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일본생활수기3] 힘들었지만 보람찼던 20년 일본생활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2월5일 15시29분    조회:99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남영권씨 가족
“세월이 류수”라는 말이 지금은 리해가 간다. 일본에 온지 벌써 20년이 되였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무너지고 이른바 잃어버린 20년 바로 그 시기를 나는 일본땅에서 보냈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의 덕분에 사이타마켄(埼玉県)에 있는 일본어학교의 입학통지서를 받게 된 나는 부모님이 챙겨준 일년학비 60만엔에 중계수수료 13만엔 생활비 30만엔을 들고 일본류학의 길을 택했다. 돈벌러 왔다고 하는것이 더 편할것 같다.
당시 연길에서 그 돈을 마련해준 부모님한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 당시 생각에는 불법으로 몇년 잠수해서 돈을 모아 집도 사고 장가도 가려고 했다. 일단 일어를 배우려는 일념으로 1년간 언어학원에 다녔는데 학교때 배운 일본어 바탕이 좀 남아있어 직접 상급반에 들어가게 되였다. 그리하여 1998년 4월에 일본에 온 나는 그해 12월에 일본어능력시험 1급을 328점으로 파스했다.
다행히 학교에 기숙사가 있어서 잠자리는 일단 확보했다. 기숙사 례금(礼金), 집세보증금 10만5천엔을 내고 나니 20만엔이 남았다. 전화기를 사고 일자리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여 나는 학교수업이 끝나는 대로 5천엔을 주고 산 중고자전거를 타고 매일마다 구인광고지를 든채 학교와 집 근처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리유로 면접기회도 얻지 못한채 한달이 다 지났다.
생활비가 날마다 줄어 드는 걱정때문에 난생처음으로 실면이란 고통도 체험하게 되였다. 그렇게 즐기던 맥주는 커녕 자판기 음료수도 사먹지 못하고 “그래도 수도물이 제일이지” 하며 맥주도 못마시는 자기를 자아위안 하기도 했다.
어느날 연길에서 온 반년선배가 나에게 캔맥주를 사주었다. 오랜만에 마시는 맥주여서 그런지 아니면 일본 맥주의 알콜도수가 고향의 빙천맥주보다 높은게 원인이여서 그런지 500미리짜리 두캔에 벌써 취기를 느꼈다.
더욱 감사한것은 한달후부터 그 선배님의 알선으로 오오미야(大宮)역앞에 있는 대만식당에서 사발을 씻는 일을 하게 된것이다. 시급 800엔에 하루에 9시간(16시—25시)일이였다. 한달에 25일간 일하면 18만엔이라는 거액을 처음으로 손에 쥘수 있게 되였으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단란하고 행복한 남영권씨 가족생활 
비록 일이 끝나면 허리도 아프고 손도 세척제에 퍼져서 볼품없었지만 코노래를 부르며 퇴근할수 있었다. 지금이라서 말할수있지만 퇴근전에 생맥주 기계를 청소하면서 가만히 맥주를 한컵 훔쳐 마시던 일도 있었다. 그리고 매일 사발을 씻으면서 왜서 일본사람들은 료리마다 꼭 새 접시를 사용하는지 도무지 리해가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료리가 나갈때마다 씻을 그릇이 늘어나니깐.
언어학교에서 거의 일년을 공부했을 때가 가장 고민했던 시절이였다. “불법체류로 있을가 비자를 살릴가” 여러 친구들 한테도 상담했다. 그 당시 비자를 가질수 있는 방법으로는 류학, 취직, 일본인과의 결혼, 투자경영 등이 있었으나 결국 나에게는 류학비자라는 선택밖에 없었다. 고민끝에 “그래도 드문드문 부모님들을 뵈러 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라고 하기보다는 비자를 위하여 대학진학을 결정했다.
살고있던 동네에서 가깝고 학비가 제일 싼 학교를 선택해서 시험을 보았고 순조롭게 입학할수 있었다. 회계출신인 나는 회계전공을 선택했다. 학교에 이름만 걸어놓고 열심히 일해 돈을 모으겠다는 일념으로 그 학교를 선택했던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왜 그렇게 돈 돈 돈 했는지…
대학교에서의 4년간은 나름대로 충실하게 보냈다. 중국류학생회 회장도 맡았고 류학생들이 모여서 학교축제때 물만두와 만두구이를 해서 3일동안에 25만엔 매상을 올린 학교기록도 세웠다. 중국대사관교육처에 학교 대표로 초빙받은 적도 있었고 교육처에서 학교류학생협회에 주는 보조금 12만엔을 받은적도 있었다. 대학교 4년을 다니며 받은 두번의 장학금 360만엔을 한푼도 다치지 않고 부모님께 드렸는데 그것이 여태껏 내가 잘한 일중의 하나인것 같다. 물론 4년동안 아르바이트를 같이 했던 곳에서 안해와 만난것이 제일 잘한 일이지만…
취직 빙하기였던 2003년, 취직활동에서 실패한 나는 또 부득불 비자를 위해 석사과정으로 진학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취직을 못한채 학교에 진학하지 않으면 비자가 끊기기 때문이다. 2년후 석사연구생공부를 마치고 운좋게 지금의 회사에 무사히 취직할수 있었다.
