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팔굽걸음'으로 엮어낸 생명의 찬가(2)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3월27일 10시08분    조회:190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1급지체장애인 서순애 행복 찾아 수십성상—로동자와 제비 그리고 ‘붉은태양광장’

서순애, 파가이주구에서 로동자들을 위해 격정을 불태우던 그때를 그리며.

로동자들을 형제처럼 생각하고

화룡시에서는 6,7년전에 순애네가 살던 춘화촌을 포함한 동부 교외 부지를 개발해‘붉은태양광장’및‘태양성'이란 새마을을 건설해놓았다.

‘붉은태양광장'은 오늘날 서순애가 즐겨 가는 산책가이기도 하다. 거기는 서순애가 삶의 의지를 키운 곳이고 생명의 격정을 불태우던 곳이기도 하다. 순애가 살던 집은 바로 지금‘붉은태양광장'의 길 동쪽‘태양성'에 위치해 있었다. 2012년부터 순애네 동네는 또 한번 파가이주하기 시작했는데 순애는 파가이주로 임대했던 상점경영권을 14년만에 내놓게 되였다. 생계가 그대로 끊기게 되자 순애는 개발상 측에 자신의 실정을 감안한 차별화 보상요구를 제기했다. 그리고 한푼이라도 돈을 더 만들려고 잔고 상품을 원 상점에서 길을 사이둔 자기집에 옮겨 가 5개월간 상점 경영을 연장했다. 어머니가 세상뜬 후 순애는 홀로 8년간이나 상점을 경영했다.

“오뚜기처럼, 오뚜기처럼 다시 한번 일어나는 거야 ”

이는 서순애의 일지 첫 페지 안에 씌여져 있는 구절이다. 순애는 하루에도 그말을 수없이 대뇌이며 악전고투했다. 순애네 마을은 파가이주로 주민들이 빠져나간 대신 건축 로동자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순애는 새벽 세시면 일어나 일신을 정리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말끔하게 닦아놓는 손님맞이 례의를 고수했다. 상품들을 정돈하고 보충할 건 적어놓고, 로동자들이 컵라면을 먹도록 물도 끓여 보온병들에 가득 담아놓고 로동장갑 꾸레미에서 장갑을 쉽게 쥐여가도록 한컬레씩 짝을 맞추어 놓고...그러느라면 공사장 로동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군 했다. 이렇게 하루에 로동자들은 200여인차씩은 순애네 상점을 리용했다.

이른 새벽에, 밥술을 놓기 바쁘게 안전모를 쓰고 도구세트를 옆구리에 차고 공사장으로 나가는 로동자대렬을 바라보면서 순애는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도시건설의‘건설병(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벅찼다. 한편 그들의 그을린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 언제나 상점에 들어서기 바쁘게 얼음물부터 찾아 벌컥벌컥 들이켜는 모습을 보면서 순애는 고생하는 로동자들이 측은해지고 가슴이 아파나기도 했다.

“내 형제들도 외지에, 외국에 나가 이렇게 고생하겠지...”

그래서 순애는 로동자들의 수요라면 최대한 만족시켜주느라 종일 팽이처럼 돌아쳤다.

허기진 로동자들이‘훙소우러우(红烧肉)'를 만들어 줄 수 있는가고 청하면 순애는 그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도전해 만들기 시작했다. 점심이나 저녁 후 비오는 날이면 순애네 상점에 들어와 ‘별식'을 하거나 맥주를 마시면서 피로도 풀고 향수를 달래는 로동자들이 꽤나 되였다. 지친 어깨를 떨구고 아무렇게나 주저 앉아 맥주병을 기울이면서 수심에 잠기는 로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끼리끼리 집사정을 걱정하는 그들의 심성(心声)도 들으면서 순애는 날따라 그들의 향수를 읽어냈다.

그러다가 서순애는 자기한테 몇년째 방치되여 있던 전자피아노가 떠올랐다. 그 전자피아노는 순애가 애면글면 10여년간 아껴 모은 돈으로 산 것이다. 자기가 전자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구천에서라도 부모님이 보시기를 바라며 큰 마음 먹고 산 것이란다. 상규적으로는 오른손으로 멜로디를 연주하고 왼손으로 코드를 누른다지만 순애는 왼손으로 멜로디를 연주하며 힘 잘 못 쓰는 오른손이 박자를 따르게 해 끝내는 노래를 자유자재로 연주해냈다.

“쿰빠빠,쿰빠..”

"붉은해 솟았네... ”(노래〈붉은 태양 변강 빛추네 〉의 한구절)

“광활한 초원에 준마가 달린다...”(노래〈변강을 보위하는 준마 〉의 한구절,骏马奔驰在辽阔的草原...)

