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촌민들이 빈곤에서 해탈되면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6월12일 00시00분    조회:131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 로투구진 렴명촌 마을 주둔 사업대 대원 전봉씨의 빈곤해탈 분투기

“고향에 돌아오면 안일한 직장생활이 눈앞에 펼쳐질 거라 생각했지요. 지금껏 저는 공무원은 책상머리에만 앉아 일하는 신사스러운 직업인 줄로만 여겼어요. 알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허허…”

로투구진 렴명촌 마을 주둔 사업대 대원 전봉씨(오른쪽)

애초 본인의 예상과 빗나갔지만 룡정시 로투구진 렴명촌 마을 주둔 사업대 대원 전봉씨(33살)는 오늘도 촌마을 가가호호를 오가며 빈곤해탈사업에 드바쁜 하루를 되풀이한다.

한국에서 석사연구생 공부를 마치고 회사생활을 해온 지 8년 차 되던 해, 전봉씨는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가장으로서 아이의 곁을 꼭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하고 고향행을 택했다.

고향행을 결심한 그 해 마침 연변에서는 ‘천명 인재영입 프로젝트’로 인재들을 대거 수용해들이고 있던중이였다. 초빙 조건에 부합되여 2017년 5월, 그는 나서 자란 고향인 룡정시경제합작국에 배치되였다.

연장 근무를 밥 먹듯이 해대던 분망한 기업 소속인으로부터 화이트칼라(白领)는 그래도 좀더 멋스럽고 여유로울 거라 생각했던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것도 경제합작국에 출근한 지 보름 만이다. 로투구진 렴명촌에 마을 주둔 사업대 대원으로 내려가 빈곤해탈 공략전에 동참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전혀 예고치 못한 ‘씨나리오'였다. 말 그대로 마을 주둔, 나이 서른이 넘도록 농촌에 가본 거라곤 야외들놀이가 전부였다는 전봉씨다. 농촌에 내려가 생활을 해야 한다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파견 기한도 정해진 게 없었다. 렴명촌이 빈곤에서 해탈되는 날까지라는 기약 없는 기약 밖에는.

“잠시 할 말을 잃었죠. 몇번 가보지도 못했던 낯선 농촌에 내려가 살라니요.”

사업대 막내대원에서 촌민들의 든든한 해결사로

하얀 셔츠 대신 팔토시를 껴야 했고 칼주름을 놓은 양복바지 대신 바지단을 걷어올린 운동복에 발 편한 운동화가 필수 아이템이 됐다. 그가 주둔하고 있는 렴명촌에는 347가구에 958명 촌민이 살고 있는데 2016년 168가구에 347명이 빈곤호로 되면서 빈곤발생률이 36%나 되는 빈곤촌이였다.

빈곤해탈 업무에 대해 미처 료해도 하지 못한 전봉씨였지만 일단 드바쁜 일손을 도와 따라나서기로 했다. 부족한 업무지식은 짬짬이 시간나는 대로 학습을 통해 장악해가며 그는 스스로 업무지식을 쌓아갔다. 여름철이 시작되면서 폭염으로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그는 한집을 여러차례씩 방문하여서라도 촌민들의 실제적인 곤난과 문제점을 기록하고 빠른 시일내에 문제점을 회보하고 해결해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촌마을의 최저생활보조대상들중에 조건이 구비되는데도 장애인증을 발급받지 못해 보조금을 타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장애인 촌민들을 대신해 여러차례 시 관련 부문에 다녀오면서 그들이 장애인증을 발급받도록 노력해 세명의 최저생활보조대상들이 장애인 보조금을 탈 수 있도록 힘써 도왔다.

