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새 터전을 개척하는 사람들, 녕파(닝보)편 (1)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5월4일 23시14분    조회:173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향을 버렸지만 또다시 여기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조선족이 이 고장에서도 재미있게 살수있는 터전을 마련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닝보는 의류업이 발달한 곳이고 주산군도에는 해산물이 많이 나는 고장입니다.”

중국강남에 위치한 녕파(宁波 닝보)는 절강성의 단독계획시이고 절강성의 성직할시이다. 특히 녕파 주산항(舟山港)은  세계 최대 물동량을 자랑하고있다. 

녕파시는 절강성의 경제 중심지일뿐만아니라 국가 력사문화명소로서 련속 네차나 전국 문명도시로 명명되였다.

녕파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왔지만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기억이 흐릿하다. 단지 중국의 최대경제구 장강삼각주에 위치한 현대화한 도시라는 인식과 전통적인 중국 강남의 문화명소라는 인식이 서로 뒤엉켜있을뿐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조선족이 많이 모여들고 얼마전에는 심지어 조선족협회까지 섰다는 소식을 지인에게서 듣고 녕파방문을 결정했다.

“새 삶의 터전을 개척하는 사람들”계렬 취재방송을 하고있는 우리들이 반드시 찾아봐야할 곳이기도 했던것이다. 북경에서 녕파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것은 3월 27일 오전이였다.

2시간의 비행을 거쳐 녕파에 도착한후 지인이 가장 먼저 안내한 곳은 삼강구(三江口)에 위치한 녕파의 “로외탄(老外滩)”이였다. 대도시 상해에 외탄이 있듯이 이곳에도 로외탄이라는 명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상해외탄보다 더 오래된 것이란다.

녕파는 세 갈래 강이 모이는 합수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때문에 세 강이 합치는 합수목인 삼강구(三江口)가 녕파의 가장 번화한 중심지로 된다. 

기재에 의하면 녕파는 당송때부터 “해상비단의 길”의 동방 시발역으로서 그 번화함을 누려왔다. 그러다가 아편전쟁시기 제국주의 함포에 의해 1844년에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여 제국주의 통상구로 되었다. 그러니 이곳이 상해보다도 개방이 20년 더 빨랐다는 것은 과장된것이 아니다. 

로외탄은 1992년부터 다시 개발되여 이미 장강삼각주의 문화 명소중 하나로 부상했다.

녕파의 삼강구  

녕파 삼강구 대교

물론 이곳 외탄은 그 규모나 번화함은 상해외탄과 비교할수없지만 그래도 백여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많은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고 녕파인들의 상업재능을 엿볼수있는 다양한 유적이 남아있어 여러 가지로 볼거리가 많은 명소였다. 

녕파 삼강구의 야경 

1. 조선족 로인협회의 형성과 발전 

이튿날 녕파조선족 로인협회의 회장 박영기(朴榮基) 어른을 만나 녕파에 조선족이 모이게 된 상황을 료해하였다. 원래 흑룡강성 아성에서 살던 박영기 회장은 십여년전 자녀들을 따라 녕파에 와서 사신 분이다.

녕파 조선족로인협회 박영기 회장

[박영기] “자식따라 녕파에 온지도 어언 20년에 가까워옵니다. 녕파는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의류업이 많이 발전한 곳이고 또 지리적으로 주산군도가 있어 수산물이 많이 나는 고장으로 소문이 높은 고장입니다. 한국과 일본회사들이 대거 녕파에 진입하면서 조선족 젊은이들도 이곳에 자리를 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한국이나 일본 의류업체에서 일하다가 나중에는 독자적으로 창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녕파의 조선족 청장년 반 이상이 의류업이나 무역에 종사한다고할 수 있습니다.”

