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름다운 추억 92]나의 외할머니 고하순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7월16일 15시57분    조회:147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0)

▩렴순옥(연길)

필자 렴순옥의 외할머니 고하순 그리고 어머니 리정숙과 아버지 렴응철

1

고향이 조선 함경남도 단천군 백자동인 나의 아버지 렴응철은 4촌형 렴흥철을 따라 룡정에 와서 대성중학교를 다녔다. 이들 4촌형제는 지하당원인 나의 작은외할아버지 고하경의 직접적인 령도를 받는 학생 당원이였다.

역시 대성중학교에서 공부하던 나의 어머니 리정숙은 작은 외할아버지를 통하여 아버지 렴응철을 알게 되였고 혁명투쟁중에서 서로 사랑이 싹터 1933년에 결혼했다.

그 후 아버지는 당조직의 파견을 받고 조선에 가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일본놈들에게 체포되여 감방에서 갖은 혹형 속에서도 동요없이 투쟁을 견지하다가 1935년 5월에 병사하였다.(아버지 렴응철렬사는 지금 조선에서 공화국 렬사로 추인받고 있다.)

어머니 리정숙은 결혼 후 더 열성적으로 공산당원의 사명을 지니고 반일투쟁을 전개하다가 왜놈들에게 체포되였는데 연길 일본령사분관에서 갖은 비인간적인 고문과 악형을 받으면서도 지하당의 비밀을 끝까지 고수하였다.

임신한 몸이였던 어머니가 각일각 분만기가 다가오자 놈들은 볼썽모양인 어머니를 가석방하고 비밀리에 외할머니 집을 감시했다. 어머니는 1935년 5월 29일 나를 낳았지만 장기적인 혹독한 고문에 신체가 극도로 허약해진 데서 젖이 없어 나에게 단 한모금도 먹여보지 못했다고 한다. 하여 나는 외할머니 손에서 좁쌀죽물을 먹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어머니는 1936년 2월 18일, 꽃나이 24세로 한 많은 세상을 뜨셨다.

나의 외할머니 고하순은 항일투사인 딸과 사위는 물론, 오빠와 여러 친인들의 항일투쟁에 동참하여 암암리에 싸워온 위대한 분이시다. 성격이 온순하고 순박한, 외유내강의 보통농민부녀인 외할머니는 내 목숨을 건져주고 보호해주고 키워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은인이며 친인이시다.

보다 싶이 나는 유복자로 태여나서 외할머니의 슬하에서, 위대한 당과 국가의 은혜로운 배양을 거쳐 아버지 어머니의 유지를 계승하면서 한점 부끄럼 없이 살아온 새 중국의 공민이며 위대한 중국공산당의 당원이다. 그리고 전투영웅 우정석(룡정시문화국에서 사업)의 안해였으며 자식 삼남매(모두 대학 졸업)를 둔, 인젠 산수나이(84세)를 넘은 렬사의 딸 렴순옥이다.

2

어머니가 사망된 후 할머니는 각종 풋돈벌이도 유일한 호구지책으로 간주하고 밤과 낮이 따로 없이 부지런히 일하였다.

1943년 내가 여덟살 나던 해에 외할머니는 굶더라도 부모 없는 외손녀를 꼭 공부시켜야겠다는 일념으로 나의 성을 외가집 리씨로 고쳐 〈민적등본〉에 올리고 당시 일본놈들이 꾸린 연길시 대화국민우급학교에 입학시켰다.

외할머니는 나를 공부시키느라 갖은 고생을 다하였다. 일제시대에는 연길시에서 경찰서의 강제로동을 하는 외에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나의 학비를 대기 위해 고추가루장사도 하고 부르하통하 강바닥에서 자갈치기도 하고 길닦이도 하면서 어쨌든 돈이 나오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하였다. 할머니는 실로 나 때문에 천신만고를 겪은 분이시다.

1945년 8월 광복 후 나는 연길시 중앙소학교에서 계속해 소학교 공부를 하였다. 성도 다시 렴씨를 찾았다. 그러던 6학년 때는 장질부사에 걸렸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1948년 12월 연길시중앙소학교를 졸업한 나는 이듬해 3월 연길시제2중학교에 입학하였다. 학교에서는 내가 고아라고 1등 학생조학금을 발급했다.

