) 치바(千葉)동부지역의 판촉업무를 총괄하는 회사경영인이였던 그는 내가 일본에 온 이듬해에 새로운 사업으로 지역신문인 《호오지로》(ほお...
  • 2017-12-18
  • 일본의 선물보따리(자료사진) 어린 시절 엄마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면서 눈으로 얻은 깨달음이라고 할가,“받은 그릇은 절대 빈채로 돌려 보내지 않는다”였다. 이웃사이에 주고 받고 빌리고 빌려 주고 하면서 살았던 그 시절, 동네집 잔치가 온 마을의 기쁨이였고 어느집에 상사가 나면 온 동네가 슬퍼했다. 그...
  • 2017-12-18
  • 〔한국서 홀로서기∼나는 이렇게 살았다〕 9년을 하루와 같이 문화봉사를 해온 석복순녀사의 감동 스토리 석복순(맨 앞)강사가 춤을 가르치고 있다 돌이켜보니 내가 2007년 둘째딸을 따라 한국에 올 때 나이가 예순이였으니 10년이 지난 오늘 어언 일흔이라는 고희의 나이로 되였다. 그간 줄곧 소외된 사람들에게 춤을 ...
  • 2017-12-12
  • (흑룡강신문=하얼빈)채복숙 기자 = "저희 기금회는 2012년에 랴오닝성민정청의 2급 법인으로 설립되어 대략 2년 여 동안 운영하다가, 2014년에 독립법인을 신청해, 2015년 1월에 정식 허가증이 내려왔습니다. 기금회가 설립되어서부터 지금까지 조선족사회의 많은 지원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부문...
  • 2017-12-12
  • 〔한국서 홀로서기∼나는 이렇게 살았다〕 9년을 하루와 같이 문화봉사를 해온 석복순녀사의 감동 스토리 석복순(맨 앞)강사가 춤을 가르치고 있다 돌이켜보니 내가 2007년 둘째딸을 따라 한국에 올 때 나이가 예순이였으니 10년이 지난 오늘 어언 일흔이라는 고희의 나이로 되였다. 그간 줄곧 소외된 사람들에게 춤을 ...
  • 2017-12-12
  • 우리 집 가까이에 살고 있는 량씨는 일본에 온지 10년째 되는 한족 료리사이다. 어느 날 그가 찾아와서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장가 보내고 나니 빈털터리가 됐어요” 18살 때부터 료리를 배웠다는 량씨는 일본어를 전혀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였다. 갓 마흔살에 접어들면서 일본...
  • 2017-12-11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1) ◇김동화(연길) 30수년전 그 때 그 학생들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 세월은 류수와 같다더니만 정말 만질 수도 걷잡을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시간의 흐름인가 본다. 어언 70을 코앞에 두고 보니 가끔씩 따르는 크고 작은 추억들로 머리를 메운다. 올해 제33회 교사절을 즐...
  • 2017-12-11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0) ◇김규칠 구술 김숙자 대필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있는 김규칠 로인 부부 내 나이 금년에 80이다. 긴 세월 수많은 일들을 겪다 보니 잊혀지지 않는 사연도 많다. 그런데 요즘 인정세태가 삭막해서 그런지 그 때 그 일이 어쩐지 더 자주 떠오르군 한다. 온 나라가 문화대혁...
  • 2017-12-11
  • 〔한국서 홀로서기∼나는 이렇게 살았다〕 “나는 스승을 잘 만나 성공했다” 가수, ‘아리랑 난타’ 단장 아이수의 성공담에서 내가 한국 온 년도가 2004년이니 올해로 벌써 10년 하고도 3년이 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그간 나의 한국생활에도 적지 않는 변화가 있어 자부를 느낀다...
  • 2017-12-11
  • 며칠전 묵직한 편지봉투 하나가 우리집에 날아왔다. ‘항상 감사합니다. 더 받은 송금료 164엔을 돌려 드립니다. 또 기회가 되면 잘 부탁합니다’ 짤막한 메모용지와 함께 동전 164엔이 들어 있는 봉투였다. 나는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영문을 물었다. 사실은 지인의 부탁으로 인터넷경매에서 옛...
  • 2017-12-10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9) ◇리희숙(안도) 애청자협회 열성자로 뛰고 있는 필자 리희숙 격정과 활력에 끓어넘치며 정열에 불타던 그 청춘시절, 걸탐스레 지식을 배워가며 희망과 기대에 부풀었던 학창시절을 마치고 ‘광활한 천지에는 할일이 많다’는 모주석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1965년...
  • 2017-12-05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8) ◇전영실(연길) 등산길에서의 필자 전영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취업통지서를 받고 우전국 인사과로 등록하러 갔던 때의 일이 어제런듯 눈앞에 삼삼하다. 한 나이 지긋한 책임일군이 반가이 맞아주며 “동무는 무슨 특장이 있소?” “어떤 일을 하고 싶소?” 하며...
  • 2017-12-05
  •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일본에 온지 일년후였다. 그때 야마모토 타마에(山本 多摩江)씨는 우리가 사는 지역의 국제교류협회 책임자였다. 영어에 능한 그녀는 외국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대부분의 일본인들에 비해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일본...
  • 2017-12-05
  • 각 지역 촌마다 빈곤해탈 난관 공략전이 치렬하게 펼쳐지고 있는 요즘, 누구보다 마음 한켠이 조급해나는 한 젊은이가 있다. 연거퍼 몇달동안 집에 내려가지 못한 채 농촌사업터에서 빈곤해탈사업을 위해 뛰여다니느라 낮과 밤을 잊은 그는 바로 룡정시 백금향 빈곤부축판공실 주임 홍광철(33살)씨다. 룡정시 백금향 빈곤부...
  • 2017-12-01
‹처음  이전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