[박영기] “녕파의 조선족 원로라고하자면 올해 82세 고령인 최금단(崔今丹), 장정옥(張貞玉) 두 할머니가 계십니다. 이 두 분은 일찍 16살에 화룡에서 지원군 위생병으로 나갔다가 지원군의 한족 전우와 결혼해 이곳에 와서 사시게 되였다고합니다. 얼마전 우리 조선족 로인들이 모여서 이 두 분의 80세 생일잔치도 차려드렸습니다. 자녀들을 따라 녕파에 온 우리 로인들은 그래도 시간이 많습니다. 말동무가 없어 적적하기 때문에 조선족끼리 자주 만나군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2004년에 조선족 로인협회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 여러가지 다양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테면 로인들 생신잔치를 차려 드린다거나 함께 관광을 다니고 또 조선족 춤과 노래를 하는 활동을 조직하군합니다. 특히 우리 가운데는 조선족 상모춤까지 추는 분이 있어 지역사회를 대표해 나가 춤자랑을 할때도 있었습니다.”

[박영기] “우리 조선족은 중국 56개 민족가운데서 문화수준이 비교적 높고 진취심도 강하며 특히 부모들은 아무리 어려워도 자식을 공부시키는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이곳의 기후가 맞지 않아 고생이였고 조선족이 없으니 적적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래서 돌아갈 생각도 했었지만 자녀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잘 살아가는 것을 생각하고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향을 버렸지만 또다시 여기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조선족이 이 고장에서도 재미있게 살수있는 터전을 마련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영기] “수십년사이 우리 중국조선족은 한국에 많이 진출했습니다. 우리와 한 핏줄이니 좋은 삶을 살수 있을것 같아서 무작정 한국진출에 열을 올렸습니다. 저도 한때 한국에 있어봤습니다. 그런데 이 한국진출붐이 구경 우리 조선족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한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친척도 찾고 고국이라는 느낌도 받으면서 선진적인 민족전통을 보면서 성취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물론 돈도 벌었지요. 그런데 점차 가면서 그게 아니였습니다. 중국조선족은 한국에서 어디가나 필경 이곳은 우리 나라가 아니구나, 리익앞에서는 같은 민족이라는 개념도 큰 의미가 없구나 하는 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후반에 들어와서는 중국에서의 우리 터전이 다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건설했던 학교, 우리가 건설했던 마을, 우리가 가꾸던 토지 이 모든 것이 남에게 양도되고말았습니다. 더군다나 지금 이곳에 와서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우리의 후손들이 전통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선말도 모르고 조선글도 모르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픕니다.”

박영기 회장님은 자신이 몸소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깊은 사색을 자아낼 문제를 제시해주셨다. 한국진출, 그동안 수십만 조선족이 중국의 터전을 버리고 한국에 나갔다지만 구경 저들의 미래를 한국에 기탁할수있을지 의문이다.

낯선 땅에 새로운 터전을 개척한다는 일도 쉽지만은 않다.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두고 고민하던 박영기 회장은 정부 관련 부문을 찾아다니며 적극 방법을 강구하였다고하신다.

[박영기] “여기와서두 제가 민족사무위원회도 찾아가고 정협도 찾아가고 했습니다. 어떻게하면 녕파사회에 우리 조선족들이 같이 잘 살수있게 만들겠는가를 고민하면서 많은 노력을 해봤습니다. 특히 교육문제에서 정부차원의 힘을 빌리려했습니다. 그들은 어느 학교에 편입해 조선족반을 꾸리고 선생 한명을 구해서 조선글을 가르치면 어떤가고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교원을 구하는 것도 문제되고 이런 조선족반에 아이를 보내려는 학부모도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정부쪽에서 그렇게 적극적이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그들은 ‘너네 조선족은 한국인과 같지 않느냐? 한국이 너네 나라가 아니냐?’하면서 잘 신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참 답답해서, 과거 일부 조선족이 스스로 한국이 자기 나라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였으니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니다, 우리는 엄연히 중국국적이고 중국의 조선족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런 사람은 소수일뿐이라고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배경도 없는 로인 한분이 아무리 노력해도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사업이 잘 진행되지 못한데 대해 박영기 회장은 못내 가슴아파하면서 이렇게 분석하셨다.