“초원의 풍광은 무한해 목청껏 노래하네...”(노래〈번신한 농노 노래부르네〉의 한구절, 草原风光无限好,叫我怎能不歌唱...”

해가 길어짐에 따라 공사장의 작업시간도 길어진다.‘붉은태양광장’공사장에 밤장막이 드리우면 파가이주 페허구에서 반디불처럼 보이는 순애네집-‘서양상점(徐洋商店)'에서는 순애의 전자피아노 연주가 시작된다. 구척사나이 로동자들이 목이 터지도록 노래흥을 타면서 때로는 독수리춤, 때로는 말춤도 추면서 자아에 도취한다...

그렇게 5개월 공사장에서, 2013년 6월 28일까지 순애는 파가이주구에서 14년간 지속해오던 상점경영에 종지부를 찍는다.

상점운영시‘팔굽걸음'을 하는 서순애는 로동자들이 조금이라도 불편을 느끼지 않게 하자는 생각에 특수한 수금공구도 제작해냈다. 커다란 콜라 피티병 옆구리에 장방형 홈을 파내고 병아구리에다는 두메터되는 막대기를 꽂아 로동자들한테로 밀어서 건네주어 돈을 받아오고 다시 거스름돈을 맞추어 그 공구에 넣어 로동자들한테로 건네주었다. 순애의 손으로 돈을 세고 돈무지에서 정확하게 한장씩 집어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준확도는 100%였다. 베껴낸 담배보루함을 펴서 돈을 사이에 끼울 수 있도록 겹치고 한 끝에는 금액찰로 선명하게 두드러져나오게 베여놓고 한쪽 끝에는 손가락으로 지페를 쉽게 집어내도록 오목하게 베놓아 1원, 2원, 3원...70원 단위로 지페를 맞추어 끼여 놓은‘거스름돈찰'을 만들어 손이 가닿는 높이로 다락으로 매달아 놓아 거스름돈을‘족집게'로 쏙쏙 뽑아낼 수 있게 했다.

 방문온 친척과 함께 상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긴 서순애와 그의‘남자친구'(뒤줄 왼쪽).

순애는 상점 시작 때부터,‘서양'이란 간판에서부터 자신의 도전, 혁신정신을 내걸었다. 순애는 자기가 상점경영에 도전해 나선 데는 고객이 스스로 상품을 선택한 후 돈을 지급하는 서양에서 들어온 슈퍼마켓식 경영방식에서 큰 계발을 받았다고 한다. 하여 간판에 자신의 성씨‘서(徐)'자와 서양식 슈퍼라는 의미로‘양(洋)'을 사용했으며 실질적으로 린근에서‘서양'상점은 제일 먼저 슈퍼마켓식으로 고객들한테 개방해 경영했다.

묘한 것은 원자리에 있었던 때나 후에 공사장에서 경영했을 때나 순애의 가게부에서 한번도 값이 차나거나 상품수가 적어진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로동자들이 조선족 김치를 먹고 싶어하는 것을 눈치챈 서순애는 나중에 지인의 손을 빌어 배추김치, 깍두기, 무우김치, 채김치를 각각 한 다라씩 만들어 공사장의 12곳에 널려있는 로동자구역에 보내 맛보게도 했다.

남편 따라 그 건축현장에서 일했던 하남성 루하( 漯河)지구 사람인 곽추향(郭秋香,57세)아줌마는 서순애의 상점을 리용한 로동자 중의 한 사람이고 서순애와 여직 위챗 친구로 지내고 있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는 서순애에 대한 인상을 말할 때 “그토록 애쓰는 서순애를 본 후로는 나는 내가 힘든 일 한다는 신세타령을 입밖에 낼 수가 없었다.”며 서순애를 “비범한 사람”이라고 치하했다.

“제비둥지 제발 허물지 마세요.”

     “고마워요!”,붉은태양광장'을 산책할 때마다 서순애는‘남자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순애가 고마워하는 한가지 특수한 사연이 있다.

상점경영을 마치기 며칠전, 순애는 상점을 찾아온 부동산 개발회사 측 대표에게 자기가 떠나가더라도 자기집을 인차 허물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순애네 집 처마밑에 한‘제비가족'이 둥지를 틀고 살고 있었기때문이였다. 그 둥지안에는 태여난지 며칠 밖에 안되는 새끼제비 5마리가 짹짹거리며 엄마제비와 아빠제비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고 있었다. 새끼제비들은 태여나 20일 쯤 돼야 날 수 있고 자립해 혼자 먹이곤충을 사냥해 먹자면 25일 쯤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순애는 계산해보니 자기집 새끼제비들이 자립할 때까지 아직 보름은 푼히 걸려야 했기에 개발회사 측에 사정했던 것이다.

