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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문화상 응모글 5] 추억의 손목시계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2월18일 09시26분    조회: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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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손목시계
리기춘


어느날 나는 책상서랍을 정리하다가 서랍구석에서 22년이라는 긴 세월을 고스란히 잠들어있던 《상해표》손목시계를 꺼냈다.입김을 홀홀 발라가면서 하얀 손수건으로 먼지를 살살 닦으니 깨끗한 모양새가 그대로 깔끔하게 들어났다.어찌보면 보잘것없이 평범한 손목시계이지만 나에게는 애뜻한 감회가 깊숙이 스며있는 더없이 소중한 보배시계이고 내 인생에서 영원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명품시계이다.

지난세기70년대초,농촌청년들이 손목시계를 차고 번쩍번쩍 자랑한다는것은 웬만해서는 엄두도 못내는 가장 사치스러운 향락이였다.그때는 순농사수입으로 한공에 오륙십전이 되나마나하는 형편에서 로동력이 알쭌한 가정이라도 년말결산에 이것저것 덜어내고나면 겨우 백원좌우 차려졌다. 1972년 년말에 우리집은 몇해만에 처음으로 백여원의 분배돈이 차려졌다.그 돈이면 좀 값싼 손목시계라도 하나쯤은 갖출수 있으리라고 은근히 기대하면서 황홀한 꽃꿈에 부풀어 련며칠 잠도 자지 못했다. 구차한 세월에도 물질에 대한 욕구는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 기색을 슬금슬금 훔쳐보더니 난처한 기색을 짓는것이였다.

“이 돈으로 남들에게 진 빛부터 갚고 손목시계는 후에 차차…”
한껏 부풀어 뜨거운 흥분속에 묻혀있던 나는 순식간에 늦가을 된서리 맞은 벼 이삭처럼 고개를 뚝 떨구고 말았다. 그리고 구들장이 꺼지게 후휴— 긴한숨을 내쉬고말았다.

아마도 나의 그날 락태한 상이 어머니의 마음에 내내 걸리신 모양이였다.

어느날 어머니는 어디에 가서 돈 20원을 빌려다 새끼돼지 한마리를 사서 돼지우리에 살랑 집어넣으시는것이였다.어머니는 큰 보배라도 얻어온듯 만면에 해살같은 웃음발을 환히 펼치시고 나더러 새끼돼지를 어서 와서 보라고 독촉이 성화같았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하시면서 이 새끼돼지를 잘 키워 팔아 래년봄에는 손목시계를 나한테 사주겠다고 약속하는것였다.

그날부터 어머니는 자식사랑같은 지극 지성으로 새끼돼지를 알뜰히 키우기 시작했다.매일 하루 세끼 쌀뜨물에 벼겨와 능쟁이와같은 돼지풀을 삶아서 돼지머거리를  장만했다.어머니는 불볕이 뜨겁게 쏟아지는 한여름 생산대 한전밭에 나가 기음 매고 집으로 돌아올때면 저녁늦도록 돼지풀을 캐서 한아름씩 이고 집으로 오군 했다. 어머니의 정성이 지극하였는데 1년만에 돼지가 2백50여근이나 되였다. 당시에는  사사로이 개인에게 팔수 없는 시대였다. 국가에 팔아 1백20원을 손에 쥔 어머니는 그 돈에서 20원을 갈라내여 용돈으로 남기고 백원을 북경에서 사업하는 누님한테 부치셨다.모자라는 돈은 보태서라도 기어이《상해표》손목시계를 사보내라고 연필에 침을 곱게 발라가면서 편지까지 써서 보냈다.《상해표》손목시계는 북경에서도 쉽게 살수 없는때라 누님은 부득불 모모한 분을 통해서야 살수 있었다.

북경에서 부쳐보낸 손목시계를 받아쥔 나는 천하에 없는 보배나 얻은듯이 입을 다물줄 몰랐다.입에 귀에가 붙었다. 어느새 소문을 들은 동네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부러운 눈길로 손목시계를 조심스레 만져보면서 손에서 놓기 아쉬워했다.시계가 이손 저손에서 옮겨지면서 오리울가봐 난 얼른 손목에 찼다. 어깨를 으쓱해지면서 대단한 부자가 된듯한 기분이였다.

대대 단서기라는 신분에《상해표》손목시계까지 척 차고 나서니 난 도시의 월급쟁이 신사가 된 기분이였다. 대대의 예쁜 처녀들의 은근히 사모하는 눈길이 내 등뒤에서 묻어나는 느낌을 어렴잖게 느낄수 있었다.

그때 농촌에서 밭일을 할 때면 쉼 시간과 점심시간을 가늠할수 있는것이 없어서 제일 곤혹스러운 일이였다.하늘의 해를 쳐다보고 어림짐작으로 쉼시간을 정했는데 날씨가 흐린 날에는 여간 말째였다. 나는 밭일을 할 때면 금이라도 간직하듯 손목시계를 벗어 손수건에 꽁꽁 싸서 허리춤에 단단히 숨겨놓았다. 그리고 허리쉼을 할 때되면 살며시 꺼내보고 쉼시간을 배치하군 했다. 나에게 시계가 있은후 참 편리했는데 때로는 곤혹스러울 때도 가끔 있었다.30여호 인가의 생산대에서 내가 유일하게 손목시계를 번쩍거렸으니 남들도 은근히 손목시계를 향수하고 싶어했다.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눈길이 내 손목을 훔쳐지나고있었다.

