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항미원조 유가족의 눈물겨운 마지막 소원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5월30일 10시09분    조회:180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오빠들 유해라도 보고 죽었으면 한이 없겠는데…》

항미원조전쟁 유가족 김필련할머니의 눈물겨운 마지막 소원

김필련할머니가 본사 편집부에 보내온 편지

최근 돈화시에 살고있는 할머니 한분이 항미원조전쟁터에서 희생된 오빠들이 너무 보고싶다면서 본사 편집부에 만장같은 편지를 써보내왔다. 할머니가 신문사에 편지를 쓰게 되였던것은 지난 3월말 한국정부가 중국인민지원군유해를 중국에 송환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고 행여 전쟁터에서 사망한 오빠들의 유해라도 찾을수 있지 않을가 하는 일루의 희망을 품었기때문이다.

할머니의 성함은 김필련(77세), 돈화시 홍석향 림강동촌에서 큰아들내외와 함께 살고 계셨다. 5월 28일, 기자는 돈화에 가서 할머니를 수소문해 찾아 장장 50여년 세월이나 전쟁터에 나간 오빠들에 대한 안타까운 기다림에 지쳐버린 김할머니의 가슴아픈 이야기들을 들을수 있었다.

오빠들 모두 참전용사, 2명은 항미원조 렬사

할머니가 살고계시는 돈화시 홍석향 림강촌은 돈화시에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집거해 살고있는 조선족 마을이다. 중국조선족젊은이들이 국내해방전쟁은 물론 련이은 항미원조전쟁에까지 용약 참가해 피끓는 젊음을 희생했던것은 력사가 기록하고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김필련할머니는 도합 6남매인데 우로 오빠 셋과 언니, 그리고 동생이 있었다. 오빠들 셋은 모두 국내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한 유공자들이다. 김필련할머니의 부모님은 모두 장질부사로 일찍 사망했고 집에는 년로한 할아버지 한분이 계셨는데 언니와 김필련할머니 그리고 동생은 아직 10대 나이의 어린이들이였다.

당시 오빠들은 두살 터울로 스무살내외의 청년들이였는데 세 오빠 모두 참군하여 국내전쟁은 물론 항미원조전쟁터에까지 나가 피흘리며 싸웠다. 큰오빠 김순학은 참군하여 국내해방전쟁에 참가했다가 1950년 10월에 또 항미원조전쟁에까지 참가했는데 항미원조전쟁이 끝난후 다행히 무사히 돌아왔다. 그러나 둘째오빠 김성학과 셋째오빠 김명학은 전쟁터에서 희생되여 다시는 영영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김필련할머니는 지금도 15살되던 해인 1952년도에 마을에서 열었던 셋째오빠 김명학의 추도회를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오빠들중 셋째오빠의 희생소식이 가장 일찍 전해져온것이였다. 셋째오빠와 한 부대에 있다가 항미원조전쟁이 끝난후 돌아온 이웃마을의 청년이 집에 찾아와 셋째오빠의 희생소식을 알려주었다. 말로는 당시 셋째오빠 김명학은 부대의 련락원으로 있었는데 련락임무를 받고 부대를 떠났다가 미처 부대의 후퇴명령을 받지 못한채 철거하지 못하고 락동강전투에서 희생되였다고 한다. 둘째오빠 김성학도 1953년도에 부산에서 사망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당시 락동강전투에서 희생된 지원군렬사들의 유해를 부산에 옮겨갔다고 전갈이 와서 찾아가면 유해를 찾을수도 있었다고 하는데 집에는 아직 어린 동생들뿐이여서 오빠들의 유해를 수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오빠들은 전쟁터에서 사망하여 외로운 무주고혼이 되여 장장 50여년 세월을 나이 어린 동생들의 마음속에 가슴아픈 한으로 남게 되였던것이다.

