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남아있는 나날》(“长日留痕”, 2011년 역림출판사 출간) 은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이다.
출간 당시 평단과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으로, 영어판본만으로 이미 100만부 넘게 팔렸고 20여개 국에서 번역, 출간되였다.
유서깊은 귀족저택의 장원을 자신의 세상 전부로 여기고 집사로서 평생을 보낸 한 남자의 6일간의 려행을 그렸다.
집사 스티븐스는 주인의 저택이 판매되자 저택의 옛 동료였던 켄턴을 찾아 6일간의 려정에 나선다. 회고의 려정 속에 30년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금씩 밝혀진다.
자신이 평생 헌신해온 영국 최고 저택의 주인이 나치 지지자였음을 알면서 스티븐스는 허망한 상실감에 사로잡힌다.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맹목적인 믿음으로 모셨던 이미 죽은 주인이 고용주로서는 훌륭한 사람이였다고 생각하는 스티븐스는 이 괴리 때문에 괴로와한다. 집사로서 직업의식이 투철한 그는 일외의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여태 살아왔다.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을 옆에서 지키지 못한 것, 자신에게 다가왔던 켄턴에게도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채우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해 떠나가는 것조차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던 자신을 다시 떠올리며 회한을 머금게 된다.
스스로 개인적인 삶을 철저히 무시하며 살아왔지만 스티븐스는 과연 자신이 제대로 살아온 것인지 회의를 가진다. 그는 인생의 황혼기에 와서야 소박하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다.
작품은 스티븐스의 가족과 련인 그리고 30여년간 모셔온 옛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근대와 현대가 뒤섞이면서 가치관의 대혼란이 나타난 1930년대 영국의 격동기를 들여다본다.
작품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느끼는 복잡한 층위의 감정들이 촘촘하게 얽혀있었다. 그렇게 인생의 황혼녘에야 알아버린 잃어버린 사랑의 허망함과 애잔함에 관해 내밀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30년이라는 회한의 시간 속에 우리 인생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풀어서 말해준다.
이 소설은 큰 찬사 속에1989년 맨 부커 상을 수상했다.
사람들은 이시구로가 이민하여 도착하기 훨씬전에 영국에서 사라진 문화를 그가 어떻게 이렇게 훌륭하게 그려냈는지 감탄해마지 않아했다. 조금은 색바랜 유화를 보는듯, 고풍스럽게 어딘가 뭉근하게 행간을 자극하는 기분은 이시구로의 소설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문장의 맛’이라 하겠다.
“매우 유쾌하면서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슬픈 책” , “아름다움과 신랄함을 함께 그려낸 수작” , “스토리, 문체, 작품성, 모든 점에서 놀라운 작품” 매체, 유명작가, 서점가들에서 이 작품에 대해 “눈부신 소설이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고 쏟아냈다.
개인의 인생과 격변하던 시대에 대한 력사적 조망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세심하고도 폭넓은 통찰력으로 인간의 품위에 대해 말한 작품은 이시구로 소설들중에서 가장 성공하였다는 평을 받는다.
이시구로의 이 소설이 발표된 지도 근 30년이 되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도 어언 2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시구로의 작품이 잘 읽혀지지 않는다는 풍설이 있다.
이곳 서점가에서도 지금 이시구로의 작품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시간이 지나서가 아니라 노벨문학상 수상의 랑보가 들려왔던 2년전에도 이시구로의 소설은 그 명작의 진가에도 불구하고 전문코너조차 없이 서점가 구석 쪽에 볼썽사납게 꽂혀있었다.
인터넷에서 보았는데 다행히 이 책을 읽었다는 90후 독자가 있었으나 책을 읽은 리유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애매함 그리고 황당함 그 자체였다.
영화 때문에 이 책을 읽었는데 영화의 녀주인공이 판타지 ‘해리포터’에 나오는 단역배우와 함께 한적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였다고 한다. 책 안 읽는 척박한 풍토의 요즘, 작위적인 유머 같지만 별로 웃음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이다.
자극적인 소재와 가벼운 글이 넘쳐나는 데다가 멜로, 추리, 판타지 등 쟝르소설이 각광받는 시대이라 시종 진지한 격조를 유지하는 이시구로의 문체는 그야말로 복고풍에 다름 아니다.
비록 복고풍의 낡투로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시대의 모순과 개인의 갈등이라는 고전적인 정식을 재해석하며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따라서 소설 속 사람들이 갖는 고민들이 오늘의 것, 나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서 위로를 받게 되는 깊으면서도 유장한 필치의 소설이다.
그리고 이시구로의 문체처럼 뭉근한 숙제를 남긴다.
과연,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남아있는 나날’은 어떤 모습일가?
올해는 여러가지 알량한 리유로 세계대전 때문에 루락되였던 75년 후, 노벨문학상이 취소되는 이변이 연출되고 있다.
문학의 위상이 찬 땅에 내동댕이쳐진 작금의 현실에서. 노벨문학상마저 없는 가을은 더더욱 씁쓸하게 다가올 듯 싶다.
이 가을,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 한권 묵은 서가에서 꺼내여 수삽한 바람에 펄럭이는 코트 앞섶에 보듬어 껴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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