[박영기] “녕파는 특이한 곳입니다. 어찌하다 보니 이곳에 모인 조선족은 모두 동서남북에 흩어져 살고있습니다. 그러니 한번 만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연구하기도 불편합니다. 그리고 녕파는 동북의 여느 시와 현과도 다릅니다. 동북에는 그래도 어디나 민족문화관이 있어 조선족의 활동장소로 되었는데 여기는 없습니다. 안만해도 로인의 힘으로는 안되겠습니다. 젊은 사장한테 부탁했지요, 젊은 선줄군이 있어야 일들이 잘 해결될수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양력설에 조선족협회가 창립되였습니다. 조선족이 근 3백명이나 모였습니다. 지금 얼추 녕파에 천여명 조선족이 있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이젠 조선족협회도 있으니 젊은 사장님들의 인솔하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다 잘 해결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살기 좋은 우리의 제2의 고향을 더 잘 건설하리라 생각됩니다.”

박영기 로인협회 회장은 새로 창립한 조선족협회에 만족해하시면서 로인협회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활동상황을 설명해주셨다.

녕파의 조선족 원로 최금단(오른쪽), 장정옥 로인 

두 지원군 어르신의 80돐 생신잔치 사진

관광하러 다니시는 녕파 조선족로인협회분들

녕파에 모여 온 조선족은 주로 의류업과 수산업에 종사하였다고한다. 녕파는 중국에서도 의류업이 손꼽히는 곳이고 또한 많은 의류브랜드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조선족 일군들이 한국인들을 따라 이 업종에 종사하면서 창업을 시작하였던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유명한 수산물 기지인 주산군도(舟山群島)가 녕파 동부에 위치했기 때문에 수산물 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들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녕파조선족사회의 최초의 부가 창조되였던 것이다.

조선족 청장년들은 사업이 다망하여 별로 시간이 없었지만 자녀들을 따라 녕파에 온 어르신들은 서로 다니면서 조선족끼리의 만남을 이어왔다고한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조직된 것이 로인협회였다. 로인분들은 늘 한자리에 모이고 봄나들이를 하고 관광도하면서 만년을 즐겼고 따라서 뜻있는 청장년들도 어르신들에게 효도를 드리는 마음으로 로인협회활동을 지원해 주군 했다.

로인협회 어르신들의 가장 큰 걱정은 자녀들에 대한 민족전통교육이였다. 손주놈들이 아무리 귀여워도 낯선 땅에 와서 자기의 언어를 모두 잃어버리고 자기의 전통문화를 다 잊어버리는 것을 보면서 은근히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족협회를 만들고 기타 도시에서 한 것처럼 우리말과 글을 배우는 주말학교라도 만들자고 적극 노력해 오셨다. 그러다가 사업에서 성공하면서 점차 여유를 가지기 시작하는 청장년분들이 적극 동조하고 드디어 조선족협회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녕파라는 이 낯선 도시에 우리민족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실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수없다. 하지만 이곳의 문화적 깊이를 모른다면 현지인들과의 교류와 접촉이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곳에서도 현지인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조선족끼리 혹은 한국인들과만 어울린다면 우리의 우세가 크게 줄어들수밖에 없다.

녕파에 제2의 고향을 건설하련다는 박영기 회장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였다. 비록 경제가 많이 발달한 곳이라고하지만 필경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고장인 녕파가 아닌가?!