오빠들의 빈자리, 서럽고 아팠던 성장이야기

오빠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 렬사로 유명을 달리한 김필련할머니의 가정은 그야말로 힘든 나날의 련속이였다. 설상가상으로 유일한 할아버지마저 일하다가 쑥대에 발을 찔리워 그 상처가 곪고 썩으면서 앓다가 사망하다보니 집살림은 당시 겨우 10살밖에 안되는 큰언니가 도맡아했다. 아래로는 아직 세살밖에 안되여 배고프다고 어머니젖을 매일 울면서 찾아헤매는 남동생이 있어 어린 고아들의 기구한 생활은 이루 말할수 없이 어려웠다. 고아들의 어려움을 알고 구정부에서 큰오빠를 군대에서 집으로 보내 보살펴주도록 했다. 그런데 1950년 10월에 큰오빠마저 또 지원군으로 조선전쟁터에 나갈줄이야. 다행히 큰오빠 김순학은 항미원조전쟁이 끝난후 무사히 돌아왔지만 집에 있는 나어린 고아들의 겪은 인생의 고초는 헤아릴수조차 없이 크고 무거웠다.

지원군유해송환소식이 실린 신문을 보면서 희망을 가지게 되였다는 김필련할머니 

김필련할머니와 두살 터울인 언니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는데 겨울이 되여 빙상대회가 있으면 연길이며 장춘에 가서 운동대회에 참가하여 상도 받아오군 했다. 그때 돈화에는 고중이 없어서 언니는 통화고중에 붙었는데 돈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는수 밖에 없었다. 김필련할머니 역시 그 이듬해 서란고중에 붙어 한학기 공부하고 방학에 집에 왔다가 새학기가 되여 서란으로 가는 차비 3원이 없어서 결국 공부를 그만둘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학교다닐 때 김필련할머니는 고아렬군속이라고 정부의 보조로 언니는 1등공비 8원 50전을 받았고 김필련할머니는 3등공비 6원 50전씩 받아 공부를 했다고 한다.

매달 식비 6원을 내면 남는 50전으로는 얼음과자 하나 사먹을수 없고 연필 한대 제대로 사서 쓸수 없는 어려운 생활을 했다. 남들이 쓰고 버린 꽁다리연필을 주어 그것을 쑥대에 꽂고 공부했다고 한다. 못 먹고 못 입는 가난한 살림을 하면서 어렵게 자란 과거를 추억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며 할머니는 눈굽을 찍었다.

오빠들의 진토가 된 유해라도 보고 눈 감는것이 소원

지난 4월에 한국으로부터 중국에 귀환된 중국지원군유해소식을 신문을 통해 본후 김필련할머니에게는 한가지 간절한 소원이 생겼다. 바로 죽기전에라도 오빠들의 진토가 되여버린 유해일지라도 한번 보고 눈을 감았으면 한이 없겠다는 소박한 소원이였다.

가난했던 살림에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한 오빠들이여서 김필련할머니의 기억속에있는 오빠들은 스무살미만의 젊은 모습 그대로이다. 셋째오빠는 마을에서 싸움도 잘했다면서 김할머니는 오빠를 추억했다. 장질부사로 앓아서 몸이 몹시 여위였지만 강기가 있고 누구한테 지지 않는 강인한 성격이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전쟁놀이를 무척 좋아해서 옆마을의 큰 부락 애들도 모두 범접 못하고 두려워할 정도로 완력이 있었고 군대에 나가는것을 그렇게도 원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참군할 때 셋째오빠는 병으로 앓다보니 무게가 표준에 못미쳐서 3번이나 시험에서 미끌어졌는데 나중에 바지가랭이에 모래를 채우고 몸무게를 늘여서야 간신히 부대에 가게 되였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둘째오빠도 2번이나 징병모집시험에 떨어졌지만 군대 가길 너무 원해서 결국 군대에 참군했다고 말했다.

마음이 따뜻하고 다감했던 셋째오빠가 아직 어린 녀동생들의 머리를 깎아주군 하던 일을 김할머니는 지금도 어제일처럼 기억하고있었다. 《내 몸에 부스럼이 있어서 옮는다고 언니 먼저 머리를 깎아주어 내가 서러워 울기도 했다》고 말하면서 김할머니는 소녀처럼 웃어보였다.

