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 김영숙 -
(흑룡강신문=하얼빈) 오늘은 사촌녀동생이 백년가약을 맺는 날이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사촌녀동생을 바라보노라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내 눈앞에는 꽃너울을 곱게 쓰고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우리 김씨 가문에 들어선 올케의 예쁜 얼굴이 선히 떠올랐다.
현시대의 젊은이들이 따르는 류행에 걸맞지 않게 올케는 2000년도 초에 우리민족의 전통복장인 한복을 입고 꽃너울을 쓰고 우리 김씨가문의 일원으로 되였다. 결혼식날, 많은 하객들이 요즘 서양문화를 본따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색시는 많이 보아도 90년대초까지 류행이던 우리 조선민족의 첫날색시들이 입는 한복에 너울을 쓴 “촌스러운”색시를 처음 본다면서 모두들 혀를 끌끌 찼다. 올케는 그래도 자기한테는 하얀 면사포에 가려진 드레스보다 꽃너울을 쓰고 한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더 어울린다면서 한사코 우리민족의 전통 복장을 선호하면서 마냥 행복의 미소를 머금었다.
올케가 우리집문턱에 들어선후 우리가족은 항상 사랑과 행복이 넘쳐 흘러넘치였다. 엄마, 아버지는 항상 생글거리면서 “어머니께서 해주신 반찬이 참 맛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사주신 옷이 참 따뜻합니다”라고 올케가 깎듯이 인사할때면 아마 세상의 모든 행복이 당신들 몫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동네사람들이 “그집 며느리는 속은 어떤지 몰라도 키는 넘 작소…” 라고 하실때마다 아버지는 얼굴에 노여움이 가득해서 ”쓸데없이 키는 커서 뭘하오? 작은 고추 맵다고 우리 며느리가 얼마나 야무지고 싹싹하고 똑똑한지 당신들 알기나 하오…”라고 언성을 높이시면서 손사래를 치시군 하시였다.
결혼해서 아기자기 행복하게 살면서 귀엽고 이쁜 조카애가 태여난후 동생은 더 좋은 생활환경을 마련하고저 바다건너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었다. 3년뒤, 올케도 젊었을때 같이 맞들고 벌어야겠다면서 4살난 조카를 엄마, 아버지한테 맡기고 동생을 따라 떠났다. 삶에 대한 소박한 꿈을 안고 시작한 외국생활, 마른일, 궂은일 가리지 않고 억척스레 일해서 열심히 돈을 모아 부모님 모시고 이쁜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려는 동생한테 다발성골수종이라는 병마가 덮쳐올줄이야,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였다. “언니, 어쩌면 좋습니까? 현우씨가 살수 없담다. 흑흑….”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올케의 울음섞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가슴은 무엇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병원에 도착해보니 병상에서 몰라보게 수척해진 동생과 울어서 두눈이 퉁퉁 부어있는 올케를 바라보는 이 내심정은 마치 예리한 칼로 도려내는것만 같았다. 무균실에서 항암제부작용으로 인하여 머리가 다 빠지고 심한 통증때문에 침대시트를 꽉 움켜잡고 힘들어하는 동생의 일상을 말없이 거들어주면서도 힘든 기색, 불평 한마디 없이 동생을 돌보는 올케… 울고싶어도 앓는 동생앞에서는 슬픈 기색 한번없이 항상 생글거리면서 “여보, 오늘도 우리 함께 힘내, 울 남편 화이팅!”라고 하면서 용기와 힘을 북돋아주군 하였다. 몇번이고 화장실에 가서 몰래 울고 나오는 올케와 마주친적이 있었다. 나는 올케가 참으로 불쌍해보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무남독녀로 자라서 고생이란 무엇인지 모르고 자랐었는데 남편이 큰병에 걸렸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가? 아마 억장이 무너지는것 같았을거야, 모진 아픔을 참아가는 동생옆에서 항상 힘이 돼주고 버팀목이 되여주는 올케가 수백번도 고맙다. 자가세포이식후 몇달후 동생의 병이 또 재발하였다. 이번엔 부득불 동종이식을 해야만 동생이 살수가 있었다. 형제의 골수가 가장 적합하다는 말에 의해 내가 골수검사를 받게 되였는데 불행중 다행으로 나의 골수가 동생의 골수와 일치하여 골수이식을 할수 있게 되였다.