‘태양성’건설회사 화룡해청부동산개발회사의 리사장 갈봉(葛峰)은 서순애와 그녀의 파가이주보상협의를 체결하러 갔다가‘제비가족'사정을‘애원'하는 서순애앞에서 두손 들어 “잘 알았습니다(好,知道啦)”하며 대답했다. 그제야 서순애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자기가 수십년간 살던 집과 마을을 시름놓고 떠나갔다. 개발회사 측은 과연 그 약속을 지켜주었다. 

해청부동산개발회사의 리사장 갈봉은 일전에 기자앞에서 사람좋게 웃으면서 “서순애에 대해 보상을 차별화한 것도‘제비가족'을 보호해 준 것도 다 우리 회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고 말했다.

뭇새들이 노래하고 봄빛이 완연한‘붉은태양광장'에서 서순애는 “걔네들도 올해는 일찍 오려나 ”하며 벌써‘강남 갔던 친구’-제비네를 기다리고 있다.

/길림신문 김영자기자

(주:‘팔굽걸음'으로 엮어낸 생명의 찬가(3)은 곧 이어집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양로사업을 영원한 직책으로 여기는 ‘이쁜 아가씨’ 박진화의 이야기 “로인을 돌보고 어린 애들을 보살필수 있는 양로원, 고아원을 차리는것이 어릴적 저의 꿈이였습니다.” 아니운서라는 화려한 후광을 벗어둔채 2011년 2월, 호리원으로 탈바꿈하면서 지금 사회복리원 특수호리구역에서 주임...
  • 2018-01-03
  • 뻐스정류소에서 길다랗게 줄지어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일본인들/리홍매특파원 일본인들의 줄서기를 그들의 문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조금은 망설임이 앞서는 일이다. 하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에 거부감이 전혀 없는 듯한 일본인들에 대해 처음에는 생소함을 느끼다가 점차 거기에 적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
  • 2017-12-26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5) ◇서정숙(중경)     언니가 보낸 다시 돌아오지 않는 〈2016년의 렬차〉란 글을 읽으며 감개가 무량하다.   무정한 세월은 드팀없이 꾸준히도 흘러 장장 45년이 지나 그제날의 갓 사업에 참가했던 짧은 량태머리 언니도, 늦은 공부라도 하려고 학교 다니던...
  • 2017-12-25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4) ◇주청룡(룡정) 1973년, 내가 생산대대의 과학실험소조에서 일할 때였다. 그 때 우리 대대에도 주에서 공작대들이 내려와있었는데 당시 주당위 선전부 리휘 부장이 우리 공사에 온 공작대의 총 책임자로 우리 대대에 와 주둔해있었다. 그 해 여름의 어느 날 리휘 부장은 대...
  • 2017-12-25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3) ◇남걸(목단강) 1976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목단강시전염병병원에 배치받아 의사사업을 한 지도 어언 4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매번 백설같이 흰 의사복을 떨쳐입고 병원 각 과실(科室)을 순시할 때마다 나에게 진정한 의사자격을 가져다준 감명 깊었던 40년 전 그 날의...
  • 2017-12-19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2) ◇황혜영 (길림) 50년 전 추억의 색바랜 사진(왼쪽이 어린 시절 필자) 어제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니 아침에 나가보니 아직 익지 못한 시퍼런 복숭아 열매가 나무 밑에 쭉 깔렸다. 복숭아를 볼 때마다 복숭아의 맛보다 그 씨가 어떨가 하는 생각을 먼저 해보는 나다...
  • 2017-12-19
  •   남편류학시절의 경제담보인이였던 노토 아키히로(能登昭博)씨는 대학교 졸업론문을 이라는 테마로 썼을 정도로 중국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아사히신문》(朝日新聞) 치바(千葉)동부지역의 판촉업무를 총괄하는 회사경영인이였던 그는 내가 일본에 온 이듬해에 새로운 사업으로 지역신문인 《호오지로》(ほお...
  • 2017-12-18
  • 일본의 선물보따리(자료사진) 어린 시절 엄마 뒤꽁무니를 따라 다니면서 눈으로 얻은 깨달음이라고 할가,“받은 그릇은 절대 빈채로 돌려 보내지 않는다”였다. 이웃사이에 주고 받고 빌리고 빌려 주고 하면서 살았던 그 시절, 동네집 잔치가 온 마을의 기쁨이였고 어느집에 상사가 나면 온 동네가 슬퍼했다. 그...
  • 2017-12-18
  • 〔한국서 홀로서기∼나는 이렇게 살았다〕 9년을 하루와 같이 문화봉사를 해온 석복순녀사의 감동 스토리 석복순(맨 앞)강사가 춤을 가르치고 있다 돌이켜보니 내가 2007년 둘째딸을 따라 한국에 올 때 나이가 예순이였으니 10년이 지난 오늘 어언 일흔이라는 고희의 나이로 되였다. 그간 줄곧 소외된 사람들에게 춤을 ...
  • 2017-12-12
