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추억’ 응모작품 (18)
◇강춘만(구태)
“당신은 평생 어머님 곁에서 살아야겠어요.” 이는 안해가 밥상머리에서 늘 롱담 반,‘불만’반으로 해오던 말이였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깃들어있다.
사실 다섯남매중 막내로 태여난 나는 신통히도 어머님의 입맛을 똑 떼닮아 어머니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음식엔 수저를 대지 않았었다. 그래서 안해가 만든 료리엔 그저 그 정성을 봐서 안해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슬쩍 맛만 볼 뿐이였다. 이러니 어찌 안해의 불평어린‘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옛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남자들은 안해를 만나면 입맛까지 변한다고 하더니만 오직 나만은 어찌된 영문인지 뼈속에 배인 어머니의 그 손맛에서 벗어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매번 따뜻한 봄이 지나가고 무더운 여름이 올 때면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우리 오남매가 강줄기를 졸졸 따라 풀숲을 살살 헤치며 물고기를 조심조심 더듬던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개를 쳐든다. 참으로 나로 하여금 잊지 못할 동년의 이야기주머니를 슬슬 풀어헤치게 한다.
나는 어릴 적에 비온 뒤의 고향의 강을 무척 좋아했다. 비가 멎으면 우리 다섯남매는 창고의 대들보에 겨우내 매달아두었던‘보물’을 풀어들고 바지가랭이를 둥둥 걷어올리고 시골의 진창길을 철썩철썩 밟으며 신나게 강가로 달려가 강을 한껏 누비기 시작한다. 비록 낡은 모기장으로 거칠게 만들어진 반두였으나 물고기가 곧잘 걸리였다. 우리는 잡은 물고기를 들고 흥얼흥얼 코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집으로 향한다.
그맘 때면 어머니는 집마당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장작불을 지펴놓고 평소보다 밥을 배로 지어놓고는 우리가 집에 들어서기만을 기다린다.‘밥도적’으로 불리우는 물고기료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였다. 마치 승전하고 돌아오는 자식들을 대견스레 여기며 기다리는 것 같았다.
우리 다섯남매가 가마솥을 둘러앉아 젖은 신발과 바지가랭이를 말리우는 사이면 어머니의 물고기손질이 끝난다. 장작불이 거의다 탈 무렵이면 어머니의 손맛을 보여주는 재주가 시작된다. 어머니는 평소에 그토록 아껴먹던 콩기름병을 들고 와서 몇방울 솥에 튕겨넣는다. 그리고 병아가리에 묻은 콩기름을 식지로 싹싹 긁어서 다시 병안에 몰아넣고는 병마개를 꽁꽁 닫아놓고서야 료리를 시작한다.“최씨가 앉았던 자리에는 삼년 동안 풀이 안 난다”는 말이 있듯이 어머니는 정말 살림을 알뜰히 하는 진짜 최씨였다.
기름이 달아올라 까만 연기가 몰몰 피여오를 때면 깨끗이 손질해두었던 물고기를 솥에 쏟아넣고 물에 불구어놓았던 마른 고추와 함께 달달 굴린다. 그리고 소금 한알 넣지 않고 집간장으로 조심스레 간을 잡는다. 잠간 지나면 솥이 끓기 시작한다. 솥과 솥뚜껑 사이로 몰몰 풍겨나오는 구수한 료리냄새가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며 온 뜰안을 뒤덮는다.
이때면 어머니는 늘 웃으시면서 구수한 지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릴 땐 자신의 오라비가 물고기잡이를 잘해서 물고기가 귀한 줄 몰랐다는둥, 그릇의 물고기만 잡을 줄 아는 무재간둥이 나의 아버지를 만나서 물고기 구경도 못했다는둥, 나의 아버지는 재간이 없어서 변변한 물고기그물 하나도 못 만든다는둥, 그래도 지금은 우리들의 덕분으로 물고기 구경이나마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둥 하면서 장작불이 사그라질 때까지 아버지의‘흉’을 보신다. 난 왜서인지 그 ‘흉’이 싫지 않았고 오히려 웃음을 담아가며 말할 수 있는 어머니가 더 대견스레 여겨졌으며 그 ‘흉’이 물고기료리처럼 구수하여 더구나 귀맛 좋게 들려왔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나면 장작불도 사그러진다. 솥에서 나는 바자작바자작 소리와 솥뚜껑 사이로 쌩- 쌩- 뿜겨나오는 김소리는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마치 귀맛좋은 장단소리처럼 들려온다. 료리는 묘하게도 솥에 붙지 않았고 물고기들의 모양새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으며 겉면은 기름기가 반지르르 돌았다. 물고기료리는 물이 없을 때까지, 장작불이 이그러질 때까지 졸여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과연 어머니 나름대로의 도리가 있었다. 비록 별다른 음식재료를 쓰지 않았건만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물고기료리는 나의 입맛을 확 끌어당겼고 밥 두그릇이나 뚝딱 비우게 하였다.
그토록 찢어지게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길이였지만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손맛이 우리 곁을 지켜주었기에 우리 다섯남매는 몸도 마음도 건실하게 자랄 수 있었고 그 어려운 생활의 고비를 용케 넘길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음식은 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오.” 이 말은 내가 늘 안해에게 하는 말이였다. 안해와 결혼한 후 몇번이고 어머니의 손맛을 음미하며 좋다는 재료는 모두 쓰면서 시도해보았지만 한번도 어머니의 손맛을 찾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어머니의 손맛에 집착했던가 본다.
다행히 지금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어머니의 손맛이 생각날 때면 수시로 맛볼 수 있어서 최대의 행운이다. 바라건대 어머니의 흘러간 구수한 옛이야기와 함께 그 정성이 담긴 어머니의 손맛이 오래오래 나의 인생을 동반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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