그러나 김할머니 기억속의 다정다감했던 오빠들은 이젠 백골이 진토되여 어느 낯선 땅에 이름없이 누워있겠지만 오빠들이 흙이 된들 어떠라, 오빠들의 유해라도 직접 어루만져보고싶은 할머니의 친인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절절했다.

《지금 있으면 둘째오빠는 87세, 셋째오빠는 85세이지요.》 김할머니는 오빠들 생각이 나기만 하면 마을에 세워져있는 렬사기념비를 찾아간다. 거기에는 오빠들의 이름이 새겨져있기때문이다. 렬사비에 가면 오빠들 이름에 묻은 먼지들을 닦아내면서 오빠들과 대화라도 하듯 불러본다.

《성학이 오빠~ 명학이 오빠~ 》

오빠들이 보고싶을 때마다 마을의 렬사기념비를 찾군 한다는 할머니

지난 2011년도에 한국 인천에서 살고있는 딸네 집에 갔다가 김필련할머니는 딸에게 한번 부산에 가서 무작정 오빠들의 유해라도 찾아볼 생각을 터놓았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무작정 부산 어디에 가서 오빠들의 유해를 찾을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의 생각을 리해하지 못하는것은 아니지만 사전계획이나 조사가 없이 무작정 유해를 찾아나서는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판단해 딸이 굳이 만류했고 결국 김할머니는 한국에서 아쉽게 돌아올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중국지원군의 유해가 중국에 돌아온후 심양에 있는 지원군렬사릉원에 안치된다고 하던데 우리 오빠들의 유해도 어서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김필련할머니는 간절히 기대하고있었다. 언젠가 손꼽아 기다리던 오빠들의 유해가 돌아오면 훈춘에 살고있는 언니와 함께 지팽이걸음을 걷더라도 꼭 심양까지 가서 오빠들을 만나보고싶다고 김할머니는 말했다.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 항미원조전쟁관에서 집계한 조선전쟁가운데서의 중국지원군 사망자수는 18만 3108명이다. 한국의 《중앙일보》는 해외에 매장된 중국군인유해가 11만 5217구인데 그중 11만 4000여구는 조선반도에 분산되여 매장되여있다고 보도했다.

지원군렬사들이 조선전쟁터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치고 수천수만 가족들의 가슴속에 아픈 그리움으로 못박힌지 어언 50여년 세월, 세월이 흐를수록 지원군렬사들을 절실히 가슴에 묻고 살아왔던 렬사유가족들도 점점 줄어들고있는 실정이다.

 

김필련할머니에겐 오빠들에 대한 기다림이 유일한 바람으로 남아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동구밖까지 배웅하면서 남긴 김할머니의 말씀이 마음에 와닿는다.

