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글 노! 시대변화에 발 맞춰야
일찍 연길시 신흥가 동방관 3층에 동방어학쎈터를 개설하고 학생 개인의 특성을 헤아린 개성있는 강의로 인기몰이를 했던 전세화씨가 3년간의 충전을 끝내고 다시 영어강의를 시작했다.
길림화교외국어학원을 졸업한 전세화씨는 학생시절 조선족으로는 처음으로 총학생회 부주석에 당선됐고 장춘시10대문명대학생으로 선정된 다재다능한 학생이였다. 특히 웅변에 능한 그는 영어강연만 있다하면 빼놓지 않고 참가하는 열정을 보였고 CCTV의 웅변프로그램에도 참가한 경력이 있다.
전세화씨는 졸업후 꼭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어학원을 운영하려는 꿈을 갖고 졸업후 좋은 취직자리도 마다한채 시장조사를 하고 강사 경력을 쌓으면서 꿈을 향한 준비를 차곡차곡 했다. 그랬기때문에 동방어학쎈터를 운영하는 기간 그 흔한 전단지 한번 뿌리지 않아도 입소문만으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전세화씨는 학생의 부족한 점, 보완할 점이 무엇인지를 척척 짚어내고 학생 개개인의 개성에 맞춰 강의를 한다. 3~4세의 유아부터 시작해 70세의 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요구에 발맞출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특히 시험을 앞둔 학생들을 상대로 단시간내에 성적을 끌어올린 사례도 수두룩하다.
한창 승승장구하던 전세화씨가 동방어학쎈터를 그만둔것은 갑자기 그한테 찾아온 원인모를 병때문이였다. 손발이 차갑다못해 부어오르기까지 하는 증세를 두고 여기저기 병원도 많이 찾았지만 의사들은 속수무책이였다.
모든것에 의욕을 잃고 의학이 발달한 일본에까지 병보이러 갔을 때였다. 일흔살의 할아버지마저 일터에서 열심히 땀흘리는 모습을 본 전세화씨는 크게 감명받았다. 내 나이가 이제 31세인데 상심하기에는 이르구나, 적극적인 자세와 락관적인 태도로 받아들인다면 꼭 좋은 결과가 있을것이라 생각한 그녀는 다시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다시 교편대를 잡기까지 꽤나 긴 공백이 있었지만 그녀가 다시 강의를 시작한다는 소문에 학생들은 기다렸다는듯이 다시 몰려들었다.
“학생을 가르치기에 앞서 저는 늘 내 자신을 충실히 하기에 애썼습니다. 학생들도 저의 영어발음에 대해서는 엄지손가락을 빼들며 긍정해주죠. 맡은 바 학생은 끝까지 책임지는 마인드도 그들에게 믿음을 줬던것 같습니다.”
전세화씨는 바삐보내면서도 자기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연변대학기업녀성총동문회 10기생이고 현재는 연변대학 과학기술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다니고있다. 또 기회가 생기면 외국에 나가 선진국의 교수방식을 비롯하여 교육환경을 살피고 교학정보를 수집한다.
전세화씨는 외국에 있는 친지들과의 교류중에서, 그리고 직접 외국여행을 다녀본 경험속에서 늘 같은 소비를 하고도 외국만큼 향수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러던중 최근에는 학원에서 다 함께 배우는 과외보다는 1:1맞춤식 강의를 선호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요구에 발맞춰 가정방문 1:1강의를 시작했는데 그 반응이 너무 뜨거웠다. 성적제고는 물론 교재속 어휘를 실제회화에 응용한 강의법은 실전에도 유용한 지식이라 학생들이 강의를 지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수험생은 물론 자기계발을 중시하는 직장인들도 영어를 배우려는 러브콜이 쇄도한다.
“공부욕심은 있으나 방학동안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공부에 전념하기 힘들고 방에 콕 박혀 죽은 글을 배우기보다는 현실속에서 자연스럽게 지식을 습득하는 방학캠프는 외국에서 이미 하나의 트랜드입니다.”
전세화씨는 현재 자신의 학생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마련해주고저 방학간 미국캠프에 관해서 추진하고있다고 밝혔다. 그는 연변이 선도구 개발개방지역에 획분되면서 장차 외국어인재에 대한 수요가 많아질것으로 내다보면서 지금부터 차곡차곡 준비해야만 다가오는 기회를 잡을수 있다고 첨부했다.
드바쁜 스케줄속에 빵으로 끼니를 때울때도 있지만 전세화씨는 항상 씩씩하다. 연변의 생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영어과외분야에서 명품을 창출하고자하는 그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리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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