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100년의 숨결 두만강과 함께(2부)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8월21일 08시19분    조회:95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하마래 강보금할머니와 그 일가의 이야기 1,2,3, 제2편 분투편-변강건설
〈100년의 숨결 두만강과 함께〉구성:
머리말
제1편 정착편 - 이주
제2편 분투편 - 변강건설
제3편 행복편 - 개혁개방
..............................................................................................................................................................................
‘우리네 양로공’—정성록

주인공 정성록의 로고가 슴배인 두만강 변경길 하마래구간, 사진속 구간은 지난해 홍수에 훼손되였던 하마래 서쪽 구간이다.
 
해방후 강보금할머니의 남편 정성록은 성실한 감농군으로 명동골 내외에 널리 알려졌다. 1958년, 정성록이 부유제1생산대(현재 하마래) 첫 대장으로 선발되면서 강할머니네는 명동골을 떠나 하마래로 이사왔다. 강할머니는 그 때 이사 해 든 집은 남편의 성품을 믿어 공소사 주임이 집값 280원을 선대해 주어 산 것이였다며 돼지를 길러 팔고 한푼두푼 아글타글 모아  2년만에 그 돈을 다 갚았다고 말했다.

정성록은 하마래에서 20여년간 선후로 생산대 대장 직에, 명동공사 도로양호대 대장 직에 있었다. 하마래에서 입당한 정성록은 생산대 대장 직에 있으면서 연길(지금의 룡정시)현 삼합공사 신용합작사의 업무 대리원 직도 수년간 겸임했다.그 때 정성록은 현찰이나 문서들을 각반으로 몸에 감고 하마래-삼합구간 30여리 산길을 오르 내리면서 갖은 고생을 다 했다.

“그런 험한 조건하에서도 단 한번의 차질도 없었지.”강할머니는 남편 정성록을 이렇게 치하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길이 없는 고생을 겪어본 사람이여서인지 령감은 길 닦기에 모질 공들였다오. 저 백바위(하마래에서 명동으로 가는 바위산)을 까서 맨손으로 안아낸 돌이 얼마인지 모르오. 그 바위굽에서부터 조동령까지 쉴 새 없이 일했지…”

강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령감이 돌아간지 36년에 나지만 두만강 길을 보면 령감이 그 길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는 것만 같다고 했다.
 

지난 세기 70년대 정성록, 강보금부부가 하마래 집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정성록은 명동인민공사 모택동사상선전대의 선전극《우리네 양로공》의 원형 인물이다. 연길시 북산가에 살고 있는 정성록, 강보금부부의 큰아들 정원순(63세)은 기자에게 1976년, 자기가 군복무를 마치고 5년 만에 제대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부유대대 선전대가 금방 부친을 원형으로 선전극《우리네 양로공》을 만들어 공사에서 공연했는데 자기의 동창생 김종현이 부친 역을 맡았으며 온 마을이 떠들썩했다고 말해주었다.

1964년부터 1974년까지 명동인민공사 방송소에서 일하다가 명동인민공사 당총지(1975년후에 당위로)부서기로 사업했던 김일록(71세)선생은 당년의 두만강 변경길과 정성록에 대해 이렇게 회억한다.

1957년전까지만해도 두만강 변경길은 소수레길에 지나지 않았다. 1957년에 현에서는 사원들을 동원하여 백금으로부터 삼합까지의 구간에 기동차량이 통할 수 있을 정도로 도로를 뺏다. 명동공사에서는 1969년에 전문 도로양호대를 설립했는데 정성록이 도로양호대 초대대장을 맡았다.

그 시기 두만강 변경길은 명동공사의‘명맥’이나 다름없었다.

1970년도 11월 중순, 명동공사에서는 전현적으로 전개하는 징구량 상납 대회전에 만전을 가했다. 그런데 탈곡이 끝나자 갑자기 진눈까비가 내리는 통에 량식을 당장 실으러 온다던 차량들이 오지 못했다. 청천—하마래도로의 조동령 구간은 진흙이여서 비가 약간 와도 길이 찰흙 반죽에 기름칠을 한 것처럼 미끌어 자동차든 소수레든 아예 들어설 엄두도 못냈다. 그날 정성록은 즉시 도로양호대 대원들과 생산대 사원들을 동원하여 밤 늦게까지 모래를 메다가 1키로메터 넘는 도로 구간의 미끄러운 문제를 해결하고 차량을 소통시켜 징구량임무를 제때에 완수했다. 그해에 명동공사는 전현적으로 제일 먼저 징구량 상납임무를 완수해 현의 표창을 받았다. 그 막후의 공신이 바로 정성록이다.

