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2)
◇조만선(리삼민 대필) (대련)
조만선로인(중간) 부부와 함께 있는 리삼민(왼쪽)씨
1960년 6월, 나는 료녕성 신빈현 위자욕공사 당위 부서기로 사업했다. 당시 공사 서기는 시당교에서 학습하고 사장은 평정산저수지 공사장에서 사업하다 보니 전 공사의 사업은 그 때 28세 밖에 안되는 나의 두 어깨에 지워졌다.
8월 2일부터 퍼붓기 시작한 폭우로 태자하의 수위가 급속히 올라가면서 일부 도로가 끊어지고 통신련락이 전부 차단되였다. 기상청에서는 오늘 밤 더욱 큰 폭우가 쏟아지므로 사전에 대응할 준비를 잘할 것을 통지했다. 나는 공사지도부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6개의 특별행동소조를 각 지역으로 내려보냈다.
밤 12시부터 장대비는 더욱 기승을 부리며 퍼부었는데 마을 북쪽의 제방뚝이 당장 터질 위험에 봉착했다. 만약 이 제방이 터진다면 300여세대, 1000여명의 군중들이 물바다에 휘감겨 들어가게 된다. 나는 마을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한편 량식창고의 류주임을 찾았다. 창고의 밀가루를 꺼내여 제방을 높이려 했던 것이다.
류주임은 국고(国库)의 식량은 절대 다칠 수 없다고 딱 잡아뗐다. 나는 당증을 내걸고 모든 후과는 내가 책임지기로 하고 학교의 교원들을 동원하여 밀가루 100포대를 메여날랐다.
당장 터지려고 하던 제방뚝은 밀가루 100포대가 있었기에 요행 살아남을 수 있었다. 홍수도 막고 마을도 구했다. 수백명의 군중들은 100포대의 밀가루가 은을 내여 기세 사납게 덮쳐들던 홍수가 서서히 물러가는 장면을 목격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8월 5일 현위에서는 조사조를 파견하여 홍수대피정황을 알아보고 나서는 모든 련락이 끊긴 상황에서 관단성 있게 인민의 생명재산을 보호한 나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 후에도 나는 홍묘자공사 당위서기 중임을 떠메고 짧디짧은 3년 사이에 자력갱생으로 마을에 전기를 끌어들이고 길을 수리하고 비가 조금 내려도 논밭을 삼켜버리던 거류하를 다스리는 큰일을 해냈다. 하여 료녕성소수민족국경참관단의 성원으로 국경 15주년 경축활동에 참가했으며 모주석의 친절한 접견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 어느덧 85세가 되였다. 인생의 갈피에 쌓여진 잊을 수 없는 사연 많고 많아도 언제나 백성들을 잊지 않고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나누며 한마음 한뜻으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던 행복한 추억은 잊을 수 없다. 숨이 지는 시각까지 이 추억은 내 인생의 고임돌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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