결혼하여 낳은 딸이 지난해 4월에 이미 소학생이 되였다. 요즘 대만지사에 주재원으로 나가있는 나는 귀여운 딸애가 보고 싶은 외에는 나름대도 대만에서 충실한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다.
나는 고생한 끝에 얻은 지금의 생활에 보람을 느끼며 또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장군이 되려하지 않는 병사는 좋은 병사가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큰 욕심이 없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학생시절에 도움받은 여러분들께 보답을 하면서 사는것이 나의 희망이다. 그리고 형편이 되는대로 세상에 베풀면서 살고 싶다.
/재일조선족 남영권
/원고기획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백성이야기65]  대련리공대학 부속고급중학교 김종식 특급교사의 성장이야기     수학교육연구에서 최고상인 ‘소보청수학교육상”을 받아안은 대련리공대학 부속중학교 김종식   락제생으로부터 수학교육연구분야에서 최고상인 ‘소보청(苏步青)수학교육상'을 받아안은 김종식(5...
  • 2017-12-01
  • 한 10년쯤전에는 고향의 지인들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듣군 했었다. “일본에서는 밥 값을 제각기 낸다며?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인정머리 없어? 니들은 그러지 말라…” 물론, 우리도 아주 오래동안은 그것을 접수하지 못하고 고향친구들 모임에서 와리깡(割勘),즉 터치페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었다. 무사...
  • 2017-11-2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7) ◇김홍련(장춘) 장가계에서 려행 친구들 함께(앞사람이 필자 김홍련) 2011년 10월 25일, 열네살 천진란만하던 소녀시절에 만난 우리 동창생들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배낭을 메고 연길에서 떠나 천애지각 해남도까지 바라고 려행을 시작했다. 퇴직비로 생활하는 우...
  • 2017-11-2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6) ◇허인범(룡정) 안해와 함께 고향산 마루에서 평강벌을 내려다보며       /사진 신승우 찍음 9월 3일, 자치주 창립 65돐 경축의 기쁨을 안고 안해와 함께 고향산 마루에 올라서니 벼파도 설레이는 아득한 황금벌이 한눈에 안겨온다. 여기가...
  • 2017-11-27
  • 일본 지진에서 맺어진 고마운 인연 2011년 3월 11일 오후에 발생한 일본 동북지방의 태평양 해역 지진은 그 후에 일어난 쓰나미, 그리고 빈번한 여진과 더불어 사람들의 생활을 구축해왔던 기반시설에 큰 타격을 주었다. 우선 교통기관이 중단되였고 일부 지방의 통신이 차단되였으며 정전으로 모든 시설이 혼란상태에 빠졌...
  • 2017-11-24
  •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기억 속에서 도무지 지울 수 없는 날이다. 그날 나는 지인들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조금 늦어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위는 식사하는 손님들과 커피타임중의 손님들로 법석하였다. 오후 2시 40분 쯤 (후에 14시 46분으로 밝혀 졌음)되였을 때, 레스토랑 건물이 상하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
  • 2017-11-24
  •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의 '김치' 수업. 19일 아침, 스테인리스(不锈钢) 소재로 꾸며진 은빛 주방에 오미자, 둥굴레 등 약재와 고운 빛갈을 자랑하는 매실 효소, 사과 효소 등이 담겨진 유리병이 나란히 줄지어 서있었다. 이곳은 바로 연길시 북산가두 단산사회구역에 위치한 사랑난로 약선료리공방. 료리와 사...
  • 2017-11-23
  •     ▲ 사진, 동포언론사 및 동포단체 대표들이 17일 오후 포항시청을 직접 방문해 ‘포항지진 피해 사랑나눔 성금 접수처’에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왼쪽부터 재한동포문인협회 류재순 회장, 한중포커스신문 문현택 대표, 중국동포타운신문 김정룡 편집장, 포항시청 성금접수처 관계자, 중국동포한마음...
  • 2017-11-23
  •    (흑룡강신문=하얼빈)심양은 동북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우리 나라 중심도시중 하나이다. 이 고유한 큰 도회지의 한 모퉁이에 조선족이 한데 모여사는 서탑거리가 있다.   나는 늙으막에 다병하고 고적하여 정든 고향을 떠나 자식 따라 심양에 와서 만년을 보내고 있다. 딸집 이웃에 집을 잡다보니 동릉의...
