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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96] 잊을 수 없는 그 날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8월11일 14시31분    조회: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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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4)

▩강성범(룡정)

 

필자 강성범

 

우리의 생활에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의 한페지를 남긴 2017년 10월 16일, 그 날은 연길현2중(지금의 룡정고중) 1967년급 초중 3학년 3반 졸업 50주년 동창모임이 있던 날이다. 그 날의 눈물겹던 아름다운 기억들은 아직도 어제런듯 눈앞에 생생히 떠오르며 머리 속을 감돌고 있다.

그 날, 동창들은 9시까지 모아산 동북호랑이 석상 앞에 모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그 강산이 5번이나 변한 후에 만나는 동창들이였다. 너도나도 기억에 아리숭한 얼굴들을 찬찬히 뜯어보며 “이는 누구지, 알쏭달쏭한데…” 하면서 떠오르는 애숭이 때의 모습들을 그려본다. 기억 속의 파문 따라 50년 전 유년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아직도 가슴 속에 별처럼 반짝이며 꺼질 줄 모르는 우정을 되새기며,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보면서 얼싸안고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이윽고 동창들은 박도선 반장의 인도하에 삼삼오오 자가용차들에 앉아 모아산 아래 아담하게 꾸며진 산뜻한 봉림동 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출석 체크를 마친 동창들은 저마다 만면에 웃음도 가득, 앞가슴에 ‘50주년 동창 기념회’란 글씨를 아로새긴 새빨간 유니폼을 산뜻하게 받쳐입었다. 그러고 보니 모두가 저녁 노을 붉게붉게 타오르며 대지를 더욱 아름답게 물들이듯 젊은이들 못지 않게 활기로 차넘쳤다.

시계를 보니 금방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아직 점심시간까지는 이른 시간이다. 동창들은 하나, 둘 마당 복판에 모여들어 추억이 앞장서 달리는 이야기들로 웃음꽃을 꽃피웠다.

1964년도 8월에 입학하여 해마다 10월초면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신을 높이 받들고 왕복 20여리나 되는 신화촌 재바위골로 도시락을 둘러메고 겨울철 난로 불쏘시개를 마련하려고 싸리나무를 하러 가던 일,

저마다 힘에 벅찰 정도로 큼직한 싸리나무 한단씩 해서 등에 지고 오다가도 도중에 신체가 허약한 친구들이 힘겨워 겨우겨우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게 되면 서슴없이 선뜻 그들의 짐을 절반 갈라 넘겨받아 메고 오면서 힘이 약한 동창들의 부담을 덜어주던 일이며,

북풍이 윙윙 휘몰아치는 겨울, 오전 학업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면 저마다 추워서 손을 후후 불면서 난로 옆에 둘러앉아 난로 우에 미리 올려놓았던 뜨끈뜨끈하게 덥혀진 반찬이며 새노란 옥수수떡이며 백미가 약간 섞인 수수밥이라도 서로 맛나게 나눠먹던 일이며,

짬만 있으면 단란히 모여앉아 오손도손 대수, 기하, 물리… 등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서로 토론하면서 학문을 고심히 탐구하며 지식을 쌓아가던 일,

저마다 흥취에 따라 기상관측, 수학, 물리… 등 써클에 참가하여 푸른 꿈을 키우던 일,

그리고 작문경색, 수학경색… 등등의 활동을 벌리고 경색이 끝나면 서로 답안을 맞춰보고 책을 뒤져보며 틀리면 애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르던 일이며,

장석화, 최선희, 김해숙, 리봉순, 허신숙 등 5명의 우리 학급 동학들을 주력으로 무어진 학교 녀자 배구팀이 전 주 중학교 녀자 배구 시합에서 일등의 월계관을 안아오고 또 길림성 중학교 녀자 배구경기 참가자격을 따낸 영광이며,

배구시합 때마다 동학들이 열광적으로 “하나, 둘, 셋, 여쌰!”를 소리높이 웨치며 응원하느라 목이 다 쉬여 말하기조차 힘들었던 잊지 못할 일이며,

뢰봉, 왕걸, 황계광, 구소운… 등 영웅인물들의 고귀한 혁명정신을 따라배워 사람마다 좋은 사람, 좋은 일을 하기에 떨쳐나서 학급을 위해 솔선적으로 좋은 일을 해놓고서는 이름 석자 남길세라 남몰래 종적을 감추던 일이며…

너도나도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도도한 웅변을 토하며 옛 추억으로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이렇게 우리 학급은 공부에서도, 운동에서도, 로동에서도… 각 방면에서 다 남에게 뒤질세라 승벽심히 강하고 단합심이 강한 똘똘 뭉친 학급이였다.