나는 정부의 관심과 모주석의 은혜로운 사랑에 최대의 감사를 드렸으며 장차 커서 나라를 위하여 잘 복무해야겠다는 결심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였다. 하기에 3학년 때 앞다투어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였다.

1951년 3월에는 연변룡정고급중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집이 연길이여서 룡정에 가 하숙집을 잡고 반드시 6두미를 내야 했다.

외할머니가 근근히 벌어서 나의 생활비를 대는 형편에서 6두미란 실로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여서 나는 단연히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였다.

할머니는 “내가 아무리 괴롭고 굶더라도 네 공부만은 꼭 시키련다”고 단호히 말하면서 끝끝내 6두미를 마련해주었다. 나는 이렇게 1년 반 동안 견지하다가 드디여 렬사의 자식이고 고아였기에 1등 인민조학금을 향수하면서 룡정고중 학생숙사에 들어가 공부하게 되였다.

이때에도 나는 조국과 공산당의 따사로운 사랑을 몸으로 느끼면서 이 은혜에 보답하리라 다짐하며 배움에 더욱 진력했다.

연변박물관에 전시되여있는 부모의 유상 앞에서 딸 렴순옥

3

1954년 7월에 나는 룡정고중을 졸업하게 되였다. 나는 외할머니가 나 때문에 너무 고생하는 것이 가슴에 걸려서 대학시험을 치지 않고 사회에 나가서 할머니를 돌보리라 작심하였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기어코 대학시험을 치라고 강요했다. 사회상에서도 그 해의 고중졸업생이 너무 적어 모두 대학시험을 쳐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였다.

이리하여 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당시 대학 가운데서도 학제가 가장 짧은 2년제 대학인 연변대학 농전과 농학 전업에 1지망을 쓰고 입학을 바라지도 않았다.

1954년 9월 나는 연변대학 농전과농학전업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나누웠다.

외할머니는 정색하여 나를 꾸짖으면서 “너는 꼭 공부를 잘하여 어머니의 혁명전통을 계승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한생의 소망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할머니를 끌어안고 울면서 “나도 인젠 돈을 벌어서 할머니의 고생을 덜어주는 것이 소원입니다.”라고 울부짖었다.

할머니는 버럭 성을 내면서 “대학공부를 하는 것이 네가 좋으라고 하는 줄 아느냐? 네가 잘되는 것이 이 할미의 소원이고 혁명렬사인 네 어미의 바람이다. 그러니 당치도 않는 소리를 하지 말고 네가 대학을 졸업한 다음 나를 도와도 늦지 않다.”고 하면서 기어이 대학에 가야 한다고 훈계하였다.

나는 할머니의 간곡한 백당부 속에서 대학공부를 시작했다. 얼마 후, 농전과는 본과로 승격하면서 학제가 바뀐 데서 1958년 8월에 나는 농학원 농학전업을 졸업하게 되였다. 나는 학원의 식물학교연실에 배치되여 조교로 사업하게 되였다. 이 때에야 할머니는 내가 기어이 장한 일을 해냈다며 반가와하셨다.

4

1959년 봄, 나는 룡정에 세집을 잡고 연길에서 외할머니를 모셔왔다. 이로써 드디여 우리 집 구조에는 변화가 생겨 내가 호주가 되여 천신만고를 겪으면서 나를 살려주고 키워주고 밀어주면서 사회인으로 지식분자로 출세시켜준 할머니를 모시게 되였다.

외할머니는 로년에 백내장으로 두눈이 실명되여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소경으로 되였다. 그러나 수십년래 산전수전 다 겪어온 이 강인한 안로인은 완강한 의지력으로 생명을 이어갔다.

당시 어린 나의 큰딸 우영란(현재 연태에서 대학교수로 있음)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았는데 증손녀는 할머니를 모시고 위생실에 드나들고 거리에 소풍도 다니고 하면서 로할머니의 눈이 되고 친구가 되여주었다.

어느 날, 누운 석에 있던 할머니가 나의 손을 꼭 쥐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귀여운 내 사랑 순옥아, 네가 건실하게 자라서 대학공부도 마치고 대학선생까지 하구, 좋은 남편을 만나서 기뻐하며 잘사는 모습을 보니 나는 인젠 더는 여한이 없다! …저세상에 있는 네 에미에게 소원을 풀어줬다는 할 말이 있게 됐구나!”