어려운 촌민들의 수호천사

일년간 촌에 머물면서 빈곤호들에 대한 료해를 쌓은 그는 언제 한번 촌민들의 사정을 그냥 지나칠 때가 없다. 어느 한번 전봉씨는 자녀의 최저생활보조를 신청하러 촌부를 찾은 촌민 정진국씨를 만났다. 한눈에도 다리가 불편해보였다. 전봉씨는 그의 상황을 자세히 캐물었다. 정진국씨는 오랜 시기 당뇨병으로 앓고 있다가 병세가 악화되였는데 당시 직업고중에 다니고 있던 딸애의 학잡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배우자도 장애인인지라 수입래원이 전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이 시급하다고 했지만 10만원이나 된다는 수술비용에 감히 엄두도 못내고 있다는 상황을 료해한 전봉씨는 로투구진 민정부문과 련락해 관련 수속을 신속히 마쳐주었고 해마다 3,000원의 보조금을 향수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던 올해 2월, 정진국씨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여 더이상 수술을 지체할 수 없게 되였다. 그러나 불보듯 뻔한 정진국씨 집안살림형편. 이 때도 전봉씨가 발벗고 나섰다. 십만원의 수술비용에서 새농촌합작결산정책에 따라도 60% 밖에 의료정산을 받을 수 없었다. 나머지 4만원은 수술에 꼭 필요한 금액이였다.

전봉씨는 자신의 소속단위인 룡정시경제합작국 간부와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모금을 통해 4,700원을 마련했고 연변TV ‘사랑으로 가는 길’에도 제보하여 후원금 8,000원을 얻게 되였다. 이 밖에 연변주민정국에도 신청하여 2만원의 구조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조금 더 필요한 금액은 의연모금어플인 ‘물방울’앱으로 정진국씨의 사연을 올렸더니 이틀 사이 누리군들이 치료비에 보태라며 한푼, 두푼 모은 2,000원의 후원금을 보내왔다. 백방으로 모은 4만원의 수술비용을 전봉씨는 정진국씨 손에 쥐여주며 수술을 독촉했다. 수술을 잘 마칠 수 있었던 촌민 정진국씨는 현재 건강을 많이 회복한 상태라며 더없이 기뻐했다.

“전에는 미처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몰랐어요. 농촌에 내려와 촌민들과 어울려서 생활해보니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들의 진정한 고충을 공감하고 그들을 돕고 싶어졌어요.”

지난해 7월, 로투구진은 크게 홍수재해를 입었는데 렴명촌에도 10여가구가 홍수에 집을 잃었다. 그는 촌민들을 도와 홍수방지에 앞장서 촌민들의 삶의 터전을 지켰고 구조물자를 보내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빈곤촌민 위험주택 개조 때도 돈이 없어 우물을 파지 못해 식수를 해결 못하는 사정을 헤아리고 마을 주둔 사업대 대원들과 촌민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도와나서 빈곤촌민에게 우물을 파주어 식수를 해결해주기도 했다.

혁신적인 정보기술로 업무효률 제고

다년간 한국 광고회사에서 근무했던 그는 컴퓨터기술도 남달랐다. 매일 촌민들의 집에 방문 갈 때면 한뼘씩 되는 자료들을 무겁게 손에 들고 다니는 대원들을 보고 그는 좀더 혁신적인 방법을 고안했다. 이틀밤을 지새며 그는 렴명촌 빈곤호들의 수치관리시스템을 만들어내 휴대폰으로 그것을 체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냈다.

사이트에 수록된 촌민소조는 일목료연하게 분조가 되여있었고 매 촌민의 정보가 빼곡히 들어있었다. 또한 휴대폰으로 사이트를 가장 빨리 열 수 있는 바코드를 설치해 시간을 단축하고 편리를 제공했으며 언제 어디서나 즉석에서 손쉽게 정보를 수록, 검색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는 혁신적인 사유와 선진적인 기술 실천으로 마을 주둔 사업대들의 편리를 도모해 업무효률이 크게 높아지기도 했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아이 곁을 지켜주지 못해요.”

고향에 돌아왔는데도 그는 여전히 아이와 떨어져 지내고 있다. 주말마다 아이와 만나 놀아주겠다던 약속도 세주일째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승용차로 고작 25분 거리지만 그는 마을 주둔 임무를 철저히 완수하기 위함이란다. 촌부의 공동한 노력으로 세번의 조사 확인과 식별을 거쳐 렴명촌에는 현재 빈곤호 85가구에 142명으로 대폭 줄어들기도 했다. 또한 올해 10월말까지 빈곤호가 2017년 최신 수치를 갱신하고 12월초에 모든 정밀수치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전원에서의 공무원 생활은 상상조차 못했죠. 그래도 고향에 돌아온 걸 후회 안합니다. 고향마을에 아직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시간이 모자라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없지만 우리 촌민들이 빈곤에서 전부 해탈되면 그 때 저도 모범아빠의 자리를 돌아가려고 해요.”