조동령을 넘어서면 하마래구간인데 이 구간은 또 온통 사불땅이여서 일단 가물기만 하면 차바퀴들이 푹푹 빠져들어가군 했다. 정성록은 그런 도로상황을 개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그는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었다. 그 길에 제일 먼서 나오고 제일 마지막으로 귀가하는 사람이 바로 정성록이였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정성록의 모습 만은 언제나 도로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정성록 앞에서는 안된다는 일이 따로 없었다. 1972년 7월 중순, 한차례 큰 비로 하마래와 중마래사이의 다리가 뭉청 끊어져나갔다. 다리를 인차 놓을 수도 없고 재력도 딸리는 상황에서 정성록이 림시로 나무다리라도 놓자고 건의했다. 공사에서는 그의 건의를 비준했다. 정성록은 인차 림산작업소와 소통한후 대원들을 이끌고 입산해 아름드리 나무를 벌목해 떼목처럼 묶어놓아 이틀만에 차량이 지나다닐 수 있게 했다.

그해 9월, 연길현 교통국에서 각 공사 도로양호대 대장들을 조직해 하마래에 와 현장회의를 열었는데 정성록이 경험소개를 했다. 1973년 년초에 정성록은 연길현교통국 도로양호사업회의에서도 경험소개를 했다.

명동인민공사 당위 서기로 사업했던 최경묵(82세)선생은 그 시기 명동공사의 기업경영사업과 도로양호사업이 현의 긍정과 표창을 받은데는 정성록의 큰 기여와 갈라놓을 수 없다고 높이 평가했다.

두분은 기자에게 정성록의 주인공적 책임감, 맡은바 사업에 지극히 열중하는 정신은 명동사람들 특히는 자녀들한테 본을 보여주었다면서 정성록의 셋째딸 정춘봉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정춘봉은 공청단 부유대대 지부 서기로서 하마래서 20살에 입당한후 1974년에 명동인민공사의 추천을 받고 연변사범학교에 진학, 졸업 후 룡정시 북신소학교에서 사업하면서 선후로 룡정시와 연변조선족자치주 및 길림성의 우수교사로 성장한 명동공사의 자랑이였다.
 

강할머니가 연길에서 큰아들(할머니 뒤의 사람), 큰며느리, 손자, 증손녀(손녀의 딸,손녀는 당시 일본 류학 중)랑 남긴 기념사진.
 
기자가 만난 강보금할머니의 큰아들 정원순은 정춘봉의 지차 동생인데 정춘봉이 사범학교로 추천 받아 갈 때 그도 부대에서 입당했다.

이렇게 ‘산(山)사람’, 정성록, 강보금 일가는“가문에 당원이 셋”인 영광시대를 맞이했다.

이는 강할머니네 일가의 제일 큰 자랑이였다. 그 후 이 일가는 명동공사의‘모범가정’으로, 강할머니는 ‘훌륭한 시어머니’로 뽑혀 표창을 받은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제3편 다음날에 이어진다)