1969년 외할머니는 세상을 뜨셨다. 나는 실로 하늘땅이 뒤번져지는 느낌이였다. 할머니는 평온하고도 미소 어린 얼굴로 우리와 영결하셨다.

나는 지금도 이 세상에서 나의 외할머니 만큼 위대한 분은 더 없다고 생각한다.

5

1969년 12월에 용신공사에 하방단련을 내려갔던 나와 남편은 1973년도부터 용신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어 오매불망 바라고 기다리던 부모님의 렬사증도 내려왔다.

1976년 11월 20일 나는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당기 앞에서 선서하였다. 그 날 밤 나는 남편과 함께 이 영광을 우선 고인으로 된 할머니께 아뢰였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의 옛 사진(연변박물관에 전시되였음)을 보면서 이 딸도 인젠 부모님과 같은 투사로, 동지로 되였으니 기뻐하시라며 회보를 올리기도 하였다.

나의 생명의 은인이시며 내 인생의 버팀목이신 외할머님 명복을 충심으로 길이길이 빈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9) ▩한창국(안도) 필자 한창국 지난 세기 70년대와 80년대에는 어느 마을에 가든 첫눈에 안겨오는 것이 담배건조실이였다. 지금의 현대식 담배건조실과는 많이 다른, 마을에서 제일 높이 지은 토목건물이기에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던 것이다. 담배를 건조할 때면 두사...
  • 2018-11-16
  • CCTV무대에서 조선말로 경극을 부르고 있는 리은화 중국의 3대 전통연극으로 불리우는 경극은 연극, 노래, 무용, 음악 등 모든 예술적인 요소가 총 집합된 종합예술로 중국의 오페라라고도 불리운다. “중국문화의 꽃”으로 명성이 높은 경극은 중국의 전통과 력사가 고스란히 배인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10...
  • 2018-11-09
  • 올해 10월중순의 어느 일요일, 장백조선족자치현 마록구진 과원조선족민속촌. 신랑신부를 대동한 조선족혼례행렬이 과원조선족민속촌대문안으로 들어선다. 언녕부터 대문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아줌마들이 우리 한복을 차려입고 너울너울 춤추며 신랑 신부를 마중한다. 신랑 신부와 친척 친구 행렬이 민속광장의 여러 곳을...
  • 2018-11-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8) ▩김민철(연길)   하향 50주년 기념모임에서 수기 〈첫걸음〉을 발표하는 필자 김민철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첫걸음을 걷는다. 그러나 긴 세월 속에서 줄곧 기억에 생생하고 평생에 득이 되는 뜻깊은 첫걸음은 몇번 안된다. &n...
  • 2018-11-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7) ▩박철원(연길) 필자 부부 지난날 없어서 못 먹던 세월이 지금은 싫어서 안 먹는 때가 되였다. 아빠트에 살면서 입쌀이며 밀가루를 마음대로 살 수 있고 고기며 해산물, 닭알, 우유, 과일이 풍성한 세월이다. 먹을 근심 없는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계획경제에 ...
  • 2018-11-02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5) ▩최진옥(화룡) 필자 최진옥 사무실에서 2010년 7월 28일,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은 폭우의 영향으로 하천의 물이 급속하게 불어나면서 홍수방지표준이 낮은 제방들이 볼품없이 파괴되였다. 상급의 자금조달이 륙속 도착하면서 재해손실이 제일 심한 1만 2000여메터에...
  • 2018-10-26
  • 今年10月17日是第五个全国扶贫日,也是第26个国际消除贫困日,在全社会齐心聚力为消除贫困共同努力之际,为进一步弘扬残疾人事业,动员全社会力量开展助残脱贫活动,10月23日,延边春雨爱心会携手延边州肢体残疾人协会在州残疾人活动中心举办“爱心奉献、共享阳光”爱心传递捐赠活动。   延边春雨爱心会成立...
  • 2018-10-25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4) ▩리호송(연길)   필자 리호송 연서거리와 연서교는 연길에서 차량과 시민들로 늘 붐비는 주요한 거리의 하나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기억에 희미해질 정도로 몇년에 한번 거닐가 말가한 거리였다.   헌데 2014년 6월, 시가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단위가...
  • 2018-10-23
  • 웨이하이 조선족 노인 100세 축하연 진행     (흑룡강신문=웨이하이)김명숙 기자=“산둥에 100세 조선족 노인이 있대요.”   웨이하이시에 살고 있는 조선족 김정호 노인의 100세 축하연이 지난 14일 웨이하이시 모 호텔에서 치러져 화제가 되고 있다.   웨이하이애심여성협회 회원인 임옥영 여사의 ...
  • 2018-10-22
