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희
엄마는 오늘도 빨간색천오리를 곱게 박아 똬리에 달고 계실가?
작년 설, 떡메를 가지러 오빠네 헛간에 갔다가 거미줄 가득 쳐진 헛간 구석벽에 때묻고 먼지 쌓인 똬리 하나가 걸려져있어 그걸 벗겨쥐고 밖으로 나왔다. 먼지를 탁탁 털어 예전처럼 손목에 걸어보니 똬리끈은 색바래졌음에도 여전히 빨간 빛은 남아있었다. 똬리는 닳고 닳아 너덜너덜하였지만 똬리끈은 그래도 삭아 떨어지지 않고 똬리를 꽉 잡고 엄마의 중심을 잡아주던 그 본새, 수직선으로 곧음을 알렸다. 그 곧음으로 수십년 엄마의 삶을 똬리끈은 지탱해주었다.
누군가를 지탱해주기 위하여 태여났다는 똬리끈, 엄마는 마음속에 쌓인 그리움과 사는 시름을 그 똬리끈으로 곧게 폈었지 않았을가. 늘 동네분들로부터 "매끈한 사람"으로 불리우던 엄마, 새삼 똬리를 바라보니 엄마의 삶의 신조가 떠오르는것을 ... "입으로 똬리끈을 잡고 똬리끈으로 똬리를 잡고 똬리로 질동이를 잡고 질동이로 나를 잡고 나로 가족을 바로 잡아 모든것을 바로잡겠다." 내 어릴때 지켜본데 의하면 다른 집들에선 똬리를 틀 때 맨 마지막으로 옥수수껍질을 땋아 똬리끈을 만들었는데 엄마는 똬리를 틀고는 빨간 천오리를 곱게 박아 똬리 앞면에 감겨질 부분에는 수놓이로 꽃을 피워 포인트를 주고 똬리에 달았다. 무슨뜻이였을가.
엄마는 똬리끈이 낡으면 못봤다. 좀 낡을라하면 또 새것으로 바꿔 달았다. 후에 안일이지만 아버지가 강제로 일본군대에 뽑혀나가게 되며 빨간천을 형수님에게 부탁하여 아버지가 손수 엄마의 똬리에 달아놓았다. 아버지에게 그 빨간 똬리끈은 자신의 정열과 사랑을 모두 엄마에게 바치려는 념원이고 스스로 목숨을 수호하려는, 자신의 가치관을 내보이는 하나의 삶의 표식이였으리라. 엄마도 기약 없이 떠나는 아버지 속옷에 사랑의 언약으로, 화를 피하고 안전을 지킨다는 의미로 빨간 천오리를 달아주었다. 혈액의 색에서 기운을 받아서일가 아버지는 2년만에 장백산을 꿰질러(오는 도중 총탄알이 머리뒤로 스쳐지나 손가락 두마디만하게 그냥 머리가 나지 않아 번들번들 하였음)도망쳐 무사히 동성향 장남촌 큰형님(엄마가 거기 있었음)네집에 도착하였다. 그 당시 엄마는 갓 시집온지 3년째라 큰집에 얹혀 살며 식구 열두명이 먹을 물을 전담당하여 길어왔다. 아버지께서 어렵게 어렵게 오셨던 그날도 엄마는 우물가에서 똬리를 머리우에 올려놓고 빨간 똬리끈을 물고 두 손으로 질동이의 꼭지를 꼭 잡고 몸을 뒤젖히며 힘겹게 질동이를 똬리우에 올려놓는데 먼데서 맏동서의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동서,동서- 여섯째 새원이 돌아왔소" 엄마는 꿈인가 생시인가 똬리끈을 고쳐물었다 ... 물론 똬리끈은 똬리를 고정시키는 실용적인 도구이기는 하지만 엄마에게는 유난히 아버지와의 정을 잇는 끈이기도 했다.
똬리끈을 입에 물고 다소곳이 그리움을 살살 훔쳐내며 걷던 언덕길에서 홀연 까마반들반들한 너덜너덜 떨어진 옷과 때투성이 야윈 얼굴을 엄마는 만났다. 맏동서는 질동이를 받아 이고 2년만에 만난 시동생부부에게 행복을 밀어주고 집을 향해 씨엉씨엉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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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음을 알리는 낡은 똬리끈에 엄마의 사랑이 청춘이 매달려 있다.
빨간 똬리끈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집요한 정신과 끈기로 엄마와 함께 무거운 질동이와 대야 또는 세월을 떨어지지 않게 중심을 꼭 잡아줌과 아울러 엄마의 '녀자'도 랑만도 지켜주었다. 버들개지인듯 보송보송 각시시절, 빨간 똬리끈은 엄마의 볼연지 입술연지, 머리삔, 홍조로 되여 삶의 가난과 지루함과 그리움을 달랬던건 아닌지. 세월의 저 편의 아픔, 질동이로 물을 길어 밥을 지어야만 하는 그 시기 그 작고 허약한 몸으로 엄마는 그 시기 많은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가난이라는 물동이를 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엄마는 늘 물동이로 물을 길어와 식구들의 밥을 지었다. 그때 조금이라도 셈이 들면 엄마가 물동이를 이고올 때 정주칸문이라도 열어드리고 물독덮개라도 열어드렸으련만.. 엄마가 집안을 떠받치는 똬리인것조차 모르고 코를 풀쩍풀쩍 거리면서 뛰여다니며 놀기만 하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불쌍해 가슴 아프다. 다행히 빨간 똬리끈이 생명의 빛갈로, 너무나 선연한 모습으로 세월을 똬리에 감아 물고 내 엄마의 똬리같은 삶을 중심에로 다잡아준 덕분에 무거운 질동이는 엄마의 삶을 눌럿지만 엄마는 용케도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묵묵히 가정을 이끌고 나갔다. 밑빠진 독처럼 차오르지 않는 물독을 원망하며 우물가로 종종 걸음쳤을 엄마, 지금 이 순간도 엄마가 작은 키에 비해 큰 질동이를 이시고 얼굴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손으로 훔치시며 뒤뚱뒤뚱 질동이가 떨어질듯 한데도 두 손 놓고 집을 향해 걸어가시던 모습이 선하다. 수십년 고난의 세월 삶의 정신줄 놓을것만 같아 엄마가 빨간 똬리끈 고쳐 물며 다잡아야 했던 날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가?!
똬리끈은 똬리가 머리우에서 떨어지는것을 방지한다. 엄마에게 엄마의 삶을 지탱해주는 빨간 똬리끈이 있었듯이 나에게도 내 마음의 중심을 잡아줄 똬리끈 하나 있었음 좋겠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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