길림신문 김영자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모임에서 아버님들이 합창하고 있다.       (흑룡강신문=칭다오)이계옥 특약기자=재칭다오용정향우회가 8월 15일 오전 11시, 칭다오시 청양구에 위치한 세한레포츠내 박대감숯불구이에서 회원 부모 20여 명을 모시고 노인절 맞이 효도잔치를 펼쳤다.   칭다오에서 자식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부모님...
  • 2017-08-18
  • 일전에 3년 넘어 ‘잠복’했다던 리종환씨를 만났다.‘군중문화연구원’리종환은 60대 중반으로서 연변군중문화무대에서 손꼽히는 연구원이며 노래지휘가이다. 왜 ‘잠복’했는가를 캤더니 난치병으로 한국 나들이를 하면서 치료에만 수십만원의 거금을 팔았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마주한 ...
  • 2017-08-18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1) ◇강성범(룡정) 고마운 동창들과 함께 세월이 갈수록 내 가슴속에 력사의 한페지를 차지하며 지울 수 없는 흘러간 일들이 기억의 파문 따라 오늘도 머리속에 생생 떠오르며 이 가슴속을 깊이깊이 파고든다. 물은 건너보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고 하루 건너 흥청망청 먹어...
  • 2017-08-15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0) ◇윤성문(통화) 1959년 여름에 찍은 가족사진. 뒤줄 오른쪽 첫 사람이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필자.   현재의 필자 나는 올해 78세 나는 로인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58년 전인 1959년에 찍은 사진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를 키워주고 공부시켜준 삼종할아버지(주...
  • 2017-08-15
  • 수마에 핥퀸 상처를 치유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있다. 이들은 재계에서 모범을 보이며 지역사회의 발전, 민족의 아픔을 보듬어온 길림성 조선족기업인들이다. 올해 길림성에는 특대홍수로 피해가 막심했다. 특히 영길현 조1중과 조선족실험소학교 두 민족학교와 조선족집거지인 연변이 피해가 극심했다. 수해 피해소식을 접...
  • 2017-08-11
  • [수재지역 후속] 8월10일 길림시조선족기업가협회에서 영길현 수재지역을 순방위문했습니다. 길림시조선족기업가협회 조약걸회장, 김광국상무부회장, 량해봉부회장 박용수 부회장 겸 비서장을 비롯한 일행 10여명은 영길현 조선족실험유치원, 중소학교와 구전진조선족로인협회, 금풍촌...
  • 2017-08-11
  • 밥 한술 뜰 시간도 없이 바삐 보낸다는 요즘 세상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동네 책방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동네 책방 관련 기사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
  • 2017-08-11
  • 할아버지 령전에 삼가 이 글을 올립니다 할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유일한 사진(앞줄 오른쪽 두번째 사람) 나의 할아버지는 극히 평범한 농민이였고 155센치메터의 왜소한 체구였지만 나에게는 항상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한 형상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가 전선에서 희생된 후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랐...
  • 2017-08-08
  • 월드옥타 연길지회 차세대, 안도현 유수천촌에 사랑의 손길을 보내   8월6일, 월드옥타 연길지회 차세대들은 모은 성금 6047원으로 가전제품을 사가지고 유수천촌으로 향했다. 올해 홍수재해로 인해 연변 각 지역에서 인명피해, 물질피해를 받게 되였다. 이런 가슴아픈 사연에 사회각계는 너도나도 구원의 ...
  • 2017-08-0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9) ◇김춘식(한국) 조카딸의 말에 의하면 요즘 자기네 직장에서는 다들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혼자 싸던 도시락이 한명 한명 늘어나더니 이제는 회사 도처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바람이 불고 있단다. 회사에서 주는 식비 4000원(한화)을 아끼려고 녀직...
  • 2017-08-07
  • '연변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웃사랑에는 국경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지난 8월 5일, 연변한국인상회(회장 신주열)에서는 한국인들의 사랑이 담긴 성금 6만120원으로 쌀을 구입해 수재지역인 왕청현 왕청진의 6개 촌에 전달했다. 한국인회 임원진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비가 오지 않는 좋은 날로 ...
  • 2017-08-07
  • 일전 장백조선족자치현 당위서기 송흠위, 현정부 상무부현장 전조명, 현당위 상무위원 윤효원, 현인대 부주임 정학량, 현정협 부주석 정희전 등 현급 지도일군들로 구성된 위문단은 수재가 가장 심했던 길림시 풍만구, 룡담구, 창읍구, 선영구 등 여러 지역에 심입해 수재상황을 상세히 알아보고 여러 구의 지도일군들과 친...
  • 2017-08-07
  •    (흑룡강신문=칭다오)박영만 기자=중국인민해방군 창건 90돐을 맞이하는 8.1절을 며칠 앞둔 7월 27일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와 옌볜 ‘지부생활’잡지사, 옌지텔레비죤방송국, 흑룡강신문사 산둥지사 등 4개 조선족언론매체가 칭다오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 노전사 이윤근 노인을 집중 ...
  • 2017-08-04
  • 은지와 준승이 엄마의 육아이야기   (흑룡강신문=일본)남들처럼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은것은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삶이다.자식의 잘되기를 바라는것은 세상 모든 부모들이 바램이다.그리나 자식이 잘된다는것도 정답은 없는거 같다.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아이를 가지게 되면 그때부터...
  • 2017-08-02
  • 밀산시 해방촌 로년협회 김정문회장   (흑룡강신문=하얼빈)정명자 기자= 밀산시 련주산향 해방촌에 가면 모든 일에 솔선하며 바삐 보내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가슴이 설레이는 일'을 하는것을 만년의 가장 큰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는 퇴직교사 김정문(70)씨이다.       32년간 련주산향조선족중...
  • 2017-08-02
  • 7월 31일, 영길현조1중에서 재해복구 자원봉사를 하고있는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와 길림신문사 ‘애심1번지’기부금 전달팀 성원들. 올 7월13일과 20일, 일주일 간격으로 두번이나 홍수 습격을 받은 영길현 조1중과 조선족실험소학교, 두 민족학교를 향한 민족사회의 사랑릴레이가 봇물처럼 이...
  • 2017-08-02
  • (흑룡강신문=하얼빈) 진종호 기자=졸업 30주년을 맞아 오상시조선족고급중학교 84-87기 졸업생들이 은사들을 모시고 7월28일부터 31일까지 3박4일간의 뜻깊은 동창회를 가진 동시에 모교를 방문해 성금 5만원을 기부함으로써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오상시조선족고급중학교 84-87기 졸업생들은 오상시조선족고급...
  • 2017-08-01
  • 좌로부터 주수덕씨, 리귀우씨, 장혜민씨, 김덕택회장. 자전거를 타기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국내에 꼭 자전거를 타고 가봐야 한다는 몇개 로정들이 있다고 한다. 청해호를 한바퀴 돌기, 중화 대북을 한바퀴 돌기,&nb...
  • 2017-08-01
  • 연변조선족녀성기업인들 수재지역에 온정을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한 물품을 전해주려고 했는데 피해 상황을 보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연변조선족녀성기업가협회(회장 손향)에서는 7월 31일, 54명 녀성기업인들의 마음을 담은 구호물품들을 싣고 수해지역인 안도현 명월진으로 향했다. 명월진에서도 구룡사...
  • 2017-08-01
‹처음  이전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