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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知天命)의 나이(리홍매)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5월16일 09시44분    조회: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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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내가 뭘하고 살았지? 나한테 남은게 뭐야? 다시 태여 날수 있다면 래생엔 남자로 살고 싶어.’
 
오십을 앞둔 녀인들 거의 모두가 한번쯤은 뱉은 말이다.
 
맺어진 계약 마감기일을 앞두고 있는 초조함과 불안감을 방불케 하는 그런 느낌을 주는 말들이다.
 
지천명 나이의 녀자들.
 
얼핏 보면 다른 사람을 위한 인생인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이 그런게 아니고 스스로 ‘숙명이요, 운명이요’의 속박의 그늘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리치를 찾고 만족하며 살아 왔다.
 
강요받은 적 없는 헌신을 락으로 여기며 살아 왔다. 그 속에서 쓴물, 단물을 골고루 맛보고 왔다. 울고 웃는, 오색령롱의 인생을 한발자국씩 열심이 걸어 왔다.
그렇게 우리는 안해로, 엄마로 참된 삶을 살아 왔다.
 
그런 우리가 인생계약이 끝난 것처럼, 후줄군 해진 낡은 고무줄처럼 처지지 말아야 할 리유가 있다.
 
인(仁), 례(禮), 효(孝), 충(忠) 등 륜리도덕을 가르친 유교의 시조(始祖)인 공자가 한 말을 떠올려 보자.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하였으며 마흔 살에는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는 천명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며 예순 살이 되여서는 귀가 뚫려 한번 들으면 곧 그 리치를 알았고 일흔 살에는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吾十有五而志於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몇천년을 두고 수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마디마디 납득이 되는 말이다.
 
조용히 자신에게 비추어 보자.
 
십대에 나름대로의 야무진 꿈을 가졌던 우리, 누가 뭐라 하든 자신에게 아름다웠던 설계도를 그리느라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온 아름다운 청춘이였다.
 
20대, 가장 예뻤을 인생에 앞뒤를 제대로 잴수 없이 바삐 살아 온 우리이다. 꿈 나무들을 심고 가꾸느라 숨 가쁘게 달려 왔다.
 
그렇게 서른에 이르러 겨우 한 쉼을 쉴수 있게 되고 조금씩 사람답게 살아 왔다. 부모님을 공경할 여유가 생기고 결혼을 계기로 소홀했던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고 옛날에는 삶의 신조였던 취미생활도 다시 부활시키고...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 발 붙이고 자립 능력을 키웠다.
 
그러다가 불혹의 나이에 이른 우리는 갖은 유혹과 아픔을 이겨내고 흔들림 없는 생을 평온하게 지켜왔다. 그동안 세월속에 려과된 행복의 둥지에서 너 없이는 못산다는 산 같이 믿음직한 남편, 그리고 어느새 싱싱하게 자란 꿈 나무들을 받쳐주고 지켜주고 등 밀어주고...
 
우리 삶에서 그것이 행복이였고 의미였고 리유였다.
 
중견의 자리에서 팔 걷고 멋지게 달리는 남편들, 뒤에는 현명한 안해가 있어서 걱정이 없다. 피곤한 사회생활, 인간관계를 집사람 앞에서 홀딱 가셔 버린다. 그래서 중년의 파워는 어느정도 화목한 가정에서 오는게 아닐가.
 
끌끌한 자식들, 어언 독립된 재목으로 사회에 나서고 엄마의 인생에 높은 평가를 준다. 더 이상 그들에게 엄마는 기댈 벽이 아니다. 약하고 갸냘픈 녀인으로 바라보는 눈빛이 항상 따뜻하다.
 
집안에서의 ‘녀왕’, 그 왕관이 얼마나 값 지고 당당한지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서서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알 (知), 하늘(天), 목숨 (命).
 
정해진 삶의 틀을 편안히 지키면서 세태에 흔들리지 말고 평온한 삶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선비처럼 살아가라는 성현의 충고일가?
 
아니, 아니일것이다.
 
‘천명’이 사물에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리치, 혹은 사명을 일컬는 다면 지천명이란 그 리치와 사명을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닐가...
 
그렇게 현명의 나이, 영광의 나이에 이르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지천명의 녀인들,
 
옛날처럼 수줍음 때문에 몸을 비탈지 않는다. 대신 세상에 두려운 것이 거의 없다. 그동안 겪어온 일들, 만난 사람들 하나하나가 거울이 되고 교훈이 되고 희망이 된다.
지천명의 녀인들,
 
주저함이 거의 없다. 그동안 잠시 중단했던 인생계획에 확신이 서고 자신이 생기며 여유가 풍요롭다.
 
지천명의 녀인들,
 
힘을 갖고 있다. 가만히 숨 죽이고 산 그들이 아니다. 의리를 모아왔고 능력을 키워왔고 자존을 보존해 왔다.
 
우리 어머니들의 50대를 초과하는 21세기의 지천의 녀인들을 례로 보자 .
 
보통 35세이하를 대상으로 벌여지는 전직(专职)에 도전하여 별을 딴 최녀사, 은행원으로 30년을 근무하면서 수필작가로 데뷔한 구녀사,선진적인 설비와 서비스를 갖춘 양로원시설을 세우기 위해 제일 밑바닥 실무부터 배우기 시작한 전녀사,구질구질한 옛날에 딱 소리나게 종지부를 찍고 새롭게 인생설계를 시작한 방녀사 등등…
 
거침이 없고 실패가 두렵지 않는 숙녀들의 매력을 세상도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음이 틀림없다.
 
자유의 나이 50대,열심히 살아온 뒤에 받는 금메달 같은 나이.
 
끝난 인생처럼 앉아서 한숨을 쉴 시간에 훌쩍 려행을 떠나 곰곰히 무언가를 찾음이 바람직한 나이, 지천명!
 
덤으로 50대의 성인군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미국의 맥도날드를 프랜차이즈화하여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으로 만든 레이 크로크는 52살때부터 큰 사업을 벌였다 한다.
 
일본 캐주얼 의류업체인 유니클로(UNIQLO)의 사장인 야나이 타다시(柳井正)씨와 일본통신회사 소프트뱅크 그룹의 창시인인 손 마사요시(孫正義)씨는 몇년전에 있은 특별대담에서 “사업은 50대에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지천명의 나이, 길은 우리 발밑에 있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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