글,사진/ 김성룡 중앙인민방송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2월의 주제는 ‘약속’]‘67년 해로’ 老부부가 사는 법   결혼생활 67년째인 송성섭 씨(오른쪽)와 이분녀 씨 부부가 19일 강원 홍천군 자택 앞 평상에 나란히 앉았다. 사진 촬영을 위해 문 밖으로 나오는 아내 이 씨를 위해 송 씨는 익숙한 듯 신발을 꺼내 아내...
  • 2015-02-25
  • 중국조선족동포 도정애 씨, "한국에 입국하기위해 위명위조여권을 만들지 않았어요." 강제 추방 명령 받고 하루 하루 불안과 초조 가운데 살아가고 있어 ▲ 아들이 한국에 입국하기위해 불법으로 위명위조여권을 만들지 않았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중국조선족 동포 도정애 씨. 민족 고유 설 명절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설명...
  • 2015-02-19
  • 키 150㎝, 자그마한 소녀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왼쪽으로 몸을 약간 틀어 앉은 소녀는 지그시 눈을 감더니 건반을 두드린다. 연주하던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가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소녀의오른 어깨가 크게 들썩인다. 건반을 수놓은 건 소녀의 왼손과, 오른 팔꿈치. 오른 손이 없는 소녀에...
  • 2015-02-10
  • 중국은행주식유한회사 연변지행 공청단지부(서기 한동)에서는 춘절을 맞으며 연변언어장애훈련세터에 컴퓨터 10대를 증정했다. 2010년 9월에 설립된 연변언어장애훈련센터는 연변주장애자련합회 산하에 있는 민간단체이다. 언어장애훈련센터에는  0~7세 어린이 70여명이 있는데 이들은 지적장애, 청각장애, 뇌성마비 ...
  • 2015-02-05
  • 장백 96세 장수로인,《좋은 세월에 오래 살아야지요!》 장백조선족자치현 금화향 리전촌의 리추월로인은 올해 96세로서 전 현 조선족부녀들중 최고령으로 알려지고있다. 리추월로인은 1919년 7월 23일, 조선 삼수군에서 출생, 일찍 1940년대에 자기보다 3세 이상인 남편 최병길씨를 따라 중국 길림성 장백현으로 이주해왔다...
  • 2015-02-01
  • 60년대 농촌청년 참군기념사진을 보며 확실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내가 본 집체사진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앞줄에 앉은 사람들의 대개가 친척이나 사회에서 존중을 받는 대표적 인물들이다. 어느 날 필자는 사진을 정리하다가 1969년 12월에 (徹底埋葬帝修)는 글을 새긴 집체사진에 눈길을 멈췄다.  이 집체...
  • 2015-01-28
  • 20일, 연변에 거주 중인 김문혁 씨 인편으로 긍정적인 소식이 전달됐다.   지난 해 11월 17일 ‘동포투데이’를 통해 김문혁 씨의 안타까운 투병 소식이 전해진 뒤 중한 양국에 거주 중인 동포들의 따뜻한 정신적, 물질적 응원에 힘입어 김문혁 씨가 호전 기미를 보인다는 소식이다.      ▲ 연길 철남병원...
  • 2015-01-24
  • 김영희가 72살에 시작한 글 공부 1월 15일, 필자는 송해숙(76)할머니의 소개로72세에 천자문학습을 시작한 도문시 문화사회구역 김영희(80)할머니를 취재하였다. 는 속담이 있다. 송해숙은 로 불리며71세 나이에 >(2010년)평선되였다. 송해숙은 임봉금(89)할머니를 통해 김영희를 알게되였다고 하는데 송해숙에 따르면 임봉...
  • 2015-01-21
  • 독거로인들 눈 건강 살피며 길림성 연길시 건공가두 연화사회구역에서는 독거로인들의 눈 건겅을 잘 살펴드리고 있다. 지금 안과질환이 많이 발생되고 특히 로인층에 백내장, 록내장, 안저출혈, 눈 건조증 등 증상이 많이 나타나는 실정을 김안해 연화지역사회에서는  봉사단을 무어 북경동인병원의 분원인 연변화정안...
  • 2015-01-12
  • 이는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지만 뛰여난 감각과 손재간을 자랑하는 청력장애인 최미자(53살)씨가 하나하나 정성들여 만들어낸 주름지꽃이다. 주름지를 자르고 가위집을 내고 풀을 바르고 철사로 고정하는 등 여러가지 섬세한 과정을 거쳐“생화보다 더 생화같은” 꽃을 연구하고 만들어내여 주위의 같은 처지의 장...