《내 죽기전에 흙이 되여버린 오빠들의 모습이라도 내 눈으로 확인하고 보았으면 죽어도 눈을 감을텐데…》

6남매들중 이제 남아있는것은 근 80세 고령의 언니와 김할머니 둘뿐, 그만큼 김할머니 가족처럼 마음 깊이 그리움을 아픔으로 간직한 유가족들의 눈물이 진정 영원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길림신문 안상근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길림성 룡정시에는 은사님사랑에 참된 진정을 다 바치는 이가 있는데 그가 바로 중화효경본보기상과 길림성《유자의 소》상 수상자 박금철(54세)씨이다. 박금철은 1993년부터 민정사업에 참가했는데 사업의 수요로 2001 년 7월부터 룡정시영예원 원장직책을 맡게 되였다. 일심정력으로 사업해온 박금철은 당조직과 사회의 ...
  • 2013-08-27
  • 왕평평학생가정에 위문금을 발급 일전 장백세관 해당 책임자들과 인터넷 글쓰기능수이며 《장백의 좋은사람》으로 불리는 김영화는 장백조선족자치현 신방자진 신방자촌의 왕평평학생가정을 찾아 위문금과 생활용품을 전해주었다. 올해 17살난 왕평평은 우수한 성적으로 고중입학시험에 합격되였다. 하지만 가정경제난으로...
  • 2013-08-26
  • 오늘은 개학날이지만 연길시성주구락부 초중 2학년 김철학생은 학교교실이 아닌 병원의 병실에 누워있어야 했다. “긴장하지 마세요. 수술이 잘될수 있으니까. 수술후 주치의사말을 잘 듣고 접착현상이 없도록 하면 운동에도 영향주지 않을거예요.” 연변제2인민병원 외과병동에서 이제 곧 수술실로 들어가게 될...
  • 2013-08-22
  • 안도현 석문진 룡흥촌로인회의 로인들은 마을의 빈곤호와 일손이 바쁜 이웃을 돕는것을 락으로 삼고있다. 황룡복(77세)회장이 이끄는 이 로인회에는 로인 26명이 있는데 최고령 로인은 박봉출(87)할머니이다. 로인회에서는 2.5헥타르의 활동지를 다루어 해마다 7천여원 수입, 기타 수입까지 합치면 1만여원의 수입이 있다....
  • 2013-08-21
  • 축수연의 한 장면 8월 15일, 연변주 왕청현 왕청진 대천촌에서는 박해봉, 조명숙, 김만수 등 19명의 80세이상 로인들에게 《건강축수연》을 마련해 올리는것으로 로인절을 경축하였다. 더덩실 춤을 추는 86세 오순복할머니. 왕청호텔에서 진행된 축수연에는 왕청진정부 진장 고명학, 진로인협회 회장 김희숙을 비롯한 관계...
  • 2013-08-18
  • 왕청현로간부국 업무과 김수한과장(53살)이라 하면 로간부들은 “그는 우리들의 수호신이자 자식과도 같은 귀중한 존재”라고 치하해마지 않는다. 로간부들의 어려움을 자기의 어려움처럼, 로간부들의 기쁨을 자기의 기쁨처럼 대하면서 평범한 일터에서 평범치 않은 실적을 쌓아가고있는 김수한과장을 찾은것은 ...
  • 2013-08-15
  • 대련시에서 근무하는 한금연씨는 일전 남편과 함께 한국행으로 량가 부모님을 뵙고 돌아온후 소비패턴을 크게 바꿨다. 량가 부모님의 경제지원으로 대련에 집, 자가용을 마련하고 둘 다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는 부부는 모두 외동자식인데다 부모님 모두 외국에서 수년간 로무로 일해 씀씀이가 헤픈편이였다고 한다. 이번...
  • 2013-08-15
  • 8일 9시경, 천막밖은 비바람이 세차지만 이웃절을 맞는 연길시 건공가두 장해사회구역 사무청사마당은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남녀로소들로 북적거렸다. 이 사회구역의 교위, 남원, 재천, 천신 아빠트단지에 사는 로인들중 조선족전통음식을 만드는데 솜씨가 있는 로인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주민들을 대접하는 이웃절잔치...
  • 2013-08-14
  • 8월 11일 돈화시조선족씨름협회 박경철주석의 위탁을 받고 씨름협회 비서장 최봉진일행 5명이 8.15 로인절을 맞으며 돈화시 태평령조선족탁로원(托老院)을 찾아가 로인들을 방문하고 따뜻한 마음이 담긴 여러가지 과일, 위문품과 500원의 현금도 전달하여 로인들을 기쁘게 해드리였다. 돈화시조선족씨름협회 최봉진 비서장...
  • 2013-08-13
  • 8월 10일, 연변주 왕청현교육국로년총회에서는 《8.15》로인절을 맞이하면서 연변에서 처음으로 되는 집단팔순경축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했다. 집단팔순행사에는 림송준, 서정만, 박영봉, 김경호를 비롯한 9명의 80세 리퇴직교원들이 참가했는데 선생님들의 밝은 얼굴에서는 자식들과 친척, 제자, 동사자, 현교육국당위, 현...
