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삼종할아버지의 은혜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8월15일 07시28분    조회:88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0)

◇윤성문(통화)

1959년 여름에 찍은 가족사진. 뒤줄 오른쪽 첫 사람이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필자.

 

현재의 필자

나는 올해 78세 나는 로인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58년 전인 1959년에 찍은 사진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를 키워주고 공부시켜준 삼종할아버지(주: 할아버지의 륙촌형제인 방계혈족의 증조할아버지를 삼종할아버지라고 함)를 잊을 수 없다.

 

이 사진은 내가 대학교에 간다고 온 가정이 기뻐하면서 한집안 식구가 모두 사진관에 찾아가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삼촌어머니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고 없지만 우리들은 각기 제 살림살이에 손자손녀를 보아가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농민의 아들이고 농민의 손자다. 내가 6살 때에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하직하고 9살 때 아버지도 병으로 돌아가다나니 우리 두 형제는 부모 없는 아이로 되였다. 우리는 착하고 부지런한 윤태린 삼종할아버지의 은하에서 공부하였다. 할아버지께서는 어려운 살림에서 우리 두 형제를 모두 대학까지 공부시켰고 국가의 사업일군으로 성장시켰다.

나의 친할아버지의 성명은 윤태벽인데 윤태린할아버지와는 6촌형제 지간이였다. 그들은 매하구 화성촌에서 함께 살면서 가깝게 지냈다.

그 때 우리 가정은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와 우리 삼형제까지 여섯식구가 행복하게 생활하였다. 나는 3대 장손이여서 귀여움과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자랐다.

그래도 교육을 떠날 수 없으니 5살 때부터 할아버지의 긴 담배대 앞에 꿇어앉아 〈천자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는 다섯살 때에 이미 천자문을 내리읽어 동네에서 신동으로 이름이 났었다. 때로는 할아버지한테 “오줌 누고 오겠어요.” 하고는 나가서 장난에 미쳐 놀다가 돌아오군 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 앞에 엎디여 긴 담배대에 얻어맞기가 일쑤였다.

그래도 그렇게 배운 〈천자문〉 덕분에 한어공부에 기초를 닦게 되였고 조한 2중언어 공부에도 큰 도움을 받아 후날 길림성2중언어연구회 리사까지 되였다.

1947년 우리 집에는 무서운 재난이 떨어졌다. 3년내에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남동생 하나 이렇게 넷이 선후하여 생명을 잃고 9살 되는 나와 6살 되는 동생만이 남게 되였다.

이 때 윤태린할아버지께서 두말없이 우리 두 형제를 데려다가 친자식처럼 키우고 소학교로부터 대학까지 공부시켰다. 그 은혜는 바다보다도 깊다.

윤태린할아버지는 매하구를 해방하는 전쟁에서도 해방군을 도와 남몰래 큰 공을 세운 사람이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키짝으로 문을 가리고 밥을 지어 해방군을 대접하군 했다. 이것은 남몰래 한 일이여서 할아버지가 매하구 해방의 공신인 줄을 누구도 몰랐다. 할아버지는 또 사평전투 시기에는 담가대에 참가하여 비발치는 총탄을 무릅쓰고 부상병을 담가에 나르기도 했다. 이로 하여 그는 일등공을 세우고 돌아왔다.

1957년 중학시절에 나는 여름방학이면 집에 돌아와 할아버지의 꼴짐 지는 일을 도왔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꼴짐을 지고 도랑을 건너다가 넘지 못하고 그만 물에 빠졌다. 할아버지는 “후유…” 한숨을 쉬면서 “이제는 늙었구나!” 하고 한탄하였다. 학교에 돌아와서 나는 한탄하는 그이의 모습이 그냥 눈에 보이는 것 같아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당시 가정이 곤난한 학생들은 중도에서 학업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 부모를 도와 일했다. 나는 년로하신 할아버지가 힘겹게 일하는 모습이 떠오르면서 계속 공부하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할아버지께 나도 돌아가 할아버지를 도와 일하겠다고 편지를 썼다. 할아버지의 회답은 간단하고도 힘이 있었다.

“배움이란 때 있느니라. 때 지나면 못 배워. 내 걱정은 그만두고 열심히 잘 배우거라!”

이 한마디에 나는 계속하여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중앙민족대학까지 졸업하고 민족교육 사업에 빛을 내게 되였다.