  • 2015-01-08
  •    27일, 연길시심리상담건강협회와 연길시북산가두 단연사회구역에서는 새해를 맞이하여 단연사회구역의 독거로인들을 모시고 행복한 년말년시행사를 가지였다. 연길시심리상담건강협회에서 해마다 네차례씩 진행하는 사랑의 도시락활동가운데의 하나인 이번 활동에는 북산가두 단연사회구역의 7명 독거로인들이...
  • 2014-12-30
  • '뢰봉따라배우기' 자원봉사 고조 일으켜  연길시북산가두에서 “두개명절”맞이 뢰봉자원봉사활동 가동식이 12월25일 열렸다.  행사에서는 먼저 가두내의 로당원대표들에게 보건약품을 드리고 5명 빈곤학생에게 조학금을 쥐여주었다. 새해 양력설과 음력설을 계기로 “뢰봉따라배우기&rdq...
  • 2014-12-29
  • 부승로인협회 빈곤대학생가정에 따뜻한마음 12월 20일 연길시 북산가두 부승로인협회에서는 흑룡강에서온 백씨가정에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었다 . 백씨가정은 농사군인데 밭이 많지 않아서 농사수입으로는 겨우 밥은 먹을수 있으나 현재 산동사범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학비 마련에는 역부족하여 봄에 파종하고 가을에는...
  • 2014-12-29
  • 지체장애장들게 웃음 꽃을 가꿔주는 도문시 월궁가 부유사회구역 조춘홍주임인터뷰 웃음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밝고 명랑한 사람들과 유흥을 즐기는 사람들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밣힌 조사연구보고는 고 했다. 신이 사람에게만 선물한 웃음은 사람들에게 건강을 주고 즐거움을 준다. 도문시 월궁가부유사회구역 ...
  • 2014-12-29
  • 지난 12월 24일, 연길4백화 해녕모피성(연변민족서점, 대표 허덕환)에서는 연길시 의란진 실현촌에 위치한 ‘사랑의 집(애심원)’(원장 김학원)에 어린이 도서를 증정했다. 이날 허덕환대표는 추운 날씨도 마다하고 종업원들과 함께 ‘사랑의 집’을 찾아 사랑이 그득 담긴 도서 300여권(한화 500만원...
  • 2014-12-25
  • “나 한 사람이 힘들더라도 여러 사람이 행복하면 되지요.” 33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이른아침이면 어김없이 거리청결에 나선 연길시환경위생작업회사 곽숙현(60살) 청결공의 진솔한 고백이다. 1981년, 27살의 젊은 나이에 환경위생사업에 참가하게 된 곽숙현을 두고 뒤말이 많았다. “...
  • 2014-12-11
  • 안녕하세요! 2014년 12월 1일, 내몽골 울란호트조선족학교로 특별한 선물이 배달되였습니다. 배달트럭에는 애심녀성네트워크 제6회 워크숍(研讨会)에 참가한 회원님들의 우리 민족 꽃봉오리들에 대한 다함없는 배려를 듬뿍 실은 사랑의 도서들이 실려있었습니다. 지구촌 176개국 700만명의 재외조선족중 2만명도 안되는 내...
  • 2014-12-10
  • “법원에서 22년간 출근했었기에 아는것이 법률지식입니다. 그래서 퇴직후에 학교와 사회구역, 농촌마을을 찾아다니며 법률지식을 보급해왔습니다.” 11월 28일, 왕청현정법위원회의 새세대관심위원회에서 상무부주임직을 맡고있는 최룡섭(81세)은 응당한 일을 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왕청현인민법원에서 사업하...
  • 2014-12-02
  • 얼마전, 연길시 건공가두 장생사회구역의 조문홍, 김련화는 길에서 헤매는 할머니(69세)의 모습이 눈에 뛰여 다가갔다. 할머니는 유치원부근에 산다는 얘기만 몇번 얘기했지만 구체적인 위치는 몰랐다. 둘은 할머니를 모시고 부근의 유치원을 다 돌아다녀도 할머니를 아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할머니의 어눌한 말투에 눈빛...
  • 2014-11-29
  • 그날도 1반에서의 수업을 끝마치고 나는 교탁우에 걸쳐놓은 수건에다 손에 묻은 분필가루를 습관적으로 문질러 닦았다. 그런데 갑자기 영란학생이 《선생님, 왜 내 수건에다 빨간 분필을 묻혔습니까?》라고 웨치는것이였다. 전 학급 학생들의 눈길이 일시에 나한테 쏠렸다. 《아차, 참으로 미안하구나. 그냥  책상 닦...
  • 2014-11-28
‹처음  이전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