골수이식을 하는 날, 창밖에서는 애꿎은 가을비가 쭈룩쭈룩 내렸었다. 무균실에 출입금지가 되자 두개의 무균실에 각각 나란히 누워있는 우리 오누이를 올케는 다람쥐 채바퀴 돌리듯 번갈아가면서 차가운 가을비를 맞으면서 창밖에서 응원해주었다. 올케가 내동생에게 몰붓는 사랑을 난 피부로 느낄수가 있었다. 난 속으로 “내 몸속의 좋은 세포가 빨리 동생한테 들어가서 동생이 하루빨리 완치되여 저 불쌍하고 예쁜 녀인의 얼굴에 웃음이 넘치게 해줍소서~ ” 하고 빌고 또 빌었다. 자가세포이식보다 동종이식이 부작용이 더 많이 나타날거라고 교수님이 알려주어서 미리 예측은 했지만 동생의 부작용은 너무나 심하게 나타났다. 얼굴피부가 다 일그러지고 온몸이 통증이 심하여 견디기 어려워 그대로 삶을 포기하려는 동생한테 올케는 삶의 한가닥 희망을 불어넣어주었다. 이대로 무너져버리면 자기는 살수 없다고… 다리 진통이 너무 심하여 진통제를 자주 복용해도 별 차도가 보이지 않자 온밤 병원의 쪽걸상에 앉아 동생의 발을 뜨거운 물에 담그거나 주물러주기도 하였다.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모두가 알다싶이 병원에 가면 앓는 사람보다 간호를 하는 사람이 더 힘들다는것을… 하지만 올케는 한번도 힘든 내색을 낸적이 없었다. 내가 보다못해 “올케는 어쩜 나이도 어린데 이렇게 당차게 내동생을 잘 돌볼수가 있지? ”라고 하니 올케는 “언니, 나도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서 울기만 하였습니다. 밥도 먹기 싫고 사람대하기도 싫고… 하지만 울 회사 사장님이 나보고 ‘지금은 의술이 발달해서 꼭 치료될거라고… 하루, 이틀에 나을 병 아니니니깐 안해가 흔들리면 환자는 어떻게 희망을 갖고 치료할수 있냐고…’하시면서 밥 한그릇에 장국을 사줍데다. 그날 나는 장국에 내 눈물을 섞어서 한사발 먹고 이제부터 눈물 안보이고 남편간호도 잘하고 회사일도 열심히 잘하겠다고 사장님과 약속을 하였습니다.”회사 동료의 아픔을 친인의 아픔으로 여기고 병간호와 출근 시간을 합리하게 조절해주셔서 생계유지와 병간호를 할수 있게끔 배려해주신 사장님이 친언니같은 사랑을 베풀어 옳바른 인도를 해주셨기에 꽃너울을 쓰고 백년가약을 맺은 동생에 대한 끈끈한 사랑이 토대로 되여 올케가 지금까지 당당하게 버티여 나갈수 있단다. 우리주위를 둘러보면 지금 세월에 남편이 중병에 걸리면 나이가 많던 적던 보자기를 싸가지고 달아나는 녀자가 어디 한둘인가? 하지만 올케는 이런 현상을 타파하는 전형적인 모범인물이였다. 작달막한 키에 30대 녀성이 짊어가기엔 참으로 버거운 짐이였지만 올케는 항상 내동생앞에서 생글거리며 병시중을 든다. 병세가 악화되여 무균실에 있는 동생의 면회가 안되자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와하는 올케의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던지 간호사들은 담장밖에 나가면 좁은 창문이 있는데 그곳에서 들여다볼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올케는 이튿날부터 퇴근시간만 되면 쌀쌀한 가을바람을 맞으면서 창밖으로 병마와 싸워가고 있는 동생한테 눈도장을 찍고 핸드폰을 리용하여 병정황을 일일이 물어보면서 주의점도 교류하고 회사에서 있었던 일, 뻐스에서 있었던 일을 동생과 이야기하면서 동생의 기분을 전환시키기에 아낌없는 노력을 해왔다. 또한 주말이면 빵쪼각이나 과일을 들고 창밖의 화단에 앉아 대충 끼니로 에우고 동생을 창문가로 들여다보면서 하루종일 위안해주기도 하였다. 이러는 올케한테 내가 뭘 더 바랄것이 있겠는가? 아마 이 장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감동적인 한폭의 풍경과도 흡사하였다. 내 올케지만 나보다 어린 올케의 행동에서 마음이 울컥해날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요즈음은 동생이 퇴원하여 집에 있지만 항암제부작용으로 인하여 애어른이 되여서 아무것도 할수 없게 되였다. 또한 세균에 감염될가 두려워 올케는10여평이나 되는 세집을 매일과 같이 소독하고 병에 좋은 식단을 짜서 동생을 돌보고 있다. 오래동안 병상에 있는 동생이 성격이 괴벽해져서 때론 짜증을 많이 내여서 올케는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겠지만 “아픈 사람이 더 힘들지 내가 더 힘들겠습니까? 내 남편이니 내가 책임지고 병치료를 하면서 이젠 부부의 의리로 살아야지요.”하고 웃음으로 넘기기가 일쑤이다. 난 동생한테 “넌 참으로 몸은 아파도 세상에 누구도 없는 둘도 없는 마누라복은 혼자 차지한것 같구나”라고 하였다. 동생도 “그러게, 누나 그래도 너울을 쓰고 들어온 조강지처가 다르긴 다르오”하면서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동생이 병마와 싸워가고 있는 이 3년동안, 올케는 매일과 같이 출근하랴 병상에 누워있는 내동생을 돌보랴 다람쥐 채바퀴 돌리듯 분망히 보낸다. 하지만 신심을 갖고 치료하면 동생의 병이 꼭 나을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힘입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앞만 보고 열심히 열심히 살아간다. 이러는 올케한테 나는 세계상에서 제일 큰 상인 노벨상보다 더욱 깨끗하고 더욱 멋진 우리 백의민족의 하얀 미덕을 지켜가는 가장 아름다운 현처량모상을 주고싶다.
사랑하는 올케야. 너무너무 고마워, 그리고 올케 사랑에 힘입에 현대의학의 힘에 의하여 내동생도 건강을 꼭 되찾을거야!
멀지 않아 올케가 꽃너울을 쓰고 행복을 만끽하던 그때가 꼭 올거야, 그날이 오면 이 언니가 한땀한땀 이쁜 꽃으로 올케의 이쁜 마음을 장식하여 세상에서 제일 예쁜 하나밖에 없는 꽃너울을 선물할게...
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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