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접한 사진 한장의 감동이 한 남성의 일생에 불꽃을 일궈 만리장성에 헌신하게끔 이끌었다.
국내언론들이 소개한 영국인 윌리엄 린드세이(60세·William Lindesay)의 이야기이다.
1967년 당시 11살의 그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세계지도책에서 만리장성의 사진을 처음으로 접했다. 그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만리장성의 모습에 빠져들었고 이후에도 그 잔상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만리장성을 등정하겠다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시기로서 중국은 금단의 땅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였다.
선생님은 윌리엄에게 “너의 꿈은 이룰수 없다”면서 “아무도 중국을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후 1984년 중국은 대외개방을 시작했고 어느덧 성인이 된 윌리엄은 포기할수 없는‘만리장성의 꿈’을 위해 마침내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
직장을 그만두고 간단히 짐을 꾸려 중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산해관(山海关·만리장성의 기점, 동쪽끝에 있음)에서 가욕관(嘉峪关·만리장성의 서쪽끝)으로 향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환경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리질과 발가락 골절 등 질병과 부상으로 결국 일정을 중도에 멈춰야 했다.
휴식기를 가진 그는 1987년 다시 만리장성을 향했다. 이번에는 가욕관에서 출발했다. 당시는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여서 외국인은 보기가 쉽지 않았다. 하물며 180cm의 키와 독특한 외모의 외국인이 만리장성에서 달리기를 하는 모습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많은 사람들이 공안에 신고를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는 각 지역 공안들에게 불려가 심문을 받았고 간첩으로 몰려 비자가 취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그의 꿈을 막지는 못했다. 그는 향항으로 우회해 비자를 발급받아 계속해서 만리장성을 향한 달리기를 이어갔다. 결국 그는 78일간 총 2470여Km를 달려 마침내 어린 시절의 꿈인 ‘만리장성 달리기’를 이루어냈다.
[사진: 윌리엄 린드세이(오른쪽)와 그의 ‘무한 만리장성 도전’ 행각 도중 만나 결혼하게 된 중국인 안해.]
당시 그는 서안(西安)의 한 중국녀성을 알게 되였고 둘은 곧 사랑에 빠졌다. 마침내 그녀와 결혼식을 올린 그는 영국에서 신혼생활을 누렸다. 하지만 다시금 점점 부풀어오르는 만리장성에 대한 그리움에 결국 1994년 다시 북경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였다. 그는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이면 만리장성을 찾았다.
그러나 매번 만리장성에서 돌아오는 그는 고민에 휩싸였다. 다름아닌 만리장성에 쓰레기가 쌓이는것에 대한 불만이였다.
그의 푸념에 안해는 “그렇게 불평만 하면 무엇하냐”면서 “그렇게 못 참겠으면 직접 가서 쓰레기를 줏으라”고 말했다.
안해는 롱담으로 건넨 말이였지만 순간 윌리엄은 만리장성에서 쓰레기를 줏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는 그때로부터 만리장성에 올라 바위틈에 낀 쓰레기까지 찾아내 줏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리해하지 못했다.
한번은 중국인 사진작가들이 촬영을 마친후 음식포장지를 버리는것을 보고 그들이 버린 쓰레기를 줏어 담았다.
사진작가들은 “외국인친구, 여기는 중국이에요. 당신이 상관 안해도 돼요”라며 그를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괜찮다”면서 계속해서 쓰레기를 주웠다. 그래도 주변친구들은“여기는 중국이고 이건 중국의 일이다”라며 그를 말렸다. 그는 참다못해 “나도 만리장성이 중국의것인걸 안다. 하지만 만리장성은 지구의 일부이기도 하다”라고 반박했다. 부끄러움을 느낀 사진사들은 “윌리엄의 말이 맞다”면서 함께 쓰레기줏기에 나섰다.
이후 그의 안해와 두 아들도 쓰레기줏기에 동참했으며 서서히 중국학생들, 려행객들, 사회인사들이 속속들이 쓰레기줏기운동에 동참했다. 차츰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윌리엄은 ‘국제 만리장성우협회(友协会)’를 설립했고 중국, 독일, 미국 등 나라의 자원봉사자들도 동참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만리장성의 길을 따라 ‘환경보호경고표지판’을 세워 왕래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도록 이끌었다. 또한 기업들의 찬조로 6명의 농민공을 고용해 북경 근교에 거주하며 회유(怀柔) 부근의 만리장성 쓰레기를 줏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리장성의 쓰레기는 매년 늘어만 갔다. 결국 윌리엄은 근본적인 문제가 교육과 리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그는 2003년부터 5년간 만리장성의 과거의 사진을 수집해 옥문관(玉门关)에서 로룡두(老龙头)에 이르는 3만 5000Km 거리에 만리장성의 과거와 현재의 사진을 게시했다. 만리장성을 훼손되지 않게 지켜가자는 취지였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녀왕은 2006년 그를 버킹엄궁전에 초청해 ‘대영제국훈장’을 그의 옷에 직접 달아주었다. 녀왕은 윌리엄과 악수를 하면서 “당신은 만리장성을 보호하느라 평생의 정열을 쏟았다. 매우 잘했다!”라고 치하했다.
올해로 환갑을 맞은 윌리엄은 몸이 불편해져 더 이상 매주 만리장성에 오르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형형해 매번 만리장성을 찾을 때면 여전히 쓰레기를 싸들고 온다.
그가 남긴 말은 낮고 묵직한 울림을 준다.
“이 땅에 당신이 쓰레기를 버릴 때 이 쓰레기가 누구에게 가는지 생각해보셨나요? 바로 우리들의 아이들입니다. 나는 이처럼 더러운 선물을 아이들에게 주고싶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더욱 사랑스런 선물을 받아야 마땅하며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통해 이 선물의 가치를 높일수 있습니다.”
외신/연변일보 뉴미디어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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