  • —연변이 낳은 조선족 성악가 방춘월의 추구와 도전 1990년대부터 연변의 방송과 무대를 주름잡으며 독특하고 매력적인 음색으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방춘월, 오늘날 그는 멋진 실력으로 성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저명한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성악가 메조소프라노 방춘월은 현재 천진음악대학교의 성악교...
  • 2018-10-22
  • [가작상수상작품] 나와 로라스케트장의 인연  김경희   25년 전, 개혁개방의 거세찬 물결을 타고 나는 연변에서 제일 처음으로 체육관 실내에 로라스케트장을 운영하게 되였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남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잠시 그만두고 모험을 강행하며...
  • 2018-10-18
  • 은상수상작       내 가슴에 새겨진 모성애   최 영 숙 (연길)     얼마 전 “엄마가 많이 심해졌소. 이젠 며칠 버틸 것 같지 못하오.”라는 막내 녀동생의 전화를 받고 나는 연길시광영원 특별간호실에 급히 달려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 계모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얼굴을 찡그린...
  • 2018-10-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3) ▩김삼철(룡정) 2001년 9월, 손자와 같이 ‘7자나무’ 앞에서. 내 나이 80이 다된 지금에도 ‘7자나무’를 생각하면 어린 시절 아침 일찍 연길시장에 쌀 팔러 가는 어머니를 배웅하고 오후에는 돌아오는 어머니를 마중하던 행복했던 순간들이 영...
  • 2018-10-16
  • —가두에서 ‘나눔의 꽃’을 피워가는 홍봉옥을 만나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있는 홍봉옥할머니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특히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선행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
  • 2018-10-15
  • 연변부용장학회 장학금발급의식이 10월 12일, 룡정해란강호텔에서 있었다. 이는 2008년 연변부용장학회가 설립이후로 11년째 이어져온 행사로서 올해도 39명 연변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게 되였다.   이날 부용장학회는 연변대학교의 15명 학생들과 5명의 연변과학기술대학 학생들에게 매인당 400딸라를, 룡정고...
  • 2018-10-12
  • 나는 어떤 사람일까?           초야   지인중에 부탁 고수가 있다. 자신이 잘할수 있는 일도 굳이 친구중 한놈을 시키는데, 부탁받는 친구들도 누구 하나 짜증내지 않고 일을 깔끔히 마무리짓는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자신의 일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뒤로 미루기 일쑤인 친구들이...
  • 2018-10-10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1) ▩리오로(장춘) 고중시절의 필자 어제 연길에 다녀왔다. 장춘에서 호화로운 고속렬차를 타고 두시간 17분 만에 연길서역에 도착했다. 소음이 적고 내부시설이 호화롭고 깨끗한 것도 자랑거리지만 장춘에서 연길까지 열몇시간이 걸리던 기차가 두시간 17분 만에 연길...
  • 2018-09-28
  • [편집자의 말] 제1기부터 제3기까지는 길림성 연변지역과 산재지역 학교의 학생 가족을 선정하여 영상에 담았다. 제4기에서는 흑룡강성에서 유구한 력사를 갖고 있는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를 선정했다. 를 순조롭게 펴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를 해주신 흑룡강성 교육학원 민족교연부와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
  • 2018-09-20
  • 장춘시에서 조선족들이 결혼식과 회갑연을 올리거나 큰 행사를 치를 때면 장춘시명계식품유한회사에서는 빠짐없이 순대, 찰떡 등 조선족 전통음식을 제공한다. 음식에서 인정이 오간다고 여기서 조선족과 조선족사회를 위해 자기의 저그마한 성의를 보여주려는 명계식품회사 계영철 사장의 모습이 돋보인다. 행사뿐만이 아...
  • 2018-09-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9) ▩김룡운(교하) 학교 열람실에서 필자 김룡운선생님 나는 산에 오르내리기를 좋아한다. 왜냐 하면 나는 동년을 산골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60년대에 아버지가 그 좋은 장춘 도회지를 버리고 우리 자식들을 이밥이라도 실컷 먹이겠다며 하향하여 두메산골에 가서 짐을...
  • 2018-09-12
‹처음  이전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