든든한 아빠의 역할을 못해 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지만 한편으로는 빈곤퇴치 완수률에 가슴이 뿌듯해난다는 전봉씨는 말한다.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다른 저의 직장생활이지만 빈곤해탈 실현을 곧 눈앞에 두고 있는 촌민들과 사업대 대원들은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거든요.”

취재를 마치면서도 유난히 그의 낡은 팔토시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오늘도 굽이진 촌마을 길을 따라 걸으며 해볕에 그을가 얇은 팔토시를 착용했으면서도 자신은 진정한 나무가 되여 촌민들의 서늘한 그늘이 되여주고 있었다.

/길림신문 김영화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9) ▩한창국(안도) 필자 한창국 지난 세기 70년대와 80년대에는 어느 마을에 가든 첫눈에 안겨오는 것이 담배건조실이였다. 지금의 현대식 담배건조실과는 많이 다른, 마을에서 제일 높이 지은 토목건물이기에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던 것이다. 담배를 건조할 때면 두사...
  • 2018-11-16
  • CCTV무대에서 조선말로 경극을 부르고 있는 리은화 중국의 3대 전통연극으로 불리우는 경극은 연극, 노래, 무용, 음악 등 모든 예술적인 요소가 총 집합된 종합예술로 중국의 오페라라고도 불리운다. “중국문화의 꽃”으로 명성이 높은 경극은 중국의 전통과 력사가 고스란히 배인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10...
  • 2018-11-09
  • 올해 10월중순의 어느 일요일, 장백조선족자치현 마록구진 과원조선족민속촌. 신랑신부를 대동한 조선족혼례행렬이 과원조선족민속촌대문안으로 들어선다. 언녕부터 대문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아줌마들이 우리 한복을 차려입고 너울너울 춤추며 신랑 신부를 마중한다. 신랑 신부와 친척 친구 행렬이 민속광장의 여러 곳을...
  • 2018-11-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8) ▩김민철(연길)   하향 50주년 기념모임에서 수기 〈첫걸음〉을 발표하는 필자 김민철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첫걸음을 걷는다. 그러나 긴 세월 속에서 줄곧 기억에 생생하고 평생에 득이 되는 뜻깊은 첫걸음은 몇번 안된다. &n...
  • 2018-11-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7) ▩박철원(연길) 필자 부부 지난날 없어서 못 먹던 세월이 지금은 싫어서 안 먹는 때가 되였다. 아빠트에 살면서 입쌀이며 밀가루를 마음대로 살 수 있고 고기며 해산물, 닭알, 우유, 과일이 풍성한 세월이다. 먹을 근심 없는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계획경제에 ...
  • 2018-11-02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5) ▩최진옥(화룡) 필자 최진옥 사무실에서 2010년 7월 28일,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은 폭우의 영향으로 하천의 물이 급속하게 불어나면서 홍수방지표준이 낮은 제방들이 볼품없이 파괴되였다. 상급의 자금조달이 륙속 도착하면서 재해손실이 제일 심한 1만 2000여메터에...
  • 2018-10-26
  • 今年10月17日是第五个全国扶贫日,也是第26个国际消除贫困日,在全社会齐心聚力为消除贫困共同努力之际,为进一步弘扬残疾人事业,动员全社会力量开展助残脱贫活动,10月23日,延边春雨爱心会携手延边州肢体残疾人协会在州残疾人活动中心举办“爱心奉献、共享阳光”爱心传递捐赠活动。   延边春雨爱心会成立...
  • 2018-10-25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4) ▩리호송(연길)   필자 리호송 연서거리와 연서교는 연길에서 차량과 시민들로 늘 붐비는 주요한 거리의 하나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기억에 희미해질 정도로 몇년에 한번 거닐가 말가한 거리였다.   헌데 2014년 6월, 시가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단위가...
  • 2018-10-23
  • 웨이하이 조선족 노인 100세 축하연 진행     (흑룡강신문=웨이하이)김명숙 기자=“산둥에 100세 조선족 노인이 있대요.”   웨이하이시에 살고 있는 조선족 김정호 노인의 100세 축하연이 지난 14일 웨이하이시 모 호텔에서 치러져 화제가 되고 있다.   웨이하이애심여성협회 회원인 임옥영 여사의 ...
  • 2018-10-22