  • (흑룡강신문=하얼빈)채복숙 기자 = "저희 기금회는 2012년에 랴오닝성민정청의 2급 법인으로 설립되어 대략 2년 여 동안 운영하다가, 2014년에 독립법인을 신청해, 2015년 1월에 정식 허가증이 내려왔습니다. 기금회가 설립되어서부터 지금까지 조선족사회의 많은 지원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부문...
  • 2017-12-12
  • 〔한국서 홀로서기∼나는 이렇게 살았다〕 9년을 하루와 같이 문화봉사를 해온 석복순녀사의 감동 스토리 석복순(맨 앞)강사가 춤을 가르치고 있다 돌이켜보니 내가 2007년 둘째딸을 따라 한국에 올 때 나이가 예순이였으니 10년이 지난 오늘 어언 일흔이라는 고희의 나이로 되였다. 그간 줄곧 소외된 사람들에게 춤을 ...
  • 2017-12-12
  • 우리 집 가까이에 살고 있는 량씨는 일본에 온지 10년째 되는 한족 료리사이다. 어느 날 그가 찾아와서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장가 보내고 나니 빈털터리가 됐어요” 18살 때부터 료리를 배웠다는 량씨는 일본어를 전혀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였다. 갓 마흔살에 접어들면서 일본...
  • 2017-12-11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1) ◇김동화(연길) 30수년전 그 때 그 학생들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 세월은 류수와 같다더니만 정말 만질 수도 걷잡을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시간의 흐름인가 본다. 어언 70을 코앞에 두고 보니 가끔씩 따르는 크고 작은 추억들로 머리를 메운다. 올해 제33회 교사절을 즐...
  • 2017-12-11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0) ◇김규칠 구술 김숙자 대필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있는 김규칠 로인 부부 내 나이 금년에 80이다. 긴 세월 수많은 일들을 겪다 보니 잊혀지지 않는 사연도 많다. 그런데 요즘 인정세태가 삭막해서 그런지 그 때 그 일이 어쩐지 더 자주 떠오르군 한다. 온 나라가 문화대혁...
  • 2017-12-11
  • 〔한국서 홀로서기∼나는 이렇게 살았다〕 “나는 스승을 잘 만나 성공했다” 가수, ‘아리랑 난타’ 단장 아이수의 성공담에서 내가 한국 온 년도가 2004년이니 올해로 벌써 10년 하고도 3년이 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그간 나의 한국생활에도 적지 않는 변화가 있어 자부를 느낀다...
  • 2017-12-11
  • 며칠전 묵직한 편지봉투 하나가 우리집에 날아왔다. ‘항상 감사합니다. 더 받은 송금료 164엔을 돌려 드립니다. 또 기회가 되면 잘 부탁합니다’ 짤막한 메모용지와 함께 동전 164엔이 들어 있는 봉투였다. 나는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영문을 물었다. 사실은 지인의 부탁으로 인터넷경매에서 옛...
  • 2017-12-10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9) ◇리희숙(안도) 애청자협회 열성자로 뛰고 있는 필자 리희숙 격정과 활력에 끓어넘치며 정열에 불타던 그 청춘시절, 걸탐스레 지식을 배워가며 희망과 기대에 부풀었던 학창시절을 마치고 ‘광활한 천지에는 할일이 많다’는 모주석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1965년...
  • 2017-12-05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8) ◇전영실(연길) 등산길에서의 필자 전영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취업통지서를 받고 우전국 인사과로 등록하러 갔던 때의 일이 어제런듯 눈앞에 삼삼하다. 한 나이 지긋한 책임일군이 반가이 맞아주며 “동무는 무슨 특장이 있소?” “어떤 일을 하고 싶소?” 하며...
  • 2017-12-05
  •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일본에 온지 일년후였다. 그때 야마모토 타마에(山本 多摩江)씨는 우리가 사는 지역의 국제교류협회 책임자였다. 영어에 능한 그녀는 외국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대부분의 일본인들에 비해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일본...
  • 2017-12-05
  • 각 지역 촌마다 빈곤해탈 난관 공략전이 치렬하게 펼쳐지고 있는 요즘, 누구보다 마음 한켠이 조급해나는 한 젊은이가 있다. 연거퍼 몇달동안 집에 내려가지 못한 채 농촌사업터에서 빈곤해탈사업을 위해 뛰여다니느라 낮과 밤을 잊은 그는 바로 룡정시 백금향 빈곤부축판공실 주임 홍광철(33살)씨다. 룡정시 백금향 빈곤부...
  • 2017-12-01
‹처음  이전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