그 때 연길현2중은 연변에서 유일한 중점 실험 중학교였고 길림성에서 3개 뿐인 중점실험중학교의 하나로서 한개 학급에 50명씩 한 학년에 4개 학급만 설치하였는데 우리 학년은 초중 4년제 시점반이였다.

참말로 당시 무단투쟁을 벌리고 파벌싸움을 하면서 지식인들을 고린내 나는 아홉째로 몰아붙이던 10년 동란이 아니였더라면 우리 학급에서 숱한 대학생이 나왔을 것이고 숱한 인재들이 발굴됐을 것이다.

그 란리가 벌어졌던 판국에도 호승지벽이 드높고 진취심이 강한 동창들은 동란의 어려운 역경을 용케도 헤쳐나가며 의지 굳게 자기의 재간과 능력을 꾸준히 련마하여 하는 일들에 성공을 이루었고 오늘날 휘황한 성과를 거두었다. 전국적으로 고등학교 시험제도가 회복되면서부터 우리 동창들 속에서도 6명의 대학생, 4명의 중등전문학교 졸업생이 나오게 됨과 아울러 교수, 고급교사, 공정사, 경제사, 의사, 기업가… 등등의 사회에 유용한 많은 인재들이 나왔다.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있다 보니 어느새 시계바늘이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50년 만에 만난 동창들 축배를 높이 들고

우리는 비록 50년의 풍상고초를 겪으며 모두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할아버지로 변모했지만 마음만은 푸르러 마치 천진란만한 유치원 어린이들이 손에 손 잡고 교실로 들어가듯이 서로 즐거이 손에 손을 꼭 잡고 집안으로 들어가 이미 차려놓은 기다란 밥상에 어깨나란히 앉았다.

자리를 정돈한 후 박도선 반장이 출석을 불렀다. 학급 총 인수 50명 가운데 참가 인수 22명, 사유로 결근 7명, 출국 6명, 행방불명 6명, 사망자 9명.

우리들은 우선 반장의 제의에 따라 이미 저 하늘나라에 가있는 9명 동창생들의 명복을 빌며 추모의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드디여 졸업 50주년 기념 모임 축하연이 시작되였다.

너도나도 풋풋한 옛정이 부풀어오르는 가슴을 안고 찰찰 넘치는 술잔들을 높이 들었다. 우리 모두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이 모임을 마음껏 향수하며 즐겼다. 고향 떠나 이국땅에서 일하는 동창들, 그리고 피치 못할 사유로 참석하지 못한 동창들도 아쉬움을 담은 축하의 메시지들을 날려보내왔다. 어제날 한교실에서 함께 배우고 뛰놀고 뒹굴던 동년을 그려보며 순진하고 천진하던 동심의 세계에로 되돌아간 동창들은 누가 현퇀급 이상 간부이든 국장이든, 또 교수이든 기업가이든 모두다 틀거지를 버리고 단순한 동창의 정으로 즐거움에 젖어있었다.

세월은 흐르고 산천은 변해도 우리들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다. 가슴속 깊이 파묻혔던 옛정들이 생생 살아나 숨쉬며 서로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면서 신뢰의 정으로 넘쳐나는 모임은 흩어질 줄을 몰랐다. 그래서 워낙 하루로 정하였던 이번 동창모임을 하루 더 연정해 이튿날까지 지속했다.

우리들은 어제날은 추억으로 남기고 오늘날의 다시 만남을 마음껏 즐기며 환난에 서로 돕고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고 래일은 서로 건강을 챙기며 만년을 여유롭게 호강을 누리기를 축복하면서 새로운 통신록도 만들었다.

철없던 시절에 만났던 그 우정이 이토록 참되고 고마울 줄이야. 우리들은 서로 갈라지기 아쉬워 부둥켜안고 석별의 정을 나누며 5년 후 또다시 씩씩한 모습으로 누구도 빠짐없이 만날 것을 약속하며 이번 동창회의 아쉬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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