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연구를 위해 평생 헌신한 일본인 노학자가 있다. 그는 1973년 한국에 유학 왔을 때의 설레는 마음을 “오랜 세월 동경해 오던 땅에 실제로 몸을 두고서, 그 대지 위를 걸어 다닐 수 있는 기쁨에 나는 취해 있었다. … 내 조국이라고 부를 수 없지만, 사랑하는 대지를 밟았다”고 고백한다. 1970년에 발간한 잡지 ‘조선문학’ 창간호에는 “조선문학을 사랑하고 조선문학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는다는 오직 하나의 목표로 우리가 뭉쳤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적었다. ‘한국(조선)문학’에 대한 그의 각별한 사랑은 이후 한결같이 유지됐다. 나는 이토록 한국과 한국문학에 순정한 애정을 지니며 심혈을 기울여 탐구한 일본인 학자를 본 적이 없다.
그는 1950년대 후반 대학원 시절 중국문학을 전공하던 중에 운명과도 같이 한국문학과 만났다. 님 웨일스·김산의 ‘아리랑’,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접한 것이 한국(문학)에 눈을 돌리게 만든 뜻깊은 계기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60여년의 세월 동안 누구보다도 열정적이며 성실하게 한국문학 연구에 몰두했다.
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1933~) 와세다대 명예교수 얘기다. 최근 ‘오무라 마스오 문학 앨범’(소명출판)이 발간되면서 그의 저작집 여섯 권이 모두 완간됐다. 요 며칠간 폭염과 사투하며 여섯 권을 탐독했다. 이전 판본이나 학술지에서 이미 읽은 대목도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감동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는 어떤 한국학자 못지않게 한국문학과 한국의 역사를 투명하게 인식하고 한국인의 고뇌와 상처, 투쟁과 저항, 심성과 운명을 따사로운 시선으로 응시한다.
그는 단지 서재에서 한국문학 연구를 수행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한국 유학과 방문학자 경력은 물론이거니와 1985년 조선족 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연변에서 일 년 동안 체류하기도 했으며, 1991년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중국 장백 조선족 자치현을 방문한 바 있다. 연변 거주 기간에 그가 40여년 동안 고향 용정 언덕에 방치됐던 시인 윤동주의 묘비를 발견해 세상에 알린 것은 동아시아 현대문학사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이리라. 오무라 마스오 저작집을 통독하면서 엄밀한 실증정신, 연구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열린 태도, 편견 없는 지성의 향기, 인간과 문학에 대한 곡진한 애정, 소수자와 함께하는 따뜻한 정신을 느꼈다.
1권 ‘윤동주와 한국 근대문학’을 비롯해 여섯 권 모두가 소중한 성과이지만 특히 6권 ‘오무라 마스오 문학 앨범’에는 저자가 만난 한국문학의 생생한 현장과 수많은 사람의 무늬가 펼쳐져 있다. 윤동주, 김학철, 김용제, 임종국과 함께한 시간, 장소, 표정, 미소가 깊은 페이소스를 발산한다. 특히 오무라 교수의 스승이자 저명한 루쉰(魯迅) 연구자인 다케우치 요시미 교수가 결혼식 축사를 하는 인상적인 사진은 그 자체로 기억할 만한 장면이다. 나는 이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단아한 표정에 담긴 진심과 겸허한 지성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오무라 마스오 저작집이 일본이 아니라, 그 이해와 공감을 위해 평생을 바친 한국에서 출간됐다는 사실 자체가 그와 한국을 둘러싼 숙명을 상징한다.
급조된 가짜 국제 학술대회와 가짜 학술지가 요즘 학계의 화제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이기에 소수자, 상처받은 자에 대한 깊은 공감과 정겨운 연대의 마음으로 한국문학 연구에 온 인생을 바친 오무라 교수의 학문적 여정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오무라 마스오. 그는 일본의 양심이며, 이 시대 학자의 귀감(龜鑑)이다.
남과 북, 중국, 일본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역사적 전환기다. 그렇다면 조선족(문학)을 비롯해 남과 북의 문학에 대해 오랫동안 담담한 애정으로 응시해 온 일본인 오무라 교수의 삶과 글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온전히 되새겨야 할 문화적 자산이리라. 그의 건강을 기원한다. ▲ 권성우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서울신문 2018-07-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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