  • 2013-08-13
  •      (오른쪽으로부터 윤동주장학회회장 허응복, 지원자 주룡린, 길소성학생, 소성의 어머니)   1996년2월, 길림성 룡정시 축산국부국장직에서 퇴직한 주룡린(76세)은 베풀기를 즐기는 분이다.    줄곧 농촌 축목계통에서 사업하며 한때는 조직의 파견으로 촌장직도 맡았던 주룡린은 고...
  • 2013-08-12
  • [기획-조선족농촌을 가보다] 반석시 서북방향 반장(반석-장춘)도로 10킬로메터 지점에 위치한 반석시 조양산진 지부조선족촌, 2012년에는 세멘트포장도를 가로세로 반듯이 닦아 동네가 한결 훤해지더니 금년에는 또 촌사무실 및 로인활동실 신축공사를 시작해 마을주민들은 심정이 흐뭇하다. 《동네주민들이 대부분 외지로,...
  • 2013-08-12
  • “이웃과 물업, 소방대원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불도 제때에 꺼 화재손실을 줄이게 되여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합니다…” 지난 7월 15일, 집에서 료리를 하다가 실수로 화재가 발생해 배연기(排烟机)에 불이 달리고 주방천정에까지 불이 번지면서 큰변을 당할번했던 류병걸로인은 당...
  • 2013-08-08
  • 절강(浙江)성 건덕(建德)시 신안강(新安江) 강변에 하애(下涯) 습지가 있는데 산이 푸르고 물이 맑으며 기후가 맞춤해 아주 살기 좋은 곳이다. 7월부터 9월까지 하애습지는 아침과 저녁의 일교차로 인해 안개가 피여오르는데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선경과도 같다. 이때면 습지의 고기잡이 배의 등불쇼가 인기를 얻게 되는데...
  • 2013-08-07
  • 개짖는 소리가 적막감을 깨우는 자그마한 시골마을이다. 마을입구에서 왕진가방을 멘 할아버지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기자를 맞아준다. 그는 “산골이라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젊은이들 다들 떠나고 로인들만 남아서 이렇게 조용하다”면서 “홀로 남은 로인네들 이런데서 갑자기 병이라도 걸리...
  • 2013-08-07
  • -86세 고령의 리직휴양간부 최채봉할머니를 찾아서 안도현 명월진의 한 양로원에는 지난세기 50년대 녕하, 하북, 길림, 료녕 여러 민족 참관단의 일원으로 조국의 수도 북경에 가서 류소기, 주덕, 진의, 하룡 등 당과 국가 지도자들의 접견을 받고 그들과 함께 소중한 기념사진까지 남긴 86세 고령의 리직휴양간부 최채봉할...
  • 2013-08-05
  • 오랜만에 남기는 동창사진   (흑룡강신문=칭다오) 김명숙기자= 흑룡강성 오상조선족고급중학교 86기 동창모임이 지난 7월 27일 칭다오에서 있었다.   이번 모임은 24년만에 가지는 것으로 칭다오를 비롯 웨이하이, 스촨, 베이징, 텐진, 장쑤, 하얼빈, 상하이, 한국 등 곳에서 20여명 동창들이 찾아와 뜻깊은 모임을 가...
  • 2013-08-01
  • 강미옥녀성이 량정숙로인에게 옷을 입혀주고있다. 룡정시 북신사회구역 강남17조에는 이웃에 사는 80세 독거로인을 6년째 친정어머니처럼 살뜰히 돌봐드리는 녀성이 있다. 올해 46세인 강미옥녀성은 원래 량정숙로인의 이웃에 살고있었는데 이런 이웃관계로 홀로 계시는 로인을 돌보게 되였단다. 강미옥녀성도 생활형편이 ...
  • 2013-08-01
  • 돈화시공안소방대대에는 특수한 편제외"장병" 한명이 있다. 그는 일반 소방장병들과 함께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잠자리에 들고 훈련에도 참가한다. 특수한 점이라면 이 “장병”은 주말이면 부대에 나타나고 다른 장병들과 교류할 때 말 대신 손짓과 글을 사용한다는것이다. 그가 바로 돈화시소방대대...
  • 2013-08-01
  • 연변주 왕청현 천교령림업국 태양림장에는 안해가 선천성 소아마비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사람들처럼 걸어 다닐수 없고 남편 역시 지력장애로 넝마를 주어 생계를 유지하는 가정이 있다. 이들 부부의 결합은 그들의 생활에 남들은 상상도 못할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그들 부부는 서로 의지하고 이끌고 밀어주면서 조...
  • 2013-08-0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