삼종할아버지의 몸에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무한한 충성이 간직되여있었고 교육을 중시하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전통이 빛나고 있었으며 혈육에 대한 사랑이 슴배여있었다. 나는 이런 삼종할아버지를 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삼종할아버지의 은혜는 내 가슴 속에 깊이깊이 아로새겨져있다. 나는 할아버지의 고상한 인격을 영원히 꽃피워나가는 것을 사명으로 지금껏 살아왔고 평생 그렇게 할 것이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양로사업을 영원한 직책으로 여기는 ‘이쁜 아가씨’ 박진화의 이야기 “로인을 돌보고 어린 애들을 보살필수 있는 양로원, 고아원을 차리는것이 어릴적 저의 꿈이였습니다.” 아니운서라는 화려한 후광을 벗어둔채 2011년 2월, 호리원으로 탈바꿈하면서 지금 사회복리원 특수호리구역에서 주임...
  • 2018-01-03
  • 뻐스정류소에서 길다랗게 줄지어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일본인들/리홍매특파원 일본인들의 줄서기를 그들의 문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조금은 망설임이 앞서는 일이다. 하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에 거부감이 전혀 없는 듯한 일본인들에 대해 처음에는 생소함을 느끼다가 점차 거기에 적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
  • 2017-12-26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5) ◇서정숙(중경)     언니가 보낸 다시 돌아오지 않는 〈2016년의 렬차〉란 글을 읽으며 감개가 무량하다.   무정한 세월은 드팀없이 꾸준히도 흘러 장장 45년이 지나 그제날의 갓 사업에 참가했던 짧은 량태머리 언니도, 늦은 공부라도 하려고 학교 다니던...
  • 2017-12-25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4) ◇주청룡(룡정) 1973년, 내가 생산대대의 과학실험소조에서 일할 때였다. 그 때 우리 대대에도 주에서 공작대들이 내려와있었는데 당시 주당위 선전부 리휘 부장이 우리 공사에 온 공작대의 총 책임자로 우리 대대에 와 주둔해있었다. 그 해 여름의 어느 날 리휘 부장은 대...
  • 2017-12-25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3) ◇남걸(목단강) 1976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목단강시전염병병원에 배치받아 의사사업을 한 지도 어언 4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매번 백설같이 흰 의사복을 떨쳐입고 병원 각 과실(科室)을 순시할 때마다 나에게 진정한 의사자격을 가져다준 감명 깊었던 40년 전 그 날의...
  • 2017-12-19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2) ◇황혜영 (길림) 50년 전 추억의 색바랜 사진(왼쪽이 어린 시절 필자) 어제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니 아침에 나가보니 아직 익지 못한 시퍼런 복숭아 열매가 나무 밑에 쭉 깔렸다. 복숭아를 볼 때마다 복숭아의 맛보다 그 씨가 어떨가 하는 생각을 먼저 해보는 나다...
  • 2017-12-19
  •   남편류학시절의 경제담보인이였던 노토 아키히로(能登昭博)씨는 대학교 졸업론문을 이라는 테마로 썼을 정도로 중국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아사히신문》(朝日新聞) 치바(千葉)동부지역의 판촉업무를 총괄하는 회사경영인이였던 그는 내가 일본에 온 이듬해에 새로운 사업으로 지역신문인 《호오지로》(ほお...
  • 2017-12-18
  • 일본의 선물보따리(자료사진) 어린 시절 엄마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면서 눈으로 얻은 깨달음이라고 할가,“받은 그릇은 절대 빈채로 돌려 보내지 않는다”였다. 이웃사이에 주고 받고 빌리고 빌려 주고 하면서 살았던 그 시절, 동네집 잔치가 온 마을의 기쁨이였고 어느집에 상사가 나면 온 동네가 슬퍼했다. 그...
  • 2017-12-18
  • 〔한국서 홀로서기∼나는 이렇게 살았다〕 9년을 하루와 같이 문화봉사를 해온 석복순녀사의 감동 스토리 석복순(맨 앞)강사가 춤을 가르치고 있다 돌이켜보니 내가 2007년 둘째딸을 따라 한국에 올 때 나이가 예순이였으니 10년이 지난 오늘 어언 일흔이라는 고희의 나이로 되였다. 그간 줄곧 소외된 사람들에게 춤을 ...
  • 2017-12-12