어느날 담배따기 일을 할때였다. 성미가 시원시원하게 부접좋은 젊은 아줌마가 첫날 색시처럼 살가롭게 다가와서 응석 부리듯 치근덕거렸다.

“단서기총각,그 손목시계를 내가 한번 차보면 안될가, 딱 한번만…”

나는 옆사람들이 좀스럽고 째째하다고 빈정거릴가봐 달갑지 않은 속마음을 가까스로 감추고 대범한체하면서 손목시계를 조심스레 벗어서 그 아줌마에게 넘겨주었다. 그 아줌마는 얼굴에 함박꽃을 활짝 피우면서 시계를 손목에 천천히 차는것이였다. 그리고는 하얀 손수건으로 시계를 감싸고 다음 적삼소매단추까지 단단히 채우는것이였다. 쉼시간이 되여서야 그 아줌마는 아쉬운듯이 손목시계를 팔목에서 빼내 나에게 공손히 넘겨주고는 깍뜻이 인사까지 했다. 이 모습을 옆에서 환히 지켜보던 처녀들은 뾰로통해났다. 그중 우리마을에서 제일 곱살하게 생긴 처녀가 대뜸 하얀 팔목을 쑥 내밀면서 자기도 한번 향수해보자고 졸랐다. 어정쩡해난 나는  처녀들의 인심을 잃고 애모의 정을 잃더라도 내가 가장 아끼는 귀중한 보배를 맹탕 내돌리고 싶지 않았다. 너도나도 한번한번 하는날에는 내 손목시계가 저렴한 물건처럼 처참해지지 않을가싶어 안된다고 딱 잡아뗐다. 그러자 그 처녀는 대뜸 새침해지면서 얼굴색이 새파래졌다. 그후부터 난 일 하러 갈때 시계을 차고가지 않는 날이 푸술했다. 이처럼 생명처럼 아끼는 손목시계인지라 평시에 조금이라도 오리울세라 항상 신경을 도사렸고 잃어버릴세라 명심하고 또 명심하면서 올똘히 건사했다. 세수할때도 첫 순서로 손목시계를 벗어 호주머니에 깊숙이 넣었고 밤에 잠잘때도 책상서랍에 꼼꼼히 숨겨두군 했다

시계에 대한 애착이 너무 과했는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가끔 일어났다. 어느날저녁 밖에 나가 술을 마시고 얼큰하게 집에 돌아왔다. 이튿날아침에 항상 시계를 두던 서랍을 열어보니 손목시계가 깜쪽같이 사라졌다。눈앞이 아찔해났다. 분명 엊저녁 서랍에 넣은는데…혹시 집식구들이 나를 혼내주려고 꾸민 지나친 장난이 아닐가 생각되여 어머니께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대뜸 얼굴빛이 흐려졌고 녀동생도 상심한 표정을 지으며 눈물까지 가랑가랑했다. 삽시에 온 집이 쑥대밭이 되였다.그래도 성질이 차분한 아버지가 어디다 잘못 두었는지 다시 찾아보라고 했다. 이번에는 책상서랍이란 서랍을 다 뒤졌다. 그런데 왼쪽서랍을 열고보니 거기에 내 손목시계가 반짝이고있지 않겠는가! 평시에 언제나 오른쪽 서랍에 넣어두었는데 그날 취해서 그만 왼쪽서랍에 넣었던것이다. 이처럼 시계때문에 울지도 웃지도 못할 미니희극이  발생했다. 《상해표》손목시계는 내 인생의 하얀 숨결과 더불어 날마다 찰각찰각 쉼임없이 맥박쳤다。날마다 태엽을 주면서 나는 인생을 불태웠다. 그 손목세계를 차고 떳떳이 대학교문에 들어섰고 그 시계를 차고 성스러운 교단에 서서 20여년을 하루와 같이 보냈다.

그 시절에는 손목시계가 신분을 나타내는 귀중품이였다. 손목시계를 한번 차보는것이 어쩌면 그 당시 농촌젊은이들의 가장 절박한 소원이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절박한 소원을 이루었으니 그 시대에 사치를 단분히 향수한 셈이다.

지금은 흔해빠진게 손목시계이고 또 시계를 차는 사람도 많지 않다. 또 손목시계시장도 발전하여 여러가지 전자손목시계와 외국제 명품시계들이 엄청 많다. 전자손목시계의 유혹에 내 팔목에 있던 《상해표》손목시계도 언젠가 내 팔목을 아쉽게 떠나게 되였다.이젠 그《상해표》손목시계는 지나간 그 시대의 력사유물로 남아있다. 20여년이나 나의 인생을 동반한 《상해표》손목시계는 조요히  책상서랍한구석에 묵묵히 자리잡고《퇴직휴양》하게 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변해도 《상해표》손목시계는  내 마음속을 한시도 떠난적 없다. 집이 이사할때마다 나는 꼭꼭《상해표》손목시계만은 정성스레 건사하여 서랍에 보관하군 했다.

내 젊음을 화려하게 장식한《상해표》손목시계, 아마도 내 손목시계는 내 인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영원히 내 곁에 있으리라!



《청년생활》잡지 2015.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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