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맥하고있는 원승희(우)교수
85세 고령이지만 지금도 매일 출근하고 공부하면서 자료수집을 한다는 중의 교수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은것은 지난 1월 28일 오전 10시였다.
퇴직전까지 연변뇌과병원 신경과에서 부주임의사로 활약해온 원승희교수는 어렸을적부터 원래 “수재”였다고한다.
화룡현 룡수평 신민대대에서 태여나 시골에서 소학교, 중학교를 졸업하고 연변고중을 졸업한후 1954년에 청화대학을 제1지망을 썼으나 승학하지 못하고 이듬해에 할빈외국어전과학교에 붙었다고 한다.
꿈이 많은 원로인은 로어를 배우다가 그래도 고향에 돌아가 의학공부가 하고싶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중앙 고중교육부에 조선글로 편지를 썼는데 반년후 중앙고중교육부에서는 원승희를 연변대학 의학게 5년제에 추천해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5년간 의학을 배운후 연변뇌과병원에 분배받았다고 한다. 그때 연변뇌과병원은 성립된지 갓 3년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고 한다. 그러니 원교수님 역시 연변뇌과병원 초창기 원로하고 할수 있는것이다.
원교수님은 자기는 농민의 자식으로서 공산당의 덕을 제일 많이 받은 행운아라고 하면서 모주석과 당의 덕분에 연변대학 의하계에서 붙었으니 “죽어도 모주석한테 가서 죽겠다”고 감개무량하여 말하는것이였다.
원교수의 로후생활은 실로 감동적이였다.
“공부하지 않으면 치매가 온다.”는 원승희교수님의 장수비결의 하나라고 할수 있다.
퇴직후 60세에 중학교 영어를 a, b ,c부터 시작하여 4급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도 매일 두세시간정도 공부한다는 원로옹이다. 그가 중의학을 계속 공부하면서 묶어놓은 자료집만해도 무려 20여권이나 되였다. “명로중의방”, “침구학”, “중의림상치료”, “약리”, “침구속성” 등 두툼한 자료집들을 만들어 의학을 약방과 를 경영하고있는 딸, 사위한테 물려준다고 한다.
지금도 문진부에 나와서는 환자를 보는한편 의학공부를 하면서 계속 재료를 수집하는것이 그의 매일의 일과라고 할수 있다.
술, 담배를 하지 않는 원교수님은 귤과 같은 과일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개고기, 소고기, 돼지고기아 같은 육류를 한근정도 잡수신다고 한다.
부지런한 원교수님은 애일 아침 4시면 꼭꼭 일어나 잔일을 하며 문진부에 도보로 걸어다니면서 매일 규칙적인 로후생활을 조직하고 있다.
“장수하려면 움직여야 한다”는 원교수님의 두번재 장수비결이라고 하겠다.
아직도 단층집을 고집하며 손수 장작을 패고 석탄을 땐다는 원로옹이다. 사위가 때나무를 실어오면 “그래도 절로 패는 장작이 더 따스하다”고 하면서 자식들의 손을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중의학재료는 한자, 그것도 고문이 많아 컴퓨터로 타자하기 어려우므로 손수 그림을 그리고 또박또박 정성껏 글로 옮긴단는 원로옹이다.
“사욕을 버리고 정성껏 환자를 위해야 한다”는것은 아마 그의 세번째 장수비결이다.
지금도 많은 환자들이 찾아오지만 “돈을 버는것이 목적”이 아니라면서 환자의 몸에 딱 맞는 처방을 떼주어 자식들로부터 “돈 욕심이 없는 분”이라고 악의없는 “비판”을 받는다고 한다.
로어는 물론 일어, 영어, 조선말, 한어를 능란하게 구사할수 있어 일본이나 한국에까지도 늘 찾아온다고 한다.
원로옹이 그려가고 있는 석양, 평범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는 원로옹의 황혼은 유자빛 노을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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