  • (흑룡강신문=하얼빈)채복숙 기자 = "저희 기금회는 2012년에 랴오닝성민정청의 2급 법인으로 설립되어 대략 2년 여 동안 운영하다가, 2014년에 독립법인을 신청해, 2015년 1월에 정식 허가증이 내려왔습니다. 기금회가 설립되어서부터 지금까지 조선족사회의 많은 지원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부문...
  • 2017-12-12
  • 〔한국서 홀로서기∼나는 이렇게 살았다〕 9년을 하루와 같이 문화봉사를 해온 석복순녀사의 감동 스토리 석복순(맨 앞)강사가 춤을 가르치고 있다 돌이켜보니 내가 2007년 둘째딸을 따라 한국에 올 때 나이가 예순이였으니 10년이 지난 오늘 어언 일흔이라는 고희의 나이로 되였다. 그간 줄곧 소외된 사람들에게 춤을 ...
  • 2017-12-12
  • 우리 집 가까이에 살고 있는 량씨는 일본에 온지 10년째 되는 한족 료리사이다. 어느 날 그가 찾아와서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장가 보내고 나니 빈털터리가 됐어요” 18살 때부터 료리를 배웠다는 량씨는 일본어를 전혀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였다. 갓 마흔살에 접어들면서 일본...
  • 2017-12-11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1) ◇김동화(연길) 30수년전 그 때 그 학생들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 세월은 류수와 같다더니만 정말 만질 수도 걷잡을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시간의 흐름인가 본다. 어언 70을 코앞에 두고 보니 가끔씩 따르는 크고 작은 추억들로 머리를 메운다. 올해 제33회 교사절을 즐...
  • 2017-12-11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0) ◇김규칠 구술 김숙자 대필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있는 김규칠 로인 부부 내 나이 금년에 80이다. 긴 세월 수많은 일들을 겪다 보니 잊혀지지 않는 사연도 많다. 그런데 요즘 인정세태가 삭막해서 그런지 그 때 그 일이 어쩐지 더 자주 떠오르군 한다. 온 나라가 문화대혁...
  • 2017-12-11
  • 〔한국서 홀로서기∼나는 이렇게 살았다〕 “나는 스승을 잘 만나 성공했다” 가수, ‘아리랑 난타’ 단장 아이수의 성공담에서 내가 한국 온 년도가 2004년이니 올해로 벌써 10년 하고도 3년이 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그간 나의 한국생활에도 적지 않는 변화가 있어 자부를 느낀다...
  • 2017-12-11
  • 며칠전 묵직한 편지봉투 하나가 우리집에 날아왔다. ‘항상 감사합니다. 더 받은 송금료 164엔을 돌려 드립니다. 또 기회가 되면 잘 부탁합니다’ 짤막한 메모용지와 함께 동전 164엔이 들어 있는 봉투였다. 나는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영문을 물었다. 사실은 지인의 부탁으로 인터넷경매에서 옛...
  • 2017-12-10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9) ◇리희숙(안도) 애청자협회 열성자로 뛰고 있는 필자 리희숙 격정과 활력에 끓어넘치며 정열에 불타던 그 청춘시절, 걸탐스레 지식을 배워가며 희망과 기대에 부풀었던 학창시절을 마치고 ‘광활한 천지에는 할일이 많다’는 모주석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1965년...
  • 2017-12-05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8) ◇전영실(연길) 등산길에서의 필자 전영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취업통지서를 받고 우전국 인사과로 등록하러 갔던 때의 일이 어제런듯 눈앞에 삼삼하다. 한 나이 지긋한 책임일군이 반가이 맞아주며 “동무는 무슨 특장이 있소?” “어떤 일을 하고 싶소?” 하며...
  • 2017-12-05
  •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일본에 온지 일년후였다. 그때 야마모토 타마에(山本 多摩江)씨는 우리가 사는 지역의 국제교류협회 책임자였다. 영어에 능한 그녀는 외국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대부분의 일본인들에 비해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일본...
  • 2017-12-05
  • 각 지역 촌마다 빈곤해탈 난관 공략전이 치렬하게 펼쳐지고 있는 요즘, 누구보다 마음 한켠이 조급해나는 한 젊은이가 있다. 연거퍼 몇달동안 집에 내려가지 못한 채 농촌사업터에서 빈곤해탈사업을 위해 뛰여다니느라 낮과 밤을 잊은 그는 바로 룡정시 백금향 빈곤부축판공실 주임 홍광철(33살)씨다. 룡정시 백금향 빈곤부...
  • 2017-12-01
‹처음  이전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