  • 2017-11-21
  • 상가들이 빼곡이 들어선 일본 도쿄의 한 상업거리(자료사진) 일본에서의 서비스업은 “손님은 왕이다”를 넘어 “손님은 신(神)이다” 를 기본원칙으로 한다. 매일 오픈전의 미팅에서 “어서 오세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잠간만 기다려주세요&...
  • 2017-11-17
  • 이 글은 현재 한국 고려대학교에서 비교문학과 비교문화 박사과정을 공부하고있는 한 조선족녀성(필명: 小葵-작은 해바라기)이 자신의 위챗계정에 중문으로 올린 글이다. 우리는 그녀의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의 한단락 경력을 빌어 우리들 인생의 깨우침을 공유하고저 이 글을 편역해 독자들에게 소...
  • 2017-11-14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3) ◇최선자(연길) 1987년 7월 22일 입당선서를 마치고 입당소개인 두분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 왼쪽으로부터 당지부서기 경신성(한족), 필자 최선자, 교장 백경인(조선족). 1983년 3월의 어느 날, 나는 학교 령도로부터 절육수술을 받으라는 통지를 받고 아연해졌다. &ldquo...
  • 2017-11-14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2) ◇박명규(연길) 할아버지를 모시던 세월의 필자 박명규와 태봉선 부부의 모습 “할아버진 내가 모셔야겠소.” 이것은 44년 전 내가 북경병원으로 확진하러 떠나면서 가족들에게 한 말이였다. 어쩌면 엉클어진, 엉망이 된 가문의 뿌리를 정리하고 싶었던 아름다운...
  • 2017-11-14
  • 주로 중국음식과 한국음식 정도 밖에 몰랐던 나는 일본인들의 폭 넓은 음식 취향에 놀랐다. 호이꼬로(回鍋肉), 칭죠로스(青椒肉丝), 마보도후(麻婆豆腐) 등 중화료리의 료리명을 어린애들까지 술술 말하는 정도였고 처음 만나는 경우 교자(餃子)가 맛있다는 말로 수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아마 중국음식을 싫어하는 일본인...
  • 2017-11-13
  • 소학교졸업식에서 마츠시마선생님과 함께 아들애가 태여나서 여덟달만에 탁아소 생활을 시작했던 연유로 일본에 오자마자 집단생활에 제법 적응한 아들애 덕분에 엄마인 나의 일본생활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오늘날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장한 아들애가 부모의 노력외에도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고마운 일본인들과의 소중한 ...
  • 2017-11-13
  • 지도에 우리 민족 성씨로 명명된 행정촌이 있다는 사실에 언녕부터 호기심이 부쩍 동했는데 필자는 얼마전  박씨 두분 - 룡정시로혁명근거지건설추진회 박호만회장, 룡정시 모 광고공사 박청수경리와 함께 말타고 꽃구경식으로나마 박씨 성으로 이름진 박씨 마을-료녕성본계만족자치현소시(小市)진의 박보(...
  • 2017-11-13
  • 1990년대에 일본에 류학온 중국류학생들이라면 한두번쯤은 겪었을 일이 있다. 국제교류협회에서 조직한 만찬회에서 만난, 매사에 적극적인 류학생과 친절한 일본인이 근 두시간 정도에 걸친 이야기 끝에 작별인사를 하면서 일본인이 말했다. “기회가 되면 우리 집에 꼭 놀러 오세요.” 너무 기뻤던 류학생...
  • 2017-11-0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1) ◇리정화(연길) 필자 리정화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흰보라 날리며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눈부신 꽃세례 속에서 어린애들이 오구작작 웃고 떠들며 학교를 간다. 오리털 잠바에 털목도리, 털장갑, 따뜻한 신발… 추위를 막아주는 전신무장을 하고 아빠 엄마...
  • 2017-11-0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0) ◇박철원(연길) 필자 박철원 부부 오늘도 당교에서 함께 ‘충전’하며 나란히 1973년 28살에 결혼한 나는 올해 73세로 45년 혼인생활 남들의 부러움 속에서 오누이를 출세시키며 ‘잉꼬’라 불릴 만치 탄탄한 혼인생활을 이어왔다. 우리가 변치 않는 ...
  • 2017-11-07
  • 일본의 여러 지역에 많이 분포되여있는 고우반 일본에 와 본 중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중국인들이 일본에 오면 편리한 점이라 할가, 친절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다. 바로 우리가 한자대국에서 왔기때문이다. 거리에 나서면 한자로 된 간판들이 보여서 생소한 감이 어느 정도...
  • 2017-11-02
‹처음  이전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