  • —연변이 낳은 조선족 성악가 방춘월의 추구와 도전 1990년대부터 연변의 방송과 무대를 주름잡으며 독특하고 매력적인 음색으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방춘월, 오늘날 그는 멋진 실력으로 성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저명한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성악가 메조소프라노 방춘월은 현재 천진음악대학교의 성악교...
  • 2018-10-22
  • [가작상수상작품] 나와 로라스케트장의 인연  김경희   25년 전, 개혁개방의 거세찬 물결을 타고 나는 연변에서 제일 처음으로 체육관 실내에 로라스케트장을 운영하게 되였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남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잠시 그만두고 모험을 강행하며...
  • 2018-10-18
  • 은상수상작       내 가슴에 새겨진 모성애   최 영 숙 (연길)     얼마 전 “엄마가 많이 심해졌소. 이젠 며칠 버틸 것 같지 못하오.”라는 막내 녀동생의 전화를 받고 나는 연길시광영원 특별간호실에 급히 달려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 계모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얼굴을 찡그린...
  • 2018-10-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3) ▩김삼철(룡정) 2001년 9월, 손자와 같이 ‘7자나무’ 앞에서. 내 나이 80이 다된 지금에도 ‘7자나무’를 생각하면 어린 시절 아침 일찍 연길시장에 쌀 팔러 가는 어머니를 배웅하고 오후에는 돌아오는 어머니를 마중하던 행복했던 순간들이 영...
  • 2018-10-16
  • —가두에서 ‘나눔의 꽃’을 피워가는 홍봉옥을 만나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있는 홍봉옥할머니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특히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
  • 2018-10-15
  • 연변부용장학회 장학금발급의식이 10월 12일, 룡정해란강호텔에서 있었다. 이는 2008년 연변부용장학회가 설립이후로 11년째 이어져온 행사로서 올해도 39명 연변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게 되였다.   이날 부용장학회는 연변대학교의 15명 학생들과 5명의 연변과학기술대학 학생들에게 매인당 400딸라를, 룡정고...
  • 2018-10-12
  • 나는 어떤 사람일까?           초야   지인중에 부탁 고수가 있다. 자신이 잘할수 있는 일도 굳이 친구중 한놈을 시키는데, 부탁받는 친구들도 누구 하나 짜증내지 않고 일을 깔끔히 마무리짓는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자신의 일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뒤로 미루기 일쑤인 친구들이...
  • 2018-10-10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1) ▩리오로(장춘) 고중시절의 필자 어제 연길에 다녀왔다. 장춘에서 호화로운 고속렬차를 타고 두시간 17분 만에 연길서역에 도착했다. 소음이 적고 내부시설이 호화롭고 깨끗한 것도 자랑거리지만 장춘에서 연길까지 열몇시간이 걸리던 기차가 두시간 17분 만에 연길...
  • 2018-09-28
  • [편집자의 말] 제1기부터 제3기까지는 길림성 연변지역과 산재지역 학교의 학생 가족을 선정하여 영상에 담았다. 제4기에서는 흑룡강성에서 유구한 력사를 갖고 있는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를 선정했다. 를 순조롭게 펴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를 해주신 흑룡강성 교육학원 민족교연부와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
  • 2018-09-20
  • 장춘시에서 조선족들이 결혼식과 회갑연을 올리거나 큰 행사를 치를 때면 장춘시명계식품유한회사에서는 빠짐없이 순대, 찰떡 등 조선족 전통음식을 제공한다. 음식에서 인정이 오간다고 여기서 조선족과 조선족사회를 위해 자기의 저그마한 성의를 보여주려는 명계식품회사 계영철 사장의 모습이 돋보인다. 행사뿐만이 아...
  • 2018-09-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9) ▩김룡운(교하) 학교 열람실에서 필자 김룡운선생님 나는 산에 오르내리기를 좋아한다. 왜냐 하면 나는 동년을 산골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60년대에 아버지가 그 좋은 장춘 도회지를 버리고 우리 자식들을 이밥이라도 실컷 먹이겠다며 하향하여 두메산골에 가서 짐을...
  • 2018-09-12
‹처음  이전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